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15. 응급실에 가다.
벌써 열흘 째 쉬지 않고 비가 내린다. 아니 매일 밤낮을 억수로 퍼붓는다.
아무리 우기라지만 이건 여기서도 기상이변이란다.
어학연수를 하겠다고 어린 손자와 친구가 온지 벌써 6주가 지났다.
그동안 매일 두 녀석이 한 방에서 잘 자더니 베개를 들고 할머니를 찾는다. 아프다는 것이다. 머리가 많이 뜨겁다.
할 수 없이 긴장하며 손자는 내가 데리고 자고 친구녀석은 남편이 곁에서 자기로 했다.
밤이 되자 아이가 점점 더 열이 심하더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눈이 너무 아프다며 드디어 울기 시작한다.
더럭 겁이 난다. 병원을 데려가야 할텐데 밖은 너무 세찬 비가 쏟아진다.
얼음물에 수건을 적셔 연신 아이를 닦아주다가 결국 남편이 운전을 하고 그 사나운 빗속에 응급실을 찾아나선다. 마치 전설의 고향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다.
제법 큰 병원인데 아픈 아이를 세우고 저울 추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몸무게를 잰다.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쑤셔넣고 기다렸다가 해열제를 먹이고, 소변을 받아서 검사를 한다.
얼마 후 약 처방을 받아서 병원을 나서는데 여전히 장대비는 멎을 기미가 없다.
Mercury Drug에 들려 처방전을 보이고 약을 샀다. 집에 와서 약을 먹이려니 아! 얼마나 난감한지! 처방 한 가지 예를들면 이렇다.
Paracetamo/250mg/5ml 6ml,water Give 8ml/ every 4 hours for Temp >37.8` c
이런 처방이 4가지나 된다. Paraceto 5ml를 60ml의 물에 타서 8ml씩 체온이 37.8도 이하일 때 매 4 시간마다 먹이고 ... 이런 식이다.
38.3도 이상일 때 먹이는 또 다른 해열 처방도 있다.
4가지나 되는 약 처방을 일일이 만들어 놓고 매번 다른 약의 시간을 정신차려 먹여야 한다.
아! 정말 한국의 처방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편리한가?
약국에서 체온계도 사야한다. 제일 좋은 것으로 달라니까 디지털을 주겠다고 한다.
엄청 좋은 건 줄 알았더니 겨드랑이에 끼는 것이다. 자동으로 숫자가 나온다.
아이는 열이 펄펄 끓는데 삐이~ 소리가 나더니 숫자는 36도란다. 어이가 없어서 방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그래도 밤낮으로 꼬박 곁을 지키며 정성껏 시간 맞춰 약을 먹인 탓에 사흘째 되는 날, 아이가 생기를 찾은 것 같다.
어학원에 혼자서 며칠을 다녀온 친구가 더 기뻐한다.
이제 두 주일 남았다.
아이들도 나도 남은 기간이 무사히 어서 지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진다.
첫댓글 여러가지 어려움이 겹쳐
또 한번 고생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