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누가복음 24장 31-32절『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오후에 대해 누가복음 24장에서는 엠마오로 돌아가던 두 제자들의 기사를 말하고 있다. 이들은 사도들이 아니고 제자들인데 부부였다. 그들의 이름은 글로바(누가복음 24:18)와 마리아(요한복음 19:25)였다. 이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는 약 10km정도되는데, 부부는 부활의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와 두 사도가 주님의 무덤을 다녀온 이야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주님의 시신을 도난당했다고 생각하고 슬픈 분위기였다.
이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동행하셨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주님의 모습이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실 때, 두 제자는 몇일 동안 있었던 일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상세히 전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부활에 대해서 믿지 못함을 여기시고,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에 대해 전하셨다.
그들이 큰 은혜를 받고 엠마오에 도착했을 때, 자기들의 집에 부활하신 주님을 초청하여 식사를 준비했다. 당시 유대 사회 풍조는 나그네를 위해 집주인이 식사 기도하며 축복을 하는데, 이들은 주님께 식사기도를 부탁했고, 주님께서 빵을 집어 축복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았으나 곧 바로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그리고 그들 부부는『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καιομένη 카이오메네:기본형은 카이오) 하고』주님이 축복하시고 주는 빵은 하늘의 부활생명의 빵이 된다. 카이오는 “불을 붙이다, 타다, 비추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령의 불이 마음에 임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그들 부부는 자신의 생각으로서는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기에 주님의 은혜로 불세례와 성령세례를 통해서 께닫게 해주신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9-50절에서『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불세례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 교회 집회에서 말씀으로 은혜받아서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부흥 집회에서 “불을 받으라” 라고 외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불을 받는다 라는 말은 나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있는 자는 오직 영적으로 살아난 자만 가능한 일이다.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주님이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눈이 열리게 하시고, 다시 사라지신 것이다. 다시 사라진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은 세상의 육체와 다른, 영의 몸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해준다. 교회 사람들은 부모로 받은 육체가 죽은 후에 육체가 변하여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죽은 후에 시체가 신령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죽은 자를 화장하는 문화가 대세인데, 화장해버리면 육체는 흩어져 먼지같이 되는데, 하나님이 능력으로 신령한 몸으로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왜 죽은 육체에 집착하는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를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영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고, 영의 몸을 입는 것이 부활의 개념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곧 바로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다. 주님의 부활하신 몸은 이렇게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의 몸이다. 영의 눈이 열려야 볼 수 있는 몸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가 영의 몸으로 부활한 것이다.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영의 눈이 열려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영이 눈이 닫혀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