문학과 철학의 만남
김동수
문사철(文史哲)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학에서의 언어와 역사·철학에서의 언어는 다르다. 역사에서의 언어가 있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언어라면, 철학에서의 언어는 대상을 추상적으로 체계화하는 지식의 언어다. 그러기에 역사와 철학은 사실과 논증을 중시할 뿐 표현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 비문학적 언어다.
문학은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을 상징과 비유와 같은 문학적 수사를 동원하여 주제를 형상화(形象化)한다. 때문에 문학의 언어는 사실의 기록도, 이성적 논리도 아니고 작가가 작품 속에서 구현한 현실과 인생을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표현의 언어이다. 문학은 사물과 이야기를 통한 구체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여기에 구사된 언어는 경험적 사실에 대한 지식과는 달리 다분히 정서적·직관적 표현으로 보다 깊은 통찰과 상상력으로 생(生)의 진리를 붙잡아 보려 한다. 이런 점에서 문학은 역사와 철학과는 달리 상상에 의해 확보된 허구적 진실, 곧 문학적 진실(reality)의 세계다. 현실을 반영하되 현실 그 자체는 아니요 작가에 의해 창조된 허구의 세계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있을 법한 현실, 그럴듯한 현실을 구축해 현실을 더 감동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fact)의 세계가 아니라, 장차 있어야 할 것에 대한 구상적 상상력이요 사실보다 더 아름다운 허구의 세계다. 때문에 문학은 역사에 비해 비현실적이고, 철학보다 비논리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일어나지 않는 문학적 진실이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왜냐하면, 문학은 역사보다 더 현실적일 수도 있고, 철학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개별적인 것을 말할 때,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많다” 그래서 니체도 철학을 논리와 추론으로 쓰지 않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소설을 통해 그의 실존철학, 곧 신(神)으로부터 인간 정신을 해방, 신은 죽었다. 그러니 네 운명을 사랑하며 미래를 향해 네 자신을 초극하라 전달했다. 그리하여 서양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고전이 되었다. 책의 내용이 결코 쉽지 않으나 니체의 아름다운 문체와 문장들에 독자들은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전율과 지적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딱딱하고 어려운 철학에 비해 그 심오한 사유의 세계를 문학적 상상과 잠언(箴言)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비유하였다.
하지만 문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철학이 이해를 목표로 논리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동양에서는 문사철(文史哲)을 통합적으로 이해해 온 전통이 있어 문학, 역사, 철학은 그 뿌리가 같다고 여겨왔다. 때문에 과거(역사)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오늘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철학은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것들을 깊이 있게 탐구하여 사고력을 키워 주고, 문학은 철학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예술적으로 창조해 가는 미래지향적 세계다.
수많은 문학작품들은 그러기에 역사적인 것들을 소재로 삼아 거기에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다시 말해?문학은 철학적 개념과 사고력을 바탕으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역사와 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문학, 그래서 카뮈도 ‘위대한 소설가는 철학적 소설가’라 했다.
철학이 나무의 뿌리라면, 역사는 그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요 잎이다. 그리고 문학은 그 줄기와 잎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꽃이다. 문학은 역사와 철학을 바탕으로 상상하면서 그것을 재해석하고 구상화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자 한다. 진지하게 탐구하고, 철학적으로 사고하면서 문학적으로 표현한 언어 예술이야말로 우리들의 가슴에 오래 남아 인구에 회자하는 진정한 문학이 되지 않을까 한다.
김동수<시인/(사)전라정신연구원장>
출처 : 전북도민일보(http://www.do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