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관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진 점쟁이로서 세종 때부터 세조 때에
이르기까지 활약했다.
점술이 신통하여 그의 이름을 팔아 먹고사는
맹인 점술가가 많았기에
홍계관은 맹인 점술가의 시조로 여겨지고 있다.
홍계관은 특히 신수점(身數占)을 잘 치기로 유명했다.
'신수점(身數占)'은 1년 운수의 길흉을 판단하는 점으로
대개 음력 정초에 행하지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뒤의
일까지 꿰뚫어 보았다고 한다.
그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홍계관에게 한 젊은 선비가 찾아와
평생 신수점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홍계관은 점을 친 후 조심스레 말했다.
"장차 천하에 이름을 떨쳐 부귀할 상이오. 하지만 자칫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그 죄로 평생을 망칠 수 도 있겠소."
"그렇소? 그렇다면 그 화를 피할 방법은 없겠소?"
"한 가지 있기는 하오만 선비께서 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말씀해 주시오. 내 반드시 지키리라."
"그럼 忍(참을 인)자를 많이 써서 집 안 곳곳 눈 닿는 곳 마다 붙이시오."
"그게 뭐 어렵겠소이까. 알았소이다."
선비는 그날 집으로 가서 忍자를 여러 장 쓴 다음
대문은 물론 안방, 마루, 부엌, 기둥 등등에 붙여 놓았다.
선비는 그것으로 액운을 물리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얼마 후 선비는 술이 취해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아내가 웬 상투튼 외간 남자와 함께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이 년놈들을 요절내 버리겠다!"
선비는 부엌으로 달려가 식칼을 들었다.
순간 부엌문에 붙여 놓은 忍자를 보았고 잠시 멈칫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분을 삭일 수 없어 식칼을 들고 부엌을 뛰쳐나왔다.
이번에는 기둥에 써 붙인 忍자가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선비는 멈칫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참을 인이라…. 아니야. 이번 일은 절대로 참을 수 없어!"
선비는 기둥을 지나쳐 방문 앞으로 갔다가 문 앞에 붙여 놓은 忍자를 보았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忍자를 보자 선비는 또다시 망설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忍자의 의미를 되새겨 본 것이다.
그때였다. 인기척을 느낀 선비의 아내가 잠에서 깨어나 방문을 열고 나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잠이 들어 어느 결에 오신지도 몰랐습니다."
선비는 아내의 인사도 무시하고 씩씩대면서 다짜고짜 물었다.
"방안에 상투 튼 놈은 누구요?"
"상투라니요?"
아내는 반문하면서 방안으로 되돌아가 잠자는 이를 깨웠다.
잠든 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더니 선비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형부 오셨어요? 죄송해요. 이런 모습을 보여서."
처제였다. 알고 보니 처제가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를 위로 움켜 맨 채
잠들었는데 선비가 그 머리 모양을 상투로 착각했던 것이다.
순간 선비는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꼈다.
「조선유사」(박영수 지음, 살림FRIENDS펴냄.2010. 3. 30발간)에서 옮겨 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