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학문의 방향 전환>
조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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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학문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 교육과 학문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어서, 교육은 자율성을 확보하고 학문이 그 나름대로 발전한다. 교육과 학문이 둘이 아니고 하나여서, 교육은 내용이 충실해지고 학문이 유용성을 확보한다.
교육은 누구나 생각을 바르게 하면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불특정의 대중과 아무런 장벽 없이 깊이 소통해야 하므로, 교육은 학문과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바른 생각이 무엇이고, 어떤 지식이 올바른지 검증하면서 진행해야 하므로, 교육은 학문과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학문은 진실을 탐구해 생각을 바르게 하는 활동이다. 진실은 대중을 위해 기여하는 활용을 전제로 삼지 않고 수준 향상에 제한이 없이 탐구해야 하므로, 학문은 교육과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진실을 탐구해 생각을 바르게 하는 학문의 유용성은 다른 무엇이 아닌 교육이므로, 학문과 교육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학문은 버려두고 교육만 걱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육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을 위해 대학입시 방법이나 바꾸려고 하는 저열한 사고방식은 교육과 학문의 관련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다. 대학입시 방법이 아닌 대학교육의 수준을 최대의 관심사로 삼아야 한다. 대학교육의 수준은 학문을 제대로 해야 향상된다. 학문이 교육을 위기에서 구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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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은 그만두고, 교사와 학생이 함께 지식을 생산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에서는 지식의 생산과 수용, 교사와 학생이 차등의 관계를 가진다. 지식을 생산하는 교육에서는 지식의 생산과 수용, 교사와 학생이 대등하다.
차등의 교육을 대등의 교육으로 바꾸어 놓으려면 학문이 앞장서서 혁신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학문을 교육 속에 넣어 운신의 폭을 좁히면 교육을 바르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 학문이 교육에서 독립해 교육과 대등한 관계를 가져야 교육을 획기적으로 살리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은 수입학에 근거를 둔다. 지식을 생산하는 교육은 창조학의 훈련이고 실현이다. 수입학이 행세하는 풍조를 바로잡고 창조학으로 나아가는 대전환을 이룩해야 한다. 중진국까지는 수입학의 효용이 크지만, 선진국이 되려면 창조학을 학문과 교육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수입학은 정확성을, 창조학은 모험심을 존중한다. 객관식 택일로 정확성을 시험하고 정해놓은 목표에 완벽하게 도달하면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고 하는 평가 방식이 창조학이 시작될 수 없게 방해한다. 모험심을 가지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평가하고, 실패를 나무라지 않아야 창조학이 이루어진다.
학문 연구 지원 정책에도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연구 계획과 결과가 일치해야 한다는 지금의 제도는 창조학을 죽인다. 모험을 각오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를 해야 커다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어느 연구든지 계획이 아닌 결과를 평가해야 하고, 지원을 하려면 사후의 보상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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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 인원의 감소로 지금 대학은 존망의 위기에 이르렀다. 학문이 대학 교육과 분리되어야 함께 망하지 않는다. 강의교수 자리가 대폭 줄어들지 않을 수 없는 파국을 연구교수를 늘여 해결해야 한다. 정부에서 대학과 연구에 지원하는 예산을 연구교수에게 집중해 사용해야 한다. 사립대학 연구교수 인건비도 정부에서 부담해야 한다.
연구교수가 하는 학문이 자유롭게 뻗어나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게 해야, 대학이 살고 국가도 산다. 연구교수는 계획을 제시해 심사를 받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를 창의적으로 하는 모험을 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연구의 진행을 알리는 강의를 대학 안팎에서 진행해 교육 수준의 획기적 향상에 직접 기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연구 조직은 일정하지 않다. 일본은 유럽의 전례를 고착화해, 교수-조교수-조수로 이루어진 이른바 교실 구성원들이 차등의 관계를 가지고 교육도 하고 연구도 한다. 독일의 막스프랑크협회 산하의 많은 연구소에서는, 연구소장이 연구원들을 선임하고 공동연구를 지휘한다. 이것도 차등의 관계이다. 불국의 국립연구센터 연구원들은 각기 자기 연구를 하면서 평등의 관계를 지향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연구 역량과 업적이 뛰어나 연구교수로 선입된 석학이 대학의 연구소에 자리를 잡고, 동료 연구교수 둘을 임의로 선임하고 연구 업적 평가를 함께 받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제도이다. 함께 연구하는 세 연구교수는 전공과 역량이 다양해 서로 도우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은 차등이 아니고, 평등과도 다른 대등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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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을 나무랐다. 기업이든 학자든 한 가지 일만 택해 외골수로 나아가야 착실한 성과를 얻는다고 했다. 이런 주장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어 설득력을 잃었다. 외골수로 나아가면 하던 일만 해서 뒤떨어진다. 다양한 시도를 해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변신이 가능하다. 삼성을 비롯한 여러 선도 기업이 온갖 분야에 진출해 커대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생각을 바꾸어 학문도 이렇게 해야 한다. 한 우물만 파는 협소한 전문가가 되어 식견이 막히다가 자폐증을 초래하는 데까지 이르지 말고, 넓은 안목을 가지고 새로운 연구를 개척하면서 다면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개개인이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학문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공과 역량이 상이한 연구교수들이 서로 도우면서 커다란 작업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없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미래의 시장을 선점해야 하는 것이 기업 경영의 성공 비결이다. 학문도 이와 같다. 기존 학문의 어느 분야를 치밀하게 파고드는 것은 낡은 방식이다. 지금까지 없는 새로운 학문을 창조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장차 닥칠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시야를 넓게 여는 공통점을 상이하게 갖춘 석학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생극의 관계를 가지고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다. 반드시 공동연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서로 연관되는 작업을 각자 진행하면서 비판과 조력을 하는 방법이 더 좋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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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급격한 팽창이 총체적 부실로 판명되어 와해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잘 나간다고 하던 일본이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우리 한국이 착실하게 발전하는 모범을 보이면서 동아시아 부흥의 구심체가 되어야 한다. 이 작업을 학문에서 선도해야 한다.
중국은 國大學小이다. 나라는 크지만 학문은 작다. 거대 국가가 개개인을 위축시키는 데다 더 보태 획일화를 요구하는 이념적 통제가 학문을 왜소하게 한다. 학자들이 위축되어 있으며 말썽을 피하는 것을 능사로 삼는다. 이에 우리는 國小學大로 대응해야 한다. 나라가 작고 규제가 적어 큰 안목을 가지고 과감한 연구를 할 수 있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살려야 한다.
일본은 國强學弱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역량은 대단하면서 학문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치중하고, 인문학문은 뒤떨어진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 협소한 전문가가 되어 미세한 사실을 정밀하게 고찰하는 작업에 집착하고, 크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견해는 수입한다. 이에 우리는 國弱學强으로 대응해야 한다. 국력과 비례하는 한계가 없고, 열세가 우세이게 하는 인문학문으로 학문 전반의 발전을 선도해 획기적인 전환을 이룩하는 것이 마땅하다.
크고 강한 학문을 해서 패권을 장악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하지 못하는 일까지 맡는 역량을 갖추자는 것이다. 동아시아가 함께 나아가 세계를 위해 널리 기여하고자 하는 커다란 포부를 지니고, 유럽문명권이 이끌어온 제국주의 성향의 근대학문을 넘어서야 한다.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학문으로 근대를 넘어서서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지표를 제시해야 한다.
한국학에서 동아시아학으로, 동아시아학에서 아시아학으로, 아시아학에서 세계학으로 나아가자. 한국학에서 역량을 키우고 학문하는 방법을 가다듬어야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다. 중국, 일본, 월남 등을 두루 포괄하는 동아시아학을 잘 하는 것을 근거로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내륙아시아 등지를 모두 연구하는 아시아학을 이룩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결과를 가지고 유럽중심주의 제국주의 학문의 과오를 전면적으로 시정하는 최후의 결전을 승리로 이끌고 진정으로 보편적인 세계학을 이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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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잘 하려면 근본을 이루는 철학을 바로잡아야 한다. 동아시아의 정통사상에 집착하는 복고주의를 넘어서고, 유럽문명권 철학의 수입을 대안으로 삼는 의타주의를 청산하는 결단을 고도의 철학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정통사상을 내부에서 뒤집은 비판논리를 이어받아 수입철학의 결함을 시정하는 논의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 작업을 생극론이 맡는다. 상생이 상극이고 상극이 상생임을 밝혀 논하는 생극론으로 상극이나 상생에 치우치는 동서고금의 과오를 일거에 시정할 수 있다. 상생에 치우진 형이상학은 무력해졌으나, 상극을 일방적으로 존중하는 변증법은 위세를 자랑하고 있어 그 편향성을 생극론에 입각해 바로잡는 것이 긴요한 과제이다. 변증법이 계급모순을 상극의 투쟁으로 해결한다고 하면서 민족모순이나 문명모순을 확대해, 상극이 상생이게 하는 생극론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게 요망된다.
생극론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구체화되는 것이 이미 여러 번 말한 대등론이다. 귀천이나 현우는 정해져 있다면서 사람을 차별하는 차등론이 오랫동안 큰 폐해를 자아냈다. 이에 대해 비판하고 제시하는 대안이 평등론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귀천이나 현우의 차이가 없어져 무효가 되기를 바라지 않고, 그 자체로 뒤집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인식하고 실현하는 대등론이 실질적인 대안이다. 귀하므로 천하고 천하므로 귀하고, 슬기로우므로 어리석고 어리석으므로 슬기로울 수 있는 역전으로 역사가 창조되게 해야 한다.
생극론이나 대등론의 철학은 철학이 아니어야 한다. 철학을 독립학문으로 삼고 배타적인 논리를 구축하는 자폐증을 청산하고 개방 노선을 선택해, 모든 학문의 갖가지 논의가 일관성을 지닌 철학이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생극이나 대등의 의의를 원론의 차원에서 입증하는 서론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구체적 사례를 고찰하는 각론에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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