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인월중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생활을 하며,
남원하늘중학교에 순회수업을 나갔었다.
두번째 수업시간으로 기억이 된다.
머리를 묻고 자는 경우가 많던 남학생을 쓰다듬어 주었다.
내 손길을 "일어나라"는 뜻으로 알았는지,
고개를 들고선 물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갑작스런 질문에, 그리고 정리되어 있지 못했던 터라,
"... 그래,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찾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궁색한(?) 하지만 사실인(?) 대답을 했었다.
어제, 오늘, 드는 생각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책임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공부한다는 것... 무엇을 배운다는 건 '알기' 위한 것이다.
알아서 무얼 하려고?
'나'를 아는 것에서 시작해서... '세상'을 아는 것, 그것을 '지식'이라 부른다.
지식은 쌓이는 것이고,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터진다.'
각각의 '경계'가 터져서... '하나'로 엮이게 된다.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생긴다'... 이게 중요한 것 같다. 새로 나온다...
다시 말해, '지식'과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같지도 않은
좋다, 나쁘다. 낫다, 못하다 등의 평가를 할 수 없는
'자기' 식 대로의 체계가 말 그대로 '생겨나는' 것, '지혜'다.
다른 말로... '정체성'이지 않을까...?
다른 말로... '자기 눈'을 가지는 게 아닐까...?
이렇게 보면... '사랑'이 맞다 싶다!
그래... '사랑'하기 위해서 '공부'한다 치자!
다음은 뭘까...?
자기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건
자기 관점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행위'한다는 것
'실천'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것이 속으로 표현된 '의지'의 수준이든, 진짜 밖으로 표현된 '행위'의 수준이든 말이다.
말을 좀 건너뛰고, 근사하게 바꿔보면... 지-행 합일이다!
그렇다면... 다시 건너뛰고, 근사하게 바꿔보면...
그건 자기 '앎(지식)'에 대한 '실천'으로서의 '책임'이지 않을까...?
앞의 것을 '자아' 정체성이라 한다면, 뒤의 것은 '사회'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책임지기 위해서... 공부한다!
오늘의 단상이다.
첫댓글 나에게 질문을 했던 그 친구에게 뒤늦은 답변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