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소나타 8번, 다단조, 작품번호 13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Op. 13
비창 소나타(Grande Sonate pathétique / Sonata Pathétique)
[이하 출전: 나무위키]
3.1. 1악장: Grave – Allegro di molto e con brio
3.2. 2악장: Adagio cantabile
3.3. 3악장: Rondo: Allegro
1798년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로 베토벤 초기의 대표작이며 그의 소나타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이다. 이 소나타와
월광 소나타 및
열정 소나타를 묶어서 흔히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라고 부른다. 시기적으로는 초기에 속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아직
하이든과
모차르트 두 대선배(이자 스승)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으나 1800년대 이후의 베토벤을 예견하는 독창적인 수법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2. 창작 배경
베토벤은 1792년 빈에 온 이후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이자 주목받은 신인 작곡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즉흥 연주의 달인으로 사교계에도 이름이 알려졌으며 깐깐하고 실력 좋은 피아노 선생으로도 유명세를 날렸다. 이 비창 소나타가 창작/출판된 1798-1799년은 청년 베토벤이 본격적으로 피아노 음악의 작곡에 매진했던 시기로서 이 시기에 작품번호가 붙은 피아노 소나타만 비창 소나타를 포함 무려 6곡이 작곡되었다(피아노 소나타 5번부터-10번). 이 외에도 바이올린 소나타 1~3번이 발표되었고 피아노 협주곡 1번도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이 시기 베토벤은 대선배였던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 수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으로 새로운 음악 어법을 추구하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인생악기였던 피아노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가 두드러졌는데, 작품번호 10의 세 피아노 소나타(5~7번 소나타)의 경우 상당히 실험적인 성향이 강한 소나타들로 예를 들어 6번 소나타의 3악장은 푸가 스타일의 도입부를 갖고 있으며 7번 소나타의 1악장은 통상적인 소나타 양식에서 2개의 주제를 제시하는 것과 달리 여러 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비창 소나타 역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되는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특이한 점은 이 시기의 다른 소나타들은 2~3곡을 묶어서 같은 작품번호로 발표했는데 유독 이 비창 소나타만은 단독 작품으로 출판했으며 게다가 '비창'이라는 이름까지 붙어 있다는 것인데, 이미 출판 당시부터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비창'이라는 이름은 작곡자가 스스로 붙였다는 설도 있고 이 작품의 비극성에 주목한 출판업자가 'Grande sonate pathétique(비창한 느낌의 대소나타)'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사실 pathétique은 불어로 '비창(悲愴)한'이 아니라 '비장(悲壯)한'이라는 뜻이다. 다행히도 요즘 악곡 해설에서는 슬픔(愴)보다는 장엄(壯)이 더 두드러진다는 쪽이 더 많으며 이 오역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어의 경우, 전자는 bēichuàng(悲怆)이고 후자는 bēizhuàng(悲壮)으로 성조가 완벽히 똑같지만 한국어의 ‘ㅊ’, ‘ㅈ’ 차이처럼 뒷말의 자음에서 차이가 나는데 일본은 애석하게도 두 단어 모두 발음이 ひそう로 똑같다. 아무래도 영어의 pathetic이랑 철자가 유사해서 야기된 오역인 듯하나 외국에서 먼저 오역된 것이 그대로 번역되어 들어왔을 가능성도 적지는 않다. 한편으로 이 시기에 그를 평생 괴롭혔던 청력 장애가 시작되었는데, 7번 소나타와 이 비창 소나타 전반에 흐르는 비극적인 느낌은 이 귓병에 대한 고통과 불안감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작품은 당시 베토벤의 후원자였던 카를 폰 리히노프스키 공작(Prince Karl von Lichnowsky)에게 헌정되었다.
3. 작품 구성 및 해설
주 조성은 C단조이고 3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주시간은 18~22분 정도 된다.
3.1. 1악장: Grave – Allegro di molto e con brio
1악장은 C단조 조성을 갖고 있으며 소나타 양식에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이하게 이 악장은 그라베(장중하게)라는 속도 지시를 가진 비극적인 느낌을 갖는 도입부로 시작되는데, 베토벤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 1악장에 느린 도입부가 붙어 있는 소나타는 이 8번과 17번(템페스트, 다만 도입부라기보다는 제1주제의 극초반이라 보는 것이 더 맞다.), 24번, 26번(고별), 32번 등 5개 뿐이다. 특히 이 비창 소나타의 1악장 도입부는 다른 소나타의 통상적인 서주와도 좀 다른데, 이 도입부의 선율이 1악장 서두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악장 전반에서 계속 인용되면서 여러 번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별한 도입부를 갖고 있는 것은 이 비창 소나타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하이든의 작품에도 이와 같은 수법이 등장하고 있으며 베토벤 본인도 13살에 작곡한 WoO 47의 3개의 피아노 소나
] 중
2번째 작품의 1악장에서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다만 이 도입부의 선율은 후술되는 주제들처럼 적극적으로 변화 발전하지는 않으며, 주로 고조되는 분위기를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일종의 분위기 전환을 위한 역할로 등장한다.
10마디의 도입부에 이어 11마디부터 본격적으로 1주제가 등장한다. 이 1주제는 낮은 음에서 시작해서 계속 음높이가 상승하고 있으며 음역대가 2옥타브에 이를 정도로 넓은데, 이런 식으로 음을 도약시켜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흔히 만하임 로켓(Mannheim Rocket)이라고 한다.
이 격정적이고 불안한 느낌의 1 주제에 이어 51마디부터 좀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제 2 주제가 등장한다. 보통 1주제가 C단조라면 통상적으로는 나란한조 관계에 있는 E♭장조로 전조가 되는데 이 1악장에서는 특이하게 2 주제가 E♭ 단조로 나타났다가 다시 이 주제가 E♭ 장조로 변형된다.
2 주제가 제시된 후 도입부의 그라베가 등장하면서 발전부가 진행되고 긴 경과구를 거쳐 재현부가 진행된다. 마지막 코다에서도 그라베가 등장한 후에 격정적인 마무리로 1악장을 끝마친다.
3.2. 2악장: Adagio cantabile
낭만적이고 친숙해 듣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2악장의 선율은 이 곡이 출판된 당시부터 인기가 매우 높았으며, 3악장보다는 아니지만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악보에 노래하듯이(cantabile) 연주하라는 지시 사항이 있는 것으로 보면 작곡자 본인도 주제의 선율미를 충분히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2악장은 A♭장조의 조성을 갖고 있으며 형식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A - B - A - C - A' - 코다 와 같은 구성으로 주제(A)가 몇 번 반복되기 때문에 일종의 론도에 가까운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
모차르트의
K. 457 C단조 피아노 소나타의 2악장 주제와의 유사성이 많이 지적된다. 그래서 이 악장이 모차르트의 C단조 소나타에서 영감을 얻어서 작곡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주제의 유사성을 제외하면 특별한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일단 주제가 등장한 후 E♭장조로 전조된 삽입부(B)가 나오고 다시 주제가 반복된 후 일종의 클라이막스에 해당되는 두 번째 삽입부(C)가 등장한다. 그간 계속 느리고 조용하게 진행되었는데 이 삽입부에서 갑자기 격정적인 분위기로 전환된다. 한 차례의 격정이 끝난 후 다시 주제가 반복되면서 분위기가 진정되며 이어 짧고 조용한 느낌의 코다로 이어지면서 악장이 마무리된다.
3.3. 3악장: Rondo: Allegro
이 비창 소나타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이 된 이유가 바로 이 3악장 때문일 것이다. 3악장은 전형적인 론도 형식을 갖고 있으며 주 조성인 C단조로 복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A - B - A - C - A - D -A - 코다 로 구성되며 각 삽입부는 E♭장조(B), A♭장조(C), C장조(D)로 다양하게 전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3악장도 나름 인상적인 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상당히 인기가 높으며 최근에는 이 곡을 편곡한
베토벤 바이러스가 문화적으로 상당히 많이 쓰인다.
이 비창 소나타는 베토벤 초기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작품성 측면에서 보면 베토벤의 독창성이 완전히 드러나기 이전의 시기에 작곡된 작품이기 때문에 중기 이후에 본격 등장하는 혁신적인 실험이나 복잡하고 파격적인 구축법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대체로 베토벤 당대에 통용되었던 음악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강약의 대비나 빠르기의 대비, 다양한 전조, 조용하게 긴장을 조성하다가 한번에 강하게 몰아치는 수법 등 베토벤 특유의 음악 어법도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작품성과 별도로 이 작품은 대중적인 인기가 대단해서 인기 측면에서만 보면 중기 이후의 원숙한 경지에 오른 명작 소나타들조차 이 비창 소나타와 월광 소나타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래 항목에서 보듯 오늘날에도 대중 매체에서 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인용하고 있으며 특히 2악장의 선율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중요한 편곡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비창 소나타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곡 전반에 흐르는 낭만과 우수가 대중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월광 소나타의 1악장과 더불어 베토벤의 소나타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선율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후기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상과 연주가 쉽다는 점도 대중적인 인기에 한 몫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창 소나타 2악장의 선율에 곡을 붙인 Das Auge der Geliebten, 헤르만 프라이 노래. '사랑하는 연인의 눈'이라는 뜻이며 쉴러의 시를 가사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베토벤 당대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출판되었을 당시 악보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 팔렸다고 한다. 빈의 연주자들과 피아노 애호가들은 이 비창 소나타의 악보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며 각종 연주회와 사교 모임에서 이 작품이 널리 연주되었다. 베토벤의 제자였던 이그나츠 모셀레스(Ignaz Moscheles)에 의하면 이 작품이 출판되었을 당시 악보를 구하려 했지만 도저히 구하지 못해서 도서관에서 어렵게 악보를 빌려서 베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인기는 당연히 베토벤 본인에게도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 비창 소나타 덕분에 인기 피아노 연주자를 넘어 전도 유망한 젊은 작곡가로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낙양지귀(洛陽紙貴)의 고사에 딱 어울리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상 전문가들이 [나무위키]에 올려 놓은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기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단지 들음과 이해가 목표이지 연주는 아니라서 삽입된 악보는 다 뺐다. 베토벤이 슬픔이라는 인간 보편적 감정을 어떻게 피아노라는 악기로 표현했는지, 또 본인은 어떠한 슬픔을 느끼면서 이 곡을 구상하고 연주했는지 등등이 궁금했다.
슬프지 않은 삶은 없다, 희로애락 모두가 인간 보편의 정서이므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도 유난힌 슬픈 사연이 많고, 4월의 제주 민중항쟁이라든가, 5월의 광주 민중항쟁, 6월의 민주항쟁과 남북 전쟁 등이 특히 그렇다. 이 무렵, 교회의 전례는 부활 시기를 마치고 성령 강림과 삼위일체, 성체성혈, 예수 성심 등 굵직한 대축일들이 몰려 있다. 우리 한국 가톨릭 교회는 선대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이 물려준 전승과 전통에 충실한 편이다. 그런데 초창기에 비해서 토착화적인 열의는 현저하게 떨어진 것 같다. 아무리 유럽 본토에서 건너왔고, 선교사들이 물려둔 것이라 해도, 주체적인 수용 태도는 여전히 필요한 법이다. 더구나 성체신심과 관련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슬픔이, 개인적인 인생사이건 민족적인 역사이건 간에, 예술과 종교를 통해 인간적인 승화 노력을 거치면,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미래를 희망차게 해 줄 것이다.
<월광> 소나타를 공부하면서 확인했다시피, 베토벤은 음악가의 필수능력인 청력을 잃어가는 가운데에서 작곡을 했고 오히려 청력이 건강한 다른 음악가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수학자 박경미는, 베토벤이 음악의 수학적 원리를 이해한 천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월광> 소나타에서도 주제음이 반복되는데, 수학의 등차수열처럼 일정한 규칙을 지닌 변화의 패턴으로 반복되며, 특히 고저강약의 리듬을 타고 반복되기에 낯설지 않으면서도 지루함을 주지 않고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음악이 수학을 만날 때 감동이 생겨난다. 무언가 창의적인 수용노력이 보태져야 울림이 생긴다는 말이다. 울림은 공감이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곡을 만든 이, 연주한 이와 똑같은, 적어도 비슷한 감정의 자기장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작용이다.
하느님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선행과 기적 또한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