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3가지 조건
전문분야에서 성공이란 무엇일까? 어떤 전문적인 직업 분야에서 성공이란 반드시 두각들 드러내거나, 일등을 하거나 혹은 남들보다 뛰어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이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그리고 스스로 만족할만 하게 한 분야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는 그것에 있다.
예를 들어 작가나 화가라고 한다면 굳이 특별한 상을 받거나,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유명하거나 혹은 자기 분야에서 남들보다 탁월해야만 할 필요가 없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좋은 글을 쓰거나 자신만의 좋은 그림을 그리면서 독자들에게 기쁨이나 작은 감동을 혹은 삶의 지혜를 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스스로 자기 삶에 대해 만족할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한 화가이고 성공한 작가일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자기 길을 가다보면 언젠가 상도 받을 수도 있고, 언론에서 자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수도 있고 자연히 세간에 자신의 이름도 알려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이 스스로 훌륭한 작가이거나 훌륭한 화가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성공한 전문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문분에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통되는 조건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능 / 열정 / 성실성(겸손함)
전문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능이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의지와 노력으로 음악가는 될 수야 있겠지만, 시간과 에너지와 인생을 투자한 것에 비하면 분명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 요행이란 없기 때문이다. 음악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그 과정에 있어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아마도 재능있는 다른 사람보다 열배의 노력을 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공이 반드시 남들보다 나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을 다하고, 스스로 만족한 음악가의 삶을 사는 것에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음악적 재능이 있어야만 성공한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재능을 대신해 주는 것, 그것은 열정이다.
비록 재능이 없다고 해도, 그 어떤 이유로 화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열망이 참으로 크다고 한다면, 보통의 미대학생보다 두배 세배의 노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재능이 있는 사람도 게으르다면, 재능은 없지만 열정적인 사람을 능가할 수는 없다. 물론 재능도 있고, 열정이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부족한 재능은 얼마든지 열정으로 메꿀 수가 있다. 그래서 “잘 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 보다는 사랑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능도 열정도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화가가 되고자 한다고 열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에 대한 열정이란 의지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거나, 그것을 행할 때의 맛(기쁨)을 알 수 있을 때 혹은 그것에 대한 어떤 사명감을 가지게 될 때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열정이란 재능에서부터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재능도 없고, 열정도 없을 때, 유일한 한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성공적으로 그 분야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선배나 스승을 찾는 일이다. 소위 ‘멘토’라고 할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비록 이해는 잘 안되겠지만 그가 안내하는 대로, 그가 일러주고 충고하는 대로 충실히 따라가 보는 것이다. 이것이 곧 겸손이고 성실함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속는다 셈치고 그가 시키는 것, 그가 충고하는 것은 무조건 성실하게 이행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해도 생기고, 맛도 알게 되면서 열정도 생기게 된다. 열정을 가지고 추진하다보면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습관은 제2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만일 재능도 열정도 없는 사람이 ‘겸손함’마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자신이 바라는 어떤 수준의 전문적인 삶, 스스로 만족하는 충만한 삶에는 결코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빨리 자신의 적성에 맞는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만일 계속 그 전문적인 일을 고집하게 되면 결국 그는 ‘처세술’을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속임수’ ‘거짓말’ ‘허세’ ‘이미지 메이킹’ '인맥' ‘언론플레이’ 등을 활용하여, 요행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이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이 텅 비어 있다는 것으로 인해 이러한 요행은 결코 오래갈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구도 거짓으로 성공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기억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속담이 있듯이 언젠가는 자신의 위선이나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정치적인 분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건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세상은 구조적으로는 매우 불공정하고 부조리하지만, 그럼에도 존재론적으로는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재능이 없어도 누구나 ‘열정’을 가질 수는 있고, 열정마저 없다면 최소한 ‘성실함(겸손함)’을 가질 수는 있기 때문이다. 성실함이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존재이다. 누구나가 성실함으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존재론적인 평등이다. 예술가나 작가, 혹은 학자나 성직자 등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있거나, 부모의 후광으로 획득할 수 있거나 혹은 거짓이나 요행으로는 결코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재능을 뒷바쳐주거나 대신 해 줄 열정과 성실함으로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 푸시킨의 시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