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녹동서원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으로 출전한 사야가(沙也可)라는 왜군의 장수 였습니다,
1592년4월13일 일본 왜놈 도요토미 히테요시군은 7천여척의 왜선으로 부산앞바다로 진격하여 동래성을 지키고 있는 송상현 조선군을 조총으로 공격하니 조선군은 견디지 못하여 무너지고 난 후,조선군은 싸움 한번 재대로 못하고 도망 가기에 급급하다 보니 왜놈들은 파국지세로 북으로 북으로 진격 했지요,
왜장 중에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인 사야가(후 김충선)는 일본 전국시대에 존재했던 권위 있는 가문의 사람으로 그의 본 명은 하라다 노부타네로 그의 가문은 대영토를 지니고 있는 부귀한 삶을 누리고 살았으나 당시 일본을 지배하려 했던 도요토미 히테요시는 하라다 가문의 영토를 모두 점령하여 빼앗고 자신의 측근인 가토 기요마사의 휘하에 예속 시켜버렸습니다,
사야가는 하라다 히테요시에게 반감을 갖고 복수의 칼을 잡고 살아 오면서 기회를 잡고 있었으나, 임진년 4월 도요토미 히테요시는,,,
가야가의 처와 딸을 사로잡고 출전을 강요하며 조선에 출전하여 공을 세우지 않는다면 가족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하여 사야가는 출전하였지만 그는 항상 평소에 예의지국(禮義之國) 조선을 흠모하여 왔다합니다, (모하당문집)에서~
부산 동래를 진격하고 상진 할 때 자기의 군졸들이 죄없는 조선의 아이들과 부녀자 할것없이 무자비 하게 처죽임을 보고 의분하여 가야사 장군은 명분없는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무지한 자기 군졸을 호통치며 몇몇의 수급을 배고 군사를 재 정비하여 경상도에 도달하여 당시 경상도 병마 절도사 박진에게 서신을 보내고 투항하여 조선의 장수가 되어 경상도 의병들과 힘을 합쳐 동래,양산,울산,기장 등 에서 왜놈과 전투를 벌여 1달 동안 8차례의 승전보를 올리는 계가를 올려 첨지의 직함을 받았다,
사야가의 전공을 인정받아 조정에서 사성 김해김씨의 성을 하사 받고 이름은 충선(金忠善)로 字는 선지(善之)로, 그 후 자호를 모하당(慕夏堂)으로 삼았다,
김충선 1571~1642년,조선의 정착한 고향은 가창면 우록리에 살았으며, 녹동서원이 있고,자서전 모하당문집 3권이 있습니다,
그는 정유재란 때(1597년)에도 손시로 등 항복한 왜장과 함께 의령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으로 조선조정에서 가선대부를 제수 받았으며,이어 도원수 권율,어사 한준겸의 주청으로 사성 김해김씨와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자헌대부에 올랐으며,조선임금이 하사한 성씨라 하여 사성 김해김씨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북에서 오랑캐의 침입으로 국난이 소란하자,자청하여 10년간 국경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 정헌대부가 되었고, 인조2년에 이괄의 난 때 부장 서아지를 잡아 죽인 공으로 사패지를 하사 받았으나 사양하고 수어청의 둔전(屯田)으로 삼게 하였다,
,녹동서원,
1636년 병자호란 시에 소명(召命)을 기다리지 않고 광주(廣州) 쌍령싸움에 출전하여 오랑캐 500여명을 베었다,
1643년 외괴권관으로 국경수비를 맡고 있던 중 청나라 칙사의 항의로 해직되어 거창 녹리로 돌아와 진주목사 장춘점(張春點)의 딸과 혼인하여 우록동에 정착하여 가훈 향약등을 마련하여 향리 교화에 힘썼다,라고 자서전 모하당문집에 기록 하고 있지요,
자신도 조선에 귀화한 몸이지만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은 어쩔수 없는 심경 일지라,,,,
남쪽 고향을 향하여 지었다는 향양문(向陽門)이라 합니다,
가훈
한가지 덕(德)을 닦아서 후세에 백(百)가지 경사가 오게하고
한가지 선(善)을 행하여 자손들이 만(萬)가지 복(福)을 받게하라,
모하당 김충선(慕夏堂 金忠善)公의 산소는 서원 뒷산 300미터 능선에 고향인 일본 땅을 향하여 편안히 자리 잡고 있지요,
金忠善 公께서 생전에 고향을 그리워 하며 지은 詩2수가 있다,
남풍유감(南風有感)
남쪽에서 바람이 일때면 고향을 생각하니
조상의 무덤을 평안한가 7곱 형제는 무사한가
구름을 처다보며 고향 생각하는 마음
봄풀을 보고 솟아 오르는 생각
어느 때 인들 없겠나,,,
고향산천 그리워 마음은 떠날 날이 없고
나라에 불충하고 가문에 불행을 끼치니
이 세상에 가장 못난 죄인은 다름 아닌 나
필시 최악의 보기드문 운명은
나 뿐인가 한다네,,,
*그대의 고향이 그리워 하며 그린 두수의 서정시는 조선의 후손들도 마음 아파합니다,,,
녹동서원 경내에 세워진,金忠善 장군의 유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