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교수 김중복
저는 원자물리학 즉 레이저를 이용하여 중성원자에 관한 분광 연구를 오랫동안 수행해 오고 있었는데 7년 전 즈음에 중이온 가속기 이용자 그룹 중 하나인 동축 레이저 분광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레이저 분광학은 원자나 분자의 최외각 전자들의 에너지 구조를 실험적으로 측정하고 활용하는 영역입니다. 전자의 에너지 상태는 핵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원자마다 특정 파장의 빛과 공명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소 원자의 라이만, 발머, 파센 계열의 분광스펙트럼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요즈음 가로등에서 많이 사용되는 Na등은 589nm 근처의 빛을 방출하기 때문에 좀 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저는 원자의 에너지 준위들이 핵의 모양이나 핵자 수에 즉 동위원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동축 레이저 분광에 대해 이해하고 나서는 완전히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짧은 반감기를 가지고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는 원자를 만들자마자 분광 하여야 하는 것은 예측할 수 있었지만, 핵의 모양, 크기 등 핵물리학에서 꼭 알아야 하는 데이터들을 정밀하게 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핵의 모양이 기껏해야 구형이거나 럭비 볼처럼 약간 타원체일 거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속이 빈 핵, 3축 대칭형 핵, 두 모양이 동시에 존재하는 핵 등 실로 상상하지 못할 결과들을 접하게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동축 레이저 분광 실험 장치(CLaSsy)가 작동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였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기초 물리학자로서 과학 분야에 중이온가속기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중이온 가속기는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주요 과학적 활용 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핵물리학: 우주의 기원 탐구
□ 새로운 원소 및 동위원소 합성: 중이온 빔을 무거운 표적에 충돌시켜 지금까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원소나 불안정한 동위원소를 합성하고 그 성질을 연구합니다. 이는 우주 초기에 원소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핵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아주 무거운 초우라늄 원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들의 붕괴 방식을 분석하는 연구가 진행됩니다.
□ 희귀 동위원소 빔을 이용한 연구: 불안정한 희귀 동위원소 빔을 생성하여 핵의 구조와 반응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연구합니다. 이를 통해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 초신성 폭발과 같은 우주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 고밀도 핵 물질 연구: 중이온 충돌 시 발생하는 극도로 높은 에너지 밀도와 온도 조건은 초기 우주 상태나 중성자별 내부와 유사한 환경을 만듭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핵 물질이 어떤 상전이를 겪고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연구하여 우주의 근본적인 이해를 넓힐 수 있습니다.
2. 원자 및 분자 물리학: 물질의 기본 상호작용 이해
□ 이온-원자/분자 충돌 연구: 고에너지 중이온과 원자 또는 분자를 충돌시켜 전이 과정, 이온화, 여기 등 다양한 반응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분석합니다. 이는 물질의 기본적인 상호작용 방식을 이해하고, 플라즈마 물리학, 방사선 화학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 기여합니다.
□ 특이한 원자 상태 연구: 높은 전하 상태를 갖는 중이온을 생성하여 일반적인 원자와는 다른 독특한 전자 구조와 성질을 연구합니다. 이는 새로운 물리 현상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핵 시계 개발
핵 시계는 원자의 핵 내부 에너지 준위 변화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차세대 시계입니다. 현재 가장 정밀한 시계인 원자시계가 원자 외부에 있는 전자의 에너지 준위 변화를 이용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핵 시계는 이론적으로 원자시계보다 훨씬 높은 정밀도를 가질 수 있어 과학 기술 분야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최근에 토륨-229 핵종을 이용한 핵 시계 개발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토륨-229 핵의 특정 에너지 준위 전이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이를 활용하여 시계의 핵심 요소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고체 결정 내에 토륨 핵을 삽입하고 정밀한 자외선 레이저와 광 주파수 빗을 이용하여 핵 전이 주파수를 측정하고 제어하는 데 성공하는 등 중요한 성과들이 보고되었습니다.
□ 물리 상수 정밀 측정 및 변화 연구: 빛의 속도, 미세 구조 상수 등 기본 물리 상수의 시간적 변화나 공간적 분포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새로운 물리 이론의 검증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 중력 및 상대성 이론 연구: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예측하는 시간 지연 효과 등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하고 검증할 수 있습니다.
□ 암흑 물질 및 새로운 물리 현상 탐색: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은 암흑 물질이나 새로운 상호작용을 탐색하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 초정밀 GPS 및 항법 시스템: 현재 GPS보다 훨씬 정확한 위치 정보와 항법 시스템을 구축하여 자율 주행, 드론 제어 등 미래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 고정밀 시간 동기화: 통신 네트워크, 금융 거래 시스템 등에서 더욱 정밀한 시간 동기화를 가능하게 하여 시스템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 지구 물리 및 우주 탐사: 지구의 중력장 변화, 지각 변동 등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심우주 탐사 시 정확한 시간 기준을 제공하여 탐사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시간 측정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들로 3번 이상의 노벨 물리학상이 수여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초적인 물리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연구는 획기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을 수반한다는 측면에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중이온 가속기와 같이 획기적인 기술의 산물은 앞으로 기초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래 사진을 필자가 사용 중인 CLaSsy(CLS) 장치이다. CLS 장치는 평소에는 안정동위원소를 연구하기 위하여 off-line source가 있고, 방사성 동위원소 연구는 확보된 beam-time 시간 동안만 on-line source에서 제공될 때 연구할 수 있게 되어있고, 뒤쪽에 laser room에서 레이저가 발생해 CLS로 보내어진다.
<필자 약력>
한국교원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사단법인 중이온가속기 이용자협회 회장
전 한국현장과학교육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