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의 <김일성이 죽던 해>를 읽고
사랑 이야기다. 손 바느질로 안감과 겉감을 댄 쫀쫀한 누비 옷 같은 사랑 이야기다. 채 발화하지 못하고 있는 사랑 이야기가 겉감이다. 딸과 엄마, 아니 딸과 엄마이기 이전에 작가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 “해원”과, 그 꿈을 일찌감치 박탈 당한 한 여성, “순이”의 사랑이다.
해원은 “남들이 클리셰라고 부르는 모녀상”을 부러워한다 (366). 그녀, 엄마가 “무람 없이” 자신의 생활에 틈입하기를, 그녀와의 사이에 “필터링” 없는 “분노와 역정, 유치한 언쟁, 연민이며 사랑 따위”의 “애절하고 끈적이는 것” 넘치기를 바란다 (363 & 373). 하지만 엄마는 딸에게 다 내어주지 않는다. 엄마는 자기 언어를 갖게 된 딸이 부럽기도,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본인의 고유한 욕망을 딸에게 다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의 말에는 딸이 다 이해하지 못할 행간이 넓다. 닿지 못하는 치기와 미움과 애정 때문에 딸은 엄마가 원망스럽고, 그래서 고독하고 “무력감”을 느낀다 (380).
그 무력감의 본질은 아마도 불안일 것이다. 늘 “실패하는” 소설가의 숙명을 깨닫아 버린 딸은, 그 불안을 채워줄 대상이 엄마이길 바랬을 것이다. 자신과 분리되지 않은 채 상상계에 남아 있는 엄마. 그러나 엄마의 욕망은 딸이 아니다. 엄마는 글쓰기라는 은밀하되 폭발적인 사랑의 행위를 알아버렸다. 실패한 꿈이기에 더 애틋한.
둘 사이에 놓여있는 행간은 그러나 단절이 아니다. 글쓰기라는 동일한 욕망을 가진 두 주체에게 주어진 사랑의 가능성이며, 시가 탄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질식하지 않은 상상계를 부활시킬 가능성이 둘 사이에 남아 있다. 그 가능성은 낡은 다이어리에 간직되어 있던 엄마의 욕망을 해원이 알아차리는 순간 떠오른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라는 제목을 단, “김일성이 죽던 해”로 시작되는 엄마의 이야기.
소설의 안감인 그 이야기는 꿈을 강제로 유기 당한 세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그들은 “소데우라” 안감을 일일이 손바느질 하느라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는 봉제 공장에서 일한다. 여공에게 가당치 않은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던” 상희와, 상희 덕분에 이제 막 “불온한” 욕망을 품게 된 문덕과 순이 (순이는 해원이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 엄마의 이름이다). 세 여성은 생리휴가 대신 얻어낸 공장 작은 휴게실에서 낡은 알라딘 286 피시를 통해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답답해서 참지 못하는 이야기” (384)들을 쏟아 내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쓰는 사람이 되어주고 읽는 사람이 되어 주자, “잘려 나가고 감추어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시가 되기 시작한다. “띠 라라 – 치지직”하며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스스로 만든 그들의 이름 (아이디)을 알고, 그들의 부름에 응답하여 문을 열어주는 세상이.
세 여자의 불온하고 은밀한, 그러나 찬란하고 광활한 그 세상은 열림과 동시에 닫혀 버린다. 상희는 반강제로 공장을 떠나고, 순이도 공장을 그만 둔다. 순이의 세상이 닫힌 그 자리를 통해 해원이 세상에 나오고, 글쓰기에 대한 순이의 두려움과 불안은 육아로 전이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육아는 순이를 다시 글쓰기로 불러들인다. 육아에 대한 자문을 구하려 다시 접속한 피시에서 순이는 상희의 글을 발견한다. “문덕 그리고 순이에게” 로 시작되는 글. 용기도 믿음도 모조리 소진되어 버린 것 같았던 순이에게 “여린 살을 뚫고 올라온 작고 흰” 아이의 젖니 같은 의지가 다시 생긴다. 그 의지는 그대로 남아 순이의 고유한 욕망이 된다. 순이는 엄마로서가 아니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되어 해원의 글에 답글을 남긴다. “작가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써주세요.” 엄마와 딸은 그렇게 글 쓰는 여성으로 만난다.
순이와 해원의 이야기가 어쩐지 내 어머니와 내 이야기를 떠올린다. 언젠간 풀어내야 할텐데하다가 이번에도 덮는다. 그래서 다른 후기. 어쩌면 소설과 별로 상관 없는.
글쓰기와 나의 관계도 나이가 들어 간다. 어렸던 날에는 글 쓰는 나의 자아가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섹시하게 느껴지고, 또 그렇게 보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내게도 눈부신 재능이 있기를 바랬고, 바램이 깊다 보니 믿었던 때도 있었다. 누군가 내 글을 칭찬하면 으쓱해져, 숨겨진 내 모습을 알아봐 준 게 아닐까 마치 비밀을 공유하기라도 한 것처럼 은근히 유대감을 느끼기도 했다. 더 나이 들어, 내가 가진 것이 눈부신 어떤 것이 아니라 그저 근근한 재질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던 순간들이 왔다. 이중언어로 생활을 하게 되자 그나마 근근한 재능도 위태로워져서 도통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모국어의 감각을 잃어간다는 것이 마치 고향을 영영 잃어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억울하고 분하기도 했다. 외국에 나와 이중 언어로 생활하지 않았다면, 모국어에 더 깊게 뿌리를 대고 더 집요하게 파고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쉽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그 글 쓰는 자아가 자존심을 버렸다. 여전히 글쓰기는 나를 설레게 하고 살아있게 하지만, 이제 나는 글쓰기를 통해 화려하게 보이고 싶지 않고,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내 것이 아닌 어떤 것을 보여주기 싫다. 글쓰기는 이전 만큼 나를 외롭게 하거나 미치게 하지는 않지만, 같이 늙어 가는 연인이 되었다. 무너지던 순간에 언제나 돌아갈 수 있었고, 쉴 수 있었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 올 수 있게 해주었다. 고맙다. 늘 새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맙고, 늘 실패하게 해주어서 더 고맙다.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되어 주어 고맙고, 여전히 “몸에 열이 오르게 해주어” 고맙다. 글 쓰는 중년의 자아는 매력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근기는 남은 것 같다. 그리고 좀 겸손해진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내 글 고쳐주고 손 봐주는 것이 싫지 않다. 그런 과정을 거쳐 조금 더 좋은 언어를 찾아 가는 것이 좋다.
첫댓글 조민아님 대신 올렸습니다
웬만하면 넵, 하고 바로 올릴 수 있는데... 하필 그날 저녁, 다음날 하루종일. 계속 정신이 없었거든요.
정명수님 카페에서도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