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영축산
2026년 06월 28일(일요일)
산행코스 : 영축사(08:55) - 보덕사(09:10) - 신선봉(10:30) - 영축산(11:30) - 병봉(13:00) - 구계마을 갈림길(13:30) - 임도 - 구례마을회관(14:20)
산행거리 : 8.4km
보덕사 들머리
영축사
보덕사
보덕사 대웅전
영축산 들머리
영축산 2.6km
신선봉 720m
보덕봉(541m)
암릉을 넘어갑니다.
전망바위
영산IC
울산~함양간 고속도로가 보입니다.
암릉을 넘어 신성봉 정상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석대산, 구현산 넘어로 화왕산, 관룡산, 구룡산과 우측 영축산
신선봉 정상입니다.
영축산 1.4km, 보덕사 1.4km
신선봉 정상석
신선봉에서 바라본 종암산 방향 파노라마
영축산, 변봉(고깔봉), 보름고개
당겨본 좌측 영축산
변봉(고깔봉), 보름고개와 종암산
좌측 변봉(고깔봉), 우측 보름고개
좌측 덕암산, 종암산, 우측 함박산과 그 뒤로 무척산, 정병산이
당겨본 종암산
함박산
창녕군 영산면과 울산~함양 고속도로와 좌측 저멀리 낙동강, 우측 자굴산, 허굴산
석대산, 구현산 넘어로 화왕산, 관룡산, 구룡산, 중앙 영취산
당겨본 석대산, 구현산 넘어로 화왕산, 관룡산, 구룡산
당겨본 영축산과 변봉
신선봉에서 영축산 방향으로 안부에 내려오면 영축산성이
영산향교 갈림길
신선봉 0.5km, 영축산 0.9km, 영산향교
영축산성
법화암 갈림길
신선봉 1.2km, 영축산 0.8km, 법화암 0.6km
앞에 보이는 암봉을 우회합니다.
좌측 보름고개, 종암산, 함박산, 우측 신선봉
보름고개, 종암산
좌측 종암산, 우측 함박산와 구계리
종암산 뒤쪽에 덕암산
신선봉
647봉을 우회합니다.
영축산이 보입니다.
영축산
영축산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영축산 정상에서 바라본 종암산 방향 파노라마
좌측 보름고개, 덕암산, 종암산과 구계리
종암산 뒤쪽에 덕암산
종암산, 우측 함박산와 구계리
647봉
당겨본 우회한 647봉
당겨본 신선봉
영축산
석대산, 구현산 넘어로 화왕산, 중앙에 관룡산, 구룡산, 우측 영취산(738m)
관룡산 아래 옥천마을, 좌측 사리마을
영축산 0.2km, 신선봉 1.8km, 변봉(고깔봉) 1.5km
석대산, 구현산, 화왕산, 억새군락지
당겨본 656봉 아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둥지를 튼 충효사와 구봉사
두 사찰이 한지붕 두가족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구봉사 갈림길
보덕사 2.6km, 영축산 0.2km, 구봉사, 충효사 0.6km, 구계임도 2.4km, 변봉(고깔봉) 1.5km
청련사 갈림길
청련사 1.6km, 영축산 0.4km, 변봉(고깔봉) 1.4km
사리마을 갈림길
영축산 0.3km, 사리마을 1.8km, 변봉(고깔봉) 1.3km
가야할 변봉(고깔봉)
변봉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변봉 올라가는 길에 바라본 영축산 방향 파노라마
함박산와 구계리
함박산, 구계리, 신선봉
뒤돌아본 신선봉, 589봉, 중앙에 뽀족한 영축산 정상
좌측 영축산
중앙 화왕산, 관룡산, 구령산
좌측에 화왕산, 중앙에 관룡산, 구령산, 우측 창녕 영취산(738m)
중앙 옥천마을과 좌측 옥천저수지
이 암릉이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내려가 더 가파르고 험한 암릉을 올라갑니다.
변봉 정상을 향하여...
좌측 신선봉, 589봉, 중앙 영축산
변봉
구계임도 1.0km, 영축산 1.6km
함박산, 구계리
구계임도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구계임도 방향은 직진, 구계마을 하산길은 우측입니다.
구계마을 하산길로 내려갑니다.
구계마을
구계마을회관
석빙고(보물 제310호)
빙실 길이 11m, 너비 3.6m, 홍예(虹霓) 높이 3.7m. 창녕읍내를 동서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되게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었습니다.
남쪽에 입구를 내고 급하지 않은 경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북쪽 구석에 배수공이 있어 물이 개울로 흘러들어가게 되어 있다. 빙실 밑바닥은 평평한 장방형으로 장방형의 막음벽은 작은 석재로 수직으로 올렸고, 홍예를 지탱하여 주는 양쪽벽도 그러한 형식으로 구축되었습니다.
내부는 측벽에서 홍예 4개를 틀었고, 홍예와 홍예 사이에는 장대석을 걸쳐서 천장을 삼았으며, 이곳에 배기공을 설치하여 외부에 덮은 봉토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석빙고 입구 옆에 ‘석빙고비(石氷庫碑)’가 있는데 이 비문에 의하면, 현감 신후서(申侯曙) 등이 영조 18년(1742)에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