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23-26 / 포기할 줄 아는 믿음
어느 전도사가 시골교회로 부임하여 기도회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교인이 할머니 한 분뿐임을 알았다. 너무나 실망하여 기도하는 것도 포기하려고 하는 데 할머니가 말했다. <전도사님! 우리 교인은 한 명이 아닙니다. 다섯명입니다.> <할머니 지금 할머니 한 분밖에 교인이 없잖아요?> <전도사님. 아니예요. 우리 교인은 5인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그리고 나, 그리고 전도사님이지요. 기도하십시다> 이 말에 전도사님이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여 큰 교회를 이루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인물은 바로 출애굽의 영웅 모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개인의 유익을 뛰어넘어 민족공동체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인생의 의미 있는 선택을 했던 믿음의 영웅 모세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34:10)을 보면,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이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는 하나님이 알아주신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이 알아주실 만큼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일까요?
첫째, 모세의 믿음은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 아는 믿음입니다. (히 11:24~25)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믿음으로 모세는 다 자란 후에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잠시 죄의 쾌락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24절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가 ‘거절하고’라는 단어라면, 그 다음에 나오는 25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더 좋아하고’라는 단어입니다.
결국 모세가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집트 제 18대 왕 투스모스 1세에 의해 내려진 유아학살 명령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최선을 다한 부모에 의해 갈대상자에 담겨 나일강 갈대숲에 버려졌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때마침 강가로 목욕을 나온 이집트 공주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모성애가 발동한 공주는 히브리인의 아이를 양자로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됩니다.
그러나 당시 처녀였던 공주는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는데, 당시 갈대숲에 숨어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누구일까요?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어머니 요게벳을 유모로 소개했고, 어머니 요게벳은 그 시대에 가장 안전한 장소인 바로의 궁에서 자기 아들 모세를 친히 돌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 요게벳은 왕궁에서 모세가 젖을 떼고 이집트의 왕자로서 이교적인 교육을 받기 전까지 돌보면서 그 무엇보다도 히브리 민족에 대한 정체성과 여호와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자라서 히브리 민족 구원의 사명을 위해서 이집트의 왕자라는 안락함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더 좋은 것, 더 가치 있는 것, 더 위대한 하나님의 소명을 선택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신이 이집트의 왕자로서 누리고 있던 모든 권리와 편안함과 안락함과 풍요함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가운데도 언젠가는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보다 더 좋은 선택, 보다 나은 선택을 위하여,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포기하고 거절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예를 거절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당시 모세의 양어머니는 파라오 왕의 무남독녀로서 어쩌면 모세가 왕위를 이어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그것을 거절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볼 때 그동안 자신을 보호해주고 길러준 공주가 모세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겠습니까? 낳은 정도 있지만 사실 기른 정도 무시 못 하는 겁니다.
게다가 비천한 히브리 노예 신분인 자신을 왕자로 양육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양어머니인 공주가 소중하다고 느낄수록, 공주를 만나게 하시고, 그 아들로 자라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 이제는 공주의 품을 떠날 때가 된 것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물론 사람과의 관계와 권력과 명예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내가 사람이나 물질이나 성공에 집착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의 도를 가르치면서,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부모, 처자, 형제자매,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애정의 대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느낄수록, 이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더 소중한 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보다 선물 그 자체에 대한 사랑에 빠져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게 된다면 그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시험하셨던 이유였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이 아닌 이집트 공주라는 존재가, 혹은 공주의 아들로서 자기에게도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왕권과 명예와 안락함이 그의 우상이 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주의 아들이라는 권리와 명예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사랑하는 사람과 명예를 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해서 포기하고 거절해야 할 우상은 무엇입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을 때 입구가 좁은 병에 사탕을 넣어서 원숭이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원숭이가 지나가다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사탕 병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사탕을 꺼내기 위해서 손을 넣어 사탕을 움켜쥡니다. 그러나 병 입구가 좁기 때문에 빈손을 넣을 수는 있어도 사탕을 움켜 쥔 채로는 결코 손을 꺼낼 수는 없습니다.
원숭이가 손을 빼려면 사탕을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탕에 대한 욕심 때문에 손을 빼지 않고 있다가 원숭이는 사탕을 움켜쥔 채 사람들에게 잡힌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어리석은 원숭이처럼 사랑하는 그 무엇을 움켜잡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더 좋은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손에서 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행복을 빼앗으려고 거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유익을 포기하고 손을 놓을 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더욱 가치 있고 더욱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은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 아는 것입니다.
선택할 것을 선택할 줄 아는 믿음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 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선택의 상급
(사 55:2) 어찌하여 너희는 진정한 음식이 못 되는 것을 위해 돈을 쓰느냐? 어찌하여 만족시켜 주지도 못할 것을 위해 애쓰느냐?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러면 너희가 영혼을 살찌우는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사 55:3) 내게 와서 귀를 기울여라.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며, 다윗에게 약속한 확실한 복을 너희에게 주겠다.
모세처럼 이 세상의 잠깐뿐인 죄악의 즐거움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며,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선택해야 할 가치 있는 일들은 반드시 선택하는 진정으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