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 사 55 : 6-9
이사야 55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줄터이니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라는 말씀이고 초청에 응한 사람에게는 어떤 좋은 것을 주겠다는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초청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초청에 참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체험과 은혜를 받아야겠습니다. 1~5절은 목마른 자는 물로 나오라는 초청의 말씀이었지요. 여기의 "물" 이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복음" 이라고 하셨습니다. 초청을 하시되 아무런 자격이나 조건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유식한 자도, 무식한 자도, 늙은 자도, 어린 아이도, 가진자도, 가난한 자도 아무나 이 초청에 응하면 됩니다. 그러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포도주는 기쁨을 말함이고 젖은 영양을 말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불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와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온 기회는 영영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인생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까이 계실 때에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항상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1. 찾으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6절에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고 하셨는데 "만날 만한 때" 가 언제일까요? 앞 절에서 말씀하셨던 "목마른 때" 입니다. 배고픈 때, 고통스러운 때, 환난 당하고 있을 때, 그때가 만날 때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라” 하셨습니다. 또 시편 32:6절에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희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여기도 보면 주를 만날 때가 언제냐? 죄를 깨달을 때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자기의 죄를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주님은 그 죄를 해결해 주시려 하십니다. 해결만 하시는게 아니시라 새 생명까지 주시려고 하십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갈등과 고통과 번민이 있다면 그때가 주님을 찾을 때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이나 사업장이나 일터에서 어려움이 있을 그때가 주님을 찾을 때입니다. “'만날 만한 때” 란 주님 쪽에서는 항상 열려 있으나 언제나 부족한 우리 쪽이 문제입니다. 고린도후서 6:2절에 보시면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은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만나려 문을 열어놓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담 하와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은 문을 열어두고 계십니다.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길 거리가 멀지만 항상 문을 열어놓고 문앞에 나와 기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만날 문을 닫으신 적이 한번도 없으십니다. 인생들 스스로가 문을 닫은 것이지요. 언제든지 만날 수가있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2. 돌아오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7절) 자신이 인간적으로 선택한 길, 장래가 있으니 성공해 보리라고 선택한 그 길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생각은 결국엔 악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 길을 버리라는 것은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생각, 내 방식대로 살던 것들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살기를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길을 버리고, 생각을 버리고' 란 하나님께 자백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백하면 새 은혜를 주시는데 요한일서 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 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자백하면 깨끗이 사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의롭게 살 수 있도록 인도도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죄를 깨닫는 즉시 자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는 지은대로 고백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의지한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맡긴다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고 하셨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무조건 하나님께로 나아오면 긍휼히 여김을 받는게 아니라 우리의 길과 생각을 버리고 오면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긍휼이 무엇입니까? 사랑하여 불쌍히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엄청나게 짓고도 감히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생각의 차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8절)복음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용서를 빌어도 작은 죄는 용서해 줄 수 있으나 어마어마한 죄는 결코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크게 고통을 준 뒤에야 용서를 하던지 할텐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크든, 작든, 진정으로 깨닫고 회개하는 자들은 다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을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어떻게 하시느냐 하면 시편 103:11~13절에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동쪽과 서쪽은 영원히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진정으로 회개한 죄는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용서하시기 때문에 다시는 그 죄에 대해 물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1:18절에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더러운 곳도 눈이 내려 그 위를 덮으면 희어지는 것이고 양털은 속으로부터 돋아 나옴으로 깨끗해 집니다. 우리 죄가 아무리 더럽고 새빨갛다고 해도 흰눈처럼 덮어서 희게하시고 양털처럼 깨끗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겉으로는 덮어버리시고 속으로는 돋아나게 하신다고 하셨으니 완벽한 변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무엇이든지 기회란 아무 때나 주워 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는 어떻게 생각하면 한정된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을 때 그때 하나님을 찾고 불러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우리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질 안개 이다고 약4:14절에 말씀 하시고 있습니다. 이 짧은 인생기간 동안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의 찾음을 보시고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생각과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너그럽게 용서 하신다고 7절에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곤고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까?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 올 때가 있습니까? 그때가 바로 여호와를 만날 때입니다. 찾고 부르짖읍시다. 그리하면 긍휼과 자비가 충만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응답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