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우의 <아버지의 땅>과 <직선과 독가스>
임철우의 소설적 작업에는 80년 광주의 비극이 응축되어 숨겨져 있고, 그것에 대한 정직한 실체와 해원에 대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80년의 비극 속에서 수많은 희생자와 함께하지 못한 부채의 반영이며, 살아남은 자가 겪었던 기나긴 고통스러운 시간의 흔적이었다. 그런 부채감은 80년 발표한 소설 속 곳곳에 함축적이며 비극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임철우는 1984년 『아버지의 땅』이라는 작품집을 발표한다. 그 속에 담긴 소설의 주요 주제는 한국전쟁의 비극이자 잔재에 대한 추적과 함께 현재 현실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력감에 대한 묘사이다. 작가는 우리를 압도하는 엄청난 폭력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무너지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세밀하면서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표현한다. 진실이 억압되고 언어를 빼앗긴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를 알레고리적 묘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새벽> 속에는 윗층에 든 도둑의 존재와 그의 행동을 인지했음에도 경찰에 신고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반격도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좌절감이 팽배해있다. 자신의 공간을 침입한 자에 대한 정당한 응징도 그가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절도사건과의 관계성에 대한 심증에도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쌓인 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그들에게 그들 존재에 대한 회의까지 동반한다. 해야함에도 하지 못하는 슬픔은 자신에 대한 내면적 분노로만 향할 뿐이다. “한결같이 공범자들이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 방임해두고 있는 완충지대에서 그 끔찍한 범죄는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었고, 그 독버섯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그물> 속 등장인물 또한 도사견으로 상징되는 폭력 앞에 무력할 뿐이다. 그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거대한 맹견의 존재는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지만, 그들은 그 상황의 위중함을 스스로 축소시키면서 침묵할 뿐이다. 폭력의 힘은 그들을 압도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너무도 소극적인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좌절과 분노의 응축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아직 그것은 폭발하지 않는다. 시대는 아직 폭발의 시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누적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정작 놀라운 사실은 그런 부당한 처사에 응당 쌈심지를 켜들고 분연히 일어서야 마땅할 이층 식구들의 무기력하고도 김빠진 태도였다. (......) 셋발 사람들은 주인집이 갖고 있는 어떤 권력과 충돌하기글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건 묵묵한 패배하고 해야 옳았다. (.....) 나는 한심하리만큰 착해빠진 그들에게 분노를 느꼈고, 그건 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기도 했다.”
이런 무력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공간을 지배하는 어둠의 세력이 지닌 힘 때문일 것이다. <수박촌 사람들>에서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거짓의 지배와 진실의 은폐가 교묘하게 사람들의 인식과 의지를 파괴하고 있는 안개와 같은 분위기 속에 익숙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상엔 얼마나 많은 허위의 말들로 가득차 있는 것일까?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또 믿으려하지 않는다. 모두가 비누방울 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죽어버린 언어들만 입술로 퐁퐁 불어올릴 뿐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상투적이고 반복되는 연극처럼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의지를 상실한 사람들, 세상의 문제에 대한 이유는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변화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부질없이 위험한 꿈을 꾸지 않고 소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평안하고 아늑한 휴식 속으로 드러누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니까요. 결국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거세되어져 왔습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아니 자신이 거세되어지도 있다는 자각마저 없이 우린 스스로 거세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침묵의 무력감에 대한 작가의 내적 분노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조금씩 구체적 모습을 형상화하기 시작한다. 1989년 발표한 <직선과 독가스>에는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 우울한 느낌과 무력감의 정체를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속의 만화가는 시대를 비평하는 만평으로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자신을 억압하고 자신에게 발언하게 하는 힘을 파악하게 된다. 우선 만화가를 못견디게 한 것은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독가스의 냄새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 도시 위에 내리는 빗속에는 틀림없이 그 냄새가 마치도 오래오래 감추어져 온 엄청난 음모와 소름끼치는 핏빛 죄악의 기억처럼 눅진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도시에 가득한 독가스의 냄새, 도시에 내리는 검은 비는 그 도시의 비극적인 상태의 지속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그 냄새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의 환상으로 다가온 사람들의 비극적인 실체였던 것이다. “이윽고는 두꺼운 길바닥 어디쯤인가에서 그해 늦은 봄 어느날 바로 그 자리마다에 엉켜붙은 검붉은 얼룩과 숱한 발자국과 고함소리, 그리고 누구가의 식어가는 마지막 숨결까지도 하나하나 들춰내고 있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독가스의 냄새와 거리에서 본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은 만화가의 일상을 변모시켰다. 그는 만화가에게 중요한 ‘직선’을 더 이상 그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난 직선을 그릴 수가 없었다구요. 직선, 세상의 모든 사물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두쪽으로 날렵하고도 완전하게 갈라놓는 바로 그 강력하면서도 단호한 선 말입니다.” 직선을 더 이상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은 진실에 대한 탐색에 대한 절대적인 요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는 표지판에 다음과 같이 쓰고 광주의 충장로 거리에 선다. “저는 지금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가스와 독극물로 인해 날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 단식 사흘째”, 단식하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아이러니한 그의 목소리는 거리에서 본 장면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습니다. 그해 오월, 바로 저 광장을 돌아 길다랗게 열을 지어 사라져버린 숱한 사람들의 행방을 알고있느냐고. 선연하도록 붉고 고운 꽃이파리를 입에 물고 그들은 대관절 어디로 가버린 것이냐고,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은 왜 아마도 돌아오지 않느냐고”
만화가의 절규는 임철우의 80년대 소설 속에서 억눌렸던 진실에 대한 열망과 다르지 않았다. 과거에는 숨겨진 형태로 표현된 진실의 욕구가 좀 더 강하게 좀 더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80년 광주의 비극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채 그 도시를 독가스와 검은비의 공간으로 변모시켰고 그것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그 도시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그것은 사라지지 않은 흔적이며, 만화가 또한 ‘직선’을 그릴 수 없는 것이다. 진실의 문 앞에 다가서는 것은 독가스의 냄새를 직접적으로 맞보고 도시에 남겨진 얼룩를 바라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 용기와 진실에 대한 실천만이 어쩌면 도시의 냄새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가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째서 하필 나 혼자만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이지 난 모르겠다니까요”고 말하지만, 그것은 침묵하는 사람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외침이다. 진실을 회피하고 과거를 망각하려하지만, 도시에 남겨진 상처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는 한 독가스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만화가의 직선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도 어떤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죽은 자의 선혈이 남아있는 땅 위에서 어떤 진실에 대한 해원이 없다면 그 땅은 온전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직선과 독가스>은 망각 속에서 현실의 아픔을 잊으려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대한 강렬한 경고이다. 해결해야만 할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면, 끝없이 악취를 풍기는 흔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점을.
첫댓글 ^ 세상엔 얼마나 많은 허위의 말들로 가득차 있는 것일까?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또 믿으려하지 않는다. 모두가 비누방울 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