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선생님. ^^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다 간도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생겨서 한 가지 여쭤보고자 합니다.
백두산정계비는 1712년에 세워졌습니다.
한편 대동여지도는 1861년에 제작됐습니다.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지 150여년 뒤에 만들어 진 것이 대동여지도입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대동여지도에 간도는 없습니다.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된 ‘土門江’이 ‘두만강’이 아니라면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 이후로 간도가 우리 땅이었다는 인식이 조선 사람들에게는 있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김정호도 간도를 우리 땅으로 여겼을 테고 그가 대동여지도에 간도를 넣을 법도 한데 말이죠. 대동여지도에 간도는 왜 없는 것인가요?
첫댓글 저 개인적으로 고산자 김정호가 간도 지역을 조선 영토로 인식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간도에 본격적으로 조선사람들이 이주한 것은 대개 1860년대 이후이고, 그 전에는 주로 사냥, 약초 등의 목적으로 사람들이 왕래했을 뿐이라서 그렇게 보는 겁니다. 당시 조선의 행정 구역에 포함되지도 않았고요, 구한말 간도 문제가 청과 조선 사이에 해결해야할 문제임이 분명한데, 일본이 간도협약을 불법으로 체결한 것은 문제인거죠. 백두산 정계비도 조선에서 주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청에서 주도해서 세운 것이고요.
원래 청(만주족)은 그쪽을 자신들의 출신지로 여겨 봉금지역으로 정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았지만 구한말 당시에 이미 우리 동포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백두산 정계비에 근거해서 우리 영토임을 주장한 것이라고 봅니다.
@史必歸正 음 그런 것이었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