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Li 理
이(理)는 우주 만물이 운행하는 근본원리와 사물의 이치다. 이는 원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험할 수 없는 선험적 원리다. 한자어 이(理)는 명사 ‘도리, 이치, 원리, 본질, 본체, 본성, 학문, 천리(天理), 사리(事理)’ 그리고 동사 ‘다스리다, 이치에 맞추다. 깨우치다. 수선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이(理)는 아름다운 옥(玉)과 가로 세로로 길이 반듯한 마을인 이(里)가 결합한 형성문자다. 이(里)는 밭(田)과 흙(土)이 결합한 것이며 뜻은 정리된 밭이 있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의미하는 회의문자다. 이(里)는 질서정연한 마을이라는 뜻이고 이(理)는 질서정연한 마을처럼 옥을 반듯하게 갈아 보석을 만든다는 뜻이다. 옥에 문자를 새기거나 가공할 때 결에 따르지 않으면 옥은 부서진다. 그러므로 이는 옥을 다듬는 것과 같은 법도와 질서를 말한다. 여기서 이치, 원리, 근본, 법칙, 도의 의미가 있는 철학적 이(理)가 생성되었다.
영어에서는 이는 논리(logic), 이성(reason)과 유사하지만, 어원과 의미는 다르다. 기(氣)는 고대 힌두어 생명의 작용인 푸라나(prana, प्राण)와 유사하고 이(理)는 우주의 근본적 실체와 원리인 브라흐만(Brahman, ब्रह्)과 유사하다. 베다(Veda)와 우파니샤드에 의하면, 브라흐만은 절대 진리인 동시에 모든 것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실체나 형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우주의 근원이다. 브라흐만과 아트만 사상을 받아들인 불교의 사법계(四法界)는 ①세상만사의 현상인 사(事), ②원래 본질이자 본체인 이(理), ③현상과 본질은 하나라는 이사무애(理事無礙), ④세상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사무애(事事無碍)다. 불교철학에서는 이를 본질이자 본체로 본다. 불교의 법(法)이 이에 가깝다. 하지만 이(理)에는 종교적 개념이 없고 우주 자연의 근본원리라는 뜻만 있다. 한편 도가에서 이는 길을 의미하는 도(道)와 유사한 면이 있다.
도가의 도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에서 보는 것처럼 우주 생성의 원리이자 본질이다. 따라서, 도(道)는 그렇게 가야 하고,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사물의 길이다. [주역(周易)] <계사(繫辭)> 상 12장에 ‘형이상자위지도 형이하자위지기(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가 나온다. <계사전>에서 말하는 도는 형이상자다. 형태가 바뀌는 도의 법칙은, 한 번은 음이 되고 한번은 양이 되는 원리다. 그러니까 도는 그렇게 되는 이유이자 그렇게 되어야 하는 당위다. 여기에서 원리와 이치의 이(理)가 정립되었다. 고대인들은 생명체나 자연현상을 보고 그 내면에 있는 원리, 본질, 법칙을 탐구했다. 그것을 한자문화권에서는 이(理) 또는 천리(天理)로 명명했다. 그렇다면 이는 언제부터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 되었을까? 그것은 한대(漢代)와 당대(唐代)에 우주의 생성, 사물의 본질과 원리를 기와 연결하여 사유하면서부터다.
기(氣)는 갑골문자에서 상형문자인 삼(三)이었다. 이것은 구름이 떠다니는 형태를 상형(象形)한 것이다. 구름을 의미했던 고대의 기(气)는 시간이 가면서 연기, 안개, 공기, 습기, 호흡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이후 기(气)는 생명체가 내는 숨이나 기운을 의미하게 되었다. 기는 원래 무기체가 가진 기운이었다가 유기체가 가진 기운으로 확장된 것이다. 기는 여기서 다시 존재가 가진 생명의 힘(vital force)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니까 기는 무기체와 유기체 모두가 가진 힘과 작용이다. 그 힘과 작용이 모여 사물과 생명이 된다. 도가에서는 우주 자연의 생성과 모든 존재를 기의 응집과 산화로 해석한다. 기가 뭉치면 사물과 생명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다. 기의 작용은 태극, 음양, 오행의 힘과 작용이다. 반대로 말하면 태극, 음양, 오행의 작용이 곧 기다. 이 중에서 태극은 본질이자 원리이므로 기이면서 리다.
기는 눈에 보이는 사물과 현상이다. 그렇다면 그 기의 사물과 현상을 움직이는 원리가 있지 않을까? 사물과 현상의 이치를 고구하던 고대인들은 그것을 이(理)로 명명했다. 그러니까 형이상학의 도(道)는 이(理)가 되고, 형이하학의 기(器)는 기(氣)가 된다. 여기서 도의 원리라는 뜻의 도리(道理)가 생겼다. 그러므로 이는 사물과 현상의 이치, 원리, 근원이다. 따라서 이는 보이지 않고 경험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원리이고 기는 보이고 경험할 수 있는 형이하학의 실제다. 한대의 동중서(董仲舒), 송대의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장재(張載), 소옹(邵雍)은 이와 기의 이론을 정립하여 유가 철학의 토대로 삼았다. 이것을 종합한 것은 남송의 주희다. 주희(朱熹)는 이와 기를 묶어 이기론을 정립한 후 인간과 사물의 본성을 이로 설명했다. 주희에 의하면 선한 본성의 이치가 성리(性理)다. 송명이학은 이선기후(理先氣後)에서 보듯이 인간의 본성인 이를 선하다고 전제하는 이(理) 중심 성리학이다. (김승환)
*참고문헌 朱熹, 『朱子語類』
*참조 <기>, <기[성리학]>, <도>, <도가도비상도>, <무>, <무극이태극>, <무위자연>, <변화>, <브라흐만>, <생성>, <성리학>, <수양론>, <심성론>, <아트만>, <음양오행>, <이[성리학]>, <이[주희]>, <이기론[주희]>, <인심도심>, <천기>, <천리>, <태극>, <형이상학>, <호연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