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점심때가 다 되어 겨우 노트북 앞에 앉는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늘 머릿속에 가득하다. 노트북만 켜면 술술 써질 것 같던 문장은 막상 한글을 열고 키보드에 손을 얹는 순간 산산이 흩어져 달아나 버린다. 그렇게 몇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갈길 잃은 문장들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시 책을 읽다가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린다. 이내 키보드에 손을 얹어보지만 엉킨 실타래 같은 마음을 안고 아파트 뒤쪽 연못을 찾는다. 걷다가 뛰다가 차가운 공기 속에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오지만 결국 밤늦게 시간에 쫓겨 글을 맺는다. 그렇게 급히 쓴 글을 과제로 내놓는 악순환 속에서 나는 스스로 묻는다. ‘글은 왜 쓰려고 하는 걸까? 나는 진정 글을 쓰고 싶은 것일까?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일까? 이런 갈등 속에서 언제까지 글을 붙잡고 있을까?’ 신새벽까지 잠 못 이루며 몸을 뒤척인다.
2. 예전에는 글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 일도 없었다. 글쓰기의 시작은 단순히 귀농하는 남편을 위해서였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농작물 판매를 위해 SNS에 글을 올리고 댓글 달 정도만 배우고 싶었다.
3. 평생을 가정과 일에만 매몰되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살았다. 바쁜 일상에 빠져 일기조차 써본 일 없는 삶이었다. SNS 댓글조차 버거운 숙제였기에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다. ‘글쓰기’ 카페에서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더 배워보겠다고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입학하고 졸업했지만, 대학은 실제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다시 수필강의를 몇 년째 들었으나 쓰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4. 글을 쓰고 싶어서,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내 의지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매번 쓰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면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글을 안 쓰는 동안 느껴지는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이토록 글쓰기가 힘겨운 것일까. 가만히 그 이유를 짚어본다.
5. 첫째는 대구와 청송을 오가는 불안정한 생활 때문이다. 남편의 귀농으로 두 집 살림을 한 지 어느덧 15년이다. 과수원 일을 돕고 돌아온 날은 몸이 녹초가 되어 아침에는 제때 일어나지도 못한다. 홀아비처럼 혼자서 고생하는 남편, 가끔 만나는 그를 홀로 두고 책을 보거나 글 쓰는 것이 미안해 마음 편히 펜을 잡지 못한다. 그러다 대구로 돌아오면 긴장이 풀려 온종일 힘없이 누워 지내기 일쑤다. 생활이 이렇다 보니 글쓰기의 리듬이 자꾸만 끊기고 만다. 쓰는 일이 몸에 붙는가 하면 농장에서 단절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6. 둘째는 기계에 대한 거부감과 건강 문제다. 평생 은행원과 사무직으로 일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 씨름해 왔다. 그런 오랜 습관 탓에 퇴근 후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은 업무의 연장으로 느껴진다. 오랫동안 전자기기로 일 처리를 하면서 손글씨 쓰는 일도 줄었다. 펜 사용이 어쩐지 어색하다. 글을 쓰려면 어쩔 수 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야 하는데 거기까지가 아득히 멀기만 하다. 게다가 일찍 찾아온 노안과 최근 겪은 눈 질환은 큰 장애물이다.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받은 검사에서 암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재발할 수도 있다”라는 의사의 무심한 말은 오래 마음속 깊게 생채기로 남아있다. 그 이후로 눈의 불편함은 글쓰기의 또 다른 장벽이 되었다. 흐릿한 시야와 이물감을 안고 밤마다 활자를 대하는 일은 육체적으로도 고된 노동이 되었다.
7. 마지막으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마음의 감기다. 한동안 모든 일이 귀찮아지고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며칠씩 계속될 때가 있다. 글쓰기가 어려워 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아파 글이 달아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이 수시로 찾아온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찾아오는 무기력은 글쓰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온몸을 움츠리고 방안에서 숨어 지내는 날이면 글쓰기는커녕 생각조차도 멈춰버린다.
8. 이런저런 사유로 글쓰기는 늘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고야 마는 나의 기질이 이럴 때 요긴하다. ‘왜 나는 이 뒤엉킨 마음의 혼돈 속에서도 글을 쓰려고 몸부림치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은 글을 안 쓰는 나의 노년을 상상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또한 시작은 남편의 귀농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지만, 글쓰기가 어릴 적부터 꿈꾸어오던 열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디고 서툴지라도 매일의 기록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이 갈등 끝에 결국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서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