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 많이 좋아하는
중후하고 지성이 넘치는
이상협 아나운서가 오늘부터
KBS FM 클래식 프로그램인
'당신의 밤과 음악'(PM 10:00 ~ 자정)에서
'비우다 채우다, 詩人의 의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실래요?
최근엔
그의 첫 詩集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도
서점에 가서 사 왔습니다.

그의 詩 몇 편을 공유하려구요.
저절로 하루
어떤 사람은 휘파람으로 저녁에 도착하고
매미는 쓰린 허밍 하나로 계절을 들어올린다
저녁은 세 시부터 오고 있다
철공소에선 제라늄 냄새가 난다
정류장 없는 곳에 노선버스가 서는 것을 본다
반투명은 어느 쪽에 가까워지는 걸까
대성유리 앞에선 어항을 든 사람과 부딪히고
다섯 시엔 시장에 간다
열 시엔 아이를 재우고 식탁에서 생강을 벗긴다
아내는 공기를 아끼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매워서 눈물 나는 일도 있고 눈물 없이 우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울음과 울음
사이에 생활이 있고
생활과 생활 사이에 울음이 있다
벽에는 지난여름 내가 죽인 모기의 피가 굳어 있다
휴대폰에서 내 이름을 삭제한다
자정엔 내가 진행하는 방송의 멘트를 따라하다 웃고
세 시엔 읽지 않을 책을 주문한다 그걸 다 읽기로 한다

--- 이탈리아에서 1
백자의 숲
불탄 목적지는 이해하기 쉽고 나는
도착하는 길이 계절마다 다릅니다
구운 흙은 울기 좋습니다
깨어질 듯 그러했습니다
밖에 누구 있나요
안에 누구 없습니다
나는 나의 작은 균열을 찾는 중입니다
금 간 서쪽 무늬를 엽니다
나는 획의 기울기를 읽는 데 온밤을 씁니다
중심은 맺혔다 사라집니다
나는 안팎이 없습니다
검은 모자 떼가 날아갑니다
불쏘시개로 흰 뼈를 깨뜨리고
경계에서 나는 태어납니다

--- 이탈리아에서 2
앵커
마지막 뉴스가 끝나면 한쪽 귀를 접습니다
뜨거운 수증기로 얼굴을 지웁니다
세수를 하면 자꾸 엄지손가락이 귀에 걸립니다
나는 조금만 잘 지냅니다
검은 양복을 차려 입을 때만 나를 믿는 사람들은
각자의 TV 속에 손을 넣고
실을 뽑아 나누어 가집니다
불행은 정시에 시작됩니다
투명한 파문을 만듭니다
소문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마이크는 얼굴을 편애하지 않습니다
거미는 먹이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 이탈리아에서 3
그 동안 '라디오 진정제'에서 코딱지만큼 들을 수 있었던
이상협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이제 많이 들을 수 있어
행복한 날입니다.
정작 그의 전공은 미술입니다.

--- 이탈리아에서 4
첫댓글 "아카데이 수상 특집
영화 '기생충' 세계를 매혹하다"...
요런 중요한 KBS의 프로그램에서 내래이션을 하시는 이상협 아나운서, 짱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