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그린문학 발행인/대표
전라정신문화연구원 등록이사
리애드코리아 문화사업부 원장
대한민국 얼굴 없는 천사 이삭빛천사본부 공동대표
-(얼굴 없는 천사시 선정시인)
시 집: 가슴으로 만난 사람은 꽃이다외 다수
문학상: 여성부장관 표창,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인물 대상,
환경대청상 전라북도 도지사표창외 다수,
춘우문학상대상외 다수
시낭독: 일본대마도에서 이삭빛의 '독도는 우리땅', 이삭빛의 이애미 주논개’(2016)
몽골에서 이삭빛의 ‘가슴으로 만난 사람은 꽃이다’(2018)외
왜란 구국의 명장, 황진장군
이삭빛
바다의 장군은 이순신요 육지의 장군은 황진이라
세종임금시절,
청백리요 영의정을 지닌 황희 정승 5대손,
남원태생 황진장군
1576년 무과에 급제하여
1590년 조선통신사 정사 황윤길의 무관이 되어
일본으로 간 구국의 명장
날아다니는 왜인들의 서슬 푸른 눈빛 앞에서도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새를 쌍으로 떨어뜨렸나니
그의 화살은 조선의 자존심이요,
그의 검은 영원한 무궁화 향기여라.
1592년 임진왜란 이치전쟁,
전라도절제사 권율장군의 독전 하에
동복현감 황진장군이 왜적을 격파하였네.
호남의 수도 전주를 침공하려했던 왜장 고바야가와 다가가게.
하늘과 땅도 핏빛으로 쏟아 오르게 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이여!
왜적의 머리가 가장 큰 민족사적 핏물로 푸른 산을 뒤흔들었네.
그러나
황진의 화살은 백발백중
적의 시체가 수십리에 즐비하였다오.
이에 왜적은 전주 침공의 야욕을 버렸으니
스스로 목숨을 자처한 야망의 종이 울렸도다.
바다의 장군은 이순신이요, 육지의 장군은 황진이라.
죽어서도 죽지 않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구국의 명장 황진장군
조선의 심장으로 불타올라
대한의 정신, 돋아나는 봄빛으로 태극기 높이 솟아오르도다.
조선의 종소리 무관의 가슴으로 뜨겁게 피워 오르도다.
조선의 종소리 대한의 이름으로 뜨겁게 피워 오르도다.
바다의 장군은 이순신이요, 육지의 장군은 황진이라.
황진장군
권율장군은 황진장군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의 바다를 구한 자는 이순신이요, 육지의 이순신은 황진이라.’
황진장군(1550~1593)은 남원출생으로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호는 아술당(蛾術堂)으로 조선 초 명재상인 황희의 5대손이다. 1572년 무과에 급제하여 출사를 하였으며, 1590년 임진왜란 직전 일본의 동태를 살피러 파견된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그는 이 방문에서 전쟁의 징후를 감지하고 무예를 연마하며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1592년 동복현감(현 전남화순)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였고, 전라도관찰사 이광의 휘하에서 용인전투에 참전하였으나 지휘관인 이광 등의 무능으로 대패하였다. 후에 이 전투를 경험으로 진안, 안덕원 등지에서 왜군을 격파하여 큰 공을 세운다. 연이어 이치(梨峙)전투에서 광주목사 권율과 더불어 참전하여 총상을 입었음에도 분전하여 왜군을 격파하였으며, 이 공로로 익산군수 겸 충청도 조방장으로 승진한다.
1593년 2월 전라병사 선거이의 휘하에서 수원에서 왜와 전투를 벌였고, 3월에 충청도 병마사로 승진하였으며,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분전하던 중 불시에 당한 왜군의 저격으로 전사한다.
한편 황진 장군의 전사소식을 접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황진이 죽었으니, 나랏일이 어긋나게 됐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처럼 황진 장군의 공훈과 영웅담을 보면 조선 역사상 육군의 장수로서 최고의 용장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