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9
지혜 정선, 민중들의 지혜가 담긴 떠내려간 도담삼봉과 벽절이야기
<옛이야기에 담긴 재미와 교훈>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야.”
우린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화롯가에서 추위를 피하며, 듣던 옛이야기는 우리를 슬기롭게 자라게 했지요. 재미와 교훈이 담긴 옛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의 의견도 말했습니다.
“나라면 아기를 죽이지 않을 거야.”
아기장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의 반응이었지요. 이렇게 옛이야기를 통해 자기의 생각을 내보이는 발표력도 길렀지요. 물론 옛이야기는 재미만 있지 않아요. 옛이야기 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언제나 담겨 있답니다. 우리는 이를 빗대어 말한다고 합니다. 물론 아무런 의도 없이 그냥 이야기를 옮기기도 해요. 그래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나름대로 재미도 얻고 교훈도 얻습니다. 모두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가끔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하게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해 내지는 곡해가 있기도 합니다.
정선에는 옛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부모님과 삼촌으로부터 긴긴 겨울밤에는 화롯가에서 감자를 구우며, 여름에는 마당에다 멍석을 깔고 누워 별을 세며, 귀신 이야기며 도깨비 이야기며 아기장수 이야기 등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게 들렸습니다.
<떠내려간 산과 날아간 절>
오늘은 정선에서 이야기되던 떠내려간 산과 날아간 절에 대한 옛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볼까요. 정선의 향사(1981)에는 <삼봉산이 떠내려가 생긴 도담삼봉>과 <여주로 옮긴 용탄 벽절>이라는 옛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어보면 참 황당무계하지요. 원래 설화는 시공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많으니, 그리 황당무계할 사연도 아닙니다. 그래도 산이 물에 떠내려가고, 절이 날아갔다고 합니다. 먼저 홍수에 떠내려간 삼봉산 이야기를 볼까요.
옛날 임진왜란이 지나고 난 후 을사년에 대홍수가 났습니다. 그때 정선군 정선읍 봉양7리 덕거리에 있던 세 봉우리의 산이 갑자기 사라졌지요. 그 산에는 고을 향교가 있어 성현을 모시고 아이들이 성현을 닮고자 공부하였고, 산 밑으로는 조양강이 유유히 흘러 경관도 빼어났습니다. 홍수에 삼봉산을 잃어버린 정선사람들은 낙심을 했습니다. 그때 다섯 명의 장정을 뽑아 삼봉산 찾기에 나섰습니다. 삼봉산은 물길을 타고 가다가 단양까지 가서 도담 강 가운데 멈췄습니다. 이를 본 장정들은 매년 단양군 매포면 도담에 가서 산세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에는 단양에서 산세를 낼 돈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정선과 단양사람들은 시비가 붙었지요. 그때 5살 된 아이가 나타나서 이제는 산세를 낼 수 없으니 이 산을 가져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산세를 받으러 갔던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못 했고요. 다시는 산세를 받으러 가지 못했답니다.
어때요. 이야기가 정말 어이없지요. 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여주로 옮긴 용탄 벽절>을 보시면 아마도 입을 다물지 못할 겁니다. 홍수에 떠내려간 도담의 삼봉보다 더 어이없거든요.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정선읍 용탄리에 벽절이라 부르는 사찰이 있었지요. 지금도 절이 있던 장소에는 탑이 있습니다. 이 절에는 두세 명의 스님이 있었어요. 어느 날 밤이었어요. 사찰 주변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히 여긴 노승은 울음소리가 나는 장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나이 스무 살 정도 된 여인이 강물에 막 뛰어들려는 찰나였어요. 노승은 얼른 여인을 말렸습니다. 여인은 청상과부가 된 자신을 탓하며 남편을 따라 죽으려는 것이었지요. 노승은 부인의 죽음을 만류하며, 먼저 간 남편의 명복을 빌어줌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이에 여인은 노승의 만류를 받아들여서 절에서 함께 머물며 남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산중에 오래 머물러 있게 되자, 여인은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으며, 노승도 마음이 동해서 서로 정을 통하는 사이가 되었지요. 이 소문이 마을로 퍼졌습니다. 그러자 의분이 넘치는 마을의 젊은이들이 노승과 여인을 징벌하겠다고 절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절은 간데없고 석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어요. 이 절은 그때 경기도 여주 벽절로 가 있었습니다. 이를 안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여주 벽절로 가서 세금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공간이동을 한 벽절은 여주의 신륵사라는 절입니다. 정선 용탄리 절탑은 2023년 3월 3일에 국가문화유산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었습니다.
<가렴주구가 없는 살만한 세상>
이런 옛이야기를 부래설화(浮來說話)라고 합니다. 물에 떠내려가거나 날아가거나 해서 생긴 산이나 절이나 섬 등이 등장합니다. 부래산에는 도담삼봉처럼 설악산의 울산바위, 홍천의 팔봉산, 춘천의 고산, 화천의 딴산 등이 있습니다. 부래사는 정선의 벽절처럼 화천에서 날아간 한계사 등이 있지요. 무려 전국에 걸쳐 90여 편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 이야기는 문화전파의 경로, 신성의 세속화 과정 등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잘 보면, 주인공이 주변의 수탈(收奪)이나 핍박(逼迫)을 피하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홍수에 떠내려간 도담 삼봉 이야기는 가렴주구를 일삼는 곧,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탐관오리의 횡포를 해결하는 이야기이고요. 정선의 벽절이 여주로 옮겨간 사연은 유자(儒者)들이 불교를 탄압할 때 구실로 삼았던 스님의 부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설화에서는 빈대가 많아서 절이 문을 닫았다고도 합니다. 빈대는 불교 탄압을 일삼는 무리를 일컫는 비유이지요. 오죽하면 홍수에 떠내려갔거나 공간이동을 한 장소까지 가서 억지로 세금을 받으려고 했을까요. 도담 삼봉 이야기에 향교가 나오고, 벽절 이야기에 의분이 넘치는 젊은이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일종의 비유이며 암시라 할 수 있지요. 향교는 성현을 모시고 공부하는 장소가 아닌 가렴주구를 일삼던 탐관오리를 빗댄 단어이고, 의분이 넘치는 젊은이는 불교 탄압을 하던 유생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뜻밖의 상황입니다. 다섯 살 아이의 지혜로 해결하고, 공간이동을 통해서 해결합니다. 전혀 뜻밖의 해결을 얻게 됩니다. 다섯 살 아이가 나서서 세금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산을 원래대로 옮겨 달라고 하자, 아무런 말도 못하고 물러난 사실은 예전처럼 가렴주구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항거였지요. 여기서 아이는 민중들이 꿈꾸던 사회를 만들 아기장수였습니다. 비리와 불합리를 없앨 해결사였다고나 할까요. 묵묵히 일하고 말 잘 듣던 민중이 갑자기 저항한 것입니다. 정선 용탄에서 여주로 옮긴 벽절까지 찾아가 세금을 거둔 사실은 유생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불교를 탄압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면서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를 죽이거나 없애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대한 일침이지요. 두 이야기에서 보면 정선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소원을 말하지 않고, 옛이야기를 통해서 넌지시 상대를 깨우치는 멋진 지혜를 가졌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