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 한 병
-윤동재
산수유가 꽃을 노랗게 달고 봄이다! 하고 외칠 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처음 맞는 추석 차례상 준비를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네
그래 충남 논산시 노성면 명재 윤증의 집을 찾아
그에게 여쭈어보기로 했네
그의 아버지 윤선거는
충청지방 호서 사림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호서 지역은 예론의 정통 학맥이 줄기를 이룬 곳*이니
그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예법에 대해
제대로 가르침을 받았을 것 아닌가?
추석을 한 달 앞두고 그를 찾아가서 인사했네
그리곤 대뜸 여쭈어보았네
추석 차례상은 어떻게 차려야 하나요?
그는 차례란 차를 올리는 예이니
차 한 잔 올리면 되지 했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 했네
예법에 정통한 그의 말이니 따라야겠다고 했네
지난 추석 나는 아버지의 차례상에다
아버지가 박카스를 가장 좋아하셨으니
박카스가 차와 다름없다 하고
박카스 한 병만 차례상에 올리려고 했네
집사람이 펄쩍 뛰며 절대 안 된다고 했네
차례상 앞에서 볼썽사납게 싸울 수가 없어
집사람이 정성을 다해 준비한 것에다
박카스 한 병도 같이 올렸네
우리 식구가 서울에서 내려가면
멀리서 오느라 힘들었다고 하며
식구마다 박카스 한 병 주며 어서 마시라던 아버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박카스 한 병 마시곤
그 힘으로 아흔까지 사셨네
다음 추석 차례상에도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신
박카스 한 병 꼭 함께 올리려고 하네
*조동일 · 허균 · 이은숙, <<충남문화 찾아가기>>(푸른사상, 2020), 9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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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 윤증 고택 정면으로 보이는 집이 이은시사 편액이 걸려 있는 사랑채
명재 윤증 고택 청백전가
명재 윤증 고택
명재 윤증 고택
첫댓글 고인이 집에 와서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니 펑소에 잘 자시던 것들 더 차려야 하리라.
예법에만 끄달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하고 재미있고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