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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6년 1월 3일 (일)
o 날씨: 흐림(안개, 미세먼지)
o 산행경로: 불광역 - 비봉능선 - 문수봉 - 대남문 - 대성문 - 보국문 - 대동문 - 동장대 - 용암문 - 백운대 - 숨은벽능선 - 사기막골
o 산행거리: 14.2km
o 소요시간: 7시간 20분
o 지역: 서울
o 일행: 나홀로
o 산행정보: 북한산
오늘 산행지는 북한산이다. 가까이 두고도 자주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제 남해 금산에서의 2016년 일출산행 직후 신년맞이를 겸하여 가장 먼저 북한산을 찾기로 했다. 북한산은 2014년 4월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라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곳이다. 산행코스는 역광을 피하기 위하여 남쪽방향에서 북쪽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비봉능선을 출발점으로 정했다.
오늘은 기온이 포근한 대신 미세먼지가 '나쁨'수준 이라는 일기예보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맑고 건강한 공기를 찾아 왔더니 오히려 나쁜 공기를 만나는 결과가 되지 않을지....
[삼각산]은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87m)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볼 때 이 봉우리들이 마치 세개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삼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주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의 부아악이 삼각산을 말하는 것이다. 삼삭산 봉우리는 쥐라기 말에 형성된 대보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형상을 달리하는 반구형 형태를 보이며,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도 이상에 달한다. 주봉인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공간이 있어 수백 명의 사람이 앉아서 탁 트인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백운대 동쪽에 자리 잡은 인수봉은 뿔 모양의 바위 하나가 우뚝 솟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암벽등반 장소로 유명하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는 국망봉이라고도 불렸다. 만경대에는 무학대사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렀다고 한다. 거기에 한 석비가 있었는데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 라고 적혀 있어서 길을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현재의 경복궁)를 정하였다고 한다. (안내판)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불광역에 내리니 하늘이 온통 뿌옇다. 안개와 미세먼지가 뒤섞인 듯한 기분좋지 않은 분위기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비치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면서 출발~ ....산행들머리는 대호아파트 기점이다. 이곳은 북한산 둘레길과도 연계되는 곳이다.
▼ 산행 들머리
산행들머리에서 족두리봉까지는 약 0.8km의 언덕길이다. 초입에는 나무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어 북한산 둘레길의 느낌이 난다.
▼ 족두리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족두리봉은 등산로 옆으로 봉긋 솟아 있다. 족두리봉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면 문수봉까지 이어지는 비봉능선과 문수봉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이 압권인데, 오늘은 안개와 미세먼지 때문에 가까이 있는 향로봉조차 희미하게 보인다.
기온은 봄처럼 포근하다. 아마도 영상 10도는 될 것 같다. 족두리봉까지 1km도 채 못왔는데 벌써 땀이 차오른다. 자켓을 벗어도 추운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원함이 느껴진다.
▼ 족두리봉
[지형경관 자원의 종합전시장 '족두리봉'] 북한산국립공원의 화강암은 쥬라기 (1.8억만년~1.3억만년전) 대보조산 운동의 산물인 대보화강암에 속하며 화산 분출과 함께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올라오다가 지하 깊은 곳(약 10~12km)에서 냉각, 고화되어 형성되었다. 지하 깊은 곳에 있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지각변동에 의해서 지각이 융기하면서 지표에 드러났으며, 오랜 세월 지속적인 침식과 풍화를 받아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족두리봉 일원은 암석돔, 토어, 그르브, 나마, 산지타포니, 급애 드의 지형경관 유형을 두루 갖춘 보기드문 지형경관 자원의 보고다. (안내판)
▼ 족두리봉에서 향로봉을 배경으로....
족두리봉을 지나면 다음 목적지는 향로봉이다. 거리는 1.7km. 족두리봉에서 직진은 수직의 절벽이라 불가능 하다. 따라서 향로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올라가는 지점으로 되돌아 내려온 후 왼쪽으로 우회해야 한다.
▼ 향로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족두리봉
올라오면서 보이는 족두리봉은 봉긋한 모습이었는데, 뒤에서 바라보니 높고 뽀족한 암봉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 진행방향으로 보이는 향로봉
진행방향으로 안개와 미세먼지 사이로 향로봉의 모습이 언듯언듯 보인다. 향로봉 일대는 위험지역이라 진입이 금지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향로봉이 거대한 암릉과 암봉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전체모습이 제대로 가늠이 안된다.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니 올라가 볼 수도 없고....
향로봉 아래로 우회하면 진행방향으로 우뚝솟은 암봉이 보이고 암봉위로 뽀족하게 튀어나온 비석 같은 것이 보인다. 바로 비봉이다. 향로봉에서는 약 600m의 거리다. 비봉위로 보이는 비석은 원본을 복제한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져 있다. 비봉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지난번에는 올라갔었는데...... 오늘도 봉우리에 한두명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과태료를 각오(?)하고 올라간 사람들이다.
▼ 향로봉 인근에서 바라본 비봉
비봉을 지나면 곧바로 사모바위로 이어진다. 비봉에서 약 400m의 거리에 있다. 사모바위 주변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어 등산객들의 쉼터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또 사모바위 아래에는 '1.21 사태' 당시 무장공비의 은신장소도 있다.
▼ 사모바위 쉼터
▼ 사모바위
사모바위는 그 모양새가 사모 같이 생긴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사모바위에서는 의상능선과 의상능선 너머 백운대까지 조망이 좋은 곳이다. 오늘은 의상능선 조차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해가 중천에 솟아가는데 안개와 미세먼지는 가실줄 모른다.
사모바위를 지나면 등산로는 승가봉으로 이끈다. 거리는 200m에 불가하다.
▼ 승가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사모바위(앞)와 비봉(뒤)
승가봉에서 뒤돌아본 사모바위와 비봉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안개에 쌓여 있으니 몽환적인듯 하기도 하다.... 승가봉 바로 아래에는 승가사가 있는데, 희미한 형체 때문인지 멀게만 느껴진다.
▼ 승가봉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승가사
▼ 비봉능선
▼ 승가봉
승가봉에서는 뒤로 비봉능선의 줄기를 한눈에 볼수있다. 그리고 진행방향으로도 문수봉을 중심으로 좌측은 의상능선, 우측은 보현봉이 철벽처럼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는 모습이다. 승가봉에서는 밧줄을 타고 암릉을 내려가야 한다. 연이어 통천문을 통과하면 다시 내리막 암릉구간이다. 이 암릉구간에는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남아 있다.
▼ 승가봉에서 문수봉으로 가는길에 있는 통천문(?)
▼ 내리막 암릉
▼ 승가봉을 지나면서 바라본 나월봉(왼쪽), 나한봉(중간), 문수봉(오른쪽)
승가봉에서 약 0.7km 지점이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청수동암문을 지나 문수봉으로 갈 수 있고, 곧바로 문수봉으로 가려면 오른쪽 암릉구간을 지나야 한다. 이 암릉구간이 비봉능선에서 가능 위험한 구간이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바를 잡고 올라야 한다.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다.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 보니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 구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서 오르고 내리는 여전사들을 보면 여자들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 문수봉으로 오르는 수직절벽(?)
암릉구간을 지나면 그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 기이한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눈길을 끌고, 사방은 확~ 트여있다. 아래로는 비봉능선의 장관이 펼쳐지고, 문수봉은 코앞에 다가와 있다. 오른쪽으로 보현봉의 늠름한 자태도 손에 잡힐 듯하다.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문수봉
▼ 문수봉 아래의 기암괴석 들
암릉 정상부에서 약 200m를 가면 문수봉이다. 문수봉 정상은 출입이 통제되는 모양이다. 지난번에는 문수봉 정상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무모하게 올라가본 적이 있다. 오늘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문수봉 정상석은 문수봉 바로 옆 작은 봉우리 위에 설치되어 있다.
▼ 문수봉
문수봉에서 왼쪽은 의상능선 방향이다. 오늘은 오른쪽 산성주능선을 밟을 계획이다. 문수봉에서 바로 아래가 대남문이다. 문수봉에서 약 200m의 거리. 대남문에서 보현봉으로 갈수도 있는데, 위험구간이라 현재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대남문 인근 공터에는 등산객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 대남문
[대남문] 대남문은 북한산성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소남문이라고도 불린 대남문은 비봉 능선을 통해 도성의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다. 성문 하부는 홍예 모양으로 통로를 내고 성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상부에는 군사를 지휘하고 성문을 지키기 위한 단층의 문루가 있다. 이 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1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안내판)
대남문에서 다시 약 300m를 지나면 대성문이다.
▼ 대성문
[대성문] 대성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문의 형식과 규모는 대남문과 같다. 대성문은 형제봉 능선을 타고 서울의 북쪽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문이다. 성문 하부는 홍예 모양으로 통로를 내고 성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상부 단층 문루는 우진각 지붕 형태인데, 이는 지붕 네면 모두에서 불화살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 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2년 새로 복원한 것이다. (안내판)
대성문에서 부터는 본격적으로 성곽을 따라 걷게 된다. 대성문에서 가장 가까운 갈림길이 보국문이다. 그 중간에 산성주능선의 전망대(조망포인트)가 있는데, 맑은 날씨에는 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과 보현봉 방향의 성곽이 한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곳이다.
▼ 대성문에서 보국문 방향의 성곽
▼ 전망대(조망포인트)에서 뒤돌아본 보현봉(왼쪽)과 문수봉(중간 뒤)
대성문에서 보국문까지의 거리는 약 0.6km다. 성곽을 따라 약간의 오르내림을 반복해야 한다. 너덜길 같은 돌계단이라 발걸음이 수월하지는 않다. 보국문을 앞두고 성곽밖으로 칼바위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정릉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이며, 해맞이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 보국문에서 바라본 칼바위능선
▼ 보국문
[보국문] 보국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보국문은 소동문 또는 동암문이라고도 한다. 암문은 평상시에는 백성들의 출입문으로 이용되었으며 전쟁 때에는 비밀통로로 사용되었다. 암문은 돌로 만들었지만 홍예 형태가 아닌 방형의 평문 형식이며 상부에 문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1993년 보국문 상부의 여장을 복원하였고 부분적으로 수리하였다. (안내판)
보국문을 지나 다시 약 0.6km를 지나면 대동문이다. 대동문은 주변이 넓은 공터라 많은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요기를 하는 곳이다. 나도 늦지 않은 점심을 여기서 해결하고......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부러워 준비를 하였는데, 라면이 제대로 불지 않아 생각보다는 별로다. 따끈한 라면국물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 대동문
[대동문] 대동문은 북한산성의 동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서울의 동북쪽 수유동과 우이동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문의 형식과 모습은 대남문이나 대성문과 같다. 그러나 홍예문은 이 문이 가장 크다. 하부의 홍예문은 통로로 사용되었으며 상부의 단층 문루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3년에 새로 복원하였는데 이때 홍예문 상부의 여장도 함께 복원하였다. 문루 바깥쪽에 낮은 담장 형식으로 쌓은 여장은 아군이 몸을 숨기고 활이나 총을 쏠 수 있도록 설치한 군사 시설이다. (안내판)
대동문은 사방팔방의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다. 직진하면 백운대 방향, 우측은 진달래 능선, 좌측은 산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갈 수 있다. 대동문에서 백운대까지는 약 3.1km의 거리며, 중간에 동장대와 용암문을 거치게 된다. 먼저 약 0.5km거리에 동장대가 있다.
동장대까지 성곽을 따라 가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 동장대
[동장대] 동장대는 북한산성의 동쪽에 있는 장대로 1712년(숙종 38년)에 지어졌다. 장대는 장군의 지휘소로 북한산성에는 동장대 외에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현재는 동장대만 남아있다. 동장대는 최고 지휘관이 사용하던 곳으로 장대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 되었다. 장대의 평면은 정방형이며, 중층 구조로 아래층은 벽 없이 트여 있어서 지휘하기에 편리하도록 했으며, 위층은 창으로 막아 방을 만들어 사용했다. 장대의 구성이나 모습은 수원 화성의 서장대와 거의 같다. 이 장대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6년에 복원한 것이다. (안내판)
동장대를 지나 성곽길을 따라 가도 되고, 숲속의 등산로를 이용해도 된다. 성곽길이라고 해서 특출난 조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한산성의 성곽을 보면서 따라 걷는다는 심리적인 요소가 강하다. 동장대에서 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면 성곽위로 용암봉과 노적봉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古산수화를 연상시키는 곳도 있다.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용암봉(?)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노적봉(왼쪽)과 용암봉(오른쪽)
성곽길을 벗어나 숲길 등산로에 접어들면 바로 앞이 용암문이다. 동장대에서 약 1km가 안되는 거리다.
▼ 용암문
[용암문] 용암문은 북한산성의 대동문 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용암봉 아래에 있어서 용암봉암문이라고도 부르며 우이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암문은 일반 성문과 달리 은밀한 곳에 만들어 전쟁 때에는 비밀통로로 사용되었다. 암문은 그 모양이 홍예가 아닌 방형이라는 것이 특징이며 상부에 문루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용암문은 동암문인 보국문과 달리 성 내부 쪽을 홍예형으로 만들었다. 용암문 상부의 여장은 무너졌던 것을 1996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안내판)
용암문에서 부터는 다시 너덜길 등산로가 백운대 갈림길까지 이어지다. 등산로 왼쪽이 노적봉인데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 뒤돌아본 노적봉
노적봉을 지나고 울퉁불퉁 바위길이 어어진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중간중간에 나무계단도 있고.... 어느듯 눈앞으로 백운대의 모습이 안개사이로 '보였다 숨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백운대 (중간)
백운대 아래는 사방이 바위로 둘러쌓여 있고, 나무계단을 통해서만 백운대 갈림길로 접근할 수 있다. 경사도 제법 가파르다.
▼ 백운대 갈림길 방향의 나무계단
나무계단을 오르면 백운봉암문이다. 백운봉암문을 지나 곧바로 내려가면 백운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진다. 오른쪽이 만경대, 왼쪽이 백운대로 올라가는 길이다. 만경대는 위험구간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 백운봉암문
[백운봉암문]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836m)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 암문 중 하나인데, 일제강점기부터 위문으로 불려왔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떄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백운봉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는 마련하지 않았다. 성문 양쪽은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 천장 부분은 장대석 여러 매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이라 부른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안내판)
백운봉암문에서 백운대까지는 가파르고 위험한 암릉구간을 올라야 한다. 거리는 약 200m. 마지막 인고의 시간이다. 등반로는 예전에 비하여 중간중간에 나무계단이 많이 보강되어 있다. 하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실족하면 천길(?) 낭떠리지로 떨어지기 때문에 조심조심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정체가 반복되거나 이어지는 모습이다.
▼ 백운대 등반로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어떻게 오르고 내릴까? 눈내린 백운대를 한번 와보고 싶은데.....백운대 아래로 이어지는 棧道형태의 등반로를 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괜한 걱정이다.
▼ 백운대를 배경으로....
백운대 위에는 수백명(?)은 너끈이 쉴수 있는 넓쩍바위가 있다. 밟고 있으니 넓은 땅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내려가서 보면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도 용감한 것일까?
▼ 백운대 정상에서 내려다 본 넓쩍바위
백운대 정상은 넓적바위 바로위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서원 비석과 3.1운동 암각문이 있다.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으며, 여기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의 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 백운대 정상에 있는 통일서원 비석
▼ 백운대 정상
[3.1운동 암각문] 은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새긴 기록문이다. '경천애인'이란 네 글자와 함께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2월 10일 최남선이 작성하였으며 3월1일 탑동공원에서 자신이 독립선언 만세를 도창했다' 라는 내용을 새겼다. 이 글을 새긴 시기는 3.1운동 이후로 추정되며, 그 목적은 거족적 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영구히 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암각문을 새긴 정재용은 1886년 해주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로, 1919년 2월 19일 해주에서 상경해 3.1운동의 불을 당겼던 장본인이다. (안내판)
▼ 백운대 정상부 모습
▼ 백운대 정상 옆 암봉
이제는 하산을 해야 한다. 어느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을까.....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이지만 백운대를 오르고 내리는 등산객들의 인파는 여전하다.
▼ 백운대에서 내려가면서 바라본 모습
안개와 미세먼지 때문에 코앞의 인수봉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 인수봉(뒤쪽)
지금까지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숨은벽능선을 이용하여 밤골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백운대에서 밤골공원지킴터까지는 약 4km의 거리다. 숨은벽능선이 위험하기로 소문(?)이 나있고,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 약간 걱정도 되지만....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로 좁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봤던 어느 요새의 진입로처럼 느껴진다. 여기를 통과하면 계속 내리막 길이다. 돌계단도 있고, 너덜길도 있고....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자칫하면 등산로를 이탈하게 된다. 이렇게 작은 알바를 몇번 하고....
▼ 숨은벽능선을 지나 하산하는 등산로
숲은벽능선코스는 대부분 숲속으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어 주변 조망이 거의 없다. 혹시나 백운대와 인수봉 방향의 암봉이나 멋진 암릉을 볼 수 있을까 좌우를 살펴보지만 기대만큼 그렇지 못하다. 밤골탐방지원센터까지 계속된다.
▼ 올려다 본 암릉 모습 (숨은벽 능선?)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는 코스라 한번쯤 와보는 것은 괜찮지만 주변의 조망을 기대한다면 비추다. 가을에는 단풍이 좋다고 한다. 뒤에 알고보니 숨은벽능선의 암릉코스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음번에는.....
▼ 숨은벽 능선 (펌)
어느듯 밤골공원지킴터에 도착하고...여기서 직직하면 큰 도로변으로 나갈 수 있는데, 이정표가 애매하여 앞서가는 산객을 쫒아가다보니 사기막골까지 1km 이상을 추가(?)로 걷게 되었다.
▼ 밤골공원지킴터
봐도 봐도, 오고 또 와도 참 멋있는 북한산이다. 금년봄 진달래꽃 철에는 진달래능선을 따라 북한산을 다시 음미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