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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장 13-18절. 모범적인 일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모범적인 일꾼”입니다.
13절.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Do you not know that those who perform sacred services eat the food of the temple, and those who attend regularly to the altar have their share from the altar?
너는 알지 못하느냐
οὐκ οἴδατε
not have you known
동사(οἴδατε)는 완료형으로서(have you known)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ὅτι οἱ τὰ ἱερὰ ἐργαζόμενοι, τὰ ἐκ τοῦ ἱεροῦ ἐσθίουσιν,
that those in the temple working, the things of the temple eat
직역하면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은 성전의 것들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일하는’(ἐργαζόμενοι)은 현재분사이고(working), ‘먹으며’(ἐσθίουσιν)는 현재형입니다(eat).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οἱ τῷ θυσιαστηρίῳ παρεδρεύοντες, τῷ θυσιαστηρίῳ συνμερίζονται;
those at the altar attending, in the altar partake ?
‘섬기는’(παρεδρεύοντες)은 현재분사이고(attending), ‘나누는’(συνμερίζονται)은 현재형이고, 원형(συμμερίζομαι)은 ‘함께’(σύν)라는 접두어와 ‘나누다’( μερίζω)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그들의 음식을 얻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은 제단에 바친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Don't you know that those who serve in the temple get their food from the temple, and that those who serve at the altar share in what is offered on the altar?)
New Living Translation: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은 성전에 가져온 헌물들로부터 자기들의 음식을 얻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은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들을 함께 나누어 갖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Don't you realize that those who work in the temple get their meals from the offerings brought to the temple? And those who serve at the altar get a share of the sacrificial offerings.)
1. 이 부분은 교회의 전담 사역자가 사례비 받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구약 성전 제사 제도를 통해서 입증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이란 레위인을 말합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 헌물을 가지고 생활합니다.
2. 그리고, “제단을 모시는 이들”이란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물로 불태워 드린 제물 이외의 고기와 가죽을 차지합니다.
예컨대, 속죄제는 피를 제단에 뿌리고, 기름을 제단에서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가져갑니다.
곡식으로 제사드리는 소제의 경우는 한 말이나 두 말의 곡식 중에서 한 움큼만 제단에서 태워드리고, 나머지는 역시 제사장이 가져갑니다.
화목제의 경우에는, 피는 제단에 뿌리고 기름은 제단에 불태운 후, 고기 중에 넙적다리 하나와 가슴팍은 제사장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삶아서 나누어 먹습니다.
3. 그리고, 제사장들은 레위인들이 바치는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합니다.
14절.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also the Lord directed those who proclaim the gospel to get their living from the gospel.
οὕτως καὶ ὁ Κύριος διέταξεν τοῖς τὸ εὐαγγέλιον καταγγέλλουσιν ἐκ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ζῆν·
so also the Lord directed to those the gospel proclaiming from the gospel to live
직역하면 ‘이와 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명하셨다’는 뜻입니다.
‘전하는’(καταγγέλλουσιν)은 현재분사로서(proclaiming)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살도록’(ζῆ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live), ‘명하셨다’(διέταξεν)는 부정과거로서(directed) 과거에 분명하게 명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이와같이 주님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부터 자기들의 생계비를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셨다. (In the same way, the Lord has commanded that those who preach the gospel should receive their living from the gospel.)
New Living Translation: 이와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복음으로부터 유익을 받은 자들에게서 물질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셨다. (In the same way, the Lord ordered that those who preach the Good News should be supported by those who benefit from it)
1. 전담 사역자들이 사례비를 받을 것에 대해서, 주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0절에서, “일군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7절에도,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복음 사역자가 사례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하려는 것은 “이처럼 바울 사도가 사례비를 고린도 교회로부터 받을 권리가 있지만, 고린도 교회의 형편상 사례비 받을 권리를 보류(유보)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처럼 자기의 권리를 포기한 것처럼,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믿음 좋은 성도들도 믿음이 약한 성도를 위해서, 자유와 권리를 보류(유보)할 줄 알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요지는 우리 성도들이 자기의 권리와 자유만 주장하면서, 약한 성도의 믿음에 상처를 주지 말고, ‘십자가의 정신’에 따라서, 희생하고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원수 같이 대항하지만, 우리를 죄악대로 처벌하시지 않고,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희생시켜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십시다!
15절.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 have used none of these things. And I am not writing these things so that it will be done so in my case; for it would be better for me to die than have any man make my boast an empty one.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ἐγὼ δὲ οὐ κέχρημαι οὐδενὶ τούτων.
I but not I have used none of these
‘나는’(ἐγὼ: I)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쓰지 않았다’에서 동사(κέχρημαι)는 완료형으로서(have used) 지금까지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οὐκ ἔγραψα δὲ ταῦτα ἵνα οὕτως γένηται ἐν ἐμοί·
not I wrote now these things that thus it should be with me
직역하면 ‘나에게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이것들을 내가 쓴 것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에서 동사(γένητ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it should)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쓴 것이 아니다’에서 동사(ἔγραψα)는 부정과거로서(I wrote) 과거에 쓴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καλὸν γάρ μοι μᾶλλον ἀποθανεῖν
good for me rather to die
직역하면 ‘왜냐하면 나에게 죽는 것이 차라리 좋다’는 뜻입니다.
‘죽는 것이’(ἀποθαν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die) 단호하게 칵 죽어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ἢ τὸ καύχημά μου, οὐδεὶς κενώσει.
than the boasting of me, anyone will make void
직역하면 ‘나의 자랑을 누가 헛되게 만드는 것 보다’ (차라리 죽은 것이 좋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헛된 데로 돌리다’(κενώσει)는 미래형으로서(will make void) 앞으로 헛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그러나 나는 이러한 권리들을 어떤 것도 행사하지 않았노라. 그리고 나는 너희가 나에게 이러한 것들을 해달라는 것을 바라서 이렇게 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서 이러한 자랑을 빼앗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But I have not used any of these rights. And I am not writing this in the hope that you will do such things for me, for I would rather die than allow anyone to deprive me of this boast)
New Living Translation: 그러나 나는 이러한 권리들을 어떤 것도 결코 행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사례비를 주기 시작해달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나는 물질적 부담을 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나의 자랑을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Yet I have never used any of these rights. And I am not writing this to suggest that I want to start now. In fact, I would rather die than lose my right to boast about preaching without charge)
1. 이전 성경에서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하고서 “…라고 점점점 찍은 것은 감정이 격정에 사로잡혀서 말을 못 잇는 것 같은 번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성경이 점을 찍은 것은 원문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정확히 무슨 뜻인지 확실한 번역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으로 표시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번 성경에서 ...을 없앤 것은 잘한 것입니다.
영어 역본들은 다 점이 없고 이번 개역성경처럼 번역했습니다.
2. 바울이 예수님께서 복음 전도자에게 생계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씀을 인용한 것은 결단코 바울 자신에게 고린도 교회가 이제부터라도 사례비를 지급해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 사역자와 사례비 문제는 원칙상 그렇다는 것이지, 결코 바울에게 사례비를 달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무보수로 전도하고, 자비량 전도하는 것이 자기의 자랑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물질적인 댓가 보다는 명예를 더욱 크게 생각했습니다.
3.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천막 제조 기술로써 자비량 전도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요즘에도(2005년경)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은 목회자가 벌을 키운다든지, 농사를 짓는다든지, 운전을 하면서 사역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선교하시는 분들도 태권도 사범이나 의사나 간호사나 전기 기술자나 미용 기술자로서 생업을 유지하면서 선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큰 교회에서 목회자의 생계비를 다 책임지면 참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독일처럼 국가에서 목회자의 생활비를 책임지든지, 아니면 교단 총회에서 세례교인 상회비를 많이 거두어서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목회자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이상 교회가 목회자를 책임질 수 없는 경우에는 목회자가 생업을 유지하면서 목회하는 것을 탓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9장 1-6절 설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6절.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f I preach the gospel, I have nothing to boast of, for I am under compulsion; for woe is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ἐὰν γὰρ εὐαγγελίζωμαι,
if for I might preach the gospel
직역하면 ‘왜냐하면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εὐαγγελίζωμαι)는 현재 가정법 동사입니다(I might preach)
자랑할 것이 없음은
οὐκ ἔστιν μοι καύχημα·
nothing there is to me boasting
직역하면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나에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동사(ἔ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there is).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ἀνάγκη γάρ μοι ἐπίκειται·
necessity for to me is laid upon
직역하면 ‘왜냐하면 불가피함이 나에게 놓여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동사(ἐπίκειται)는 현재 수동태입니다(is laid upon).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οὐαὶ γάρ μοί ἐστιν
woe for to me is
직역하면 ‘왜냐하면 (만일 복음을 전화지 아니 하면) 화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ἐὰν μὴ εὐαγγελίσωμαι.
if not I should preach the gospel
‘복음을 전하지’(εὐαγγελίσωμ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I should preach the gospel) 내가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Berean Study Bible: 그러나 내가 복음을 전할 때 자랑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 (Yet when I preach the gospel, I have no reason to boast, because I am obligated to preach. Woe to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New Living Translation: 그러나 복음 전파는 내가 자랑할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께 명령을 받았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나에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Yet preaching the Good News is not something I can boast about. I am compelled by God to do it. How terrible for me if I didn't preach the Good News!)
1. 복음 전도 자체는 자랑거리가 못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득불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성경: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 전도 자체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사항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했습니다.
2.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라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한 것은 다메섹 체험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체험 이전에는, 디모데전서 1장 13절 대로,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당연히 ‘사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수 바울을 용서하시고, 오히려 ‘이방인 전도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2. 이처럼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를 위해서만 쓸 그릇이므로, 복음을 안 전하면, ‘핍박죄에 대한 처벌’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도 주님을 대항한 사람들이었으나, 주님의 크신 용서와 사랑으로 구원받았으므로, 화급한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안에 찾아오셔서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나의 가장 사랑하는 이웃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좋으신 예수님을 어찌 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죄로 죽은 나에게 영생을 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전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7절.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f I do this voluntarily, I have a reward; but if against my will, I have a stewardship entrusted to me.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εἰ γὰρ ἑκὼν τοῦτο πράσσω, μισθὸν ἔχω·
if for willingly this I do, reward I have
직역하면 ‘왜냐하면 만일 이것을 자의로 내가 행하면, 상을 내가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행하면’(πράσσω)은 현재형이고(I do), ‘내가 상을 받다’에서 동사(ἔχω)도 현재형입니다(I have).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εἰ δὲ ἄκων, οἰκονομίαν πεπίστευμαι.
if but unwillingly, stewardship I have been entrusted
직역하면 ‘그러나 만일 자의가 아닐지라도, 나는 청지기직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받았다’(πεπίστευμαι)는 완료 수동태로서(I have been entrusted) 이미 받았다는 뜻입니다.
English Standard Version: 왜냐하면 만일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내가 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자의로 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청지기직을 맡았노라. (For if I do this of my own will, I have a reward, but if not of my own will, I am still entrusted with a stewardship)
New Living Translation: 만일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한다면, 내가 보상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신성한 임무를 주셨기 때문에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If I were doing this on my own initiative, I would deserve payment. But I have no choice, for God has given me this sacred trust.)
1.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하는 “직분”을 맡았습니다.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개역성경):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개역개정).
주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에는,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한 나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2. 일반 성도들은 전문 전도인으로 전도의 직분을 맡은 것이 아니지만, 바울은 반드시 해야 하는 전도자의 직분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반 성도들도 주님의 지상 명령이 전도이지만(마 28:18-20), 바울 사도는 이런 일반적인 명령만이 아니라, 일반 봉사 직분자들과 목회자들과는 달리 전도자(선교사)로서 직분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직분이 있어서(고전 12:5), 사도직과 선지자직과 목사와 교사직 등 여러 가지 직분이 있습니다(고전 12:28).
그런데 바울 사도는 전도자(선교사)의 직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반 성도가 전도하면 상을 받을 것이나, 바울은 상을 받든지 안 받든지 전도자(선교사)로서 직분을 가지고, 매일 일과처럼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단지 바울이 상을 받는 것은 전도한 미자립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고, 천막 장사를 하면서 자비량 선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18절.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는 이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at then is my reward? That, when I preach the gospel, I may offer the gospel without charge, so as not to make full use of my right in the gospel.
내 상이 무엇이냐
τίς οὖν μού ἐστιν ὁ μισθός;
what then of me is the reward ?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ἵνα εὐαγγελιζόμενος, ἀδάπανον, θήσω τὸ εὐαγγέλιον,
that preaching the gospel, free of charge, I should offer the gospel
직역하면 ‘복음을 전하면서, 값없이 내가 그 복음을 주었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εὐαγγελιζόμενος)는 현재분사입니다(preaching the gospel).
‘주었다’(θήσω)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I should offer)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전한 것을 가정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는 이것이라.
εἰς τὸ μὴ καταχρήσασθαι τῇ ἐξουσίᾳ μου ἐν τῷ εὐαγγελίῳ.
as to not to use the right of me in the gospel
직역하면 ‘복음 안에서 나의 권리를 쓰지 않기까지’ (값없지 주었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쓰지 않기까지’에서 동사(καταχρήσασθ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use) 철저히 다 쓰지 않는 것을 나타냅니다.
English Standard Version: 그러면 나의 보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을 무상으로 전해주었고, 복음 안에 있는 나의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What then is my reward? That in my preaching I may present the gospel free of charge, so as not to make full use of my right in the gospel)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면 나의 보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 물질적 부담이 없이 전파하였고, 복음 안에 있는 내 권리를 완전히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What then is my reward? That, when I preach the gospel, I may offer the gospel without charge, so as not to make full use of my right in the gospel)
1. 바울은 복음 전도의 직분을 감당할 때, 댓가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상으로 복음 전도한 것에 대해서 주님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바울의 상은 댓가 없이 복음을 전해준 것이었습니다.
2. 그런데 바울 사도의 경우는 복음 전도가 일종의 의무사항이요, 빚이었습니다.
로마서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 사도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인 자기를 용서하시고, 가장 영광스러운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일생을 바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2-16.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3. 그런데 주님은 우리 모두가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서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심정으로, 빚 갚는 심정으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은 자의 심정으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1:30-32.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4. 그런데 본 절의 포인트는 바울이 복음 전도를 할 때, 보상을 받지 않고 무상으로 복음을 전한 사실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전도하여 설립한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을 권리가 있었으나, 이 사례비 청구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권리를 보류(유보)했습니다.
이와같이 고린도 교인들도 우상의 제물을 먹을 믿음과 권리가 있을지라도, 자신의 권리를 유보하고, 믿음이 약한 성도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모든 일상생활에서 나의 자유와 권리를 양보하면서, 어렵고 가련한 이웃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 돈 내고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사 입는데 누가 무슨 말을 하느냐”고 하지 말고, 스스로 권리를 양보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검소하게 살고, 물질로 봉사하고 섬기는 십자가 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부자들이 자진해서 세금을 많이 내고, 이웃을 돕는 기부금을 엄청나게 많이 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부자들이 가난한 백성을 도외시한다고 원성이 자자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연애인들 중에는 수십억이나 수백억도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공동모금회에 가입하는 분들이 있고,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서 수억 원씩을 사회에 헌금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부자들도 스스로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쓸 권리를 유보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부금을 많이 내서, 섬기는 부자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자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성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바울의 자유와 권리를 양보하는 정신, 십자가 정신, 섬기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해서 우리를 섬기신 십자가의 사랑을 본받아서, 우리들도 아름다운 섬기는 열매들을 많이 맺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모든 생활을 축복하셔서 모든 일이 선하게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