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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나이, 큰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으면서 뛰어든 창고 임대사업. 회사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일에만 빠져있던 그에게 어느 날 조부가 한 마디 던졌다. “돈이 얼마가 있든 취미가 없는 인생은 쓸쓸하다.” 서른살, 그가 도전한 취미는 도예였다. 동경예술대 학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뜻하지 않게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의 척박한 환경에 귀 기울이게 됐다. ‘학교를 졸업해도 작업실도, 돈도 없으니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거였다.
스사키는 그 길로 집 근처 대밭을 갈아엎었다. 그리고 1985년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실을 세웠다. 마루누마 예술의 숲 레지던스의 시작이었다. 무명의 젊은 작가들을 이곳에 불러와 작업공간 제공은 물론, 재료비 지원, 전시회 지원을 하기를 올해로 40년. ‘아시아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타카시도 20년간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인구 14만여 명의 작은 도시 아사카시의 마루누마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선 꼭 한 번 가고 싶은 곳이 됐다. 8년 전부턴 한해 3명씩 한국 젊은 예술가를 초대하면서 한국 작가들의 발길마저 이어지고 있다. 전시회에서 만난 스사키 대표는 “취미로 인해 세상이 넓어졌고, 이젠 예술가를 키워내는 것이 내 취미가 됐다”며 활짝 웃었다. 평소 유니클로를 입고 다니면서도 반평생 낯선 예술가들을 선뜻 후원해온 아름다운 ‘취미’를 가진 이를, 우리 사회에서도 볼 날이 오길 바라본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중앙일보 김현예 입니다.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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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li**** 18시간 전
한국사람들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듯, 일본사람들 모두가 나쁜사람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성품이나 성향에 대한 전반적인 추세라는게 있다. 한국사람들은 민족적으로 따뜻하고 활발한 성품을 가졌었다. 최소한 1997년 IMF이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성품은 한국민족의 전반적인 추세라는 판단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내리 타락만 해왔다는 생각이다. 참으로 요즈음 한국민족을 생각해 보면 착잡해질 뿐이다. 참으로 천박해졌고 (특히 부자들), 우울해져버린 민족성품만 남아있는 꼴이다. 반면에 일본인들에겐 아직 그들의 오래된 긍정적 민족성이 유지 되는 것 같다. 이 칼럼에서 소개된 스사키 카쓰시게라는 분의 경우를 보면서도 느껴지고 있다. 물론 일본인들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과거잘못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고있는 그들 특유의 부정적 성품 또한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요즈음 양민족간 품성은 일본의 것이 좀더 높아보일 뿐이다. 퀄러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