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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5권
●고율시(古律詩) 44수
목차
卜居鸎溪。偶書草堂閑適。兼敍兩家來往之樂。贈西隣梁閣校。
梁公見和。復用前韻。
李讐校見和。復次韻答之。
謝人惠扇
梁文家芍藥盛開。梁君請詩爲賦之。
北山雜題
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三百韻詩
夢玉甁
次韻東皐子還古雪中見訪
悼小女
呈內省諸郞
全履之家。大醉口唱。使履之走筆書壁。
訪養淵師。賦所蓄白鶴圖。
戱李君中敏縫裙
次韻李君見和
戱贈美人
四月十一日。與客行園中。得薔薇於叢薄間。久爲凡卉所困。生意甚微。予卽薙草封植。埋以土撑
以架。後數日見之。葉旣繁茂。花亦曄盛。於是因物有感。作長短句。以示全履之。
明日雨中。與全履之,朴還古復賞。
同劉兪兩同年訪文長老。用溫飛卿詩韻各賦。
用前韻。餞尹書記儀赴東京幕府。
次韻鄭秀才公賁賀文長老對御談論
兒三百飮酒
醉贈金君瑗
次韻文長老賦橘
野人送紅杮
又詠橘
尋山迷路
偶遊山中。書壁上。
○앵계(鶯溪)에 거처를 정한 뒤 우연히 초당(草堂)의 한적한 풍경과 두 집안이 서로 오가던 정의를
아울러 서술하여 서편 이웃에 있는 양 각교(梁閣校)에게 주다
앵계에 와 거처하니 / 鶯溪來卜宅
곡령이 마루에서 마주 보이네 / 鵠嶺正當軒
늙은 전나무는 남쪽 골목에 울창하고 / 老檜森南巷
이 마을에 늙은 전나무가 있기 때문에 이름을 회동(檜 洞)이라 하였다.(洞有老檜。故洞名爲檜。)
푸른 소나무는 조그만 담장에 덮였네 / 靑松覆小垣
정원의 네 그루 소나무가 담장에까지 뻗쳤다.(園有四株松倚墻。)
상마는 들에 가득하고 / 桑麻饒野壟
울타리는 산마을을 실감케 하네 / 籬落似山村
창문은 선궁의 탑을 마주 보고 / 窓對禪宮塔
보제사(普濟寺)를 가리킨 것이다.(普濟寺)
정각은 주점 문에 임해 있네 / 樓臨酒店門
복숭아나무 옆에 푸르른 대를 심고 / 傍桃栽翠竹
가시나무 베어내고 꽃다운 향풀을 보호한다오 / 剪棘護芳蓀
차에 도취했던 육우(陸羽)를 닮아 가고 / 漸作顚茶陸
포를 배우려던 번지(樊遲)가 되고 싶네 / 甘爲學圃樊
거나한 취흥(醉興)으로 세월을 보내고 / 沈酣消日月
광탄한 심정으로 이 세상 마치려오 / 曠坦老乾坤
무너진 벽엔 굳은 이끼 끼었고 / 壞壁頑苔合
텅빈 뜨락엔 잡초가 우거졌네 / 空庭旅草繁
어지러이 펼쳐진 천 권의 서책 속에 / 亂書千卷裡
편복으로 한 몸 의젓이 있다오 / 便腹一身尊
상자에는 가늘게 쓰인 책이 가득하고 / 篋有蠅頭字
장대에는 쇠코잠방이가 걸려 있네 / 竿懸犢鼻褌
훌륭하다 그대의 척당한 마음 / 多君心倜儻
언제나 나의 마음 끌게 하는구려 / 許我日攀援
검은 사모를 반쯤 쓰고는 / 半脫烏紗帽
백옥 잔을 자주 기울이며 / 頻斟白玉樽
담소(談笑)가 무르익다 보니 밝은 달 기울고 / 語闌明月側
바둑을 마치고 나니 푸른 산 어두워지네 / 棋罷碧山昏
약포(藥圃)에 물줄 적엔 한 우물 사용하고 / 灌藥常同井
오이 모종할 땐 전원(田園)을 함께 하려 하네 / 移瓜欲共園
문사(文詞)는 움키는 호랑이의 기세를 과시하고 / 詞場誇攫虎
금곡은 날아가는 고니의 슬픔을 노래했네 / 琴曲弄離鵾
발 밖엔 미풍이 불고 / 箔外風微颺
처마 앞에는 해가 한창 따스하네 / 簷前日正暄
꾀꼬리는 노래 소리 조절하고 / 鶯調啼柳舌
나비는 꽃 그리던 숙원을 푸누나 / 蝶雪戀花冤
그대 부디 이곳을 찾아 주게 / 來往君何憚
시끄러운 세상 원만히 피할 수 있다오 / 猶堪避世喧
[주D-001]차에……육우(陸羽) : 육우는 당(唐) 나라 사람으로 자(字)는 홍점(鴻漸). 차를 매우
즐겨 《다경(茶經)》3편을 지었으며, 차를 파는 자들은 그를 높여 다신(茶神)이라
하였다.
[주D-002]포(圃)를……번지(樊遲) : 번지는 공자의 제자로 일찍이 공자에게 벼를 심는 방법과
채전[圃]을 가꾸는 방법을 물은 적이 있다. 《論語 子路》
[주D-003]편복(便腹) : 배가 두둑한 것을 말함. 후한 때 변소(邊韶)가 문학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한번은 그의 제자가 독서에 게으르다고 그를 조롱하자 그는 “내 두둑한 배는 오경(五經)
상자이다.” 하였다.
[주D-004]금곡(琴曲)은……노래했네 : 옛날에 서로 화답하는 노래 가운데 있었다는 곤계곡(鵾鷄曲).
○양공(梁公)의 화답에 다시 먼저 운(韻)으로 짓다
누가 이 누추한 곳을 찾아주랴 / 有誰過小巷
고헌을 부할 계제가 없었네 / 無分賦高軒
억센 죽순들은 벽을 뚫고 나오고 / 笋逬工穿壁
얽힌 담쟁이는 담을 호위하는 것 같네 / 蘿縈似護垣
청정(淸淨)하기는 위우동보다 더하고 / 淸於委羽洞
그윽하기는 완화촌보다 나으니 / 幽勝浣花村
반악의 삼도원이오 / 潘岳三桃苑
도잠의 오류문일세 / 陶潛五柳門
아내는 손수 금정의 물을 깃고 / 婦親金鼎水
애들은 향풀 수놓은 옷을 좋아하네 / 兒媚繡襦蓀
산에 오르던 사영운(謝靈運)을 흠모하고 / 自揖登山謝
가래나무 심던 번중(樊重)을 무시하며 / 淨欺種梓樊
몸은 현경실에 거처하지만 / 身居懸磬室
마음은 온 대지(大地)에 자유롭네 / 心坦大輿坤
꽃들은 비를 맞아 떨어지고 / 帶雨殘花落
버들개지는 바람 따라 나부끼네 / 隨風舞絮繁
앓고 나니 시상이 감소된 줄 알겠고 / 病諳詩魄減
거나하니 술의 신이 위대함을 알겠네 / 醉覺麴神尊
기꺼이 소객(騷客)의 패물 마련했으니 / 喜辦騷人佩
고리의 잠방이를 자랑치 마소 / 休誇鼓吏褌
임천(林泉)의 낙 얼마나 누리게 되려나 / 林塘能幾樂
붙잡지 못하는 세월 안타깝기만 하여라 / 歲月苦難援
궂은 밥이니 맛있는 반찬 필요없고 / 麤食忌兼味
집에는 오래된 술 남아 있다네 / 酸醅堂上樽
연기 짙으니 꾀꼬리 노래하는 나무 젖었고 / 煙濃鶯樹濕
놀 사라지니 따오기 나는 하늘 어두워지네 / 霞散鶩天昏
뒤늦게 여산(廬山) 모임에 참여하고 / 廬岳慵投社
한가히 산양 전원(田園)에 종사하누나 / 山陽只灌園
가생은 괜히 올빼미를 꺼리었고 / 賈生空忌鵩
송옥은 헛되이 곤계(鵾鷄)를 슬퍼하였네 / 宋玉謾悲鵾
조그만 정각에 봄 경치 아름답고 / 小閣宜春景
가벼운 적삼에 낮 햇살 알맞으니 / 輕衫稱晝暄
이 좋은 날 꼭 함께 술 마시어 / 良辰須共飮
꽃다운 풀 억울하게 만들지 말자오 / 芳草莫敎冤
또한 그대와 동창 아래 마주 앉아 / 更好東窓下
바둑으로 세상 풍진 잊어 보세나 / 圍棋屛俗喧
[주D-001]고헌(高軒)을……없었네 : 귀빈(貴賓)의 방문이 없었다는 뜻. 당(唐)의 이하(李賀)는
겨우 일곱 살에 문장에 능하다는 소문이 났다. 당시의 문장가였던 한유(韓愈)와 황보식
(皇甫湜)이 믿지 않고 직접 찾아가 시를 짓게 하여 시험하였더니, 이하가 즉석에서
고헌과(高軒過)라는 시를 지어 귀빈이 찾아왔다는 뜻을 읊었다. 《唐書 李賀傳》
[주D-002]위우동(委羽洞) : 절강성(浙江省) 황암현(黃巖縣)에 있는 위우산(委羽山)의 골짜기로
도가서(道家書)에서 말하는 동천(洞天)의 하나. 세상에서 선인(仙人) 유봉림(劉奉林)이
학(鶴)을 붙잡다가 깃을 떨어뜨린 곳이라 한다.
[주D-003]완화촌(浣花村) : 사천성(四川省) 성도현(成都縣) 서쪽 완화계(浣花溪)에 있는 마을로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의 고택(故宅)이 있는데 골짜기가 깊고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주D-004]반악(潘岳)의 삼도원(三桃苑) : 반악은 진(晉) 나라 사람으로 자(字)는 안인(安仁).
일찍이하양(河陽)의 원이 되어 곳곳에 복숭아를 심었다. 삼도(三桃)는 후도(候桃)ㆍ
앵도(櫻桃)ㆍ호도(胡桃)를 말하는데 그의 한거부(閑居賦)에 “삼도는 앵도와 호도의 다른
종류를 표했다.” 하였다.《晉書 潘岳傳》
[주D-005]도잠(陶潛)의 오류문(五柳門) : 도잠은 진(晉)의 고사로 자는 원량(元亮). 일찍이 오류
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어 자신을 말하였는데 여기에 “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집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는 스스로 오류선생이라 했다.” 하였다.
《晉書 陶潛傳》《陶靖節集》
[주D-006]산에 오르던 사영운(謝靈運) : 사영운은 남조(南朝) 시대 송(宋) 나라의 문장가.
산수를 좋아하여 회계(會稽)에 있을 때 언제나 나막신을 신고 산에 오르곤 하였다.
《宋書 謝靈運傳》
[주D-007]가래나무 심던 번중(樊重) : 번중은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온후한 천성에 법도가
있었다. 기물(器物)을 만들기 위하여 가래나무와 옻나무를 심으니 사람들은 모두 비웃
었으나 세월이 흐르자 그것을 이용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後漢書 樊重傳》
[주D-008]현경실(懸磬室) : 아무것도 없는 집을 가리킨다. 《국어(國語)》노어(魯語)에 “노(魯)
나라의 창고가 텅 비어서 마치 틀에 매달려 있는 경쇠와 같다.”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9]고리(鼓吏)의 잠방이 : 고리는 북을 치는 아전으로 예형(禰衡)을 가리킨다. 그는 삼국
(三國) 시대 명사였는데, 조조(曹操)가 그를 모욕 주기 위하여 고리를 삼자, 그는 여러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부모가 물려준 결백한 몸을 보여 준다면서 속옷만 걸치고 북을
치며 어양곡(漁陽曲)을 노래하였다. 《後漢書 禰衡傳》
[주D-010]뒤늦게……참여하고 : 동진(東晉) 때 고승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여산(廬山)에 결사
(結社)를 하고, 고사 도잠(陶潛)을 초대하였으나, 도잠이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하므로 혜원이 허락하자 도잠이 뒤늦게 그곳에 참여했던 것을
말한다.
[주D-011]산양(山陽) 전원(田園) : 춘추 시대의 고사(高士)인 진중자(陳仲子)가 벼슬을 마다하고
아내와 함께 산양(山陽)으로 피해 가서 남의 집 전원(田園)을 가꿔 주며 살았다 한다.
[주D-012]가생(賈生)은……꺼리었고 : 가생은 전한(前漢) 때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그는 장사왕
(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어 마음이 울적하고 지세(地勢)가 비습하여 건강도 나빴
는데 상서롭지 못하다는 올빼미마저 날아들므로 복조부(鵩鳥賦)를 지어 자위하였다.
《漢書 賈誼列傳》
[주D-013]송옥(宋玉)은……슬퍼하였네 : 송옥은 전국(戰國) 때 초(楚) 나라의 문장가로 그의
《초사(楚辭)》구변(九辨)에 “곤계(鵾鷄)가 슬피 운다.” 하였다.
○이 수교(李讐校)의 시에 다시 차운하다
세 개의 길 그윽도 한데 / 寂寞開三逕
하나의 마루 마련하였네 / 安排置一軒
한평생 그릇 씻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고 / 平生甘滌器
소은이 담 넘어 피하던 일 비웃었네 / 小隱笑踰垣
추한 종년은 모양이 만족(蠻族)과 같고 / 醜婢形如獠
못난 하인은 말에 촌티가 있네 / 癡奴語帶村
감히 정포에 살 자격 없지만 / 賢非居鄭圃
마음은 소문의 휘파람을 그리워 하네 / 思逸嘯蘇門
조그만 섬돌에는 바람이 대나무를 때리고 / 小砌風敲竹
꽃다운 두둑에는 이슬이 향풀을 적시네 / 芳畦露裛蓀
흥망은 초목과 함께 하고 / 廢興看草卉
신세는 구원(丘園)에 의지한다오 / 身世寄丘樊
북각은 비스듬히 큰 길가에 임해 있고 / 北閣斜衝道
남산은 대지(大地)를 갈라 놓았네 / 南山走裂坤
두보(杜甫)의 시에 “밑으로 들어가 두터운 땅을 갈라 놓았다.” 하였다.(杜詩云附入裂厚坤。)
우도는 꽃봉오리 막 피어나고 / 牛桃葩始綻
앵도(櫻桃)를 일명 우도라 한다.(櫻桃一名牛桃。)
귀리는 푸른 잎 무성하기 시작하네 / 鷰麥葉初繁
자신이 방종하니 사람들이 비웃고 / 任達人多笑
벼슬길 정지되니 귀신도 무시해 / 傳停鬼不尊
왕씨의 집에는 바람벽만 남았고 / 王家空有壁
위군(魏郡) 왕고(王高)는 집이 가난하여 네 귀퉁이에 벽만 있었다.(魏郡王高家貧。空有四壁。)
범씨의 아내는 오랫동안 잠방이 없었지 / 范婦久無褌
만약 옥수에 기댈 수 있다면 / 玉樹如叨倚
청송을 함께 더위잡으려 하네 / 靑松誓共援
작변을 얼른 벗어 놓고 / 急迴飛雀弁
구더기 뜬 술이나 마셔 보세나 / 同醉沸蛆樽
저녁 경치는 연기와 꽃 어지럽고 / 晩景煙花亂
봄 하늘은 안개와 비에 어두워 / 春天霧雨昏
한가한 시간엔 잠깐 평상에 졸기도 / 偸閑眠小榻
흥이 나면 꽃다운 동산을 맴돌기도 / 乘興繞芳園
골목길 버드나무에 새소리 듣고 / 巷柳聞啼鳥
정원 가 모래 위에 곤계(鵾鷄)의 춤 구경하네 / 庭沙見舞鵾
쇠를 달구던 숙야는 완고하였고 / 鍛爐頑叔夜
술만 즐기던 진훤은 늙었지만 / 嗜酒老陳暄
자귀 휘두르던 솜씨 아직도 그립고 / 尙憶揮斤手
옥을 부르짖던 억울함 공연히 남았네 / 空餘泣玉冤
그대 위해 길 쓸고 기다리노니 / 爲君方掃地
시끄러울까 혐의 말고 찾아 주게나 / 相訪莫嬚喧
[주D-001]한평생……여기고 : 천한 일을 잘 해내는 것을 말한다. 전한(前漢)의 사마상여(司馬相如)
가 집이 가난하여 아내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쇠코잠방이를 입고 시장에서 술을 팔며
그릇을 닦았다. 《漢書 司馬相如傳》
[주D-002]소은(小隱)이…… 비웃었네 : 소은은 작은 은자(隱者)로 대은(大隱)과 상대되는 말. 전국
시대의 은자였던 단간목(段干木)은 위 문후(魏文侯)의 예방을 피하기 위하여 담을 넘어
도망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맹자(孟子)는 “너무 지나치다.” 하였다.
[주D-003]정포(鄭圃) : 옛날 열자(列子)가 살던 곳으로 곧 현자(賢者)가 사는 곳을 말한다.
《열자(列子)》천서(天瑞)에 “열자가 정포에 40년 동안이나 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였다.
[주D-004]소문(蘇門)의 휘파람 : 진(晉)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하나인 완적(阮籍)은
소문산(蘇門山)에서 은자(隱者) 손등(孫登)을 만나 선술(仙術)을 물었으나 손등은 대답
하지 않고 휘파람을 길게 불었는데, 마치 난봉(鸞鳳) 소리와 같은 음향이 온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한다. 《晉書 阮籍傳》
[주D-005]범씨(范氏)의……없었지 : 범씨는 진(晉) 나라의 은자 범선(范宣)을 가리킨다. 그는
집이 무척 가난하였는데, 한번은 예장 태수(豫章太守)가 많은 비단을 보내 주었으나
하나도 받지 않았다. 태수가 두 길쯤 되는 비단을 끊어 주면서 “어찌 부인으로 하여금
속옷이 없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자 그는 그제야 웃으며 받았다.
[주D-006]옥수(玉樹) : 선목(仙木)으로 사람의 고결한 풍채를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에 “위(魏) 나라 모후(毛后)의 아우 모증(毛曾)이 하후현(夏侯玄)과 자리를 함께하자
사람들이, 마치 갈대가 옥수에 기댄 것 같다.” 하였다.
[주D-007]청송(靑松)을……하네 : 신의(信義)의 우정을 맺음을 말한다. 《문선(文選)》유준광
절교서(劉峻廣絶交書)에 “청송을 더위잡아 마음을 맹세하고 백수(白水)를 가리켜 신의
를 표한다.” 하였다.
[주D-008]작변(雀弁) : 주대(周代)의 관(冠)인데, 주작(朱雀)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다.
[주D-009]쇠를……숙야(叔夜) : 숙야는 진(晉)의 명사(名士) 혜강(嵇康)의 자(字). 그는 성미가
괴이하여 큰 버드나무 아래서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두들기기를 좋아하였다.
《晉書 嵇康傳》
[주D-010]술만……진훤(陳暄) : 진훤은 남조(南朝) 때 진(陳) 나라 사람으로 글재주가 뛰어났으나
술을 너무 좋아하여 법도가 없었다. 《南史 陳暄傳》
[주D-011]자귀……그립고 : 시문(詩文) 같은 것의 능숙한 솜씨를 비유한 말이다. 초(楚) 나라
영인(郢人)이 자기 코끝에다 파리 날개만한 흙을 바르고 장석(匠石)을 시켜 그를 깎아
내라 하자, 장석이 자귀를 휘둘러 그 흙을 완전히 깎아냈는데도 코는 아무렇지 않았다
한다.
[주D-012]옥(玉)을……남았네 : 억울한 죄에 걸림을 말한다. 전국 때 초(楚)의 변화(卞和)가 큰
옥덩이를 구하여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모두 가짜라 하여 양쪽 발을
베는 형벌을 받았었는데, 뒤에 문왕(文王) 때에야 옥으로 확인되었다.
○부채를 선사받은 데 대하여 사례하다
사귄 정의 물처럼 담담한데 / 交情淡若水
둥근 부채 서리처럼 깨끗하구나 / 團扇皎如霜
밤이 아니어도 둥근 달 언제나 보이고 / 不夜月長滿
가을이 오기 전에도 바람 절로 나네 / 先秋風自涼
그대의 마음 참으로 얼음과 같아 / 君心眞似氷
만나면 울적한 마음 모두 가시는데 / 相對洗煩鬱
다시 마음의 가을까지 보내어 / 更贈一襟秋
양손의 달을 만들어 주었네 / 留爲雙手月
○양공(梁公)의 집에 작약꽃이 한창 피었는데 이에 대한 시를 청하기에 그를 위하여 짓다
온갖 꽃 피었다 모두 져서 / 百花開了靜掃空
여러 눈에 한 점의 붉음도 없었는데 / 萬眼渾無一片紅
서편 이웃 시호(詩豪)의 집에 붉은 작약 / 西隣詩家赤芍藥
탐스럽고 선명하며 향기가 그윽해 / 活豔明冶溫香濃
짙게 붉은 꽃 겹겹으로 고운데 / 紅肌花疊爛如蒸
파란 줄기 섬약하여 감당하지 못하네 / 碧股叢低弱不勝
선경(仙境)에서 훔쳐 심으니 저녁놀 비치는 듯 / 偸栽赤城晩霞灩
하늘에서 빼앗아 왔으니 아침해 솟는 듯 / 奪下碧落朝日昇
숙여진 송이는 이슬을 머금었고 / 鮮葩倒垂露密蘂
이어진 금속은 홍등을 벌였구나 / 點綴金粟排紅燈
이제야 알겠노라 저 조물주의 마음을 / 乃知造物蓄意慳
선녀처럼 요조한 자태 아껴 두었다가 / 留此窈窕仙姝顔
남은 재주 과시해 새 감탄 받으려고 / 欲將餘巧動新賞
봄 지난 뒤에 이같은 향기 풍기게 하였네 / 故待春歸芳意闌
이슬에 씻기고 나니 성성이의 짙은 피인 듯 / 滴露洗新猩血釅
미풍이 살짝 부니 선학(仙鶴)의 붉은 머리인 듯 / 微風吹側鶴頭丹
나는 서왕모(西王母)가 한 무제(漢武帝)를 뵈올 때 / 我疑王母朝漢皇
전 앞에 운금랑을 흩어 놓음인가 하였고 / 殿前拆破雲錦囊
또한 화제가 하늘에서 내려오자 / 又疑火帝下閶闔
축융의 선대가 치마를 걸침인가 하였네 / 祝融仙隊拖裙裳
아니면 서시의 옥골이 진토에 묻혀 / 西施玉骨埋泥塵
인간의 짧은 봄 몽땅 몰아갔다가 / 卷却人問一餉春
산만한 방혼 수습할 길이 없어 / 芳魂散漫自難收
요화로 화해 사람을 유혹하는가 / 直作妖花還媚人
요염하게 보이려고 가냘픈 몸맵시에 / 故應婀娜嬌無力
오궁의 얼근히 취한 빛을 띠었네 / 猶帶吳宮醺醉色
고당에는 헛되이 무산(巫山)의 단꿈을 꾸었고 / 高唐虛役巫峽夢
초 나라에는 부질없이 양성의 고혹도 있었네 / 楚國枉有陽城惑
눈으로 보고 어찌 그냥 모른 체 할 손가 / 可忍相看不殢腸
사람을 향해 생긋 웃는 모습 곱기도 하네 / 嫣然向客偏輕盈
낮에는 활짝 피어 고운 웃음 띠었고 / 白日勺開嬌解笑
밤에는 약간 오무려 깊은 애정 담겼어라 / 黃昏微斂靜含情
양공의 좋은 풍류 누구나 자랑하는 바이라 / 梁公好事人所誇
나더러 꽃 구경하는 노래 지어 보라고 하였네 / 請我試作看花歌
보잘것없는 복사꽃 살구꽃이면 몰라도 / 頑桃俗杏粗可狀
나같은 재주로 어찌 이름난 꽃을 읊으랴 / 我才豈合賦名花
더욱이 지금 불우하여 의욕을 상실한 데다 / 況今落魄情興淺
이백(李白)의 붓마저 늙었으니 무슨 재주 있겠는가 / 白也筆老奈花何
사공은 중서성 뜰의 작약을 읊었고 / 謝公曾詠中書階
한자는 사마 집의 것을 노래하였네 / 韓子又歌司馬家
이 요염한 꽃이 어찌 늦게 태어나서 / 嗟渠妖態生何晩
이들로 하여금 읊도록 만들지 않았던가 / 未使此輩煩吟哦
옥 술잔에 술 가득히 따르고 / 玉樽浮蟻倘呼斟
풍정을 쏟아 다시 한 번 읊어보리라 / 掀出風情更一吟
[주D-001]나는……하였고 : 서왕모(西王母)는 옛날에 있었다는 신선이고 운금(雲錦)은 아침의 놀.
즉 운금낭(雲錦囊)은 놀처럼 뿌연 색깔의 주머니를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가 무척
신선을 좋아했는데 한번은 7월 7일 승화전(承華殿)에 있었을 때 청조(靑鳥) 한 마리가
서쪽에서 날아와 전각 앞에 모이므로 그 이유를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었더니 동방삭이
“이것은 서왕모가 오려는 징조입니다.” 하였다. 한참 만에 과연 서왕모가 오색 반룡
(五色斑龍)이 끄는 뿌연 구름의 연(輦)을 타고 전각으로 왔다 한다. 《漢武內傳》
[주D-002]또한……하였네 : 화제(火帝)는 곧 염제(炎帝)로 여름을 맡은 신(神)인 적제(赤帝)를
가리키며, 축융(祝融) 역시 불을 맡은 신이다. 불은 방위로는 남쪽이고 사시(四時)로는
여름이며 색깔은 적색이라는 오행설(五行說)에 의하여 뿌연 작약의 아름다움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3]서시(西施)의 옥골(玉骨) : 작약을 취서시(醉西施)라고 하는 데서 온 말. 서시는 춘추
(春秋) 때 월(越)의 미인으로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계획에 의하여 오왕(吳王) 부차
(夫差)에게 바쳐져 오궁(吳宮)에 있으면서 온갖 총애를 받았다.
[주D-004]고당(高唐)에는……꾸었고 : 고당은 운몽택(雲夢澤)에 있었던 초(楚) 나라의 대관(臺觀).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 주에 “적제(赤帝)의 출가하지 못하고 죽은 딸 요희(姚姬)
를 무산(巫山) 남쪽에 장사지냈는데, 초 회왕(楚懷王)이 고당에 놀러 나와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 무산에 있는 계집이라고 자칭하는 미녀를 만나 풍정을 나눴다.” 하였다.
[주D-005]초(楚) 나라에는……있었네 : 송옥의 등도자호색부(登徒子好色賦)에 “양성(陽城)에
고혹되고 하채(下蔡)에 미혹된다.” 하였는데, 그 주에 “양성과 하채 두 고을은 초
나라 귀공자들의 봉지(封地)로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하였다.
[주D-006]사공(謝公)은……읊었고 : 사공은 남제(南齊)의 문장가 사조(謝朓)를 가리킨다.
그의 자는 현휘(玄暉)로 특히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였는데, 일찍이 중서성(中書省)
당직이 되었을 때 작약시(芍藥詩)를 읊었다.
[주D-007]한자(韓子)는……노래하였네 : 한자는 당(唐) 나라 한유(韓愈)를 가리키는데, 사마(司馬)
의 집은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자세하지 않다.
○북산(北山)에서의 잡제(雜題)
이미 도를 얻어 아무 물욕 없으니 / 得道已無事
경장(經藏)과 율장(律藏)도 한 가지 방편일세 / 經律亦蹄筌
나는 갈마를 짓지 않으리니 / 我不作羯磨
산승이여 마음 놓고 자구려 / 山僧且安眠
산승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 巖僧不浪出
계곡에는 새만 한가히 나는데 / 溪鳥自閑飛
해 저물자 소나무 사이에 안개가 내려 / 日暮松間霧
나의 옷을 적셔 주네 / 霏霏欲濕衣
꿈속을 헤매는 사이 산 달은 넘어가고 / 夢迴山月落
오랫동안 읊으니 들 구름 흘러가네 / 吟久野雲歸
조용한 송석 오늘의 옳음이요 / 松石今朝是
시끄런 풍진 어제의 잘못일세 / 風塵昨日非
갓을 비스듬히 쓰고 푸른 소나무 기대고 / 岸幘倚靑松
거문고 안은 채 하얀 바위 소제하는데 / 拂琴掃白石
폭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 落瀑截翠微
봉우리는 하늘가에 닿았네 / 寒峯界危碧
나는 기심(機心)이 없는 사람으로 / 我是忘機人
만물을 모두 하나로 보는데 / 萬物視一類
산새는 이를 알지 못하여 / 山鳥殊未知
나를 보고 놀라 날아가누나 / 見我忽驚起
백구시에 마음이 없고 / 無心白駒詩
흑접부에 뜻을 부쳤네 / 寓意黑蝶賦
남화경을 독파하고 나니 / 讀罷南華篇
산중의 해가 마침 정오일세 / 山中日亭午
산꽃이 그윽한 계곡에 피었으니 / 山花發幽谷
산중의 봄 알리는 것이언만 / 欲報山中春
피고 지는 것 상관하지 않으니 / 何曾管開落
거의 선정(禪定)에 든 사람인가 하네 / 多是定中人
객탑이 고요하여 너무 무료하니 / 客榻靜無聊
한인(閑人)의 졸음 한창일세 / 幽人睡正濃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하다가 / 未聞呼勝力
한 종소리에 놀라 깨누나 / 驚起一聲鍾
산인이 산에서 나오지 않으니 / 山人不出山
옛길에 묵은 이끼만 끼었구나 / 古徑荒苔沒
이는 세속 사람이 들어와 / 應恐紅塵人
녹라의 달 더럽힐까 해서이네 / 欺我綠蘿月
[주D-001]경장(經藏)과 율장(律藏) : 불교의 경전을 세 가지로 나눈 삼장(三藏) 중에 두 가지.
경장은 부처가 말한 불법이며, 율장은 불법을 수행하는 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戒律).
[주D-002]갈마(羯磨) : 불가의 말로 신(身)ㆍ구(口)ㆍ의(意)에 의하여 지어지는 죄업(罪業)을
말한다.
[주D-003]조용한……잘못일세 : 풍진에 쫓기던 어제까지의 소행은 잘못이었고 소나무와 돌을
찾아 한가하게 살려는 오늘의 계획은 옳다는 뜻으로,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에 “오늘이 옳고 어제가 잘못임을 깨달았다.[覺今是而昨非]” 한 말에서 인용된
것이다.
[주D-004]기심(機心) : 기회를 노리는 마음으로 곧 순수하지 못한 마음을 가리킨다.
[주D-005]백구시(白駒詩)에……없고 : 백구시는 《시경(詩經)》소아(小雅) 백구(白駒)편을 말한다.
이 시는 현자(賢者)가 타고 온 흰 망아지가 농장의 농작물을 뜯어먹었다는 핑계로 말을
묶어 놓아 떠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인데, 곧 제왕(帝王)의 부름에 뜻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6]흑접부(黑蝶賦)에……부쳤네 : 흑접부는 흑색의 나비를 읊은 부로 남조(南朝) 때의 은사
(隱士) 심인사(沈麟士)가 지었다. 그는 여러 사람의 추천을 뿌리치고 늙도록 독서에 힘
썼으며, 일찍이 흑접부를 지어 자기의 뜻을 부치었다. 《南史 沈麟士傳》
[주D-007]녹라(綠蘿)의 달 : 푸른 등라(藤蘿) 사이로 비추는 달빛.
○동각(東閣) 오세문(吳世文)이 고원(誥院)의 여러 학사(學士)에게 드린 삼백 운(韻)의 시에 차운
하다 병서(幷序)
복양(濮陽) 오공 세문이 북사(北使)로부터 탄핵을 받고 서울로 돌아와 한가히 지내던 어느 날,
동각 김서정(金瑞廷)과 함께 원외(員外) 정문갑(鄭文甲)의 임원(林園)에 술자리가 베풀어졌다.
나도 그곳을 방문하여 말석(末席)에 참여하였는데 오공이 나에게 자랑하기를, “고금의 시집 중
에 삼백 운의 시를 지은 사람은 없는데 나는 이 삼백 운의 시를 지어 고원의 여러 학사에게 드렸
으니, 자네가 화답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그 시를 꺼내 보였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차운,
화답하여 오공에게 보내고 아울러 정 원외와 김 동각에게도 이를 알렸다.
동도는 옛날 좋은 나라로 / 東都古樂國
궁전의 터 남아 있으니 / 宮殿有遺基
신라 제56대 왕 김부(金溥)가 우리 태조에게 항복하자 태조가 맏 공주를 아내로 삼아 주고 신라를
경주(慶州)로 고쳐 그의 식읍(食邑)으로 하게 하였다. 오공이 자신은 신라왕의 외손이라 말하였고
또 동경(東京)에 우거(寓居)하였었으므로, 동경에 대한 일을 말하였다.
역사에서 지난 자취 엿볼 수 있고 / 靑史窺陳迹
순후한 풍속 옛날 되새길 수 있네 / 淳風記昔時
진 나라 강에는 처음으로 말이 건너갔고 / 晉江初渡馬
주 나라 낙수에는 비로소 거북점을 쳤네 / 周洛始鑽龜
낙읍은 주의 동경이므로 경주에 비유하였다.
발해는 둘러 못이 되고 / 渤海環爲沼
부상은 둘러 울이 되어 / 扶桑繚作籬
천년 동안의 왕업을 열고 / 千年開際會
《신라기(新羅記)》에 “일천 년의 운을 응했다.”하였다《신라추기(新羅㮲記)》에는 “9백 9년
이었다.”하였다.
여러 성왕(聖王)이 평화를 누렸네 / 累聖享雍熙
비로소 궁현의 음악을 제정하고 / 肇制宮懸樂
처음으로 절찬하는 의식을 마련했네 / 初陳蕝纂儀
대하의 근검함을 본받았고 / 儉勤師大夏
인지의 황괴한 것을 물리쳤네 / 荒怪黜因墀
《습유기(拾遺記)》에 “인지 나라에서 다섯 개의 발이 달린 짐승을 진상해 왔는데 생김새가
사자(獅子)와 같다.”하였고 소동파(蘇東坡)의 시에는, 황괴환수문자년(荒怪還須問子年)이라
하였다.
한신 같은 국사를 등용하고 / 國士登韓信
공규같은 조신을 대우했네 / 朝臣重孔戣
은덕은 우로(雨露)와 같았고 / 恩榮同雨霈
호령은 뇌정(雷霆)과 같았네 / 號令劇雷馳
문물(文物)은 풍운처럼 융성하였고 / 冠帶風雲盛
성덕을 구가한 세월 길기도 하였네 / 謳歌日月遲
누가 평자의 부를 지었던가 / 誰成平子賦
평자가 동경부(東京賦)를 지었으므로 한 말이다.
이에 맹견의 사 볼 만하네 / 堪睹孟堅辭
맹견은 동도부(東都賦)를 지었다.
국토는 성기에 맞게 정리하고 / 經野當星紀
농사는 토질을 따라 장려했네 / 耰甿循土宜
《주례》에 “농사는 토질에 따른다.”하였다. 이미 동경을 주(周)의 낙읍에 비유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건곤은 서약으로 측정되고 / 乾坤歸黍籥
조화는 노추와 같네 / 造化入爐槌
무쇠를 씹는 충신의 담이요 / 嚼鐵忠臣膽
구슬을 연한 묵객의 시이네 / 聯珠墨客詩
경상의 저택은 고기의 비늘처럼 즐비하고 / 魚鱗卿相宅
제왕의 비석은 교룡(蛟龍)의 머리처럼 우뚝하네 / 螭首帝王碑
태학에서는 삼로를 맞아들이고 / 太學迎三老
홍려시(鴻臚寺)에서는 사이를 받아들이며 / 鴻臚受四夷
누각은 봉이 깃들었음을 알겠고 / 樓諳巢鳳閣
관사는 용으로 표시했음을 알겠네 / 官認紀龍司
날아갈 듯한 두 채의 궐이 벌여 있고 / 翼翼呀雙闕
출렁거리는 커다란 못이 패였네 / 泱泱闢大池
《신라기》에 “벽골지(碧骨池)를 쌓았고, 또 궁중에 큰 못을 팠다.”하였다.
선진은 기이한 자치를 남겼고 / 仙眞留異跡
《신라기》에 선랑(仙郞)의 사적들이 있다.
현성은 위대한 규범을 보였네 / 賢聖揭宏規
견수는 동대를 짝하였고 / 犬首侔東岱 ]
《신라기》에 “견수사(犬首祠)가 있다.” 하였고, 동도부에 “대산(岱山)에 돌을 새기고
숭산(嵩山)에 제(祭)를 드렸다.” 하였다.
교천은 좌이를 모방하였네 / 蛟川倣左伊
《삼국사기》에 “동경에 교천이 있다.” 하였고 동경부에 “좌편에는 이수(伊水)가,
우편에는 전수(瀍水)가 있다.” 하였다.
연한 띠뿌리처럼 준사(俊士)가 많았고 / 茹連多衆彦
단단한 금석처럼 깊은 계책 간직하였네 / 石畫祕深惟
악작은 날개를 나란히 하고 / 鸑鷟爭騈翼
화류는 고삐를 잇달았네 / 驊騮競接綏
이선은 다 고귀한 자제들이요 / 珥蟬皆貴冑
비봉 또한 청수(淸秀)한 자질들이네 / 批鳳亦淸姿
이불을 덮어 준 풍표(馮豹)를 하찮게 여기었고 / 覆被應欺豹
옷자락을 잡아당긴 신비(辛毗)를 사모하였네 / 索裾或慕毗
규격 있는 문장은 절벽에 과시하고 / 遒文誇絶壁
신기한 계략은 시초에 비교되었네 / 神略較靈蓍
인범의 생황 청아하였고 / 仁範笙簧雅
홍유의 보불 드날렸네 / 弘儒黼黻披
박인범(朴仁範)과 설총(薛聰)을 말한 것이다.
가사(歌辭)가 청아하니 장적 소리 멀리 들리고 / 辭淸長笛嘏
지취가 고상하니 복건차림 아름다워라 / 意逸幅巾咨
저마다 앞을 다퉈 조반(朝班)에 오르거니 / 競躡班聯緊
누가 정무(政務)의 많음 사양하랴 / 誰辭政事埤
고운 같은 금마객은 / 孤雲金馬客
최치원(崔致遠)의 자는 고운인데 당(唐)에 들어가 단번에 급제하자, 동년(同年) 고운(顧雲)은
“한 화살에 금문(金門)의 사책(射策)을 쏘아 명중시켰다.” 고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동해의 옥림 가지였네 / 東海玉林枝
사책으로 중국을 울려 / 射策鳴中國
사해까지 진동시켰네 / 馳聲震四陲
높은 이름이 당시에 울려 퍼지고 / 高芬繁肹蠁
영원한 여운 지금도 메아리치네 / 遺韻遠委蛇
서경부(西京賦)에 “소리가 맑고 길어 멀리 메아리친다.” 하였고,
그 주(注)에 “남은 소리가 굽이친다.” 하였다.
염한이 다하려 하는 시대에 / 世欲終炎漢
신라의 말기를 말한다.
어진 이는 묵이처럼 은둔한 이 많았네 / 賢多匿黙台
《주서(周書)》에 “치봉(治峯)의 본래 성은 묵이였는데 난세(亂世)를 피하여 치봉으로 고쳤다.”
하였고 《광운(廣韻)》의 지 자 운(支字韻)과 이 자 주(台字注)에 “성이니,《성원(姓苑)》에
나온다.” 하였다.
세상이 다시 하나로 통합되고 / 寰區歸統壹
나라에 영재가 배출되었네 / 古國産英奇
부자는 더욱 수기(秀氣)를 흠뻑 받아 / 夫子尤鍾秀
좋은 시절 유독히 뛰어났네 / 淸時特挺姿
구경 중에 역경을 더욱 좋아하고 / 九經偏嗜易
삼보에는 자비를 선두로 삼았네 / 三寶最先慈
사조(謝朓)의 저작을 무색케 하고 / 制作平呑朓
서이(徐摛)의 음와한 것을 일소하였네 / 哇淫一掃摛
이미 천리족을 달렸고 / 早騰千里足
일찍이 사시피를 갖췄네 / 曾備四時皮
강직(剛直)한 것은 이화정과 같고 / 鯁正李和鼎
풍류는 원효니와 같았네 / 風流袁孝尼
시재(詩才) 는 칠보에 지은 것보다 높고 / 詩高成七步
효도는 삼태를 물은 것보다 지났네 / 孝過問三笞
흰 옥은 본시 더럽히기 어렵고 / 白玉元難汚
저울대는 어찌 맘대로 속일쏜가 / 懸衡豈易欺
청수한 골격은 쌍학의 정수(精髓)이며 / 骨淸雙鶴髓
미려(美麗)한 시문은 수잠의 토사(吐絲)일세 / 文麗水蠶絲
수잠은 빙잠(氷蠶)과 다른 종류이다.
후학은 명령처럼 감화되고 / 後學螟蛉化
선비들은 조작처럼 모여드네 / 諸儒鳥雀隨
공이 평소 제생(諸生)을 모아 가르쳤다.
고상한 지조로 남다른 은총을 입었고 / 濯纓承異睠
경건한 마음으로 새로운 글을 올렸네 / 頮面奏新詞
공이 평소 한림(翰林)이 되었었다.
꿋꿋한 지개 이미 높았으니 / 抗志曾高峭
어찌 고개 숙여 아첨하겠으며 / 低顔肯哫訾
혜초를 꿰매 만든 패물 스스로 사랑했으니 / 自珍紉佩惠
주머니 뚫고 나오는 송곳 엄폐하기 어려워 / 難掩脫囊錐
술수(術數)는 금궤를 정통하고 / 步緯該金櫃
공은 음양설(陰陽說)에도 정통하였다. 《당서(唐書)》예문지(藝文志)에 《금궤경(金櫃經)》3권이
있다.
정신은 옥시를 터득했으니 / 精神檢玉匙
《황정경(黃庭經)》에 “구슬을 결속시키고 정을 단단히 하여 신근을 기르고 옥시와 금약을 항상
굳게 간직한다. [結珠固精養神根 玉匙金鑰常堅完]” 하였다. 공은 도가설(道家說)에도 밝았으므로
한 말이다.
공은 구오의 장원(長遠)한 세계(世系)요 / 句吳玄孫遠
또한 태백의 내려 온 유풍이라오 / 太伯素風垂
해내에 동방삭이요 / 海內唯方朔
관동에 노비일세 / 關東獨魯丕
단편에는 침탁한 이를 비웃고 / 短編嘲踸踔
고전에는 환기 모양을 분별하며 / 古篆辨蠉蚑
사도로는 한유와 견주고 / 師道肩韓愈
명성은 유희처럼 높았네 / 時名揖庾羲
두 차례 동으로 가는 역마를 탔고 / 再乘東去馹
세 차례 북으로 가는 수레를 탔으니 / 三駕北征轙
장쾌한 관광은 유주(幽州)와 계구(薊丘)를 자랑하고 / 壯觀誇幽薊
고상한 유람은 괵 땅과 미현(郿縣)을 아울렀네 / 高遊繼虢郿
해우로 처음 수령(守令) 되었으니 / 薤盂初作守
어느 누가 의이를 의심하랴 / 薏苡孰興疑
치도(治道)가 융성하니 백성은 선정(善政)을 노래하고 / 理叶人歌政
상서(祥瑞)가 드리우니 임금은 복록을 받았네 / 徵期帝受釐
지방 풍속은 말갈(靺鞨)과 비슷하고 / 土風猶帶鞨
변방 습속은 맹수(猛獸)와 같았으나 / 邊俗例如羆
청독을 소탕하는 데 뭐가 어려우며 / 靑犢何勞剪
전융도 견제할 수 있었으니 / 羶戎尙可縻
위세는 먼 변방에 퍼지고 / 威聲加絶塞
충성은 귀신도 인정하였네 / 忠信質靈祇
큰 자라 어찌 샘에서만 놀겠는가 / 巨鼈那遊井
나는 용이 바로 못에서 뛰쳐 나왔네 / 飛龍旋躍陂
공이 소환됨을 말한 것이다.
재명(才名)은 더욱 육궐과 같아졌고 / 才英登陸厥
문한은 미지에게 맡겼네 / 文翰委微之
공이 수령에서 돌아와 다시 한림(翰林)이 되었다.
누수(漏水)는 방울방울 떨어지고 / 銀漏聲霑滴
화전 그림자는 으리으리하네 / 花甎影陸離
임금의 제서(制書)는 견지에 받아 쓰고 / 制詞書繭紙
하사된 음식은 진미가 진진했는데 / 宣饌飫瓊糜
하찮은 봉채의 독을 만나고 / 微毒遭蜂蠆
공이 한림으로 있다가 사건에 관련되어 탄핵을 받아 면직되었다.
말 많은 제비의 저해를 받아 / 多言任鷾鴯
권서는 백옥과 같고 / 卷舒效伯玉
저술은 최기를 사모했네 / 著述慕崔琦
오도가 어찌 이대로 없어질소냐 / 吾道寧終否
사문이 다시 일어나려는 바일세 / 斯文要復施
한가히 사는 것은 반악(潘岳)을 본받았으나 / 閑居雖效岳
지난일은 반드시 맹기(孟岐)에 묻곤하네 / 古事必咨岐
《동명기(洞冥記)》에 “맹기는 청하(淸河)의 일사(逸士)로 나이가 7백세나 되어 국초(國初)의
일을 말했다.” 하였다.
폄척을 받을수록 이름은 더욱 드러나고 / 貶斥名彌著
능멸은 당할수록 의지 더욱 안정하더니 / 陵競志莫禔
과연 은근한 소명을 받아 / 果承申命密
융숭한 은총 다시 입었네 / 更荷渥光熹
붕새의 날개 몇 번이나 꺾이려다가 / 風翼幾垂退
난근이 다시 얽매이게 되었네 / 蘭筋又見覊
공이 다시 한림이 되었다.
성시는 모두 우의(寓意)가 있었고 / 聲詩皆有寓
국폐(國弊)도 다스려지게 되었네 / 國病尙堪理
묘한 재주는 삼절을 이루었고 / 妙藝標三絶
맑은 행실은 팔비를 제거했네 / 淸修去八疪
문장은 이문(吏文)도 만들 수 있고 / 文章兼飾吏
정직은 길상(吉祥)을 받을 만하였네 / 正直合膺禧
낮은 벼슬 법에 구애되고 / 薄宦拘繩墨
공의 재기(才器)는 재위(宰位)에 오를 만하네 / 公才稱鼎鼒
상설은 귀밑머리를 침노하는데 / 雪霜侵鬢髮
강하(江河)는 장부(臟腑)에 소용돌이치네 / 江海吼肝脾
집안에는 먼지 낀 시루가 있고 / 家有生塵甑
문앞에는 굴대가 부딪치는 수레가 많았네 / 門多擊轊輜
유업(儒業)은 문총이 남아 있고 / 儒功文塚在
충담은 검봉이 알아주리 / 忠膽劒鋒知
이미 소공의 인끈을 받고도 / 已結蕭公綬
오히려 동씨의 장막을 드리웠네 / 猶垂董氏帷
아유(雅遊)는 백전에서 모시고 / 淸歡陪柏殿
백낙천(白樂天)의 주에 “백전에서 임금을 모시고 놀이했다.” 하였다.
국경(國慶)은 천기절(天祺節)에 참여했네 / 慶日趁天祺
《금파유사(金坡遺事)》에 “한림(翰林)이 매년 천경절(天慶節)과 천기절이 돌아오면 한 달
전에 미리 역말을 내린다.” 하였다.
어필은 등용을 윤허하고 / 御筆登遷拜
조의는 각문(閣門)에 보궐(補闕)이 되었네 / 朝儀省闕遺
공이 맨 처음 각문지후(閣門祗侯)에 임명되었다.
임금을 지척에 모시고 / 天威纔咫尺
은총을 흠뻑 입었네 / 雨澤洽霑滋
허리를 구부리니 몸가짐이 단정하고 / 傴僂端容止
위의가 씩씩하니 침과 콧물도 조심하였네 / 矜莊愼唾洟
《예기》에 “침과 콧물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였다.
녹 받는 은사(隱士)라 자칭하고 / 自稱居祿隱
또 글만 짓는 바보로 자처하더니 / 還笑著書癡
갑자기 칙명이 내려 / 忽受言綸降
영광된 사절을 받았네 / 光承使節持
공이 금년 봄에 운중도(雲中道)의 감창사(監倉使)가 되었다.
호피(虎皮) 안장에는 번개 같은 채찍을 날리고 / 虎鞍揮電策
타고에는 천둥 같은 북채를 휘둘러 / 鼉鼓奮雷椎
대군에서 효기를 지휘하듯 하고 / 代郡麾驍騎
병주에서 장사를 선발하듯 하였네 / 幷州選壯兒
가시숲에서 비외를 후려치듯 / 拉林摣狒猬
서경부에 “코 빨간 코끼리가 비외를 후려치니, 가시숲이 쓰러졌다.” 하였다.
적은 물에 녹을 치고 곤이를 몰살시키듯 / 擿漻䍡鯤鮞
서경부에 “적은 물을 가로막고 녹(䍡)을 치니, 곤이(鯤鮞)가 몰살된다.” 하였고,
그 주에 “녹은 잔 그물이요 곤이는 작은 물고기이다” 하였다.
진미는 춘주가 적합하고 / 旨味宜春酒
한수는 대곡의 배가 좋으네 / 寒羞大谷梨
그 고장에는 모습어가 별미라지 《산해경(山海經)》북산주(北山注)에 “자호(茈湖)에 모습어가
많이 난다.” 하였다 / 土聞生鰲鰼
한 철의 운치인 꾀꼬리 소리 생각나네 / 時記韻鶊鸝
비록 붉은 관복은 입었지만 / 命服雖披紫
검은 유관이야 어이 고치랴 / 儒管不改緇
봉 술잔을 고운 손으로 올리고 / 鳳觴纖手奉
용피리를 붉은 입술로 부네 / 龍管絳唇吹
두 갈래 진 창은 계단 앞에 삼엄하고 / 畫戟森庭陛
향기로운 바람은 길거리에 풍겨나네 / 香風徹道岐
풍년은 격택에서 점치고 / 年祥占格澤
《천문지(天文志)》에 “격택성이 나타나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수확한다.” 하였다.
군사는 자휴에서 증험하네 / 軍事驗觜觿
《천문지》에 “자휴성은 삼군(三軍)의 일을 주장하는데, 명랑하면 군수(軍需)가 풍부하다”
하였다.
치첩은 진 나라 변방에 이어졌고 / 雉堞連秦塞
홍교는 초 나라 다리에 우뚝하네 / 虹橋矗楚圯
때로는 사붕이 가설되기도 하고 / 射堋時或峙
날마다 기악이 따랐네 / 妓樂日相追
봄 물에는 뜸부기 떠놀고 / 春水浮鸂鶒
흰 모래엔 해오리 거닐며 / 淸沙立鷺鷥
꽃다운 동산에는 두구꽃 피었고 / 芳園開荳蔲
이슬 띤 가자(架子)에 도미가 얹혔네 / 露架拆酴醾
기괴한 바위는 혹처럼 나왔고 / 怪石如癭
반송은 규처럼 굽었네 규는 굽은 정갱이이다 / 盤松曲似䟸
여러 성에는 고삐를 잡아 순시하고 / 列城行攬轡
범같은 호위는 무기를 꼬나들었네 / 虎衛凜交鈹
해에 비친 깃발은 큰 곰이 뛰는 듯 / 映日旗羆䟴
바람 맞은 고깔은 까치가 기는 듯 / 隨風弁鵲跂
선창은 하얀 코끼리를 타고 / 仙倡馳白象
갑사(甲士)는 청부루말을 달렸네 / 介士騁蒼騅
선수에서는 솟구치는 물을 구경하고 / 鮮水觀滮湃
원산에서는 험악스런 산을 통과했네 / 源山歷險巇
《산해경》에 “북선(北鮮)의 산을 등졌다.” 하였고 또 “북으로 원산에 이른다.” 하였다.
몸을 솟구쳐 떠가는 학을 붙잡고 / 騰身捫去鶴
눈을 굴려 나는 비둘기를 보내며 / 遊目送翩鵻
놀이 줄은 높아서 은하(銀河)에 닿았고 / 戲索高連漠
놀란 공은 날아서 토담을 넘네 / 驚毬逬越壝
세상 맑으니 누구나 기뻐할 뿐이요 / 時淸唯燕喜
송사 없으니 날마다 놀이를 즐기며 / 訟息好遊嬉
범을 때려잡듯 힘차게 사부를 짓고 / 搏虎專詞賦
오리떼처럼 질서 있게 바둑을 두네 / 成鳧鬪奕碁
설아는 음률에 맞춰 노래하고 / 雪兒歌律勻
옥녀는 옥으로 된 띠를 드리네 / 玉女獻琛褵
본시 호화(豪華)에도 반연이 있어 / 已分親羅綺
미인들의 관심 끌기도 하네 / 從敎惹粉脂
사성은 한중(漢中)에 들어오고 / 使星還入漢
의죽은 기수(淇水)에서 보았네 / 猗竹佇瞻淇
깁부채가 도중에 버림받고 / 紈扇中捐棄
또 착도(錯刀)가 주어지지 않아 / 金刀莫贈貽
사수시(四愁詩)에 “미인(美人)이 나에게 도금(鍍金)한 착도를 주네.” 하였고, 그 주에
“임금이 작록(爵祿)을 주어 영광되게 한 데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조정에서는 경숙을 박대하고 / 朝廷疏敬叔
권귀들은 환이를 꺼리었네 / 權貴忌桓彝
도를 곧게 하다가 삼출을 감수하고 / 直道甘三黜
긴 노래로 오희를 발하였네 / 長謠發五噫
어찌 조금의 원망인들 있었으랴 / 怨尤心豈敢
현달한 이는 예부터 이러하다네 / 賢達古如斯
집안에 앉아 한적한 것을 즐기며 / 一室耽閑適
권문(權門)에 기웃대는 것을 비웃었네 / 高門笑伺窺
백두까지 정위(廷尉)로 근무하였고 / 白頭傭作尉
강장에 스승되기를 좋아하여 / 絳帳樂爲師
공이 일찍이 교수로 있었다.
석거의 강론 오래 빠졌으니 / 久欠石渠講
구실의 자문 어찌하려나 / 何如衢室諮
받는 조롱 해명하며 자위도 하고 / 解嘲聊自慰
곤란한 대답에는 또한 그만 두었네 / 答難亦云罷
자락(自樂)으로 시름을 잊을 수 있으니 / 樂可忘憂止
노래 속에 어찌 탄식만 있겠는가 / 歌何嘆而已
일생 동안 궁색이 뼛속까지 스몄고 / 一生窮到骨
세상 일에는 웃으며 턱을 만질 뿐이네 / 萬事笑指頤
달 밝은 나무에도 괜히 놀라는 까치 같고 / 月樹空驚鵲
천둥치는 하늘에도 그냥 엎드려 있는 교룡(蛟龍) 같네 / 雷天尙伏螭
물러난 것 도정절 같지도 않고 / 去非陶靖節
면직된 것 하후자 같지도 않네 / 罷異夏侯孜
영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 令弟仙驂遠
공의 아우 세재(世才)의 자는 덕전(德全)으로 명유(名儒)가 되었었는데,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공의 집에 한 그루 옥수가 시들었구려 / 君家玉樹虧
내 평소 의기가 맞는 사이였지만 / 我曾同意氣
나는 덕전과 망년의 사귐[忘年之交]이 있었다.
재주로야 어찌 자웅을 겨룰 수 있었으랴 / 才豈角雄雌
공자의 문은 엿볼수록 오묘하고 / 孔戶窺彌奧
조식(曹植)의 담은 들어갈수록 깊었네 / 曹墻入愈冞
벽운하(碧雲騢)가 어찌 조송(趙宋)에만 있었으며 / 碧雲何獨趙
명월주(明月珠)도 수후(隨侯)에게만 있는 게 아닐세 / 明月不須隨
누구나 맞서기를 겁내거니 / 共怯當鋒刃
어찌 방패나 창을 놀릴 수 있으랴 / 其能搖楯鍦
사부(詞賦)는 송옥을 몰아낼 만하였고 / 辭堪驅宋玉
의지는 왕비를 제거하려 했는데 / 意欲剪王伾
그만일세 간 지 이미 오래이니 / 逝矣乘風久
아 그 누가 코의 흙 떼어 주려나 / 嗟哉斲堊誰
시를 볼 적마다 슬픔만 더하고 / 見詩增感慨
전날을 생각하면 절로 슬퍼진다오 / 懷舊自悽恧
홀로 장강의 눈물을 흘리며 / 獨灑長康淚
지금도 덕수(德秀)의 미목 떠오르네 / 猶思德秀眉
공은 작천을 계승하였고 / 唯公承鷟薦
공의 부조(父祖)가 다 급제하여 명유(名儒)가 되었는데, 공이 계승하였다. 당(唐) 나라 장작(張鷟)
이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였는데 그의 손자 천(薦)도 문장이 뛰어나 사관(史官)으로 기용되었으
며 천의 아들 우신(又新)과 손자 독(讀)이 또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당세의 인 희가 되었네 / 當世作駰僖
후한(後漢) 때 공희(孔僖)가 그 손자 인(駰)과 벗처럼 지내므로 양욱(梁郁)이 거기에 대해 말을
하였는데, 인과 희가 대답하지 않았다.
미록일랑 따르지 말고 / 莫便隨麋鹿
모쪼록 준의를 쓰시오 / 須期戴鵔鸃
광음(光陰)은 분촌을 아끼고 / 流光憐分寸
외물은 작게 여겼다오 / 外物視銖錙
전번에 찾아가 서로 만났었고 / 相訪曾交臂
시 읊조리며 수염을 만지작이러니 / 淸吟自撚髭
이번에도 감히 덤불에 깃들던 새가 / 慚將栖薈羽
하늘을 찌를 듯한 갈기를 건드렸으나 / 仰觸刺天鬐
주인은 왕찬을 기꺼이 맞아주고 / 主喜迎王粲
나는 가규를 깊이 흠모했네 / 予深慕賈逵
가규는 오경(五經)에 정통하여 학자들의 흠모를 받았다.
복수(濮水)에서 한가히 낚시질한 것을 자랑하였고 / 幽居誇釣濮
누수(㶟水)의 기이한 유람을 설명하였네 / 奇迹說遊㶟
공이 북지(北地)에서 동도로 돌아왔을 때 내가 방문하였었다. 《유편(類篇)》에 “누수는
안문(鴈門) 땅에 있는 강 이름이다.” 하였다.
마치 청풍이 엄습해 오는 듯하였고 / 恰有淸風襲
원래 소의의 비판이 없었네 / 元無素議玼
《당서(唐書)》에 “최홍례(崔弘禮)가 병부 상서가 되어서는 만년에 축적(蓄積)을 힘썼으므로
소의의 비판이 있었다.” 하였다.
억울한 탄핵을 갑자기 만나니 / 橫彈翻見中
가난병을 퇴치하기 어렵네 / 貧病却難醫
기회가 언제냐고 한탄 마소 / 莫嘆辰安在
덕이 쇠퇴하지 않은 것 알 수 있네 / 端知德不衰
어찌 물오리 마름을 쪼아 먹듯 하겠느냐 / 那隨鳧唼藻
봉황이 죽실(竹實)을 먹게 되리 / 會與鳳含蕤
경조는 참다운 호련이니 / 京兆眞瑚璉
이는 김 동각(金東閣)을 가리킨 것이다.
왕랑은 창피한 서까래일세 / 王郞愧桷榱
진(晉) 나라 왕감(王鑒)은 서까래 정도의 재목이었다 한다.
넓은 도량은 너와 나의 경계가 없었고 / 坦懷無畛域
높은 학식은 미세한 것도 분석하였네 / 深識剖毫釐
천수의 시를 읊은 장호요 / 千首詩張祜
삼도의 부를 지은 좌사일세 / 三都賦左思
한 번 응시하여 노서에 오르고 / 一鳴登鷺序
새로 등용되어 선위를 썼네 / 新沐振蟬緌
어찌 천록을 교정할 뿐이겠는가 / 豈但校天祿
저 곡려까지도 견제할 수 있으리 / 猶堪覇谷蠡
전번 태묘(太廟)를 모실 때는 / 曩陪淸廟寢
공이 태묘의 영(令)이 되었었다.
제단(祭壇)을 엄숙히 받들어 / 肅奉紫壇祠
손수 삼조를 차리고 / 摩扢陳三俎
힘껏 육자를 마련하여 / 擩燔辨六齍
외외히 제물이 이미 괴어지고 / 磑磑芳已積
《한서(漢書)》에 “제물이 외외하다.” 하였는데, 그 주에 “외외는 제물이 높이 괴어진 모양
이다.” 하였다.
육육히 정성이 더욱 지극하였네 / 鬻鬻意逾祗
‘鬻’의 음은 육이니, 신(神)을 전송할 때 공경하고 조심하는 모양이다.
계주는 맑은 향기 그윽하고 / 桂酒淸如潑
산뢰는 가득하여도 기울지 않았네 / 山罍滿不欹
배가 텅 빈 맹수(猛獸) 모양의 북틀이 벌여지고 / 腹褰張猛簴
뿔이 한 움큼쯤 되는 희생 풍성도 하였네 / 角握省豐犧
낮이나 밤이나 직책만을 수행했고 / 夙夜唯供職
여러 제사에 정결만을 힘썼네 / 蒸嘗但潔栥
조심스레 규정된 전사에 따르고 / 栗齋循典祀
정당하지 못한 제사를 배격하며 / 譎詭黜淫魑
훼골하게 경건히 늘어서니 / 卉汨臚精信
《한서》 훼골로(卉汨臚) 주에 “훼골은 제관(祭官)들의 동작이 신속하다는 뜻이요, 노는 죽
늘어선다는 뜻이다.” 하였다.
신이 이에 안정된 복록을 주었네 / 綏將降福禠
저물게 언을 부를 줄 알아야 하는데 / 須知暮召偃
그 누가 밤에 기를 부르랴 / 誰肯夜呼祈
재상이 되어서는 응당 글을 보아야 하고 / 拜相應看字
벼슬이 오르려면 죽은 이를 꿈꿔야 하리 / 移官早夢尸
어진 상수도 멸시를 받았거니 / 賢猶凌向戌
어찌 진이에게 의논할 일이던가 / 事豈聞陳寅
《춘추좌전(春秋左傳)》정공(定公) 6년 조에 “송(宋)의 악기(樂祈)가 그 재신(宰臣) 진이
에게 ‘……’ 하였고, 진이는 진(晉)의 정령(政令)이 한 군데서 나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악기가 진에 가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했다.” 하였다. ‘寅’의 음은 이(怡)이니,
유운(柳韻) 지자운(支字韻)의 ‘寅’ 자에 진이(陳寅)로 되어 있다.
훌륭한 도(道)는 높은 산처럼 우러러보고 / 景行高山仰
좋은 재목은 으레 큰 집에 쓰는 거라오 / 長材大厦施
남을 대할 적엔 정성스러웠고 / 接人多款款
벗을 사귈 적엔 또한 충성스러웠네 / 友直亦偲偲
큰 고을을 다스려 민폐를 근절시켰고 / 劇郡尋煩敝
공이 다시 안변(安邊)의 수령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누조(嫘祖)를 위문했네 / 歸程遠問嫘
수레는 천둥처럼 구르고 / 軺䡕行轞轞
말은 바람처럼 달렸어라 / 騂驈走駓駓
나뭇가지엔 원숭이 떼 깃들고 / 木末爭猿捷
산봉우리엔 잡새가 날아가네 / 峯頭趁鳥奞
치솟는 노도는 출렁출렁하고 / 鷺濤奔瀇瀁
아득한 오산(鰲山)은 구불구불하며 / 鰲岫杳嵔
갯벌에 둘러 있는 마을 내 끼어 자욱하고 / 繞浦煙村暗
시내에 잇단 길 험하기도 하네 / 沿溪石棧逶
안장을 지우니 놀이가 자유롭고 / 卸鞍遊散誕
붓을 잡으니 손놀림 빨라지네 / 援筆舞瀏漓
목이 말라 찬 샘물 마시니 / 渴飮寒泉液
마치 언 술을 머금는 듯하네 / 疑含凍醴澌
숨은 새들은 눈길을 기웃대고 / 幽禽窺睥睨
달리는 짐승은 갈기가 일어서네 / 走獸奮髬髵
얽힌 덩굴을 더위잡고 / 繃絡攀蘿薜
숙삼한 작유를 통과하네 / 橚槮過柞桵
《유편(類篇)》에 “역(棫)은 갈참나무[柞]또는 무리 참나무[桵]이다.” 하였으며 서경부에
“재역(梓棫)이 숙삼하다.” 하였는데, 그 주에 “숙삼은 울창한 모양이다.” 하였다.
수레에서 내려 군정(郡政)을 열고 / 下車開郡閣
칼을 안고 변비(邊備)를 강화하네 / 擁劍課邊陴
애들의 놀이는 꿩을 길들이는 것 같고 / 童戲猶馴雉
군사의 사냥은 비휴를 잡아들이네 / 軍蒐競獻貔
경지(耕地)는 괘상(卦象)처럼 나누었고 / 卦分畦塊圠
가옥(家屋)은 성좌(星座)처럼 흩어졌네 / 星散屋逶迤
공청(公廳)은 나란히 구르는 수레처럼 일정하고 / 廨舘堪方軌
연석(宴席)은 정돈한 신발처럼 정연하네 / 賓筵擬履齊
전등(錢燈)은 여기저기 반짝이고 / 錢釭明爍爍
깃발은 이리저리 펄럭이며 / 竿衽轉僛僛
은빛은 순채국에 엉기고 / 銀鏤凝蓴菜
금빛은 기장술에 떴구나 / 金鱗泛黍酏
푸짐한 장만은 사막새 종달새 구이오 / 豐廚炮鵽鴳
진기한 반찬은 상어와 숭어찜일세 / 珍膳味鮫鯔
헌원(軒轅)과 제곡(帝嚳)을 이처럼 보고 / 軒嚳看如虱
육귀몽(陸龜蒙)의 시에 “삼황(三皇)의 도(道)를 우러러 보니, 개미와 이가 우주에 있는 것 같다.”
하였다.
진과 수를 개구리처럼 비웃었지 / 陳隋笑若蚳
피일휴(皮日休)의 시에 “그 뒤 진수(陳隋) 시대에 와서는 크고 작은 것이 다 개구리나 두더지
같다.” 하였다.
몹시 사랑한 것은 오직 송의 미인이요 / 酷憐唯宋艶
몽땅 고혹된 것은 모두 오의 미녀였네 / 射遞盡吳姬
촉군의 백성은 바지를 노래하고 / 蜀郡民歌袴
금릉의 기생은 물대야를 드렸으며 / 金陵妓奉匜
도곡(陶穀)의 고사이다.
좋은 산으로는 적석(赤石)이 우뚝하고 / 好山高赤石
진귀한 물건으로는 주제가 푸짐하네 / 奇貨富朱提
서류는 언제나 책상 위에 쌓여 있고 / 簿領長堆案
관복은 잠깐 동안 옷걸이에 걸려 있네 / 朝衣少襯椸
은혜는 능히 밀로를 그립게 하고 / 恩能懷密老
위엄은 이미 왕이를 복종시켰네 / 威已懾王姨
왕연(王衍)의 이모[姨]로 《세설(世說)》에 보인다.
이에 수령(守令)을 그만두고 / 已罷割鷄手
한가한 위치로 되돌아오니 / 還栖傾鳳椅
간편한 행장으로 말 고삐를 잡고 / 輕裝廻沃轡
새로운 차림은 산뜻한 갈의(葛衣)를 걸쳤네 / 新服拂涼絺
이름난 산천을 두루 구경하고 / 歷閱溪山勝
여로(旅路)의 피로를 일체 잊었네 / 都忘道里疲
혼은 항상 조정을 못 잊어하고 / 魂勞懸貝闕
귀는 으레 옥음(玉音)을 듣는 듯하였네 / 耳想聽龍篪
그래도 삼수의 상서를 이루려 하고 / 尙欲徵三穗
채무(蔡茂)가 광한(廣漢)의 태수가 되어 세 개의 이삭이 나온 벼 꿈을 꾸었다.
공이 안변 태수에서 체환(遞還)되었기 때문에 비유한 것이다.
앞으로 구기의 영광을 기대했는데 / 方圖戴九
《한서》에 “일품직(一品職)은 옥으로 된 고깔의 꾸미개가 아홉 개다.” 하였다.
돌아오는 여로에는 날개가 움츠렸고 / 歸來戢羽翮
사람들 눈길에는 노마(駑馬)로 바뀌었으며 / 俯仰改騮驪
같은 출신들은 마치 섶 쌓이듯 하였으나 / 舊列薪猶積
공이 각문(閣門)의 남아도는 일원(一員)으로 아직 임관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공의 고충은 바위처럼 요동될 줄 모르네 / 孤忠石不移
조용한 생활은 언제나 안석에 의지하고 / 端居長隱几
청고한 꿈은 오히려 수레를 타보곤 하네 / 淸夢尙乘軧
서림(書林)은 누구와 벗하였고 / 書圃誰爲伴
인리(仁里)는 누구와 이웃했던가 / 仁隣孰與比
한 푼의 금전도 축재하지 않았으니 / 一錢當不蓄
만 권의 서적은 과연 무엇을 도우려 했던가 / 萬卷本何裨
베 이불이 호락의 갖옷보다 나았고 / 幅被勝狐狢
채소 반찬이 유이의 요리보다 좋았네 / 盤蔬當鱬鮧
회포를 풀려고 술이나 실컷 마실 뿐 / 攎懷唯酩酊
천명(天命)을 알거니 무엇을 한탄하랴 / 知命敢嗚戲
예복을 갖추고 처음으로 찾아 뵈었을 때 / 冠櫑初投謁
다행히 거절은 당하지 않았으나 / 門墻不見麾
내가 공을 댁으로 방문하였었다.
멍멍하여 한계를 분간할 수 없었고 / 惘然迷界限
흐릿하여 방향을 헤아릴 수 없었네 / 怳未測津涯
서리 내리니 푸른 하늘 멀고 / 霜落碧天遠
이슬 차가우니 많은 잎 시들며 / 露寒殷葉萎
석양은 이미 저물었고 / 夕陽嗟暮矣
밤바람은 싸늘도 하였지 / 涼夜問何其
손목 잡고 서로 웃음을 나누다가도 / 扼腕俱相笑
심정을 논할 적엔 혼자 슬퍼하였네 / 論情頗自悲
초당에선 비로소 물을 마시었고 / 草堂初飮水
부엌에선 늦게야 콩깍지를 지폈네 / 塵釜晩燃萁
훼방을 피하려 할 적에는 입을 다물지만 / 避謗雖緘口
이미 당했을 적에는 꼭 강경히 해명하며 / 逢時必壯頄
위의는 일체가 구비되었고 / 威儀誠棣棣
우둔(愚鈍)을 기꺼이 자처하였네 / 闒茸謾嘻嘻
나는 영양의 수사(秀士)를 경애하노니 / 我愛榮陽秀
이는 원외(員外) 정문갑(鄭文甲)을 가리킨다.
그 재주가 파군의 오자(吳資)와 같네 / 才如巴郡資
《송릉집(松陵集)》에 보인다.
백대에서 나약한 관리를 탄핵하고 / 柏坮憚吏懦
공이 일찍이 어사(御史)가 되었었다.
폐석으로 불쌍한 백성을 살렸으며 / 肺石活民羸
지금 공이 형부 원외랑(刑部員外郞)이 되었다. 《주례》에 “대사구(大司寇)가 궁한 백성의
억울한 일을 처리해 준다.” 하였다.
이미 삼관새를 구경하고 / 已歷三關塞
《제지(齊志)》에 “의양현(義陽縣)에 삼관새가 있다.” 하였다.
또 구절판(九折坂)을 통과하였네 / 曾驅九折阺
소를 올리는 용기는 판을 걷어올리고 / 疏書應脫腕
격을 초하는 솜씨는 눈 깜빡할 사이로세 / 草檄僅生視
심현에서는 남악(南嶽)을 구경하고 / 灊縣嘗觀霍
낭야에서는 유수(濰水)를 건넜었네 / 琅邪亦渡濰
태세(太歲)가 미성(尾星) 궤도에 닿던 해 / 歲行臨尾次
왕사로 건유에 부임했는데 / 王事赴乾維
공이 계축년에 의주 분도(義州分道)를 맡았다.
말갈(靺鞨)이 용만진에 들어서고 / 鞨入龍灣鎭
의주(義州)의 별칭.
잇달아 압록강을 침범하였네 / 行侵鴨綠湄
아군의 진용은 볼수록 씩씩하고 / 軍容看仡仡
적군의 눈깔은 멋대로 힐긋대며 / 胡眼笑睢睢
호복(胡服) 차림이 소란스레 오고가니 / 左衽猶旁午
공의 충성엔 부끄럽게만 여겨졌네 / 中心尙忸怩
집집마다 검극(劍戟)이 장비되고 / 家皆藏劍槊
사람마다 호미를 치웠으니 / 人罕用鎡
이내 묵어 있던 지역이 / 始使生榛地
전립(戰笠)으로 뒤덮인 동치(東甾)가 되었네 / 渾爲聚笠留
《문선(文選)》에 “전립들이 동치 땅에 모였다.” 하였다.
모호는 영고숙(穎考叔)을 무시하고 / 蝥弧欺考叔
경부는 최수보다 장쾌하며 / 鯨賦壯崔倕
유우석(劉禹錫)의 최수비문(崔倕碑文)에 “융갈(戎羯)이 중국을 어지럽혀 왕사(王師)가 출정
(出征)하니, 수가 벌경예부(伐鯨鯢賦)를 지어 올렸다.” 하였다.
군량 수송하는 노고를 어찌 꺼리랴 / 飛輓勞何憚
한번 소탕하려는 뜻 굳게 지녔네 / 澄淸志不隳
첫 새벽 잔치는 군심(軍心)을 격려하고 / 芳晨開宴衎
비장한 곡조는 과부도 감동했었지 / 哀曲感孀嫠
시취(詩趣)는 모중령과 같이하고 / 吟共毛中令
편유(遍遊)할 땐 혁화(革華)와 함께 하네 / 遊煩革下邳
회군(回軍)에 있어 무얼 급히 서두르랴 / 何須行刦刦
질주하는 말 잠깐 동안 늦췄어라 / 暫可息騤騤
강 위에 깃발을 멈추고 / 江上停歸旆
배 중에 작별의 술잔 마련하니 / 舟中命別卮
암혈(巖穴)은 맑게 개고 / 岫眉晴脈脈
파도는 잔잔도 하네 / 波練靜漪漪
기러기는 노에 놀라 날아가고 / 過雁飛驚棹
거북이는 둑에 나와 엎드렸네 / 潛龜伏負坻
사현부(思玄賦)에 “영귀(靈龜)가 둑에 나와 엎드렸다.” 하였다.
안개 짙으니 먼 섬이 희미하고 / 霧濃迷遠島
물이 빠지니 넓은 진펄 보이누나 / 水落見空泜
풀빛이 멀리까지 뻗치고 / 草色連迢遞
호수의 빛은 끝없이 연이었네 / 湖光接渺瀰
숲 속의 들말[野馬]은 소리가 요란하고 / 林猑聲嗝
모래 위의 새들은 깃이 늘어졌구나 / 沙鳥羽襂襹
비단 같은 붉은 잉어가 뛰놀고 / 錦碎叉紅鯉
마름 같은 하얀 방어를 낚아내네 / 萍浮釣白魾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방어는 위에 뜨기를 좋아하는데 그 빛깔이 마름과 같기
때문에 백비(白魾)라 한다.” 하였다.
호화스런 자리는 대모가 깔렸고 / 華筵鋪玳瑁
보배스런 주기는 노자를 보내왔다오 / 寶杓送鸕鶿
주석은 사흘이 계속되고 / 坐到三竿日
주량은 한 섬을 들이켰네 / 狂傾一石甀
이전엔 그렇게 영화롭더니 / 昔何榮赫煽
이제는 왜 한탄만 하게 되었을까 / 今反退嗄吚
공이 지금 면직되어 있다.
공 등이 모두 이러하니 / 公輩皆如此
하늘도 공평하지 못하네 / 皇天亦似私
아 나같이 기구한 운명은 / 嗟予生薄命
떠돌이 신세 그 몇 해던가 / 浪迹幾多朞
괜히 선리에만 의탁된 존재가 / 仙李徒攀託
노자(老子)와 성(姓)이 같다.
여사(旅舍)에 하루하루 얹혀 지내네 / 蘧廬暫寓覊
불우한 자신이 부끄럽거니 / 自猶慙蹇短
무슨 뽐낼 나위가 있겠는가 / 誰忍飾顴
좁은 소견은 조회와 같고 / 陋愧如曹鄫
묻힌 이름은 두기와 같기에 / 名知似斗箕
요즘엔 조용한 운수를 찾아 / 頃逃雲水窟
험난한 세속 회피하고 있다오 / 高避網羅危
따뜻한 방안에서 추위를 지내고 / 燠室經寒候
서늘한 정각에서 더위를 막으며 / 涼臺禦暑曦
담장 옆에 밤나무 대추나무 심고 / 傍墻培棗栗
터 주위에 뽕나무 암뽕나무 심으며 / 匝地種桑桋
《유편(類篇)》에 “암뽕나무도 뽕나무의 일종인데, 줄기는 짧고 가지는 길다.” 하였다.
옥우의 학을 길들이고 / 玉羽馴他鶴
채우(綵羽)의 꿩을 사냥하네 / 莎鞦射却鶅
거문고는 녹수를 타고 / 美琴彈淥水
시는 청기(淸奇)한 것을 찾누나 / 琢句覓淸琪
푸른 대나무가 층계 앞에 둘렀고 / 綠竹環階砌
푸른 소나무는 평고대를 덮었네 / 靑松蔭梠㮰
경복전부(景福殿賦) 주에 “평고대를 연첨목(連簷木)이라 한다.” 하였다.
이끼를 제거해 폐정을 수리하고 / 剝苔新廢井
땅을 일구어 따비밭을 만든다오 / 墾土理荒菑
암혈(巖穴)에는 고라니 새끼가 엎드렸고 / 穴伏梢麕子
산속에는 호랑이 시체가 쓰러졌네 / 山僵蹂虎屍
한적한 생활에도 지루할 적이 있어 / 幽栖難奈久
슬쩍 나와 보면 남의 비웃음만 받아 / 出試見他辴
나는 요즈음 북산(北山)에 우거(寓居)하면서 자호(自號)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 하였다.
앞으로 제갈에서 의탁하려 하거니 / 更欲依諸葛
비위가 추천되는 데 뭐가 어려우랴만 / 何妨薦費褘
제갈량(諸葛亮)이 비위를 추천하였었다.
천자가 워낙 성명(聖明)하여 / 但聞天子聖
거유만을 높인다 하니 / 唯重巨儒耆
애써 꾸미려 해도 아무 소용 없고 / 剪拂徒勞爾
용렬한 재주는 항시 그렇다오 / 駑頑亮若玆
조대(釣臺)에서 떠날 인연이 없거니 / 無緣離釣築
어찌 띠집 벗어나길 바라랴 / 何計脫蓬茨
옥이 들어 있으면 궤가 감춰지게 되고 / 玉蘊常藏櫝
구슬이 묻혀 있으면 언덕도 윤택하다는데 / 珠潛敢潤碕
오도부(吳都賦)에 “붉은 단사(丹砂)와 투명한 잔구슬[璣]…… 언덕이 마르지 않고 수목이 윤택
하다.” 하였다.
생애가 어찌 이다지 불우한지 / 生涯何落魄
심사가 너무 평온하지 못하구려 / 心事好參差
가도는 늘 나귀를 탔고 / 賈島驢恒跨
환공은 말도 타지 않았으며 / 桓公馬未騎
전사엔 새들이 망라되고 / 篆沙羅鳥雀
망호엔 거미를 보았어라 / 網戶對蛛蜘
연에서 높인 곽외(郭隗)를 무어 부러워하며 / 何羨燕尊隗
송에서 상 준 이반(耏班)을 어떻게 바라겠는가 / 何期宋賞耏
경도(京都)는 변천에 민감하고 / 京塵工化素
세파(世波)는 고비가 극심하네 / 世路劇彎崎
우수울사 천 편의 시로도 / 自笑詩千紙
한 가지 물건도 살 수 없지만 / 難償市一劑
소악(韶樂)을 들으니 고기맛을 잊고 / 韶聲忘嗜味
상송이 있으니 배고픔도 걱정 없네 / 商頌莫憂飢
술을 즐기니 꿰미에 돈이 떨어지고 / 愛酒緡錢盡
땔감이 없으니 빗장을 쪼개 지피네 / 無薪牡木炊
봄은……원문 3자 결…… / 靑春□□□
햇볕은 그늘진 해바라길 피하누나 / 白日避陰葵
지장은 찢기울까 걱정되고 / 紙帳唯愁裂
하의는 미처 꿰매지 못하였네 / 荷衣不用紕
글을 너무 보니 안력이 상하고 / 看書雙眼損
병이 많으니 온 몸이 허약하며 / 多病一身㾨
컬컬하면 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 渴把杯濡口
다닐 때는 지팡이로 몸을 버티네 / 行將杖拄肢
거니는 취미는 장주(莊周)보다 높고 / 逍遙高漆吏
잠적(潛跡)하는 심사는 굴원(窟原)을 위문하며 / 伏竄吊湘纍
길가에는 도추의 털털한 신이 놓이고 / 路置桃椎屩
뜨락에는 공우의 장식한 신이 없다네 / 庭無貢禹綦
남들은 나를 방광하다 조롱하지만 / 人雖譏放曠
나는 본시 아첨을 부끄럽게 여기기에 / 我本恥嚅㖇
가는 곳마다 공격이 생기고 / 觸地生矛戟
온 몸에는 고통이 뒤따르나 / 渾身帶蒺蔾
두어 칸의 띠집이 모처럼 마련되고 / 數間初卜宅
한 벌의 갈옷이 이만 마음 편한데 / 一褐自安卑
어린 자식은 거친 쌀도 좋아하고 / 稚子呼麤糲
못난 아내는 장옷조차 없으며 / 山妻欠羃䍦
《당서(唐書)》거복지(車服志)에 “부인들은 장옷으로 몸을 가린다.” 하였다.
언제나 손경의 문이 닫혔고 / 常閉孫敬戶
또 공야장(公冶長)의 구류(拘留)와도 같네 / 如在冶長縲
아 전날 세 분을 뵈었을 적에 / 憶昨尋三老
시간 보내며 온갖 시름 잊으니 / 移時遣百罹
양춘의 높은 곡조 영중(郢中)에서 부르는 듯 / 陽春嘉唱郢
궤채의 모임으로 수원(睢圓)에서 노니듯 / 繢綵譬遊睢
봉 날개에 의탁하는 영광을 입었고 / 附翼方欣覿
또 의기가 양양한 기쁨을 나누었네 / 揚眉各自怡
정원에는 잡초를 베고 / 繞園芟草莽
주위에는 잡목을 제거했으며 / 掃地剪楱椔
《당서》에 “고목(枯木)이 가리고 잡목이 우거졌다.” 하였고, 또 “고목은 줄기와 가지를 몽땅
제거한다.” 하였다.
숲 속의 과일은 높아서 따기 어렵고 / 林菓高難摘
연못의 고기는 이루 친근할 수 있네 / 池鱗俯可麗
정공의 임원(林園)에는 연못까지 있다.
기장엿을 어찌 엿보지 않으며 / 餦餭何讓窺
곰국은 있는 대로 사양치 않아 / 臛臇不辭欹
젓가락으로 음식 집는 것은 의(欹)라 한다.
손님을 좋아한 이 모두 임방이요 / 愛客皆任昉
어진이 추천한 이 다 송기일세 / 推賢盡宋畸
전한(前漢) 때 좌풍익(左馮翊) 송기가 황패(黃覇)를 현량(賢良)으로 천거하였다.
장씨(張氏)의 시내에는 섬약한 버들을 품제(品題)하고 / 張溪題弱柳
반씨(潘氏)의 원포(園圃)에는 꽃다운 호유(胡荽)를 자랑하네 / 潘圃詫芳荽
흔들리는 녹색에 마늘이 예쁘고 / 颺綠還憐蒜
돋아나는 황색에 유채(蓶菜)가 환하구려 / 抽黃始見蓶
유채는 조구(鳥韭)와 비슷하면서도 황색이다.
이미 삼색리를 옮겼고 / 已移三色李
또 구광지로 심으려 하네 / 將種九光芝
돌샘은 워낙 깊어 두레박줄이 느리고 / 石井絙繩索
산재는 오래되어 막대기로 버티었네 / 山齋峙柱榰
잔은 삼백으로 헤아리고 / 盃籌三百計
술은 십천으로 걸렀으니 / 斗酒十千釃
막걸리와 좋은 술을 마시고 / 代奏醙兼醑
텁텁한 술과 모주를 권하며 / 交斟酎雜醨
붓은 회화군(懷化郡)의 먹을 찍고 / 濡毫懷化墨
찻잔은 정주의 자기를 사용하네 / 嘗荈定州瓷
이미 참여를 허용하였거니 / 已許來函杖
어찌 찬합을 던질 리 있으랴 / 何曾怒擧欙
《진서(晉書)》에 “왕연(王衍)이 연석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 찬합을 들어 상대방의 얼굴에
던졌다.” 하였다.
조용한 정취는 곡구요(谷口謠)보다 높고 / 幽情高谷口
끝없는 시야는 아미산까지 닿았네 / 遠目極峨嵋
묵은 나무엔 푸른 이끼가 돋았고 / 古木蒼苔澁
높은 추목(楸木)엔 푸른 칡덩굴 얽혔구려 / 高楸碧葛虆
안건으로 바위에 함께 걸터앉고 / 岸巾同踞石
납기로 험한 산에도 오르네 / 蠟屐更升岯
세면(洗面)할 적에는 곁으로 나는 샘에 가고 / 盥潄臨泉氿
거닐 적에는 늘어진 가지를 헤치며 나뭇가지 밑으로 늘어진 것을 피(㯅)라 한다 / 徘徊拂樹㯅
수풀이 깊숙하니 피어오른 구름 날마다 끼었고 / 林深餘宿靄
동학(洞壑)이 그윽하니 시원한 바람 언제나 모이네 / 洞密聚曾颸
다행히 함께 천일주(千日酒)를 마셨거니 / 幸共傾千日
어찌 구의산(九疑山)을 못 볼까 걱정하랴 / 何嗟對九疑
향내가 그윽한 두약을 찾고 / 幽香尋杜若
세속이 즐기는 엿 따위를 멀리하네 / 俗嗜屛餳飴
기쁜 정의만 다하면 그만이지 / 要極歡情耳
어찌 사소한 예절에 구애되랴 / 何拘末禮爲
오늘은 잠시 물 만난 고기 되었지만 / 乍如魚得水
내일은 다시 끈끈이에 붙은 새와 같으리 / 退作鳥黏黐
저녁 잠자리에는 풀자리가 고작이요 / 夜臥唯莞葦
아침 밥상에는 고사리나물뿐이라네 / 朝飧只蕨藄
섭섭해하는 말은 차마 들을 수 없고 / 緖言難接耳
그리는 눈물은 눈꼽으로 변하였네 / 思淚謾成眵
굶주린 쥐는 괜히 안석(案席)을 엿보고 / 飢鼠空窺案
추위에 떠는 닭은 일찍 회에 오르누나 / 寒鷄已上塒
모진 바람은 북쪽에서 몰아들고 / 厲風嚴朔漠
석양 볕은 서산에 넘어가네 / 反炤指崦嵫
진작부터 경첩(輕捷)한 문체(文體)로 바꾸려 한바 / 久欲成勦體
종기실 시평(鍾記室詩評)에 “문체가 경첩하고 안정되었다.” 하였다.
도리어 남의 영치만 받을까 염려했으나 / 唯憂被詅嗤
《청상잡기(靑箱雜記)》에 “문장이 졸렬한데도 돌에 새기기 좋아하는 자가 받는 비웃음을
영치라 한다.” 하였다.
마음을 더욱 고요히 가라앉히고 / 潛心彌眑眑
시구를 더 열심히 모색하네 / 索句益孶孶
다시는 공과 함께 즐기기 어려우니 / 未復同君樂
나의 체증 어떻게 소화시키려나 / 邦堪使我疧
복양에 세속 초탈을 숭상하고 / 濮陽超世尙
이도에 띠집 마련을 뜻했으니 / 履道結茅期
오공이 나에게 “정원 안에 한 채의 초당을 마련하고 그대와 함께 경서(經書)를 토론하려 한다.”
하였다.
정대한 출처를 그 누가 알랴 / 出處知誰與
오직 나만이 존경하고 있다오 / 攀援獨我推
마실 때는 좋은 술과 함께하고 / 飮將同綠蟻
먹을 때는 또한 손가락과 마주하게 되었네 / 食亦共蹲鴟
학을 즐기려면 배가 부르도록 해야 하고 / 耽學期便腹
시를 평하려면 철저하게 분석해야 하느니 / 評詩到擘肌
큰 화로는 날카롭거나 무딘 쇠를 다 용납하고 / 洪爐容利鈍
밝은 거울은 곱거나 미운 얼굴 다 비쳐주네 / 明鏡納妌媸
짐승 중에는 박을 신중히 기록하였고 / 獸傅重箋狛
공이 모충(毛蟲)ㆍ갑충(甲蟲)ㆍ인충(鱗蟲)에 대한 시(詩)를 지었다.
《산해경(山海經)》에 “남산에 있는 짐승들 가운데 박이 가장 많다.” 하였다.
벌레 중에는 수를 자세히 논의했는데 / 蟲篇細問雖
《광운(廣韻)》에 “수(雖)는 벌레의 이름인데, 땅거미와 비슷하면서도 작다.” 하였다.
공이 수에 대한 시를 지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스승이라면 맹희처럼 높이고 / 師傅尊孟喜
형이라면 승미처럼 섬기네 / 兄事擬僧彌
졸렬한 글을 드리고 보니 / 强自呈蕪拙
명작을 모독하여 너무 부끄럽다오 / 多慙側曄猗
끝말: 오공의 시는 거의 다 고사(古事)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나의 강운(强韻)을 단 구절을 보기
위하여 낱낱이 주석을 붙이도록 하였으나 나는 후인에게 비웃음만 받을까 두려워서 거의 다 삭제
하고 간략한 주석만 두었다.
[주D-001]진(晉) 나라……건너갔고 : 동진(東晉)이 강동(江東)으로 천도(遷都)했음을 말한다.
말[馬]은 진 나라의 성이 사마(司馬)였으므로 한 말인데, 진 나라는 오호(五胡) 십육국
(十六國)의 난에 시달려 원제(元帝) 때에 결국 강을 건너 강동으로 천도한 때문에 동진
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D-002]주(周) 나라……쳤네 : 주 성왕(周成王)이 낙읍(洛邑)으로 천도하기 위하여 주공(周公)
에게 명하여 동도(東都)를 만들도록 하였다. 이에 주공이 낙읍을 완성한 다음 낙고(洛誥)
를 지어 바쳤는데, 여기에 “나는 간수(澗水)의 동쪽과 전수(瀍水)의 서쪽에 대하여
거북점을 쳤더니 낙읍이 길하다.”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부상(扶桑) : 중국의 동해에 있었다는 나라로 곧 일본(日本)을 가리킨다.
[주D-004]궁현(宮懸)의 음악 : 궁현은 옛날 천자가 현악(懸樂)하는 제도. 《주례(周禮)》춘관
소서(春官 小胥)에 “현악하는 위치는 천자는 궁현, 제후는 헌현(軒懸)한다.” 하였다.
[주D-005]절찬(蕝纂)하는 의식(儀式) : 절찬은 띠를 묶어서 위치를 표한 다음 조회하는 의식을
연습하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숙손통전(叔孫通傳)에 “제자 1백여 명과 절찬을
만들어 야외에서 연습했다.” 하였다.
[주D-006]대하(大夏) : 하(夏)의 우왕(禹王)이 만든 음악.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29년에 “오(吳)의 공자(公子) 계찰(季札)이 대하의 춤을 보고 ‘아름답다, 근면하면
서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우(禹)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덕을 닦겠는가.’ 했다.”
하였다.
[주D-007]한신(韓信) 같은 국사(國士) : 한신은 한(漢)의 명장으로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다음 그 공로로 초왕(楚王)에 봉해졌으나 뒤에 회음후(淮陰侯)로 강봉되었다.
국사는 온 나라가 추앙하는 선비란 뜻인데, 소하(蕭何)는 일찍이 한신을 칭찬하여 둘도
없는 국사라 하였다. 《史記 淮陰侯傳》
[주D-008]공규(孔戣) : 당(唐) 나라의 명신. 헌종(憲宗) 때 간의대부(諫議大夫)가 되어 이섭(李涉)
의 망상(罔上)하는 죄상을 탄핵하고 이소화(李少和)ㆍ최이간(崔易簡)의 옥사(獄事)를
판결했으며, 목종(穆宗) 때에 사퇴를 빌자, 한유(韓愈)가 “조정에 공규 같은 인재는
3~4명밖에 되지 않으니, 사퇴를 만류해야 한다.” 하였다. 《新唐書 孔戣傳》
[주D-009]평자(平子)의 부(賦) : 평자는 후한(後漢) 때의 문장가 장형(張衡)의 자(字).
그때 천하가 태평하여 사치를 힘쓰므로 그가 낙양(洛陽)에 대한 동경부와 장안(長安)에
대한 서경부(西京賦)를 지어 온갖 풍물의 아름다움과 산천의 내력을 서술하였다.
《後漢書 張衡列傳》
[주D-010]맹견(孟堅)의 사(辭) : 맹견은 후한 때의 사관(史官)이었던 반고(班固)의 자(字).
그 역시 후한의 수도 동경에 대한 동도부를 지어 풍물의 변천을 읊었다.
《後漢書 班固列傳》
[주D-011]성기(星紀) : 일(日)ㆍ월(月)ㆍ오성(五星)의 종(終)과 시(始)가 되는 남두성(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을 가리킨다.
[주D-012]건곤(乾坤)은……측정되고 : 십이율(十二律)의 하나인 황종(黃鐘)이 만사(萬事)의 근본
이 됨을 말한 것이다. 황종의 관(管)은 검은 기장알 1천 2백개가 들어가는데, 이것은
양(量)의 1약(龠)에 해당하는 바 지금의 작(勺)이 된다. 황종의 관은 도량형(度量衡)의
기본이므로 천지만물을 측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D-013]조화(造化)는……같네 : 노추(爐槌)는 쇠붙이를 달구고 두들기는 기구로 곧 인간의
만사가 도야(陶冶)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주D-014]태학(太學)에서는……맞아들이고 : 삼로(三老)는 정직(正直)ㆍ고명(高明)ㆍ침잠(沈潛)의
삼덕(三德)을 아는 장로(長老)로 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세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예기(禮記)》 악기(樂記)의 “태학에서 삼로와 오경(五更)에게 음식을 대접
했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15]홍려시(鴻臚寺)에서는……받아들이며 : 사이(四夷)는 동이(東夷)ㆍ서융(西戎)ㆍ남만
(南蠻)ㆍ북적(北狄)을 가리키는데, 홍려시는 외교를 맡은 직책이므로 한 말이다.
[주D-016]악작(鸑鷟)은……잇달았네 : 악작은 봉황과 같은 신조(神鳥)로 학사(學士)들을 비유한
것이며 화류(驊騮)는 대추 빛깔의 준마(駿馬)로 귀인들을 비유한 것이다.
[주D-017]이선(珥蟬)은……자질들이네 : 이선은 초선관(貂蟬冠)으로 한대(漢代)의 시중(侍中)
상시(常侍)들이 쓰던 관인데 전(轉)하여 높은 벼슬아치들을 가리킨 것이며, 비봉(批鳳)
은 봉각(鳳閣)에서 비답(批答)을 수정하는 학사(學士)들을 가리킨다.
[주D-018]이불을……풍표(馮豹) : 풍표는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중문(仲文). 일찍이 낭관
(郞官)이 되어 일을 아룄으나 허락하지 않자, 저녁에서부터 아침까지 성(省)에 부복하고
있었다. 이에 숙종(肅宗)이 기문랑(期門郞)으로 하여금 비단 이불을 갖다 덮어주게
하였다.
[주D-019]옷자락을……신비(辛毗) : 신비는 삼국(三國) 때 위(魏) 나라 사람으로 자는 좌치(佐治).
문제(文帝) 때에 시중(侍中)이 되어 직간(直諫)을 좋아하였다. 한번은 문제가 기주(冀州)
의 백성을 옮기려 하므로 직간하였으나, 문제가 듣지 않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임금
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만류하였다. 《三國志 魏志 辛毗傳》
[주D-020]인범(仁範)의 생황(笙簧) : 박인범은 신라(新羅) 사람으로 당(唐) 나라에 들어가 빈공과
(賓貢科)에 급제했으며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생황은 관악(管樂)의 일종으로 아악
(雅樂)에 사용된다.
[주D-021]홍유(弘儒)의 보불(黼黻) : 홍유는 신라의 명유(名儒) 설총. 보불은 관복(官服)에 수놓은
무늬인데 곧 훌륭한 예악문물(禮樂文物)을 가리킨다.
[주D-022]금문(金門)의 사책(射策) : 금문은 한대(漢代) 궁문(宮門)에 있던 금마문(金馬門)의 약칭
으로 후세에는 한림원(翰林院)을 가리키게 되었다. 사책(射策)은 옛날 선비를 시험하던
한 방법으로 경서(經書) 또는 정치상의 의문을 죽간(竹簡)에 쓰게 하여 이것으로 우열을
분별하던 제도인데 곧 과거를 가리킨 것이다.
[주D-023]동해(東海)의……가지였네 : 동해는 우리나라를 가리킨 것이며 옥림(玉林)은 옥과 같은
나무의 가지란 뜻으로 최치원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장가임을 말한 것이다.
[주D-024]염한(炎漢) : 한 나라는 화덕(火德)으로 왕노릇했다 하여 칭한 말인데, 후한은 동경에
도읍했으므로 우리나라의 동경인 경주에 도읍한 신라를 비유한 것이다.
[주D-025]삼보(三寶) : 불가에서 말하는 불(佛)ㆍ법(法)ㆍ승(僧).
[주D-026]사조(謝朓) : 남제(南齊)의 문장가이다. 자는 현휘(玄暉)로 특히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였다.
[주D-027]서이(徐摛)의 음와(淫哇) : 서이는 남조 때 양(梁) 나라 사람으로 자는 사수(士秀).
신기한 문장을 만들었는데 곧 염문체(艶文體)로서 궁체(宮體)라 이름한바, 애정의
시문이 되었으므로 음와라 한 것이다.
[주D-028]천리족(千里足) :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준마(駿馬)를 말하는데 전(轉)하여 뛰어난
재질을 칭한다.
[주D-029]사시피(四時皮) : 마음 속에 시비판단이 분명함을 말한다. 진(晉)의 저부(褚裒)는 고귀
(高貴)한 풍도가 있었으며 기국(器局)이 뛰어났다. 환이(桓彛)는 “피부 속에 포폄(褒貶)
이 있다.” 하였으며, 사안(謝安)은 사시의 기후가 모두 갖춰졌다.” 하였는데
《춘추(春秋)》는 원래 봄은 양(陽)으로서 포상(褒賞)에 해당하고 가을은 음(陰)으로서
폄벌(貶罰)에 해당하므로 명명한 것임을 들어 말한 것이다. 《晉書 褚裒傳》
[주D-030]이화정(李和鼎) : 화정은 당(唐)의 시어사(侍御史)였던 이감(李甘)의 자(字). 그는 무척
정직하였는데, 교활한 정주(鄭注)가 재상되기를 구하자 이감은 “재상은 첫째 덕망이
있어야 하고, 다음은 문예가 있어야 하는데, 정주가 어떤 사람인데 재상을 구한단 말인가.
만일 그에게 임명장이 내리면 찢어버리겠다.” 하였다. 그 후 과연 정주에게 임명되므로
이것을 찢었다가 죄를 얻어 좌천되었다. 《新唐書 李甘傳》
[주D-031]원효니(袁孝尼) : 효니는 진(晉)의 학자 원준(袁準)의 자. 그는 충신공정(忠信公正)하였
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성품이 침착하고 겸손하였으며, 정치
에 관한 저서가 10여만 자에 이르렀다. 《晉書 袁準傳》
[주D-032]칠보(七步)에 지은 것 : 삼국 시대 위(魏)의 조식(曹植)이 지은 칠보시(七步詩)를 말한다.
조식은 뛰어난 문재(文才)가 있었는데, 이것을 시기한 형인 문제(文帝 조비(曹丕))는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짓게 하고 만일 못 지으면 벌을 주려고 하였으나 그는
과연 칠보 동안에 연두시(燃豆詩)를 지었다. 《世說新語》
[주D-033]삼태(三笞)를 물은 것 : 옛날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 그의 숙부(叔父)인 강숙
(康叔)과 함께 입조(入朝)하였다가 아버지인 주공을 세 차례 뵈었는데 번번이 매를
맞았다. 강숙의 제의로 상자(商子)라는 현인(賢人)을 찾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남산
(南山)의 양지쪽과 음지쪽에 있는 두 나무를 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보니 남산
양지쪽에는 교(橋)라는 나무가 쳐들려 있었고 음지쪽에는 자(梓)라는 나무가 수그러져
있었다. 백금이 다녀와서 본 대로 말하자 상자는 “교는 부도(父道)를, 자는 자도(子道)
를 의미한 것이다.” 말하였다. 백금이 그 이튿날 주공을 뵈올 때 정문에 들어서서는
빨리 걷고 당(堂)에 올라서는 무릎을 꿇자 주공이, “어디서 군자를 만났더냐.” 하고
위로해 주었다. 《說苑 建本》
[주D-034]수잠(水蠶) : 누에의 일종으로 길이가 6~7촌이나 되고, 흑색에 인각(鱗角)이 있으며
서리나 눈이 내릴 때에야 고치를 짓는데, 고치는 길이가 1척이나 되고 오색실이 나와
문금
[주D-035]명령(螟蛉) : 푸른 빛깔의 나비의 유충이다. 나나니벌은 이 유충을 물어다가 항상 자기를
닮으라고 하면 이 유충들이 나나니벌로 변한다는 옛말에 의한 것으로 의자(義子)나 후학
(後學)들에 비유된다.
[주D-036]혜초(蕙草)를……패물 : 혜초는 향초(香草)로, 곧 현자(賢者)의 높은 지조를 표시한다.
[주D-037]주머니……송곳 : 훌륭한 재덕(才德)이 안에 있으면 저절로 나타난다는 뜻. 전국 시대
조(趙) 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문객이었던 모수(毛遂)가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자,
평원군은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 끝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史記 平原君傳》
[주D-038]옥시(玉匙)와 금약(金鑰) : 옥시 금약(玉匕金籥)이라고도 쓰는데, 옥시는 이[齒]를,
금약은 혀[舌]를 가리키며 전(轉)하여 도가서(道家書)를 말한다.
[주D-039]구오(句吳)의……유풍이라오 : 오씨(吳氏)를 말한 것이다. 구오는 오(吳) 나라로 구(句)
는 오 지방의 초발성(初發聲). 태백(太伯)은 주 태왕(周太王)의 장자로 아우인 계력(季歷)
에게 왕위를 인계하기 위하여 도망쳐 오(吳)에 거하였는데 뒤에 무왕(武王)이 천하를
통일한 다음 그의 자손을 오 나라에 봉해 주었다. 《史記 吳太伯世家》
[주D-040]동방삭(東方朔) : 전한(前漢) 사람으로 자(字)는 만청(曼倩). 해학과 문장에 능했으므로
선술(仙術)을 배웠다 한다. 《史記 東方朔傳》
[주D-041]노비(魯丕) :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숙릉(叔陵). 성품이 침착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오경(五經)을 정통하였으며 《노시(魯詩)》ㆍ《상서(尙書)》를 가르쳐 당시의 명유(名儒)
가 되었다. 《後漢書 魯丕傳》
[주D-042]침탁(踸踔) : 걸음이 일정하지 못하고 더딘 모양으로 문재(文才)가 둔함을 말한 것이다.
[주D-043]환기(蠉蚑) : 꿈틀거리는 벌레의 모양으로 고전(古篆)의 자획(字畫)을 가리킨 것이다.
[주D-044]한유(韓愈) : 당(唐) 나라의 유학가(儒學家)이며 문장가. 일찍이 사설(師說)을 지어 사도
(師道)를 말하였다.
[주D-045]유희(廋羲) : 진(晉) 나라 사람으로 자는 의숙(義叔). 목제(穆帝)에게 풍간(諷諫)하는
시를 지어 올려 명망이 높았다.
[주D-046]해우(薤盂) : 염교와 물주발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때 방삼(龐參)은 한양 태수(漢陽
太守)로 부임하여 그 고을의 처사 임당(任堂)을 맨 먼저 방문하였다. 임당은 말 대신,
문 앞에 큰 염교 한 뿌리와 물 한 주발을 내다 놓은 다음, 어린 손자를 안고 그 옆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물은 자기에게 청백하라는 뜻이요 큰 염교
뿌리는 자기에게 강성한 종친을 제거해 달라는 뜻이요, 손자를 안은 것은 불쌍한 백성을
돌봐 주라는 뜻임을 알고 깊은 감명을 받아 훌륭한 치적(治績)을 이룩하였다.
《後漢書 龐參傳》
[주D-047]의이(意苡) : 마원(馬援)이 교지(交趾) 태수로 있다가 돌아올 때 약용(藥用)으로 율무를
가져왔는데 그가 사망한 뒤에 명주(明珠)와 문서(文犀)를 들여왔다는 참소를 당하였다.
《後漢書 馬援傳》
[주D-048]청독(靑犢) : 후한 광무제 때 여러 반적(反賊) 중의 하나.
[주D-049]재명(才名)은……맡겼네 : 육궐(陸厥)은 남제(南齊) 사람으로 자는 한경(韓卿). 젊어서
부터 기개(氣槪)가 있었고 문장에 능하였다. 미지(微之)는 당(唐)의 문장가 원진(元稹)의
자로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 여러 벼슬을 하였다. 《南齊書 陸厥傳》,《新唐書 元稹傳》
[주D-050]화전(花甎) : 꽃무늬가 놓인 벽돌인데 한림원(翰林院) 북쪽 뜰 앞에 화전으로 깐 길이
있었으므로 한림원을 칭하게 되었다.
[주D-051]견지(繭紙) : 고려 때 생산되던 종이로 품질이 매우 좋았다.
[주D-052]권서(卷舒)는……같고 : 출처(出處)의 의리가 정당함을 말한다. 백옥(伯玉)은 춘추(春秋)
시대 위(衛) 나라의 현대부(賢大夫) 거원(蘧瑗)의 자(字). 그는 출처를 의에 맞게 하였으
므로 공자는 그를 칭찬하여 “군자이다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卷] 감춘다.” 하였다. 《論語 衛靈公》
[주D-053]최기(崔琦) :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자위(子瑋). 문장이 뛰어나 외척잠(外戚箴)ㆍ
백곡부(白鵠賦) 등을 지었다. 《後漢書 崔琦傳》
[주D-054]한가히……본받았으나 : 진(晉)의 반악(潘岳)이 세상일을 상관하지 않고 한가히 살겠다는
뜻으로 한거부(閑居賦)를 지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55]난근(蘭筋)이……되었네 : 어쩔 수 없이 다시 정사를 맡게 되었다는 뜻, 난근은 말 힘줄
의 이름으로 명마(名馬)를 가리킨다. 《상마경(相馬經)》에 “난근이 원중(元中)으로
부터 솟아 있으면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 하였는데, 원중은 눈 밑 이정(井) 자 모양
으로 움푹 들어간 것이라 한다.
[주D-056]묘한……제거했네 : 삼절(三絶)은 시(詩)ㆍ서(書)ㆍ화(畫)의 뛰어난 재주를 말하며 팔
비(八疪)는 장자(莊子)의 말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총(摠),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
기만 하는 영(佞), 남의 비위만 맞춰 말하는 유(諛),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말하는 첨(謟),
남의 과실을 말하기 좋아하는 참(讒), 남을 이간질하는 적(賊), 나쁜 사람을 거짓 칭찬
하는 특(慝), 선악을 가리지 않고 비위만 맞추어 자기 욕심을 채우는 험(險) 등 여덟
가지의 나쁜 점이라 한다.
[주D-057]상설(霜雪)은 소용돌이치네 : 상설은 백색을 나타낸 것으로 나이가 많아 머리나 수염이
세었지만 마음만은 강하처럼 넓음을 말한 것이다.
[주D-058]집안에는……많았네 : 집안은 가난하여 시루를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끼었지만 문 앞
에는 귀객(貴客)들이 줄을 이어 수레끼리 서로 부딪칠 정도임을 말한 것이다.
[주D-059]문총(文塚) : 당 나라 유세(劉蛻)가 문장의 초고(草稿)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한데 모아
땅에 묻은 데서 나온 말로 곧 많은 공부를 가리킨다.
[주D-060]이미……드리웠네 : 소공(蕭公)은 전한(前漢)의 소육(蕭育), 동씨(董氏)는 동중서(董仲
舒)를 가리킨다. 소육은 친구 주박(朱博) 등과 절친한 사이로 서로 추천하여 높은 벼슬
에 올랐으며 이보다 앞서 왕길(王吉)과 공우(貢禹) 역시 이와 같았으므로 장안(長安)에는
“소주가 인끈을 매자 왕공이 갓을 새로 썼다.[蕭朱結綬 王貢彈冠]” 하였으며, 동중서는
《춘추(春秋)》를 전공하였으며, 경제(景帝) 때에 박사(博士)가 되어 장막을 드리우고
제자를 가르쳤는데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며 3년 동안 밖에 나오지도 않았다.
《漢書 蕭望之傳ㆍ董仲舒傳》
[주D-061]백전(柏殿) : 한 무제(漢武帝)가 장안(長安)에 세웠던 대(臺), 곧 백량대(柏梁臺).
무제는 대가 완성된 뒤 잔치를 마련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칠언시(七言詩)를 지을 수 있는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게 하여, 백량체(柏梁體)라는 하나의 시체(詩體)를 남겼다.
[주D-062]천기절(天祺節) : 북송(北宋)의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원년 4월 1일에 하늘에서
천서(天瑞)가 두 번째로 내려온 상서(祥瑞)가 있다 하여 국경일로 지정된 날.
[주D-063]천경절(天慶節) : 천서(天瑞)가 첫 번째 내린다는 정월 3일.
[주D-064]타고(鼉鼓) : 악어 가죽으로 만든 북.
[주D-065]대군(代郡)에서……하였네 : 대군과 병주(幷州)는 모두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태원현
(太原縣) 부근인데 전국 시대 조(趙)의 명장(名將) 이목(李牧)이 여기에 있으면서 군사를
훈련하고 수비를 잘하여 명성을 떨쳤다.
[주D-066]춘주(春酒) : 겨울에 빚은 술. 봄에 빚어서 겨울에 익은 술이라고도 한다.
[주D-067]한수(寒羞)는……좋으네 : 한수는 성찬(盛饌)을 먹은 다음 먹는 과일 따위를 말하는데,
시원한 음식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며, 대곡(大谷)의 배는 큰 골짜기에서 나는 배로 반악
(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장공(張公) 대곡의 배와 양후(梁侯) 오비(烏椑)의 감이다.”
하여 천하에 유명하였다.
[주D-068]치첩(雉堞)은……우뚝하네 : 치첩은 성(城) 위에 쌓은 성가퀴로 여장(女墻)이라고도
하는데 진 시황(秦始皇)이 쌓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가리킨 것이며 홍교(虹橋)는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다리로 이 지역은 옛날 초(楚) 나라의 땅이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69]사붕(射堋) : 화살을 쏠 때 화살을 받치는 터.
[주D-070]도미(酴醾) : 다화(茶花)의 별명으로 동백꽃을 가리킨다.
[주D-071]여러……순시하고 : 이는 상대방의 덕망을 찬양함. 《후한서(後漢書)》 범방전(范滂傳)에
“마침 기주(冀州) 일대에 흉년이 들어 도적떼가 일어나므로 조정에서 그를 청조사(淸詔
使)로 삼아 순찰케 하였다. 그가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 천하를 한번 쇄신시켜 보겠
다는 뜻을 다지며 기주 지방에 당도하니 수령들이 모두 자신의 잘못을 알고 벼슬을 내놓
았다.” 하였다.
[주D-072]설아(雪兒)는……드리네 : 설아는 당 나라 이밀(李密)의 애희(愛姬). 이밀은 손님이나
벗들의 훌륭한 시문을 보면 반드시 그녀로 하여금 음률에 맞춰 노래하게 하였다.
옥녀(玉女)는 선녀(仙女)를 가리킨 것으로 설아나 옥녀는 모두 아름다운 기생을 말한
것이다.
[주D-073]사성(使星)은……들어오고 : 사성은 사자(使者)를 칭하며 한중(漢中)은 익주(益州)로
현재의 사천성(四川省). 한(漢) 나라 화제(和帝)는 즉위한 다음 사자를 사방으로 파견
하여 미복(微服)으로 다니면서 사방의 풍속과 민요를 채집해 오게 하였는데 이때 두 명의
사신이 익주에 이르러 원인 이합(李郃)의 집에 투숙해 있었다. 여름철이라서 함께 밖에
나와 하늘을 보았는데 이합은 “두 분께서 서울을 떠날 때 두 사신을 이곳에 파견한 사실
을 모르는가? 천기를 보니 두 사성이 익주의 분야(分野)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안다.”
하였다.《後漢書 李郃傳》
[주D-074]의죽(猗竹)은……보았네 : 의죽은 무성한 대나무. 기수(淇水)는 하남성(河南省) 임현(林縣)
을 지나는 물로 이 부근엔 대나무가 잘 되었다. 《시경(詩經)》위풍(衛風)기욱(淇奧)에
“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나무 무성하다.[瞻彼淇奧 菉竹猗猗]” 하였는데 덕행이
훌륭한 위 무공(衛武公)을 비유하여 찬양한 것으로 상대방의 높은 덕을 말한 것이다.
[주D-075]조정에서는……꺼리었네 : 훌륭한 사람을 등용하지 않음을 말한다. 경숙(敬叔)은 공자의
제자 남궁괄(南宮适)로 남용(南容)이라 하기도 하는데, 매우 침착하고 언행을 조심하였
으므로 공자는 그를 질서(姪壻)로 삼았으며, 환이(桓彝)는 진(晉)의 충신으로 자는 무륜
(茂倫)인데 천성이 활달하고 조감(藻鑑)이 있었다. 반적(反賊) 소 준(蘇峻)을 공격하다
가 힘이 다했으나 끝내 항복하지 않고 살해를 당하였다. 《晉書 桓彝傳》
[주D-076]도(道)를……감수하고 : 삼출(三黜)은 세 번 파면당한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노(魯)의
현대부(賢大夫) 전금(展禽 일명 유하혜(柳下惠)라고도 한다)은 사사(士師)가 되어 삼출을
당했는데, 사람들은 “왜 떠나가지 않는가?” 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도를 곧게 하여
임금을 섬긴다면 어디 간들 삼출을 당하지 않으며, 도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 하필
부모의 나라를 떠나가겠는가.” 하였다. 《論語》
[주D-077]긴 노래로……발하였네 : 오희(五噫)는 가사(歌詞) 끝에 탄식하는 뜻으로 희(噫) 자를
붙이는 것을 말한다. 후한 때의 은사였던 양홍(梁鴻)은 경사(京師)를 지나면서 오희가
(五噫歌)를 지었는데 숙종(肅宗)은 그 내용을 보고 슬퍼하여 찾으려 하였으나 그는 끝내
만나지 않았다. 《後漢書 梁鴻傳》
[주D-078]강장(絳帳) : 뿌연 비단 휘장인데, 후한의 학자 마융(馬融)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 강장
을 베풀고 교수하였으므로 학궁(學宮)을 가리키게 되었다.
[주D-079]석거(石渠)의……어찌하려나 : 한(漢) 나라 때에 소하(蕭何)가 지은 각(閣)인데, 유향
(劉向)이 일찍이 여기에서 오경(五經)을 강론하였다. 구실(衢室)은 옛날 요(堯) 임금이
백성들의 의사를 물었던 곳이라 한다. 《漢書 劉向傳》《 三國志 魏志 文帝紀》
[주D-080]물러난……않네 : 정절(靖節)은 진(晉)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의 시호(諡號).
그는 팽택 영(彭澤令)이 된 지 80여일 만에 연말이 되어 상급인 군(郡)에서 감독하는
관리가 왔는데, 의관을 정돈하고 맞이하라 하자 “어찌 시골의 젊은 애들에게 허리를
굽히겠는가.” 하고는 그날 즉시 사임하였다. 하후자(夏侯孜)는 당(唐) 나라 사람으로
자는 호학(好學).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있었는데, 당사(堂史)가 서명(署名)을 하다가
하후자의 품안에 넘어져 죽었으므로 이 때문에 파직을 당하였다.
《晉書 陶潛傳》《新唐書》
[주D-081]옥수(玉樹) : 선목(仙木)으로 사람의 고결한 풍채를 비유한다.
[주D-082]벽운하(碧雲騢)가……아닐세 : 현재에도 훌륭한 인재가 있다는 뜻. 벽운하는 송 태종
(宋太宗)의 어마(御馬)로 입가에 푸른 구름 무늬가 있었으므로 명명하였는데, 하루에
천 리를 달렸고 태종이 죽자 따라 죽었다. 수후(隨侯)는 춘추 시대 한수(漢水) 동쪽에
있던 수 나라 임금인데, 그는 명월주(明月珠)라고 불리는 진귀한 구슬을 갖고 있었으므로
수후의 구슬[隨侯之珠]이라 하여 유명하였다. 《玉壺淸話》《淮南子 汎論訓》
[주D-083]송옥(宋玉) : 전국 시대 초(楚)의 문장가.
[주D-084]왕비(王伾) : 당(唐) 나라 사람으로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지냈는데 성품이 비루하여
뇌물을 좋아하였다. 《新唐書 王伾傳》
[주D-085]홀로……흘리며 : 장강(長康)은 진(晉) 나라 고개지(顧愷之)의 자(字). 그는 일찍이
환온(桓溫)의 대사마 참군(大司馬參軍)이 되었었는데, 환온이 죽자 슬피 곡하였다.
어떤 사람이 곡한 모습을 표현하라 하자 “울음소리는 벼락이 산을 깨치는 듯하였고,
눈물은 하수를 쏟아 바다에 넣는 듯했다.” 하였다. 《晉書 顧愷之傳》
[주D-086]지금도……떠오르네 : 당 나라 원덕수(元德秀)의 자는 자지(紫芝)였는데 미목(眉目)이
뛰어나게 수려하였다. 그리하여 방관(房琯)이 “자지의 미목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명리(名利)에 대한 마음이 모두 사라지게 한다.” 하였다 《新唐書 元德秀傳》
[주D-087]미록(麋鹿)일랑……쓰시오 : 준의(鵔鸃)는 한대(漢代)에 시랑(侍郞)들이 쓰던 관(冠),
즉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지 말고 조정에 나와 벼슬하라는 뜻이다.
[주D-088]주인은……흠모했네 : 상대방의 문장과 학식을 칭찬한 말. 왕찬(王粲)은 삼국시대 위
(魏) 나라 사람으로 자는 중선(仲宣)인데, 학식이 풍부하고 문장에 뛰어나 당시의 학자
채옹(蔡邕)은 그의 재주를 훌륭하게 여겨 올 때마다 신을 거꾸로 신고 나와 마중하였다.
가규(賈逵)는 후한 사람으로 자는 경백(景伯)인데, 오경(五經)에 대한 여러 저서가 있다.
《三國志 魏志 王粲傳》《後漢書 賈逵傳》
[주D-089]복수(濮水)에서……설명하였네 : 복수는 중국 하북성(河北省) 복양현(濮陽縣)에 있는
강으로 곧 중국을 다녀왔음을 말한 것이다.
[주D-090]기회가……있네 : 좋은 때가 와서 반드시 등용된다는 뜻. 덕이 쇠한다는 것은 곧 세상이
나빠진다는 뜻이므로 여기서는 이와 반대로 좋은 세상이 옴을 말한 것이다.
[주D-091]경조(京兆)는……호련(瑚璉)이니 : 경조는 경조윤(京兆尹)으로 수도(首都)를 맡은 관직
을 말하며, 호련(瑚璉)은 종묘(宗廟)에서 쓰는 제기(祭器)로 훌륭한 인재를 비유한
것이다.
[주D-092]천수의……좌사(左思)일세 : 뛰어난 문장을 말한 것이다. 장호(張祜)는 당(唐) 나라 사람
으로 자는 승길(承吉)인데 궁사(宮詞)에 능하여 유명하였으며, 좌사는 진(晉) 나라 사람
으로 자는 태충(太沖)인데, 문장에 능하여 촉도(蜀都)ㆍ오도(吳都)ㆍ위도(魏都)에 대한
삼도부(三都賦)를 지었다. 《新唐書 張祜傳》《 晉書 左思傳》
[주D-093]한 번……썼네 : 노서(鷺序)란 백로(白鷺)가 나는데 차서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관(朝官)의 반차(班次)를 말하며, 선위(蟬緌)는 고대 갓 모양이 매미 머리와 같았다
하여 생긴 이름으로 조관(朝冠)을 가리킨다.
[주D-094]어찌……있으리 : 문(文)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무(武)에도 능하다는 뜻. 천록(天祿)은
한(漢) 나라 때 장서하던 천록각(天祿閣)을 말하며, 곡려(谷蠡)는 흉노(匈奴) 번왕(藩王)
의 봉호(封號)로 좌우로 나뉘어 있었다.
[주D-095]삼조(三俎)를……마련하여 : 삼조는 돼지[豕]ㆍ어물[魚]ㆍ포[腊]를 가리키며, 육자(六齍)
는 육자(六粢)로 서(黍)ㆍ직(稷)ㆍ도(稻)ㆍ양(粱)ㆍ맥(麥)ㆍ과(苽)를 가리키는데 모두
제수(祭需)이다
[주D-096]계주(桂酒)는……않았네 : 계주는 계화(桂花)로 빚은 술이며, 산뢰(山罍)는 하후씨
(夏后氏)의 술잔이라 하는데 산과 구름의 무늬가 있어 이렇게 이름하였다 한다.
[주D-097]저물게……하는데 : 경략(經略)이 있는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언(偃)은 한
무제(漢武帝) 때 제국(齊國)의 주보언(主父偃)을 가리킨다. 주보언이 《주역(周易)》
《춘추(春秋)》를 비롯 백가서(百家書)에 통했으나 일찍이 제(齊)ㆍ연(燕)ㆍ조(趙) 등지
에서 융숭한 대우를 받지 못하자, 위 장군(衛將軍 위청(衛靑))을 통해 무제(武帝)에게
알현(謁見)을 요청하였지만 그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직접 궐하(闕下)에서 상서(上書)
한 끝에 왕으로부터 저물녘에야 소견(召見)을 받아 국가에 대해 중대한 일을 아뢰고 나서
대번에 등용되었던 고사인데, 주보언의 모책(謀策)을 받아들여 한(漢) 나라가 크게 안정
되었다. 《漢書 卷64 主父偃傳》
[주D-098]그 누가……부르랴 : 기(祈)는 동진(東晉) 때의 은사(隱士)인 기가(祈嘉)를 가리킨다.
기가가 젊어서 청빈(淸貧)하고 학문을 좋아했는데 나이 20여 세 되었을 때 밤중에 갑자기
누가 창문에서 그를 불러 “기공빈(祈孔賓 공빈은 기가의 자) 기공빈, 빨리 숨어라 빨리
숨어라. 세상에 나가면 소득은 털끝만도 못하고 잃는 것만 태산같이 클 것이다.” 하므로
아침에 그대로 서쪽으로 도망하여 돈황(敦煌)에 가서 학사(學舍)에 들어가 글만 읽었는데,
뒤에 경전(經傳)을 널리 통하여 큰 학자가 되었고 문인(門人)이 2천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끝내 세상에 나가지 않았고, 오래 수를 누렸다. 《晉書 卷94 隱逸傳》
[주D-099]재상이……보아야 하고 : 당(唐) 나라 때 재상 영호도(令狐綯)가 모르는 고사(故事)가
있어 온정균(溫庭筠)을 찾아가 묻자, 온정균이 “그 사실이 《남화경(南華經》에 나오
는데, 《남화경》은 벽서(僻書)도 아니니, 상공(相公)께서 국정을 보는 가운데 혹 여가
가 있을 때면 꼭 고사를 열람하기 바랍니다.” 하였다.
[주D-100]벼슬이……꿈꿔야 하리 : 진(晉) 나라 때 이극(李克)이, 하늘에서 관(棺) 2개가 자기 앞
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고는 그 사실을 색담(索紞)에게 묻자, 색담이 “관(棺)이란 곧 직
(職)이니 틀림없이 누가 그대를 추천해서 벼슬이 승진하게 되겠소.” 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렇게 되었다 한다.
[주D-101]어진……받았거니 : 상수(向戍)는 춘추(春秋) 시대 송(宋)의 대부(大夫)로 일찍이 진(晉)ㆍ
초(楚)가 패(霸)를 다툴 때에 그가 전쟁을 중지할 것을 제후(諸侯)들에게 통고하여 제후
들이 그의 말을 따름으로써 천하를 안정시켰던 사람인데, 여기에 멸시를 받았다는 말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주D-102]누조(嫘祖) : 서릉씨(西陵氏)의 딸로 황제(黃帝)의 원비(元妃). 멀리 나가서 놀기를 좋아
하다가 길에서 죽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길의 신[行神]으로 높여 제(祭)를 지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103]촉군(蜀郡)의……노래하고 : 지방 수령(守令)이 선정(善政)을 하는 데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염범(廉范)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염숙도(廉叔度 숙도는 염범의 자)여, 왜 이제야 왔소. 전에는 저고리 하나도 없다가
이제는 바지가 다섯 벌이나 된다오.” 하고 그의 선정을 노래하였다.
《後漢書 卷31 廉范傳》
[주D-104]주제(朱提) : 질이 좋은 은(銀)의 이명(異名). 좋은 은이 주제현(朱提縣)에서 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105]은혜는……그립게 하고 : 밀로(密老)는 후한(後漢) 때에 밀(密) 땅의 영(令)을 지낸
탁무(卓茂)를 가리킨다. 탁무가 일찍이 밀 땅의 영이 되어 백성들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광무제(光武帝)가 조서하기를 “전 밀령(密令)
탁무야말로 지방현령으로 남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하여 명예가 천하에 으뜸이니,
천하에 중상(重賞)을 받아 마땅하다. 지금 당장 탁무를 태부(太傅)로 발탁시키고 포덕후
(褒德侯)에 봉해서 식읍삼백호(食邑三百戶)를 제수함과 동시에 그의 큰아들은 태중대부
(太中大夫)로, 둘째 아들은 낭중(郞中)으로 각각 제수하라.” 하여 크게 은총을 내렸다.
[주D-106]위엄은……복종시켰네 : 진(晉) 나라 때 왕연(王衍)의 아내 곽씨(郭氏) 부인이 성질이
고집스럽고 괴팍한데다 탐욕이 많아 무리하게 재물을 모으곤 하여, 왕연이 그를 금하려
해도 되지 않았는데, 당시 그 고을 사람인 유주 자사(幽州刺史) 이양(李陽)이 경도(京都)
에서 의협심이 많기로 유명한 사람이어서 곽씨 부인이 본디부터 두려워하던 중이었으므로
왕연이 곽씨 부인에게 “당신의 행위를 나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이양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하니, 곽씨 부인이 이 말을 듣고는 그런 짓을 못 했다는 고사
이다. 이 사실이 《진서(晉書)》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다같이 나오나 모두가
왕연의 아내에 대한 일로 되어 있으니 여기 원문과 자주(自注)에서 왕연의 이모[姨]라고
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싶다.
[주D-107]같은……하였으나 : 섶을 쌓는 데 있어 나중에 쌓는 것을 위에 올려놓듯이 나중에 벼슬한
자가 전임자보다 중용되고 전임자는 항상 미관 말직에 있는 채 중용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급암전(汲黯傳)에 “급암이 무제(武帝)에게 ‘폐하께서 군신
(群臣)을 등용하는 것이 마치 섶을 쌓는 것과 같아, 나중의 것이 맨 위로 올라가게 됩
니다.’ 했다.” 하였다.
[주D-108]조용한……의지하고 :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고 천지의 조화와 벗할 수 있는 경지에 이름
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남곽자기(南郭子綦)가 안석에
기대 앉아서 마치 그 자신조차도 잊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짓고
있었다…….” 하였다.
[주D-109]청고한……타보곤 하네 : 마음이 고상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위개(衛玠)
가 악광(樂廣)에게 꿈이 무엇인가 묻자, 악광이 “생각에서 온 것이다.” 하니, 위개가
“형신(形神)이 아무 사물을 접하지 않고 꾸는 꿈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므로 악광이
“이것은 원인[因]에서 온 것이다. 일찍이 수레를 타고 쥐구멍에 들어가서 철저(鐵杵)를
씹는 꿈을 꾸어 보지 못했다.” 하였는데, 이는 곧 아무 생각도 없고 원인도 없기 때문
이라는 데서 온 말이다. 《世說新語 文學》
[주D-110]유이(鱬鮧) : 유와 이는 모두 생선의 이름이다.
[주D-111]재주가……같네 : 지방 수령으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푼 것을 비유한 말이다.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오자(吳資)가 파군 태수(巴郡太守)로 있으면서 자주 풍년
(豐年)이 들자 사람들이 ‘새벽 바람 솔솔 불어오더니, 단비 내려 벼싹[禾苗]을 적시
누나. 우리 임금 시무를 걱정하시어, 그 덕으로 우리들은 살기 편하다오.
[習習晨風動 澍雨潤禾苗 我后恤時務 我人以優饒]’ 했다.” 하였다.
[주D-112]폐석(肺石) : 붉은 돌. 주대(周代)에 대사구(大司寇)가 이 붉은 돌을 조정에 설치해
놓고 억울한 백성들에게 거짓 없는 붉은 마음을 가지고 이 붉은 돌 위에 앉아 사실을
하소연하도록 하여 그들의 억울함을 처리해 주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113]구절판(九折坂)을 통과하였네 : 국사(國事)를 위하여 멀고 험한 지방의 수령을 지냈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때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공래현(邛崍縣)의
구절판(九折坂 공래현에 있는 언덕 이름인데 이리저리 구부러져서 매우 험난한 곳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을 순시하다가 부모가 끼쳐준 몸으로 이처럼 험난한 곳을 함부로 다니
겠느냐면서 되돌아갔는데, 뒤에 왕준(王尊)이 자사가 되어서는 이곳에 당도하여
“왕양은 효자가 되었으니 나는 충신이 되겠다.” 하고는 마부를 호령하여 말을 몰아
이곳을 통과하였다 한다.
[주D-114]건유(乾維) : 건방(乾方).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의주(義州) 분야이다.
[주D-115]모호(蝥弧)는……무시하고 : 전쟁에서 남 먼저 적을 용감하게 무찌른 것을 비유한 말이다.
모호는 춘추 시대 제후(諸侯)가 사용하던 기(旗) 이름. 춘추 시대 정백(鄭伯)이 허(許)를
칠 적에 영고숙이 정백의 기인 모호를 가지고 맨 먼저 적의 성 위에 올라갔었다.
《春秋左傳 隱公11年》
[주D-116]시취(詩趣)는……같이하고 : 시(詩)를 지을 때는 붓[筆]을 가지고 한다는 뜻이다.
모중령(毛中令)은 곧 붓을 지칭하는 말이다. 《韓昌黎集 毛穎傳》
[주D-117]편유(遍遊)할 땐……함께 하네 : 사방에 놀러다닐 때는 신[鞋]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혁화는 가죽신을 가리킨 말이다. 《韓昌黎集 下邳侯革華傳》
[주D-118]노자(鸕鶿) : 술그릇을 말한다. 금모(金母)가 여러 신선과 적수(赤水)에 모여 잔치할 때
벽금앵무배(碧金鸚鵡杯)와 백옥노자표(白玉鸕鶿杓)가 있었는데, 앵무배가 비면 노자표가
저절로 술을 따르고 술을 마시려 하면 앵무배가 저절로 들렸다.
[주D-119]좁은……같고 : 조회(曹鄶)는 춘추 시대 두 나라 이름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9에 “계찰(季札)이 회(鄶)ㆍ조(曹) 두 나라의 가요에 대해서는 평론이
없었다.” 한 주에 “계찰이 두 나라의 가요를 듣고 너무나도 미약하고 보잘것이 없어서
평론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였다.
[주D-120]두기(斗箕) : 두 별의 이름. 이 두 별의 사이는 은하(銀河)가 가로놓였으므로, 간격이
있어 원활하지 못한 것의 비유.
[주D-121]녹수(淥水) : 악부(樂府) 금곡(琴曲)의 가사 이름.
[주D-122]가도(賈島)는……탔고 : 가도는 당(唐) 나라 때의 시인(詩人). 처음에 중이 되었다가
뒤에 환속(還俗)하였다. 그는 한창 시상(詩想)에 잠겼을 적에는 아무리 공경(公卿) 같은
귀인을 만나도 알지 못하고 지나치고는 하였는데, 하루는 경조윤(京兆尹)을 길에서 만났
는데도 나귀에 탄 채 피하지 않았다가 책망을 듣고 한참 만에야 풀려나기도 하였다.
《新唐書 卷176 賈島傳》
[주D-123]환공(桓公)은……않았으며 : 제환공(齊桓公)이 서정(西征)하는 길에 말을 매놓고서
태항산(太行山)을 넘어 비이(卑耳)의 오랑캐와 함께 진하(秦夏)를 정복했을 때의 일을
말한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124]전사(篆沙) : 모래 위의 전자(篆字). 모래 위를 밟아다녀서 난 발자국이 마치 전자
모양으로 된 형태를 말한 듯하다.
[주D-125]망호(網戶) : 그물처럼 조각된 무늬 지게. 《금루자(金樓子)》 잡기(雜記)에 “공사
(龔舍)가 초왕(楚王)과 함께 미앙궁(未央宮)에서 자게 되었는데, 크고 빨간 거미가 쳐
놓은 그물에 벌레들이 걸려들어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고 ‘벼슬은 곧 사람의 그물이다.’
탄식하고 벼슬에서 물러나자, 사람들이 그를 지주은(蜘蛛隱)이라 했다.” 하였다.
[주D-126]연(燕)에서 높인 곽외(郭隗) : 곽외는 전국 시대 연(燕) 나라 사람. 소왕(昭王)이 천하의
어진이들을 초빙하려고 할 때 곽외가 “우선 나 같은 사람부터 어진이로 초빙해 준다면
어찌 나보다 더 어진이가 저절로 몰려들지 않겠는가.” 하여, 맨 먼저 스승의 대우를
받았다.
[주D-127]송(宋)에서 상 준 이반(耏班) : 이반은 춘추 시대 송 나라 사람. 수만(鄋瞞)이 송을
쳐들어왔을 때 그가 사도 황보(司徒皇父)의 어자(御者)가 되어 적을 사로잡게 되자,
송공(宋公)이 문(門 관문(關門)을 말하는데, 이 관문을 곽외에게 주어 거기에서 나온
세금을 곽외의 소유로 하였다)을 상(賞)으로 주었다. 《左傳 文公 11年》
[주D-128]소악(韶樂)을……잊고 : 소악은 순(舜) 임금의 음악.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공자가 제(齊)에서 소악을 듣고는 고기맛조차 잊어버리고 ‘이처럼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했다.” 하였다.
[주D-129]상송 : 《시경(詩經)》 삼송(三頌 주(周)ㆍ노(魯)ㆍ상(商))의 하나. 이는 은(殷) 나라
때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주D-130]지장(紙帳) : 종이로 만든 모기장.
[주D-131]하의(荷衣) : 연(蓮)잎으로 엮어 만든 은자(隱者)의 옷, 《초사(楚辭)》이소경(離騷經)
에 “기하(芰荷)를 재단하여 옷을 만든다.” 하였다.
[주D-132]길가에는……놓이고 : 도추의 성은 주(朱), 당 나라 때 거사(居士). 그는 천성이 담박
하여 산 속 오막살이에 살면서 항상 미투리를 만들어 길가에 놓아두면, 지나는 사람들이
“주 거사의 신이다.” 하고 쌀을 대신 그 자리에 갖다 놓고 신을 가져갔다 한다.
《新唐書 卷196 朱桃椎傳》
[주D-133]뜨락에는……없다네 : 공우(貢禹)는 한(漢) 나라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뒤에 간의
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낸 사람이나, 여기서 말하는 신에 대한 일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주D-134]손경(孫敬)의 문이 닫혔고 : 손경은 한 나라 사람. 문을 닫고 글을 읽다가 졸음이 오면
상투를 천장에 매어달기까지 했는데, 문을 닫고 공부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를
폐호 선생(閉戶先生)이라 일컬었다.
[주D-135]공야장(公冶長)의……구류(拘留) :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그가 아무리
구류중에 있지만 그의 죄는 아니다.” 하였다.
[주D-136]양춘(陽春)의……부르는 듯 : 양춘은 초(楚)의 고상한 사곡(詞曲) 이름. 송옥(宋玉)이
초왕에게 “한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양춘과 백설(白雪) 같은 고상한 곡조를 부르니
화답할 자가 겨우 수십 명뿐이었습니다.” 하였다.
[주D-137]수원(睢園) : 한(漢) 나라 제왕(諸王)인 양효왕(梁孝王)이 빈객(賓客)들을 맞이하던
토원(兔園)을 말한다.
[주D-138]봉 날개에……입었고 : 이는 출세를 뜻하는 말이다. 《후환서(後漢書)》광무기(光武紀)에
“지금 여러 사람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대왕을 따르는 것은 용의 비늘을 더위잡고 봉의
날개에 붙어 그 뜻한 바를 이루려 함입니다.” 하였다.
[주D-139]손님을……임방(任昉)이요 : 양(梁) 나라 임방은 시(詩)ㆍ문(文)ㆍ필(筆)이 모두 당세에
뛰어난 재사로 이름 있는 선비들과 교유하기를 좋아하였는데, 누구나 그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은 다 높이 발탁되기 때문에 수많은 선비들이 다 그를 좋아하여 따랐으므로 좌석에
손님들이 항상 수십 명씩이나 있었다. 《梁書 卷14 任昉傳》
[주D-140]장씨(張氏)의……품제(品題)하고 : 장정견(張正見)의 시에 “맑은 시내 천 길이나 험한데
삼양에 섬약한 버들이 드리웠네.[千仞淸溪險 三陽弱柳垂]” 하였다.
[주D-141]반씨(潘氏)의……자랑하네 : 진(晉) 나라 때 문장가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좋은 곳에 거소(居所) 잡아 집을 짓고 못을 만들면……호유[胡荽 향초 이름]가 향내를
풍기리라.” 하였다. 《晉書 卷五十五 潘岳傳》
[주D-142]삼색리(三色李) : 진(晉) 나라 때 부현(傅玄)의 이부(李賦)에 “……방릉(房陵)의 표청리
(縹靑李 옥색 오얏)는 한 나무에 세 가지 색깔의 오얏이 열리고 맛과 이름이 각기 다르다.”
하였다.
[주D-143]구광지(九光芝) : 영지(靈芝)의 이름. 《포박자(抱朴子)》에 “구광지는 석지(石芝)의
일종으로, 임수(臨水)의 높은 산 절벽 틈에서 나는데, 모양이 마치 주발처럼 생겼고
크기는 한 자를 넘지 않는다.” 하였다.
[주D-144]회화군(懷化郡)의 먹 : 좋은 먹을 지칭하는 말이다. 고미(顧微)의 광주기(廣州記)에
“회화군에서 해자를 파서 많은 석묵(石墨)을 캐내는데 먹이 매우 좋아서 글씨를 쓰기에
알맞다.” 하였다.
[주D-145]정주(定州)의 자기[瓷] : 정주는 곧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정현(定縣)을 말하는데 송대
(宋代)에 이 고을 사람들이 만든 자기가 아주 유명하여 세상에서 정요(定窯)라고 일컫기
까지 하였다.
[주D-146]곡구요(谷口謠) : 한(漢) 나라 고사(高士) 정자진(鄭子眞)이 곡구현(谷口縣)에 집을 짓고
수도하면서 지은 무언(無言)의 노래를 이름.
[주D-147]안건(岸巾) : 두건을 뒤로 제껴 써서 이마가 훤히 드러나게 하는 것. 전하여 예법을 무시
하고 아무에게나 친근하게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이설에는 미천한 자가 쓰는 두건이라
고도 한다.
[주D-148]납기(蠟屐) : 밀을 발라서 광택이 나는 나막신. 《진서(晉書)》 완부전(阮孚傳)에 “그는
납기를 너무 좋아하고 조약(祖約)은 재물을 너무 좋아하여 모두 흠이 되나, 그 중에도 두
사람의 우열(優劣)을 오랫동안 판가름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조약을 찾아
가니 마침 금전을 계산하다가 날쌔게 뒤로 치우고는 그 표정이 매우 불안해하였고, 완부
를 찾아가니 마침 납기를 챙겨 신고는 ‘나의 일생에 몇 켤레나 더 신게 될는지 모르겠다.’
하고 혼자서 탄식하는 그 표정이 매우 차분하였으므로 두 사람의 승부를 비로소 가려냈다.”
하였다.
[주D-149]구의산(九疑山) :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주명(朱明)ㆍ석성(石城)ㆍ
석루(石樓)ㆍ아황(娥皇)ㆍ순원(舜源)ㆍ여영(女英)ㆍ소소(蕭韶)ㆍ계림(桂林)ㆍ자림(梓林)
등 아홉 봉우리의 산으로 모두가 모양이 같이 생겨서 보는 사람이 누구나 어느 봉이 어느
봉인지 어리둥절하여 의심을 내게 되므로 구의(九疑)라 이름했다 한다.
[주D-150]두약(杜若) : 향초(香草)의 이름. 《초사(楚辭)》 구가(九歌) 상군(湘君)에 “저 방주
(芳洲)에서 두약을 캐노라.” 하였다.
[주D-151]복양(濮陽)에……숭상하고 : 춘추 시대 장주(莊周)가 복수(濮水 복양현에 있는 강)에서
낚시질할 때, 초왕(楚王)이 사신을 보내어 장주에게 초 나라 정승이 되어달라고 하자,
장주가 돌아본 체도 않으면서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살아서 저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니, 나 역시 벼슬 자리에
속박되지 않고 산 거북처럼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며 살련다.” 하였다.
《莊子 秋水》
[주D-152]배가 부르도록[便腹] : 학식(學識)이 많음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변소(邊韶)
가 문장(文章)으로 유명하였는데 한번은 거짓 낮잠을 자는 체하고 있자 제자가 혼잣말로
“변 효선(邊孝先 효선은 변소의 자)은 배는 잔뜩 부른데다 글읽기는 싫어하고 잠만 자려
는구나.” 하니, 변소가 대응하기를 “잔뜩 부른 배는 곧 오경(五經) 상자이고, 자려고
하는 것은 경사(經事)를 사색함이다.” 하였다. 《後漢書 卷80 邊韶傳》
[주D-153]박(狛) : 짐승 이름. 이리 비슷하다고 한다.
[주D-154]스승이라면……높이고 : 맹희(孟喜)는 전한(前漢) 때의 유학자(儒學者). 전왕손(田王孫)
에게서 《주역(周易)》을 배웠는데, 뒤에 ‘스승 전생(田生)이 죽을 때에 오로지 자기에
게만 학문을 전수(傳授)했다.’고 말하여 유자(儒者)들로부터 많은 선망(羨望)을 받았다.
《前漢書 卷88 儒林傳》
[주D-155]형이라면……섬기네 : 승미(僧彌)는 진(晉) 나라 때 왕민(王珉)의 소자(小字). 왕민이
어려서 재주가 뛰어나 자기 형인 왕순(王珣)보다 이름이 높았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법호(法護 왕순의 소자)도 훌륭하기는 하지만, 승미의 형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하였다.
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三百韻詩 幷序
濮陽吳公世文。自北使見劾。入洛閑居。一日。與金東閣瑞廷。置酒鄭員外文甲林園。予訪之預飮坐末。
吳公誇予曰。古今詩集中。無有押三百韻詩者。予嘗著三百二韻詩。呈誥院諸學士。子豈和之耶。因出其
詩示之。是日還家。次韻賡和。奉寄吳公。兼簡鄭員外,金東閣。
東都古樂國。宮殿有遺基。新羅第五十六王金傅降我大祖。大祖妻以長女。改新羅爲慶州。爲公食邑。
吳公自言新羅王外孫。曾寓居東京。故論東京事。靑史窺陳迹。淳風記昔時。晉江初渡馬。周洛始鑽龜。
洛。周之東京。故比之。渤海環爲沼。扶桑繚作籬。千年開際會。新羅記云。膺一千年之業。新羅㮲記。
九百九十九年。累聖享雍煕。肇制宮懸樂。初陳蕝纂儀。儉勤師大夏。荒怪黜因墀。拾遺記曰。因墀國獻
五足獸。如師子。蘓詩曰。荒怪還須問子年。國士登韓信。朝臣重孔戣。恩榮同雨霈。號令劇雷馳。冠帶
風雲盛。謳歌日月遲。誰成平子賦。平子作東京賦故云。堪賭孟堅辭。孟堅作東都賦。經野當星紀。擾편
001甿循土宜。周禮。櫌편002甿以土宜。旣以東京比周洛。故云。乾坤歸黍籥。造化入爐槌。嚼鑯忠臣膽。
聯珠墨客詩。魚鱗卿相宅。螭首帝王碑。大學迎三老。鴻臚受四夷。樓暗巢鳳閣。官認紀龍司。翼翼呀雙
闕。泱泱闢大池。新羅記。築碧骨池。又於宮開大池。仙眞留異迹。新羅有仙郞事蹟。賢聖揭宏規。犬首
侔東岱。新羅記。有犬首祠。東都賦云。勤岱祈嵩。蛟川倣左伊。三國史。東京有蛟川。東京賦云。左伊
右瀍。茹連多衆彥。石畫秘深惟。鸑鷟爭騈翼。驊騮競接綏。珥蟬皆貴胄。批鳳亦淸姿。覆被應欺豹。牽
裾或慕毗。遒文誇絶壁。神略較靈蓍。仁範笙篁雅。弘儒黼黻披。謂朴仁範,薛聦。辭淸長笛嘏。意逸幅
巾咨。競躡班聯緊。誰辭政事埤。孤雲金馬客。崔致遠字孤雲。入唐。一擧及第。同年顧雲贈詩曰。一箭
射破金門策。東海玉林枝。射策鳴中國。馳聲震四陲。高芬繁肹蠁。遺韻遠委蛇。西京賦云。聲淸暢而委
蛇。注云。餘聲詰曲也。世欲終炎漢。謂新羅季代。賢多匿默台 周書曰。治峯本姓默台。避時難改焉。
廣韻。支字韻台字。注云。姓也。出姓苑。寰區歸統壹。古國產英奇。夫子尤鍾秀。淸時特挺姿。九經偏
嗜易。三寶最先慈。制作平呑脁。哇淫一掃摛。早騰千里足。曾備四時皮。鯁正李和鼎。風流袁孝尼。詩
高成七步。孝過問三笞。白玉元難汚。懸衡豈易欺。骨淸雙鶴髓。文麗水蠶絲。水蠶異氷蠶。後學螟蛉化。
諸儒鳥雀隨。公嘗集諸生敎授。濯纓承異睠。頮面奏新詞。公曾爲翰林。抗志曾高峭。低顔肯哫訾。自珍紉
佩蕙。難掩脫囊錐。步緯該金樻。公兼通陰陽。唐藝文志。有金樻經三卷。精神撿玉匙。黃庭經云。結珠
固精養神根。玉匙金鑰常堅完。公亦通道家故云。句吳玄系遠。大伯素風垂。海內唯方朔。關東獨魯丕。
短編嘲踸踔。古篆辨蠉蚑。師道肩韓愈。時名揖庾羲。再乘東去馹。三駕北征轙。壯觀誇幽薊。高遊繼虢
郿。薤盂初作守。薏苡孰興疑。理叶人歌政。徵期帝受釐。土風猶帶羯。邊俗例如羆。靑犢何勞剪。羶戎
尙可縻。威聲加絶塞。忠信質靈祇。巨鼈那游井。飛龍旋躍陂。言公之徵還。才英登陸厥。文翰委微之。
公自守郡還。復爲翰林。銀漏聲霑滴。花甎影陸離。制詞書繭紙。宣饌飫瓊糜。微毒遭蜂蠆。公在翰林。
以事克彈免官。多言任鷾鴯。卷舒懷伯玉。著述慕崔琦。吾道寧終否。斯文要復施。閑居雖效岳。古事必
咨岐。洞冥記曰。孟岐。淸河逸人也。年可七百歲。語及周初時事。貶斥名彌著。陵兢志莫禔。果承申命
密。更荷渥光熹。公復爲翰林。風翼幾垂退。蘭筋又見羈。聲詩皆有寓。國病尙堪理。妙藝標三絶。淸修
去八疵。文章兼飾吏。正直合膺禧。薄宦拘繩墨。公才稱鼎。雪霜侵鬢髮。江海吼䏏脾。家有生塵甑。門
多擊䡺輜。儒功文塚在。忠膽劒鋒知。已結蕭公綬。猶垂董氏帷。淸歡陪柏殿。樂天註云栢殿行陪賞。慶
日趁天祺。金坡遺事曰。翰林每遇天慶天祺節。預先一月。降入馬遞云云。御筆登遷拜。朝儀省闕遺。公
始拜批於閣門。天威纔咫尺。雨澤洽霑滋。傴僂端容止。矜莊愼唾洟。禮記云。不敢唾洟。自稱居祿隱。
還笑著書癡。忽受言綸降。光承使節持。今春爲雲中道監倉使。虎鞍揮電策。鼉鼓舊雷椎。代郡麾驍騎。
幷州選壯兒。菈편003林據편004狒猬。西京賦云。鼻赤象據편005狒猬。梗林爲之靡菈편006。擿漻䍡鯤鮞。
西京賦云。擿漻澥設䍡樔鯤鮞。注云。䍡。網也。鯤鮞。小魚也。旨味宜春酒。寒羞大谷梨。土聞生䱯鰼。
山海經北山注云。茈湖多䱯鰼魚。時記韻鶊鸝。命服雖披紫。儒冠不改緇。鳳觴纖手奉。龍管絳脣吹。畫
戟森庭陛。香風徹道歧。年祥占格澤。天文志云。格澤見則不耕而穫也。軍事驗觜觿。天文志。觜觿三軍
事。明則軍儲盈。雉堞連秦塞。虹橋矗楚圯。射堋時或峙。妓樂日相追。春水浮鸂。淸沙立鷺鷥。芳園開
荳蔻。露架拆酴醾。怪石如癭。盤松曲似䟸。脚曲也。列城行攬轡。虎衛凜交鈹。映日旗羆䟴。隨風弁鵲
玻。仙倡馳白象。介士騁蒼騅。鮮水觀滮。源山歷險巇。山海經云。背北鮮之山。又云。北至源山。騰身
捫去鶴。游目送翩鵻。戱索高連漢。驚毬逬越壝。時淸唯燕喜。訟息好遊嬉。摶虎專詞賦。成鳧鬪奕棋。
雪兒歌律句。玉女獻琛褵。已分親羅綺。從敎惹粉脂。使星還入漢。猗竹佇瞻淇。紈扇中捐棄。金刀莫贈
貽。四愁詩云。美人贈我金錯刀。注云。喩君榮我以爵祿。朝廷踈敬叔。權貴忌桓彝。直道甘三黜。長謠
發五噫。怨尤心豈敢。賢達古如斯。一室耽閑適。高門笑伺窺。白頭傭作尉。絳帳樂爲師。公嘗敎授。久
欠石渠講。何如衢室諮。解嘲聊自慰。答難亦云罷。樂可忘憂止。歌何歎已而。一生窮到骨。萬事笑持頤。
月樹空驚鵲。雷天尙伏螭。去非陶靖節。罷異夏侯孜。令弟仙驂遠。公弟世才字德全。爲名儒。今卽世。
君家玉樹虧。我曾同意氣。予與德全。爲忘年交。才豈角雄雌。孔戶窺彌奧。曺墻入愈罙。碧雲何獨趙。
明月不須隋。共怯當鋒刃。其能搖鍦。辭堪驅宋玉。意欲剪王伾。逝矣乘風久。嗟哉斲堊誰。見詩增感慨。
懷舊自悽。獨洒長康淚。猶思德秀眉。唯公承鷟薦。公祖及考皆登第。爲名儒。公繼之。唐張鷟登進士第。
孫薦有文辭。充史官。子又新第進士。孫讀又進士第。故云云。當世作駰,僖。後漢孔僖與孫駰爲友。梁
郁曰云云。駰,僖不對。莫便隨麋鹿。須期戴鵔鸃。流光憐分寸。外物視銖錙。相訪曾交臂。淸吟自撚髭。
慚將栖薈羽。仰觸刺天鬐。主喜迎王粲。予深慕賈逵。賈逵通五經。學者羨慕。幽居誇釣濮。奇迹說遊㶟。
公旣自北入洛。予訪之。類篇云。㶟。鴈門水名也。恰有淸風襲。元無素議玼。唐書。崔弘禮爲兵部尙書。
晚務多積。素議玼之。橫彈翻見中。貧病却難醫。莫歎辰安在。端知德不衰。那隨鳧唼藻。會與鳳含蕤。
京兆眞瑚璉。此言金東閣。王郞愧桷榱。晉王鑒有榱桷之用。坦懷無畛域。深識剖毫釐。千首詩張祐三都
賦左思。一鳴登鷺序。新沐振蟬緌。豈但校天祿。猶堪羈谷蠡。曩陪淸廟寢。公曾爲大廟令。肅奉紫壇祠。
摩扢陳三俎。擩燔辨六齍。磑磑芳已積。漢書。美芳磑磑。注云。磑磑。崇積也。鬻鬻意逾祗。音鬻送神
敬懼也。桂酒淸如潑。山罍滿不欹。腹褰張猛。角握省豐犧。夙夜唯供職。蒸嘗但潔粢。栗齋循典祀。譎
詭黜淫魑。卉汩臚精信。漢書。卉汩臚。注云。卉汩。速也。臚。陳也。綏將降福禠。須知暮召偃。誰肯
夜呼祈。拜相應看字。移官早夢尸。賢猶凌向戍。事豈聞陳寅。左傳。宋樂祈告其宰陳寅曰云云。寅知晉
政多門。日佳必有難云云。寅音怡。柳韻支字韻。寅字共出陳寅。景行高山仰。長材大廈施。接人多款款。
友直亦偲偲。劇郡尋煩敝。公又爲安邊守。歸程遠問。軺䡕行轞轞。騂驈走駓駓。木末爭猿捷편007。峯
頭趁鳥奞。鷺濤奔瀇瀁。鼇岫杳㟪。繞浦煙村暗。沿溪石棧逶。卸鞍遊散誕。援筆舞瀏漓。渴飮寒泉液。
疑含凍醴澌。幽禽窺睥睨。走獸奮髬髵。繃絡攀蘿薜。橚槮過柞桵。類篇云。棫。柞也桵也。西京賦云。
梓棫橚槮。注云。橚槮。繁蔚貌。下車開郡閣。擁劒課邊陴。童戱猶馴雉。軍蒐競獻貔。卦分畦块圠。星
散屋逶迤。廨館堪方軌。賓筵擬履齊。錢釭明爍爍。竿衽轉僛僛。銀鏤凝蓴菜。金鱗泛黍酏。豐廚炮鵽鷃。
珍膳味鮫鯔。軒嚳看如虱。龜蒙詩云。仰瞻三皇道。蟻虱在宇宙。陳隋笑若蚳。皮日休詩云。後至陳隋世
云云。大細如蚳䖶。酷憐唯宋。射遞盡吳姬。蜀郡民歌袴。金陵妓奉匜。陶穀事。好山高赤石。奇貨富朱
提。簿領長堆案。朝衣少襯椸。恩能懷密老。威已懾王姨。王夷甫。姨也。事見世說。已罷割雞手。還栖
傾鳳椅。輕裝廻沃轡。新服拂凉絺。歷閱溪山勝。都忘道里疲。魂勞懸貝闕。耳想聽龍篪。尙欲徵三穗。
蔡茂爲廣漢守。夢三穗。公亦自安邊守代還。故比之。方圖戴九。漢書云一品九。歸來戢羽翮。俯仰改騮
驪。舊列薪猶積。公以闔門剩員。未出官故云。孤忠石不移。端居長隱几。淸夢尙乘軧。書圃誰爲伴。仁
隣孰與比。一錢當不蓄。萬卷本何裨。幅被勝狐貉。盤蔬當鮧。攄懷唯酩酊。知命敢嗚戱。冠櫑初投謁。
門墻不見麾。予晉訪公宅。惘然迷界限。怳未測津涯。霜若碧天遠。露寒殷葉萎。夕陽嗟暮矣。凉夜問何
其。扼腕俱相笑。論情頗自悲。草堂初飮水。塵釜晚燃萁。避謗雖緘口。逢時必壯頄。威儀誠棣棣。闒茸
謾嘻嘻。我愛榮陽秀。此鄭員外文甲。才如巴郡貲。見松陵集。栢臺彈吏懦。公曾爲御史。肺石活民羸。
今公爲刑部員外。周禮。大司寇以肺石達窮民之冤。已歷三關塞。齊志義陽有三關塞。曾駈九折阺。䟽
書應脫腕。草檄僅生眡。灊縣嘗觀霍。琅邪亦渡濰。歲行臨尾次。王事赴乾維。公癸丑歲。爲杖冬義州分
道。朅入龍灣鎭。義州別名也。行侵鴨綠湄。軍容看仡仡。胡眼笑睢睢。左衽猶旁午。中心尙忸怩。家皆
藏劒槊。人罕用鎡錤。始使生榛地。渾爲聚笠甾。文選詩云。籉笠聚東甾。蝥弧欺考叔。鯨賦壯崔倕。劉
禹錫崔倕碑文云。戎羯猾夏。王師出征。倕乃作伐鯨鯢賦上獻。飛輓勞何憚。澄淸志不隳。芳晨開宴衎。
哀曲感孀嫠。吟共毛中令。遊煩筆下邳。何須行劫劫。暫可息騤騤。江上停歸旆。舟中命別巵。岫眉晴脈
脈。波練靜漪漪。過鴈飛驚棹。潛龜伏負坻。思玄賦云伏靈龜以負坻。霧濃迷遠島。水落見空汦。草色連
迢遞。湖光接渺瀰。林猑聲嗝。沙鳥羽襂襹。錦碎叉紅鯉。萍浮釣白魾。崔豹古今注。魾魚好群浮水上。
若萍。名白魾。華筵鋪玳瑁。寶杓送鸕鷀。坐到三竿日。狂傾一石甀。昔何榮赫煽。今反退嚘咿。公今免
官。公輩皆如此。皇天亦似私。嗟予生薄命。浪迹幾多朞。仙李徒攀託。與老子同姓。蘧廬暫寓羈。自猶
慙蹇短。誰忍飾顴。陋愧如鄶。名知似斗箕。頃逃雲水窟。高避網羅危。燠室經寒候。涼臺禦暑曦。傍墻
培棗栗。匝地種桑桋。類篇。桋亦桑也。樹小而條長。玉羽馴他鶴。莎鞦射却鶅。弄琴彈淥水。琢句覓淸
琪。綠竹環階砌。靑松蔭梠㮰。景福賦注云。㮰梠。謂連簷木也。剝苔新廢井。墾土理荒菑。穴伏梢麕子。
山僵蹂虎屍。幽栖難奈久。出試見他辴。予頃寓居北山。自號白雲居士。更欲依諸葛。何妨薦費褘。葛亮
薦費褘。但聞天子聖。唯重巨儒耆。剪拂徒勞爾。駑頑亮若兹。無緣離釣築。何計脫蓬茨。玉蘊常藏櫝。
珠潜敢潤碕。吳都賦云。赬丹明璣云云。碕岸爲不枯。林木爲之閏凟편008。生涯何落魄。心事好參差。賈
島驢恒跨。桓公馬未騎。篆沙羅鳥雀。網戶對蛛蜘。何羨燕尊隗。何期宋賞耏。京塵工化素。世路劇彎崎。
自笑詩千紙。難償市一劑。韶聲忘嗜味。商頌莫憂飢。愛酒緡錢盡。無薪牡木炊。靑春▣▣▣。白日避陰
葵。紙帳唯愁裂。荷衣不用紕。看書雙眼損。多病一身㾨。渴把柸濡口。行將杖拄肢。逍遙高漆吏。伏竄
吊湘纍。路置桃椎屩。庭無貢禹綦。人雖譏放曠。我本恥嚅㖇。觸地生矛戟。渾身帶蒺䔧。數間初卜宅。
一褐自安卑。稚子呼麤糲。山妻欠羃䍦。唐車服志曰。婦人施羃䍦以蔽身。常關孫敬戶。如在冶長縲。憶
昨尋三老。移時遣百罹。陽春嘉唱郢。繢綵譬遊濉。附翼方欣覿。揚眉各自怡。繞園芟草莽。掃地剪榛椔。
唐書云。椔翳榛莽。又云。椔剪宗支。林菓高難摘。池鱗俯可麗。鄭公林園兼有池塘 餦餭何讓窡。臛臇
不辭攲。以著取物曰欹。愛客皆任昉。推賢盡宋畸。前漢元馮翊宋畸。薦黃霸賢良。張溪題弱柳。潘圃詫
芳荽。颺綠還憐蒜。抽黃始見蓶。蓶似鳥韭而黃。已移三色李。將種九光芝。石井絙繩索。山齋峙柱榰。
盃籌三百計。斗酒十千釃。代奏醙兼醑。交斟酎雜醨。濡毫懷化墨。嘗荈定州瓷。已許來函杖。何曾怒擧欙。
晉書。王衍因宴集。爲人所怒。擧欙擲面。幽情高谷口。遠目極峩。古木蒼苔澁。高楸碧葛虆。岸巾同踞
石。蠟屐更升岯。盥漱臨泉氿。徘徊拂樹㯅。木枝下交曰㯅。林深餘宿靄。洞密聚曾颸。幸共傾千日。何
嗟對九疑。幽香尋杜若。俗嗜屛餳飴。要極歡情耳。何拘末禮爲。乍如魚得水。退作鳥黏黐。夜臥唯莞葦。
朝飧只蕨藄。緖言難接耳。思淚謾成眵。飢鼠空窺案。寒鷄已上塒。厲風嚴朔漠。反炤指崦嵫。久欲成勦
體。鍾記室詩評曰。文體勦靜。唯憂被詅嗤。靑箱雜記云。文拙而好刻石者。謂之詅嗤。潛心彌眑眑。
索句益孳孳。未復同君樂。那堪使我疧。濮陽超世尙。履道結茅期。吳公語予曰。欲於家園。結一茅堂。
與予計論經書。自樂天居履道里。出處知誰與。攀援獨我推。飮將同綠蟻。食亦共蹲鴟。耽學期便腹。評
詩到擘肌。洪爐容利鈍。明鏡納姸媸。獸傅重箋狛。公作毛甲鱗三蟲詩。山海經云。南山獸多狛。注云云。
蟲篇細問雖。廣韻云。雖。蟲名。似蜥蜴而小。公旣作群蟲詩故云。師傅尊孟喜。兄事擬僧彌。强自呈蕪
拙。多慙側曄猗。
跋尾
吳公之詩。皆挾古事。又欲觀予押强韻處。俾皆挾注。予恐後人譏謗。故皆删去之。唯存略注。
[편-001]擾 : 耰
[편-002]櫌 : 耰
[편-003]菈 : 拉
[편-004]據 : 摣
[편-005]據 : 摣
[편-006]菈 : 拉
[편-007]捷 : 棲
[편-008]閏凟 : 潤瀆
○옥병(玉甁)을 꿈꾸다 병서(幷序)
꿈속에 누가 청옥(靑玉)으로 된 연적(硯滴), 즉 조그만 병을 나에게 주기에 두들겨 보니 소리가
났다. 아래는 둥글고 위는 뾰족한 모양에 매우 좁은 두 개의 구멍이 있었는데, 다시 보니 그
구멍이 없어졌다. 깨어나 이상히 여기며 시를 지어 풀이한다.
꿈속에 옥병 하나 얻으니 / 夢中得玉甁
녹색 광채 눈이 부시었네 / 綠瑩光鑑地
두들기니 쟁하는 소리 나고 / 扣之鏗有聲
정밀하여 물도 담을 만한데 / 緻潤宜貯水
그 물을 벼루에 쏟으면 / 剩將添硯波
천 폭의 시를 쓸 수 있었네 / 快作詩千紙
신기한 물건이 허깨비와 같고 / 神物喜幻化
하늘의 조화가 아이들 장난감도 같아 / 天工好兒戲
입을 오므렸을 때는 / 脗然翻閉口
한 방울 물도 없을 것 같다가 / 不受一滴泚
마치 신령스런 바위가 벌어져 / 有如仙石開
파란 석수(石髓)가 흘러나오듯 하고 / 罅縫流淸髓
갑자기 다시 오므러들면 / 須叟復堅合
손가락 하나도 낄 수 없었네 / 不許人容指
혼돈이 일곱 구멍을 얻고는 / 混沌得七竅
이레 만에 죽고 말았는데 / 七日乃見死
성난 바람이 여러 구멍에서 나오고 / 怒風號衆穴
온갖 소란이 이로부터 일어났네 / 萬擾從此起
박을 뚫는 것은 굴곡의 걱정이요 / 鑽瓠憂屈轂
구슬을 꿴 것은 공자의 액운일세 / 穿珠厄夫子
모든 물건의 가치는 온전한 데 있는 법 / 凡物貴其全
파헤집어 뚫는 것이 도리어 누만 되므로 / 刳鑿反爲累
형체와 신기(神氣)가 온전해야 한다는 진리를 / 形全與神全
저 칠원리에게 물어보련다 / 要問漆園吏
[주D-001]혼돈(混沌)이……이레 만에 죽고 :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에 “남해제(南海帝)
숙(儵)과 북해제(北海帝) 홀(忽)이 중앙제(中央帝) 혼돈(渾沌)의 후한 대우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다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하는데 혼돈만이 없으니
한번 시험해 보자.’ 하고, 하루에 구멍 하나씩 뚫어 이레 만에 구멍 일곱을 뚫었는데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 하였다.
[주D-002]박을 뚫는 것[鑽瓠]은……걱정이요 :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外儲說左)에
“송 나라 사람 굴곡(屈穀)이 제(齊)의 거사(居士) 전중(田仲)을 찾아가 ‘선생은 천성이
고결하여 남의 신세는 일체 지지 않는다고 하니, 내가 돌처럼 단단하고 또 워낙 두꺼워
구멍을 뚫을 수 없는 박[瓠]을 드리겠다.’ 하니, 전중이 ‘박이란 쓸모가 있어야 하는데
그처럼 물건을 담는 그릇도, 술을 마시는 표주박도 만들 수 없는 박은 나에게 필요치
않다.’ 하자 굴곡이 ‘그럼 나도 일찌감치 내버리겠다.’ 했다.” 하였다.
[주D-003]구슬을 꿴 것[穿珠]은……액운일세 : 공자(孔子)가 진채(陳蔡)에서 재액(災厄)을 당할
적에 구곡주(九曲珠 아홉 굽이로 꼬불꼬불하게 구멍이 뚫린 구슬)에다 실을 꿰게 되었
는데, 꿰는 방법을 몰라 어찌할 줄 모르던 차에 어떤 여자가 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자 공자가 그제야 깨닫고, 곧 개미 허리에 실을 묶은 다음 실에다 꿀밀[蜜]을 발라서
꿰었다 한다. 《祖庭事苑》
[주D-004]칠원리(漆園吏) : 장자(莊子)를 말한다. 장자가 일찍이 몽(蒙)이란 땅에서 칠원(漆園
옻나무를 심는 밭)의 벼슬아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史記 老莊傳》
夢玉甁 幷序
夜夢。有人以靑玉硯滴小甁授予。扣之有聲。下圓而上尖。有兩竅極窄。復視之無竅。寤而異之。以詩
解之。夢中得玉甁。綠瑩光鑒地。扣之鏗有聲。緻潤宜貯水。剩將添硯波。快作詩千紙。神物喜幻化。
天工好兒戱。脗然翻閉口。不受一滴泚。有如仙石開。罅縫流靑髓。須臾復堅合。不許人容指。混沌得
七竅。七日乃見死。怒風號衆穴。萬擾從此起。鑽瓠憂屈轂。穿珠厄夫子。凡物貴其全。刳鑿反爲累。
形全與神全。要問漆園吏。
○동고자(東皐子) 박환고(朴還古)가 눈 속에 찾아와서 보인 시에 차운하다
주옥(珠玉)은 전당에 쏟아졌고 / 量珠聞錢塘
황금은 미오에 쌓였었지 / 積金見郿塢
부나 귀는 마치 뜬구름 같아 / 富貴如浮雲
한번 흩어지면 그만이지만 / 一散了如掃
취중의 마음만은 / 唯有醉中心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다네 / 日月所不老
집에 있는 술 바다와 같아 / 我家酒如河
배 띄울 만하니 / 觥船堪一棹
촛불 잡고 노는 것 사양치 말고 / 莫辭秉燭遊
천종 술 실컷 마셔나 보세 / 且限千鍾釂
[주D-001]주옥(珠玉)은……쏟아졌고 : 전당(錢塘)은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절강을 말하는데,
이곳에 조수가 밤낮으로 두 차례씩 들어 주민들이 막심한 폐해를 겪어오다가 삼국(三國)
시대에 화신(華信)이 흙이나 돌 1곡(斛)을 날라오는 자에게는 1천 전을 주겠다고 상금을
내걸고 열 달 사이에 둑을 완축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전당이라 부르는 것은 돈을
내걸고 수축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讀史方輿紀要 浙江》
[주D-002]황금(黃金)은……쌓였었지 : 미오(郿塢)는 후한(後漢) 시대 참적(僭賊) 동탁(董卓)이
미(郿) 땅에 세운 창고 즉 만세오(萬歲塢)를 말하는데, 동탁이 이 창고에다 30년 이상
먹을 곡식을 저장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後漢書 卷七十二 董卓傳》
[주D-003]촛불 잡고 노는 것 : 《고시(古詩)》에 “글은 짧은데다 긴 밤이 괴로우니, 어찌 촛불
잡고 놀지 않겠느냐.[書短苦夜長 何不乘燭遊]”한 데서 온 말로, 밤에 술 마시며 흥겹게
논다는 뜻이다.
○딸아이를 슬퍼하다
딸아이의 얼굴 눈송이와 같고 / 小女面如雪
총명함도 말할 수 없었네 / 聰慧難具說
두 살에 말할 줄을 알아 / 二齡已能言
앵무새의 혀보다 원활하였고 / 圓於鸚鵡舌
세 살에 수줍음을 알아 / 三歲似恥人
문 밖에 나가 놀지 않았으며 / 遊不越門闑
올해에 막 네 살박이로 / 今年方四齡
여공(女工)도 제법 배워가더니 / 頗能學組綴
어쩌다가 이런 참변을 만났는지 / 胡爲遭奪歸
너무도 갑작스러워 꿈만 같구나 / 焂若駭電滅
마치 새새끼를 땅에 떨어뜨린 것 같으니 / 春雛墮未成
비둘기의 둥우리 옹졸했음을 알겠네 / 始覺鳩巢拙
도를 배운 나는 그런대로 참겠지만 / 學道我稍寬
아내의 울음이야 언제 그치려나 / 婦哭何時輟
내가 보니 저 밭에 / 吾觀野田中
작물도 막 자랄 때 / 有穀苗初茁
바람이나 우박이 불시에 덮치면 / 風雹或不時
여지없이 모두 결단나더군 / 撲地皆摧沒
조물주가 이미 내어놓고 / 造物旣生之
조물주가 다시 갑자기 빼앗아가니 / 造物又暴奪
영과 고가 어찌 그리 덧없는가 / 枯榮本何常
변과 화가 속임수만 같구나 / 變化還似譎
오고 가는 것 다 허깨비이니 / 去來皆幻爾
이제는 그만이야 영원한 이별이구나 / 已矣從此訣
○내성(內省)의 여러 낭관(郞官)에게 드리다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최선(崔詵)에게
가문의 적선으로 이름난 공경(公卿)이니 / 一門積善出名卿
오색의 문장이 상서(詳瑞)를 드리웠네 / 五色文章已瑞廷
최림(崔琳)의 형제들은 다 창을 배치하고 / 崔氏弟兄皆列戟
삼형제가 다 한때에 삼품직(三品職)에 올랐었다.
위공 부자는 다 경학(經學)에 밝았어라 / 韋公父子盡明經
세가는 다음날 유림전(儒林傳)에 오를 것이고 / 世家他日標儒傳
마을에서는 누군가가 덕성을 말하리 공은 오형제이다. / 里社何人榜德星
앞으로 힘을 빌어 날개가 생기거든 / 若借吹噓生羽翼
난봉 타고 저 하늘 훨훨 날아가소 / 願攀鸞鳳到靑冥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민공 규(閔公珪)에게
청자의 명문에 몇째의 세신이던가 / 靑紫名家幾世臣
금수(錦繡) 같은 심장(心臟)에 물 같은 정신일세 / 錦爲肝臟水爲神
누가 알랴 청절한 중서성에 / 誰知淸切中書地
풍류다운 외감이 있는 줄을 공이 본래 비서감(祕書監)으로 있었다 / 還有風流外監身
아름다운 행실은 이미 은필에 올랐고 / 美行已登銀筆麗
힘찬 문장은 벌써 금포를 뺏았네 / 遒詞曾奪錦袍新
한제(漢帝)가 만약 상여의 부를 묻는다면 / 漢皇若問相如賦
양공처럼 한 고향 사람인 나를 천거하리 / 何幸楊公薦邑人
나는 공과 한 고향 태생이다.
급사중(給事中) 이공 정(李公靖)에게
늠름한 기풍 만 길이나 높은데 / 鐵幹稜稜萬丈孤
영호의 쌍미를 일생에 함께 하네 / 令狐雙美一生俱
선오의 큰 힘으로 태산을 뽑아 올리고 / 仙鼇壯力扶山起
우레 같은 위세로 번개를 몰아치네 / 金虎雄精叱電驅
간원(諫院)에서는 모두 장급사를 말하고 / 諫掖共稱張給事
장단에서는 역시 이금오도 되었네 / 壇將兼作李金吾
천지에서 목욕하는 봉 은파가 그지없으니 / 天池浴鳳恩波濶
남은 혜택 학철에서 노니는 고기에도 미치리 / 餘潤能霑涸轍無
중서사인(中書舍人) 왕의(王儀)에게
영광된 지위에 패옥 소리 낭랑한데 / 紫泥封了佩鏘琅
퇴정하는 온 몸에 어향이 풍기누나 / 朝退渾身帶御香
훌륭한 솜씨는 수월을 능가하고 / 大手直凌修月戶
청고(淸高)한 재주는 판화를 맡을 만하네 / 淸才獨合判花郞
공광이 언제 온실성(溫室省)의 나무 종류를 말했으랴 / 孔光溫室何言樹
두목은 중서에서 자주 조낭(皁囊)을 올렸었네 / 杜牧中書屢拜囊
십년 동안 궁도에서 방황하던 나도 / 十載窮途無賴客
이제야 왕길(王吉) 만나 갓을 털게 되었구려 / 彈冠今喜遇王陽
기거랑(起居郞) 방응교(房應喬)에게
가장 청백한 곳이 바로 어사대(御史臺)인데 / 禁林淸地是西臺
사조는 계단의 이끼를 한가히 읊었네 / 謝脁閑吟上砌苔
만세의 고풍은 승상의 세계(世系)요 / 一萬古風丞相系
삼천의 시구는 한림의 재주일세 / 三千詩筆翰林才
자미궁에서 조회를 마치고 / 紫微宮裏朝天罷
현포원에서 수레를 호종(扈從)하네 / 玄圃園中逐乘來
그는 태자사경(太子司經)을 겸하였다.
나 또한 문평의 문하 사람이니 / 我亦文平門下客
해 걸러 피는 도리라고 미워마소 / 莫嫌桃李隔年開
그와 나는 다 문평공(文平公)의 문하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기거사인(起居舍人) 백광신(白光臣)에게
구슬 같은 시문(詩文) 너무도 새로워 / 珠璣咳唾到頭新
원화 때 백 사인을 이제 다시 보겠네 / 復見元和白舍人
밤에는 금서에서 시각 알리는 소리를 듣고 / 夜聽金胥傳刻漏
아침엔 임금을 모셔 윤음(綸音)을 초하네 / 朝陪玉帝草絲綸
남으로 날려는 붕새는 창해를 박차고 / 圖南鵬翼凌蒼海
북으로 향하는 성광(星光)은 자미궁에 비쳤네 / 拱北星芒耀紫宸
다행히 그대 같은 청운의 지기 있으니 / 幸是靑雲知己在
내 부질없이 입술만 놀린 것은 아니겠지 / 不應虛掉自鳴唇
좌사간(左司諫) 이순중(李淳中)에게
깊숙한 간원에 우뚝 섰으니 / 眞他特立諫垣深
세계(世系)로는 당조에서 육잠을 올렸었네 / 家世唐朝獻六箴
민첩한 솜씨로 명성을 떨치니 귀신이 놀라고 / 電手掀名驚鬼胆
뛰어난 재주로 시구(詩句)를 다듬으니 자연에서 나옴일세 / 雲斤琢句出天心
이 년 동안 청쇄문에서 붓을 들고 모셨고 / 二年靑鎖抽毫侍
이전에는 침향전에서 낯을 씻고 읊었어라 / 昔日沈香頮面吟
공이 전에 한림으로 있었다.
다같이 천 년이 지난 노자(老子)의 후예이니 / 同是伯陽千載後
노자의 끼친 그늘 흠뻑 받았으면 하네 / 願攀仙李庇餘陰
[주D-001]오색(五色)의……드리웠네 : 문장(文章)이 매우 훌륭하다는 뜻이다. 당(唐) 나라 정인표
(鄭仁表)가 “하늘의 상서(祥瑞)로는 오색 구름이 있고 사람의 상서로는 정인표가 있다.”
하며 자신의 문장을 과시했다 한다. 《唐書 卷182 鄭仁表傳》
[주D-002]최림(崔琳)의……배치하고 : 창[戟]은 고관들의 집 정문 앞에 배치된 위장(衛仗)을
말한다. 당 나라 최림(崔琳)ㆍ최규(崔珪)ㆍ최요(崔瑤)의 삼형제가 모두 고관이었으므로
그 당시에 삼극최가(三戟崔家)라고 일컬었다. 《唐書 崔神慶傳》
[주D-003]위공(韋公)……밝았어라 : 위현성(韋玄成)의 부자간처럼 부자가 다 학문이 훌륭했다는
뜻이다. 위공은 곧 한(漢) 나라 때 위현성을 말하는데, 그는 젊어서부터 경학(經學)에
밝아 명망이 높았고 그의 아버지인 위현(韋賢)은 승상(丞相)을 지냈으며 역시 경학에
밝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문장으로는 현성이 오히려 아버지보다 훌륭했다고 한다.
《史記 卷96 張丞相傳》
[주D-004]덕성(德星) : 현인(賢人)들이 한데 모인 것을 상징한 말이다. 후한 때 진식(陳寔)이 자질
(子姪)들과 함께 순숙(荀淑)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덕성이 마침 그 분야에
닿았었으므로, 태사(太史)가 “5백 리 이내의 현인(賢人)이 한데 모였다.”고 아뢴 고사
이다. 《續晉陽秋》
[주D-005]힘을……날아가소 : 난봉(鸞鳳)이 하늘 높이 날려면 반드시 날개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는
뜻으로, 곧 훌륭한 보필을 받아 현달하게 되라는 말이다. 《당서(唐書)》 마주전(馬周傳)
에 “임금이 마주에게 글을 써주기를 ‘난봉이 하늘 높이 날려면 반드시 날개를 얻어야
하니, 고굉(股肱)이 있는 것은 오직 충성 때문이다.’ 했다.” 하였다.
[주D-006]청자(靑紫) : 한 나라 제도에, 공후(公侯)는 자주색 인끈을 쓰고 구경(九卿)은 푸른 인끈
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공경(公卿)의 지위를 일컫는 말이다.
[주D-007]금수(錦繡) 같은 심장(心臟) : 시문(詩文)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지은 글이 비단같이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이다.
[주D-008]아름다운……올랐고 : 훌륭한 덕행을 비유한 말이다. 은필(銀筆)은 곧 은으로 장식한 붓.
양 원제(梁元帝)가 일찍이 덕행이 있는 의사(義士)를 기록할 때에 은필(銀筆)을 사용하
였던 고사이다. 《琅琊代醉編 卷24》
[주D-009]힘찬……뺏았네 : 문장이 아주 훌륭함을 비유한 말이다. 금포(錦袍)는 곧 비단 베로 만든
도포를 말한다. 당 무후(唐武后)가 일찍이 용문(龍門)에서 노닐 적에, 시를 맨 먼저 짓는
사람에게 금포를 주겠다고 하여, 좌사(左史) 동방규(東方虯)가 먼저 지어 차지하였는데,
다음으로 지은 송지문(宋之問)의 시가 더 훌륭하였으므로 금포를 도로 뺏아 송지문에게
주었다는 고사이다. 《隋唐佳話》
[주D-010]한제(漢帝)가……천거하리 : 한 무제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를 읽다가
“짐이 이 부를 지은 사람과 한 시대에 나지 못하였다.”고 아쉬워하자 옆에 있던 양득의
(楊得意)가 “그 부는 바로 신의 한 고향 사람 상여가 지었다.”고 대답하니 무제가 흠칫
놀라며 상여를 불러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상림부(上林賦)를 짓도록 하였다.
《史記 司馬相如傳》
[주D-011]영호(令狐)의……하네 : 부자가 함께 일세에 현달하였다는 말이다. 쌍미(雙美)는 둘이
함께 뛰어나다는 뜻인데, 당(唐) 나라 때 영호초(令狐楚)와 그의 아들 영호도(令狐綯)가
다같이 문장(文章)으로 유명하였고, 벼슬도 다같이 재상(宰相)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唐書 卷172 令狐楚傳》
[주D-012]선오(仙鼇) : 등에 삼신산을 지고 있었다는 큰 자라.
《사기(史記)》에는 “여와씨(女媧氏)가 이 자라의 네 발을 절단하여 사극(四極)을 세웠다.”
하였다.
[주D-013]간원(諫院)에서는……말하고 : 간관(諫官)으로 있으면서 극간(極諫)을 잘했다는 말이다.
장 급사(張給事)는 곧 장현소(張玄素)를 말하는데, 당 태종(唐太宗) 때 장현소가 시어사
(侍御史)를 거쳐 급사중(給事中)으로 있으면서 태종이 낙양궁(洛陽宮)을 수축하려는 데
대해 현소가 상서(上書)하여 극간하자 태종이 그 일을 즉각 중지하였다. 《唐書 卷103》
[주D-014]장단(將壇)에서는……되었네 : 장수로 임명되어서 많은 공을 세웠다는 뜻이다. 이 금오
(李金吾)는 곧 당(唐) 나라 명장 이정(李靖)을 말하는데, 이정은 병법(兵法)에 뛰어나
고조(高祖) 태종(太宗) 2대에 걸쳐 행군대총관(行軍大總管)으로서 누차 출정하여 위대한
공훈을 세웠다. 금오(金吾)는 국가의 비상을 경계하는 일을 맡은 관리인데, 여기서는 즉
장군을 지칭한 말이다. 《舊唐書 卷66》
[주D-015]학철(涸轍) :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에 괸 물에서 허덕이는 붕어를 이른 말로 매우
곤궁한 처지를 말한다. 《莊子 外物》
[주D-016]훌륭한……능가하고 : 문장이 유능함을 비유한 말이다. 수월(修月)은 달을 수리한다는
뜻으로 정인본(鄭仁本)이라는 사람이 숭산(嵩山)에 들어갔다가 두건을 베고 누워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달이란 본시 칠보(七寶)로 이루어진 것인 줄을 아는가?
달에는 수시로 수리해야 할 8만 1천의 문호(門戶)가 언제나 있다.”고 말하고 그 두건을
펴보니 도끼와 끌 같은 도구가 들어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17]판화(判花) : 공문서나 판결문 뒤에 수결(手決)이나 함자(銜字)를 찍는 것을 말한다.
[주D-018]공광(孔光)이……말했으랴 : 말이 매우 신중함을 뜻한다. 온실성(溫室省)은 한(漢) 나라
때 전(殿) 이름으로, 즉 온실전(溫室殿)을 말한다. 공광은 퇴궐하여 형제처자와 함께
집에 있을 적에도 조정에 관계된 일은 일체 말하지 않았는데, 누가 온실전 안에 있는
나무들의 종류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전연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만 하였다는 고사이다.
《漢書 卷81 孔光傳》
[주D-019]두목(杜牧)은……올렸었네 : 상소(上疏)를 자주하였다는 뜻이다. 조낭(皁囊)은 검은
베로 만든 전대인데 여기에 글을 싸서 임금에게 올렸으므로 여기서는 곧 소(疏)를 가리
킨다. 당(唐) 나라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지낸 두목은 성품이 매우 강직하고 뛰어난
절개가 있어 매양 조정의 대사(大事)와 시폐(時弊)를 잘 논술하여 당시 직소(直疏)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新唐書 卷66 杜牧傳》
[주D-020]왕길(王吉)……되었구려 : 친구 때문에 출세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왕길이
평소 공우(貢禹)와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였으므로 세상에서 “왕길이 먼저 벼슬길에
오르니 공우가 갓의 먼지를 털고 임금의 소명(召命)을 기다린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王吉傳》
[주D-021]승상(丞相)의 세계(世系) : 승상은 당 나라 초기의 명상(名相) 방현령(房玄齡)을 가리킨
것으로, 즉 여기에 기거랑(起居郞) 방응교(房應喬)가 방현령과 같은 씨족이라는 뜻이다.
[주D-022]삼천(三千)의……재주일세 : 시문에 뛰어남을 비유한 말이다. 한림(翰林)은 당 나라 때
한림을 지낸 대시인(大詩人)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주D-023]자미궁(紫微宮) : 삼원궁(三垣宮)의 하나로, 천제(天帝)가 있다는 곳. 여기서는 임금의
처소를 말한다.
[주D-024]현포원(玄圃園) : 곤륜산에 있다는 선경(仙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태자의 처소를
말한다.
[주D-025]나 또한……사람 : 문평공(文平公) 이지명(李知命)의 문하라는 뜻으로, 즉 이지명이
지공거(知貢擧)로 있을 때 문과(文科)에 합격했다는 말이다.
[주D-026]도리(桃李) : 남의 문하(門下)를 이르는 말. 당(唐) 나라 때 적인걸(狄仁傑)이 요원숭
(姚元崇)ㆍ환언범(桓彦範) 등 수십 명을 천거하여 마침내 명신(名臣)이 되자 한 사람이
“천하의 도리는 모두 공의 문하에 모였다.” 하였다. 《資治通鑑 唐紀》
[주D-027]원화(元和) 때……보겠네 : 시문이 매우 훌륭하다는 뜻이다. 원화(元和)는 당 헌종(唐
憲宗)의 연호이고, 백 사인(白舍人)은 곧 당 헌종 때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를
말한다.
[주D-028]남으로……박차고 : 대업을 성취하려는 큰 뜻에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소요유
(逍遙遊)에 “붕새가 북쪽에서 단숨에 남쪽으로 날아가려는 웅지를 품고 있다.”
하였다.
[주D-029]북으로……성광(星光) : 사람의 충성을 비유한 말이다.《논어(論語)》 팔일(八佾)에
“북극(北極)이 제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면 별들이 다 그쪽으로 향해 간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30]세계(世系)로는……올렸었네 : 당(唐) 나라 때 육잠(六箴)을 올린 이덕유(李德裕)와
같은 씨족이라는 뜻이다. 이덕유가 절서(浙西)의 관찰(觀察)로 있을 때 소의(宵衣)ㆍ
정복(正服)ㆍ파헌(罷獻)ㆍ납회(納誨)ㆍ변사(辨邪)ㆍ방미(防微) 등 단의(丹扆) 육잠을
왕에게 올렸다. 《舊唐書 卷174 李德裕傳》
[주D-031]이 년……모셨고 : 이년 동안 급사(給事)를 지냈다는 뜻이다. 청쇄문(靑鎖門)은 한대
(漢代)의 궁문(宮門) 이름. 한 나라 때에 궁문에다 쇠사슬 같은 모양을 새기고 푸른 칠을
했으므로 이름인데 급사ㆍ황문(黃門) 등이 아침과 저녁으로 대기해 있다가 진알(進謁)
하던 곳이다. 《漢舊儀 上》
[주D-032]침향정(沈香亭)에서……읊었어라 : 전직 한림(翰林)을 지냈다는 뜻이다. 침향정(沈香亭)
은 당대(唐代) 대궐 안에 있던 정자 이름이다. 어느 날 달밤에 명황(明皇)이 양귀비와
함께 나와서 정자 앞 목작약(木芍藥)을 구경하다가, 이름난 꽃을 구경하는데 어찌 묵은
악사(樂詞)를 쓰겠느냐면서 대뜸 한림학사 이백(李白)을 불러 새로운 청평악사(淸平樂詞)
세 편을 짓도록 하였다. 《楊太眞 外傳》
呈內省諸郞
左散騎常侍崔詵
一門積善出名卿。五色文章已瑞廷。崔氏弟兄皆列戟。三兄弟一時三品。韋公父子盡明經。世家他日標
儒傳。里社何人榜德星。公凡五兄弟。若借吹噓生羽翼。願攀鸞鳳到靑冥。
左諫議大夫閔公珪
靑紫名家幾世臣。錦爲肝臟水爲神。誰知淸切中書地。還有風流外監身。公本官秘書監。美行已登銀
筆麗。遒詞曾奪錦袍新。漢皇若問相如賦。何幸楊公薦邑人。予與公同郡。
給事中李公靖
鐵幹稜稜萬丈孤。令狐雙美一生俱。仙鼇壯力扶山起。金虎雄精叱電驅。諫掖共稱張給事。將壇兼作
李金吾。天池浴鳳恩波闊。餘潤能霑涸轍無。
中書舍人王儀
紫泥封了佩鏘琅。朝退渾身帶御香。大手直凌修月戶。淸才獨合判花郞。孔光溫室何言樹。杜牧中書屢
拜囊。十載窮途無賴客。彈冠今喜遇王陽。
起居郞房應喬
禁林淸地是西臺。謝脁閑吟上砌苔。一萬古風丞相系。三千詩筆翰林才。紫微宮裏朝天罷。玄圃園中逐
乘來。兼太子司經。我亦文平門下客。莫嫌桃李隔年開。同出文平公李門下故云。
起居舍人白光臣
珠璣咳唾到頭新。復見元和白舍人。夜聽金胥傳刻漏。朝陪玉帝草絲綸。圖南鵬翼凌蒼海。拱北星芒耀
紫宸。幸是靑雲知己在。不應虛掉自鳴脣。
左司諫李淳中
眞他特立諫垣深。家世唐朝獻六箴。電手掀名驚鬼膽。雲斤琢句出天心。二年靑瑣抽毫侍。昔日沈香頮
面吟。公曾爲翰林。同是伯陽千載後。願攀仙李庇餘陰。
○전이지(全履之)의 집에서 술이 매우 취하여 시를 입으로 부르면서 이지에게 바로 받아 벽(壁)에
쓰도록 하다
그대는 물맑고 산 높은 동오를 보지 않았던가 / 君不見東吳水淸山復高
영웅 호걸이 대대로 났으므로 / 世世生雄豪
이지는 등주(登州)출신이다.
이지 또한 그 수기를 받아 / 履之鍾秀氣
봉혈에서 봉모가 나온 걸세 / 彩鳳穴中生鳳毛
그의 아버지도 명성이 있던 사람이다.
큰 뜻을 그 누가 알랴 / 壯志人誰知
천지가 깜깜하고 용호만 울부짖네 / 地黑天昏龍虎嘷
박생 또한 쓸만한 사람 / 朴生亦可人
그때 동고자 박환고(朴還古)도 한자리에 있었다.
본디 동서 남북 거침없는 몸으로 / 曾是東西南北身
취하면 눈 흐려 물 속에도 빠지고 / 醉來眼花落井底
풍류는 하계진이라 자칭하네 / 自稱風流賀季眞
태도가 매우 순진하여 / 形容大淳古
화서의 백성이라고도 하누나 / 亦號華胥民
나 백운거사도 본시 미친 사람으로 / 白雲居士本狂客
십여 년 동안 하는 일 없어 / 十載人間空浪迹
술 취해 노래 부른들 누가 뭐라 하리 / 縱酒酣歌誰復訶
한 평생 마음대로 즐기고 노닐며 / 一生放意聊自適
창기(倡妓) 가운데서 천 잔을 들이키고 / 倡兒叢裏倒千盃
협객 모임에서 육박을 겨루었지 / 俠客場中爭六博
오늘의 만남은 하늘의 시킴이라 / 今日逢君天使然
술마저 샘물처럼 푸짐하구려 / 況復有酒如流泉
그대와 실컷 마시고 나서 타구(唾具)도 두들기고 / 與君痛飮擊唾壺
뜻이 만 리에 있으니 하늘도 오를 것만 같아 / 志在萬里思騰騫
열사의 큰 뜻 언제나 식으려나 / 烈士壯心何日已
장검 메고 하늘을 기대어 서네 / 長劍倚靑天
부귀 공명도 논할 것 없어 / 功名富貴不須論
옛날의 왕후도 오늘은 무덤뿐이야 / 昔日王侯今朝馬鬣墳
석숭의 금곡원(金谷園)에 방초만 우거졌으니 / 石崇金谷芳草沒
당시의 번화를 어디서 찾을쏘냐 / 何處覓朱門
모두가 한바탕의 꿈 / 都是一場夢
의국의 순우분을 보게나 / 請看蟻國淳于棼
그대는 가득 따른 잔 죄다 들이키는데 / 滿酌壽君君飮無
명월은 날 위해 술단지를 비춰주네 / 明月爲我炤金樽
[주D-001]하계진(賀季眞) : 당 나라 초기의 시인인 하지장(賀知章)을 말하는데, 계진은 곧 그의
자이고, 호는 사명광객(四明狂客)이다. 그는 현종(玄宗) 때 예부 시랑(禮部侍郞)을
지냈으나, 만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도사(道士)가 되었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고, 특히 풍류로 유명하였다. 《舊唐書 卷190》
[주D-002]화서(華胥) : 황제(黃帝)가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보았다는 화서씨(華胥氏)의 나라로,
태평한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주D-003]석숭(石崇)의……찾을쏘냐 : 인생이 덧없다는 말이다. 금곡원(金谷園)은 진(晉) 나라
석숭의 별장 이름. 석숭이 항상 금곡원에 빈객들을 모아 놓고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
면서 아주 호화롭게 놀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4]의국(蟻國)의 순우분(淳于棼) : 옛날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자기 집 남쪽에 묵은 괴화
나무[槐]가 있었는데 술에 취해 그 밑에 누웠다가 잠이 들어 꿈에 개미 나라인 괴안국
(槐安國)에 이르러서, 개미왕에게 쓰임을 받아 대관(大官)이 되어 무려 20여 년 동안이나
부귀공명을 누렸으나 깨어 보니 꿈이었다는 고사로, 곧 세상일은 모두 꿈과 같다는
말이다. 《異聞集》
全履之家。大醉口唱。使履之走筆書壁。
君不見東吳水淸山復高。世世生雄豪。履之。登州人也。履之鍾秀氣。彩鳳穴中生鳳毛。君父有名。
壯志人誰知。地黑天昏龍虎嘷。朴生亦可人。時東皐子在座。曾是東西南北身。醉來眼花落井底。自稱
風流賀季眞。形容大淳古。亦號華胥民。白雲居士本狂客。什載人間空浪迹。縱酒酣歌誰復訶。一生放
意聊自適。倡兒叢裏倒千杯。俠客場中爭六博。今日逢君天使然。況復有酒如流泉。與君痛飮擊唾壺。
志在萬里思騰騫。烈士壯心何日已。長劒倚靑天。功名富貴不須論。昔日王侯。今朝馬鬣墳。石崇金谷
芳草沒。何處覓朱門。都是一場夢。請看蟻國淳于棼。滿酌壽君君飮無。明月爲我炤金樽。
○양연사(養淵師)를 방문하였다가 그가 가지고 있는 백학도(白鶴圖)를 부(賦)하다
학은 세속 밖의 물건으로 / 鶴是塵外物
그 종족은 본시 선경(仙境)에서 나와 / 族本出神仙
옥 새장에 편안히 깃들고 / 無心玉籠裏
구슬 나무에 날개를 펼친다네 / 拂翼瓊樹邊
이 때문에 지도림이 / 所以支道林
천 리 창공에 놓아주었네 / 放之千里天
지금 대사(大師)는 얼마나 사랑하기에 / 師今何酷愛
그림까지 묘사해 두었을까 / 摸寫寘眼前
실물도 기르기 어렵거든 / 眞猶不可蓄
그림을 어떻게 간직하려나 / 況奈丹靑傳
그 까닭 차분히 물었더니 / 徐徐涉其理
대사는 그렇지 않다며 / 師意乃不然
놔주면 신태가 상실될까 염려요 / 放恐失神態
기르면 외물(外物)에 끌려갈까 염려야 / 養恐爲物牽
놔주지도 기르지도 않으려면 / 不放亦不養
그림보다 나은 것이 없기에 / 莫如畫手賢
선경(仙境)에서 / 故寫靑田眞
가벼운 날개로 붉은 연기 박차는 진상을 묘사하여 / 逸翮凌紫煙
여윈 모습으로는 도모(道貌)를 관찰하고 / 瘦以觀道貌
맑은 모습으로는 천진(天眞)을 기른다 하네 / 靑以養天全
아 나는 지금 사생도만 보았을 뿐 / 吾觀寫生圖
감히 사생편은 지을 수 없구려 / 未作寫生篇
[주D-001]지도림(支道林)이……놓아주었네 : 지도림은 진(晉) 나라 고승(高僧) 지둔(支遁)을 말하
는데, 도림은 그의 자이다. 지둔이 일찍이 지형산(支硎山)에 은거하여 수도(修道)하였고,
뒤에는 여항산(餘杭山)에 은거하다가 애제(哀帝)로부터 부름을 받고 금중(禁中)에서 불법
(佛法)을 강론하기도 했는데, 그는 누가 말[馬]을 보내주자 “내가 뛰어난 준마(駿馬)를
사랑한다.” 며 기르더니, 또 누가 학(鶴)을 보내주자 “하늘 높이 나는 새를 어찌 가까
이 두고 볼 수 있느냐.”며 놓아주었다는 고사이다. 《梁高僧傳 卷4》
[주D-002]사생도(寫生圖) : 실물(實物)이나 실경(實景)을 그대로 잘 그려 놓은 그림을 말한다.
[주D-003]사생편(寫生篇) : 사생도의 수법을 써서 그림 그대로 잘 묘사한 문장을 말한다.
○이군(李君) 중민(中敏)이 치마 꿰맨 것을 희롱하다
눈빛처럼 흰 고운 비단 치마 밟아 터졌네 / 踏破香紈雪色裙
뉘 집 휘장 안에서 탁문군(卓文君)을 건드렸나 / 誰家帳底弄文君
영부인(令夫人)이여 꿰매는 일일랑 그만두고 / 細君愼勿加針線
무산에서 운우의 꿈이나 꾸구려 / 又向巫山染雨雲
[주D-001]탁문군(卓文君) : 한(漢) 나라 임공(臨邛)의 부호인 탁왕손(卓王孫)의 딸로 무척 미인
이었는데, 일찍이 과부가 되어 집에 있을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그 집 잔치에 가서
거문고를 타며 음률을 좋아하는 탁문군의 마음을 돋우니 문군이 거문고 소리에 반하여
밤중에 집을 빠져 나와 사마상여의 아내가 되었다 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傳》
[주D-002]무산(巫山)에서……꾸구려 : 남녀가 만나 정사(情事)나 하라는 뜻이다. 초 양왕(楚襄王)
이 고당(高唐)에서 놀다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부인이 와서 “여기에 임금님이 계시
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원컨대 침석을 같이 해 주십시오.” 하므로, 하룻밤을 같이 잔
뒤, 이튿날 아침에 부인이 떠나면서 “저는 무산의 양지쪽 높은 언덕에 사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됩니다.” 하였다는 고사이다. 《宋玉 高唐賦》
○이군의 화답에 차운하다
비단 저고리에 잔주름 치마 새로 입었으니 / 新帖羅襦細摺裙
한 쌍 난조의 휘장 안에 그대가 노닐겠지 / 雙鸞帳底笑留君
나에게도 두목의 다정한 풍류 남았으니 / 多情杜牧風流在
미친 척하며 자운을 물어보려네 / 欲發狂言問紫雲
[주D-001]두목(杜牧)의……물어보려네 : 자운(紫雲)은 당 나라 이원(李愿)의 가기(家妓) 이름.
두목(杜牧)이 낙양(洛陽)에 어사(御史)로 있을 때 이원의 집에 가서 여러 기녀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자운이 누구냐고 물었다. 주인이 그녀를 가리키자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다.”
고 감탄하고 그녀를 달라 하였던 고사이다. 《唐詩紀事 杜牧》
○미인에게 농으로 주다
새벽에 일어나 거울 대해 뽀얀 얼굴 비추고 / 曉窓呵鏡照凝酥
두 갈래 검은 머리 빗살에 넘치누나 / 兩朶烏雲滿把梳
세속의 화장은 수줍은 태도가 없어 / 時世粧成紅不暈
백거이(白居易)의 시세장(時世粧)에 “화장이 빨갛기만 할 뿐 수줍음은 없다.” 하였다.
(時世粧斜紅不暈。)
천금 같은 한 웃음 너무 인색하지 마소 / 千金一笑肯廻無
[주D-001]시세장(時世粧) : 당(唐) 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글 이름. 곧 당시에 유행하는
여인들의 화장이라는 뜻이다.
○사월 십일일에 손님과 함께 동산을 거닐다가 수풀 사이에서 장미를 발견하였는데 오랫동안 풀
들에 시달려 생기가 매우 미약하였다. 내가 바로 주변의 풀들을 제거한 뒤에 흙으로 북돋아 주고
시렁으로 괴어준 지 며칠이 지나 가보니 잎이 벌써 무성하고 꽃도 활짝 피었다. 여기에 느낀 바
있어 장단구(長短句)를 지어 전이지(全履之)에게 보이다
내가 동산 가꾸기에 게을러 / 我懶不理園
뜨내기 풀들이 멋대로 우거졌네 / 旅草生離離
오늘 아침 수풀을 헤치다 보니 / 今朝撥叢薄
거기에 장미 서너 포기가 / 中有薔薇數四枝
병든 뿌리는 지반에 드러나 거의 마르고 / 炳根露地已垂損
약한 줄기는 바람에 못 이겨 지쳤네 / 弱質凌風不自持
길게 한숨 쉬고 자위(自慰)도 하며 / 長吁復自吊
연장 가져다가 잡초들을 제거하니 / 手錍剪榛椔
주변이 씻은 듯 깨끗해지고 / 地面凈如洗
기이한 자태가 훤히 드러났네 / 煌煌擢奇姿
기름진 흙으로 북돋아 주고 / 膏泥自封植
시렁을 매어 괴어주니 / 畫架仍撑搘
아황빛 꽃은 향내를 풍기고 / 緗英媚香艶
보랏빛 잎은 윤기를 더해 가네 / 紺菓添華滋
근본은 하늘의 조화이지만 / 初雖託天力
절반은 나의 공력이기도 하지 / 半亦偸吾私
처음에는 달기(妲己)가 보배 장막에 숨은 듯하더니 / 始嫌妲姬隱寶障
이제는 서시(西施)가 깊은 휘장에서 나온 듯하네 / 已見西子出深帳
그대는 유랑이 현도에 공연히 갔던 일을 보지 않았던가 / 君不見劉郞玄都空獨來
복숭아꽃 다 지고 귀리와 아욱만 보았다네 / 桃花淨盡但見䴏麥與兔葵
또, 두목이 호주에 늦게 갔던 일을 보지 않았던가 / 又不見杜牧湖州去較遲
붉은 꽃 다 지고 짙은 그늘에 열매가 열렸었네 / 深紅落盡已是成陰結子時
그 뜻은 은근하나 보지는 못하여 / 著意殷勤猶未見
쓸쓸히 봄 보내며 섭섭하기만 했는데 / 送春寂寞空含悲
어쩌다가 여기 초당의 이 거사는 / 何如草堂李居士
좋은 꽃에 잔까지 들게 되었을까 / 意外逢花對酌酒一色
사물에 비교하여 깊은 뜻 굴리기도 하고 / 寓物詑深意
조용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니 / 靜坐復深思
이는 꽃만이 아니라 / 若此非獨花
모든 사물이 다 그러하네 / 凡物亦如之
명월주를 보려면 / 欲見明月珠
진흙부터 걸러야 하고 / 先灑泥沙淄
어진 후비를 구하려면 / 欲求后妃賢
총첩(寵妾)을 없애야 하며 / 無使寵嬖隨
뛰어난 인재를 뽑으려면 / 欲擇人材秀
참신(讒臣)부터 제거해야 하네 / 先去讒邪欺
이 시에 깊은 의미 있으니 / 此詩有深味
아이들에게는 쉬 말하지 마소 / 莫敎兒輩知
[주D-001]달기(妲己)가……듯하네 : 은(殷) 나라 주(紂)의 총희(寵姬)였던 달기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총희였던 서시(西施)가 모두 절세미인이었으므로 장미의 아름다운 자태에
비유한 말이다.
[주D-002]유랑(劉郞)이……보았다네 : 좌천되어 오랫동안 지방에 떠돌아다닌 것을 탄식한 말이다.
유랑은 곧 유우석(劉禹錫)을 말한다. 《당서(唐書)》 유우석전(劉禹錫傳)에 “내가 둔전
원외랑(屯田員外郞)으로 있을 적에는 현도관(玄都觀)에 꽃이 없었는데, 낭주 사마(郞州
司馬)로 좌천된 지 10년 만에 경사(京師)로 돌아와서 들으니, 도사(道士)가 현도관 주위
에 선도(仙桃)를 잔뜩 심었다고 했다. 그 후 다시 지방관으로 좌천되어 있다가 14년이
지나서 다시 현도관을 찾아가 보니, 선도는 한 그루도 없고 아욱과 귀리만 봄바람에
흔들리더라.”고 하였다.
[주D-003]두목(杜牧)이……열렸었네 : 늘 돌아다니다가 늦게야 집에 온 것을 한탄한 말이다.
당(唐) 나라 두목이 호주(湖州)에 노닐 때 그곳 자사(刺史)와는 절친한 사이였으므로
그는 자사의 주선으로 여러 미녀를 두루 보았으나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다가 10여 세
된 소녀가 하나 왔는데 자세히 보니 참으로 절색이었다. 그러자 두목은 10년 뒤에 맞이
하겠다면서 만약 10년 뒤에 맞이하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데로 출가해도 좋다는 약속을
남기고 돌아왔는데 14년이 지난 뒤에야 가 보니, 그녀는 이미 3년 전에 출가하여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으므로 두목은 “봄을 찾는 약속이 늦었으니 꽃다운 시절 한할 필요 없으리.
광풍이 붉은 꽃 다 떨어뜨려 푸른 잎 짙게 피고 열매가 주렁주렁하구나.”라는 시를
남기고 섭섭해하였다. 《張君房 麗情集》
四月十一日。與客行園中。得薔薇於叢薄間。久爲凡卉所困。生意甚微。予卽薙草封植。埋以土撑以架。
後數日見之。葉旣繁茂。花亦曄盛。於是因物有感。作長短句。以示全履之。
我懶不理園。旅草生離離。今朝撥叢薄。中有薔薇數四枝。病根露地已垂損。弱質凌風不自持。長吁復
自吊。手鍤剪榛椔。地面凈如洗。煌煌擢奇姿。膏泥自封植。畫架仍撑搘。緗英媚香艶。紺葉添華滋。
初雖託天力。半亦偸吾私。如嫌妲姬隱寶障。已見西子出深帷。君不見劉郞玄都空獨來。桃花凈盡但見
鷰麥與兔葵。又不見杜牧湖州去較遲。深紅落盡已是成陰結子時。著意殷勤猶未見。送春寂寞空含悲。
何如草堂李居士。意外逢花對酌酒一巵。寓物詑深意。靜坐復深思。若此非獨花。凡物亦如之。欲見明
月珠。先漉泥沙淄。欲求后妃賢。無使寵嬖隨。欲擇人材秀。先去讒邪欺。此詩有深味。莫敎兒輩知。
○그 이튿날 비를 맞으며 전이지ㆍ박환고와 함께 다시 구경하다
황적색은 임금의 옷감을 물들이고 / 柘染御衣裁
황금색은 부처의 얼굴을 장식하네 / 金裝佛面開
쉬 질까 언뜻 걱정이 되어 / 却愁容易落
비 맞으며 다시 구경하러 왔다오 / 兩裡亦看來
○유충기(劉冲基)ㆍ유승단(兪升旦) 두 동년(同年)과 문 장로(文長老)를 방문하였다가 각기 온정균
(溫庭筠)의 시를 차운하여 부(賦)하다
전날 행원에서 함께 잔치를 받았는데 / 杏園當日宴遊同
그 시절 회상하니 마치 취몽만 같구려 / 回首繁華醉夢空
정의는 노위 형제에 손색 없고 / 兄弟不應慙魯衛
성명은 한원(翰苑)에 올라 있네 / 姓名曾共記瀛蓬
유공은 침착한 데다 깨끗한 운치가 있고 / 兪公沈靜含澄韻
유자는 순진한 데다 소박한 풍도가 있네 / 劉子淸眞振素風
함께 장로를 찾아 품은 회포 의논하니 / 共訪禪英論夙抱
발길이 다시 홍진(紅塵)을 밟기에 게을러지네 / 懶將雙脚踏塵紅
[주D-001]행원(杏園) : 당 나라 때 진사에 급제한 사람에게 잔치를 내리던 곳이다.
[주D-002]정의는……손색 없고 : 친형제처럼 서로 정이 매우 두터움을 말한다. 노위 형제(魯衛兄弟)
는 곧 노(魯)에 봉해진 주공(周公)과 위(衛)에 봉해진 강숙(康叔) 형제를 말하는데,
강숙은 위에 봉해진 뒤 항시 형인 주공의 정사를 본받아 국정(國政)도 마치 형제같이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노와 위의 정사는 형제처럼 한다.” 하였다.
○앞의 시를 차운하여 동경막부(東京幕府)로 부임하는 서기(書記) 윤의(尹儀)를 전별하다
오늘 담소(談笑)를 나누는 기회 말고는 / 除却今朝一笑同
시단의 삼 년 세월이 허공만 같구려 / 詩壇三載恰如空
바쁜 고을에서 선정(善政)을 펼 수 있는 그대가 부럽고 / 羨君劇郡堪遊刃
궁한 처지에서 방황만 하는 내가 부끄러워 / 愧我窮途尙轉蓬
관령의 후손이니 진정한 도골이요 / 關令後孫眞道骨
신라의 고도(古都)이니 모두가 선풍이네 / 新羅古國摠仙風
높은 재주 이름난 고장이 서로 걸맞는데 / 才高地勝宜相敵
다만 고운 여색일랑 너무 사랑하지 마소 / 但莫鍾情臉斷紅
[주D-001]관령(關令) : 전국 시대 진(秦) 나라 윤희(尹喜)를 말하는데, 그가 함곡관 윤(函谷關尹)
을 지냈기 때문에 관령이라고 칭한 것이다. 윤희는 일찍이 노자(老子)와 교유(交遊)하였
는데, 《관윤자(關尹子)》를 그가 저술하였다고도 한다. 《史記 卷63 老子傳》
○수재(秀才) 정공 비(鄭公賁)가 문 장로의 어전(御前) 대담을 축하한 시에 차운하다
어전에 고공을 말할 영광입은 것은 / 詔許君前說苦空
장로의 기변이 온 선림(禪林)에 으뜸인 때문일세 / 緣君機辯冠彈叢
인간에서는 금모후에 놀라고 / 人間早駭金毛吼
천상은 옥주의 바람에 친히 임하였네 / 天上親臨玉塵風
방포로 곤포(袞袍)를 모신 것이 부럽고 / 共羨方袍侵法袞
호안으로 중동을 뵈온 것이 자랑스럽네 / 堪誇胡眼對重瞳
어제 어원에서 총해를 다듬더니 / 御園昨日葱成薤
과연 고승이 궁중에 들어왔네 / 果見高僧入禁中
[주D-001]고공(苦空) : 이 세상의 사물은 중생의 모든 몸과 마음을 핍박하여 괴롭게 하므로 고라
하고, 만유(萬有)는 모두 인연의 화합으로 생기는 것이어서 하나도 실체나 제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공이라 한다.
[주D-002]금모후(金毛吼) :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즉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말로 부처의 설법
하는 소리를 사자(獅子)의 영각[哮吼]에 비유하는 말이다.
[주D-003]옥주(王麈) : 아름다운 불자(拂子 먼지떨이)라는 뜻. 고라니[麈]의 꼬리는 먼지가 잘
떨린다 하여, 이 고라니의 꼬리털로 만든 먼지떨이는 청담(淸談)을 하던 고사(高士)들이
많이 가지고 다녔으며 뒤에 불도(佛徒)들도 많이 가지고 다녔는데 여기서는 곧 고승의
설법(說法)을 뜻한다. 《晉書 卷43 王衍傳》
[주D-004]방포(方袍) : 비구(比丘)가 입는 세 종류의 가사(袈裟). 모두 네모진 옷이므로 이렇게
칭한다.
[주D-005]호안(胡眼) : 불자(佛者)의 눈을 이른다.
[주D-006]중동(重瞳) : 겹으로 된 눈동자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곧 임금을 가리킨다.
[주D-007]총해(蔥薤)를 다듬더니 : 귀빈(貴賓)을 맞을 차비를 한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소의(少儀)에 “군자(君子)를 위하여 파ㆍ마늘을 다듬을 때는 양쪽 끝을 가지런하게
자른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아들 삼백(三百)이 술을 마시다
네가 어린 나이에 벌써 술을 마시니 / 汝今乳齒已傾觴
앞으로 창자가 녹을까 두렵구나 / 心恐年來必腐腸
네 아비의 늘 취하는 버릇 배우지 마라 / 莫學乃翁長醉倒
한 평생 남들이 미치광이라 한단다 / 一生人道太顚狂
한 평생 몸 망친 것이 오로지 술인데 / 一生誤身全是酒
너조차 좋아할 건 또 무엇이랴 / 汝今好飮又何哉
삼백이라 명명한 걸 이제야 뉘우치노니 / 命名三百吾方悔
아무래도 날로 삼백 잔씩 마실까 두렵구나 / 恐爾日傾三百杯
○취중에 김군(金君) 원(瑗)에게 주다 병서(幷序)
김군은 부귀한 가문에 태어나 흉금이 쇄락(洒落)하고 시서(詩書)에 능하였으며, 소년 시절에 출세
하여 매우 호화로웠다. 그런데 우연한 일로 거의 이십 년 동안이나 영남(嶺南)에 유배되어 있다가
이제야 사명(赦命)을 받고 경도(京都)로 돌아왔다. 내가 내시(內侍) 유군(柳君)의 집에서 처음
으로 만났는데 김군이 옛날 친구처럼 흔연히 대해주므로 나도 술이 얼큰해진 나머지 이 시를 즉석
에서 써 주다.
계림 선생은 뛰어난 재사로서 / 鷄林先生謫仙人
화려한 가문에 부귀한 몸이로세 / 羅綺叢中富貴身
봉래전 위에 취한 채 신을 벗기웠고 / 蓬萊殿上醉脫靴
비련을 잘못 양귀비에 비유했다가 / 誤將飛燕譬太眞
하루아침에 강남으로 내려가 / 一朝謫向江南天
이십 년 동안 연화 속에 취했으니 / 醉臥煙花二十春
옥 새장이 어찌 구포의 봉황을 가둬 놓으며 / 玉籠那致九苞鳳
금 자물쇠도 오채(五彩)의 기린 길들이기 어려워 / 金鏁難馴五色麟
장욱의 붓을 통쾌히 휘두르며 / 快揮張旭筆
도잠의 두건 멋대로 쓰고 / 狂着陶潛巾
한없이 평화스런 이 시대에 / 熙熙太平日
요(堯) 임금의 백성이라 자칭하네 / 自號陶唐民
금계의 사면(赦免)으로 경도로 돌아왔으나 / 金鷄放赦向京洛
경도에는 풍진이 많다하여 / 京洛多風塵
손 흔들며 다시 멀리 떠나려 하니 / 又欲掉臂涉千里
손목을 부여잡고 눈물만 뿌리누나 / 相逢拊手空揮淚
훌쩍 떠나려는 그대의 고결한 뜻을 보니 / 見君飄然雲外心
공명을 마치 헌 신짝처럼 여기는구려 / 一餉功名眞弊屣
가거든 천금 같은 몸 잘 보호하소 / 行矣善保千金軀
동서 남북이 다 같은 하늘과 땅일세 / 南北東西亦是一天地
[주D-001]계림 선생(鷄林先生) : 신라(新羅) 왕족의 후예라는 뜻으로 곧 김원(金瑗)을 가리킨
말이다.
[주D-002]봉래전(蓬萊殿) 위에…… 비유했다가 : 이백(李白)이 어전에 취해 있을 때 환관 고
역사(高力士)가 당 명황(唐明皇)의 명으로 그의 신을 벗겨 준 일이 있었는데 역사가
그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다가 양귀비(楊貴妃)에게 “그가 지은 청평악사(淸平樂詞)
가운데 가련 비연의신장(可憐飛燕倚新粧)이란 구절은 한(漢) 나라의 여우 같은 조비연
(趙飛燕)을 귀비에 비유하여 모욕한 것이다.”고 참소하여 그의 출세를 저지시켰다는
고사이다.
[주D-003]구포(九苞) : 봉황의 깃에 나타나는 아홉 종류의 빛을 이른다.
[주D-004]장욱(張旭)의……휘두르며 : 초서(草書)를 잘 쓴다는 뜻이다. 당 나라 때 장욱이 초서에
매우 뛰어나, 문종(文宗) 때에 이백(李白)의 가시(歌詩), 배민(裴旻)의 검무(劍舞)와
함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는데, 당시에 장욱을 초성(草聖)이라고까지 하였으므로
이름이다. 《唐書 卷202 張旭傳》
[주D-005]도잠(陶潛)의……쓰고 : 은거(隱居)했다는 뜻이다. 진(晉) 나라 때 도잠이 뜻이 매우
고상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와 야인(野人) 옷차림에 갈건(葛巾)을 쓰고 다녔는데,
술 자리를 만나면 문득 갈건을 벗어 가지고 술을 걸러 마시고 술이 다하면 다시 쓰곤
했다 한다.《宋書 隱逸傳》
[주D-006]금계(金鷄) : 《수서(隋書)》 형법지(刑法志)에 “죄수를 석방시킬 때 창합문(閶闔門)
밖 우측에 금계와 북을 설치하여 북소리가 일천 번 울린 뒤에 죄수의 가쇄(枷鎖)를 풀어
준다.” 하였고, 《송사(宋史)》 의위지(儀衛志)에는 “하늘의 천계성(天鷄星)이 움직
이면 나라에서 사령(赦令)이 내린다 하여 육조(六朝) 이래로 금계를 사용했다.” 하였다.
醉贈金君瑗 幷序
金君生富貴。襟韻蕭洒。工書能詩。少年得志。頗極豪華。偶以事長流嶺南。幾二十年矣。今有赦召還
京輦。予始見於內侍柳君家。金君欣然如舊相識。予酒酣。走筆贈之。
鷄林先生謫仙人。羅綺叢中富貴身。蓬萊殿上醉脫靴。誤將飛燕譬太眞。一朝謫向江南天。醉臥煙花二
十春。玉籠那致九包鳳。金鎖難馴五色麟。快揮張旭筆。狂着陶潛巾。煕煕太平日。自號陶唐民。金雞
放赦向京洛。京洛多風塵。又欲掉臂涉千里。相逢拊手空揮淚。見君飄然雲外心。一餉功名眞弊屣。行
矣善保千金軀。南北東西亦是一天地。
○문 장로가 귤을 부(賦)한 시에 차운하다
형남(荊南)에만 생산되는데 / 荊土偏生託
흩어진 선성의 정기(精氣)일세 / 璇星遍散飛
〈춘추위(春秋緯)〉 운두추(運斗樞)에 “선성의 정기가 흩어져 귤이 되었다.” 하였다.
(斗樞曰璇星。散爲橘。)
속에는 백옥뇌가 들었고 / 中藏白玉腦
겉에는 울금이 덮였네 / 外襲鬱金衣
천 그루의 재배는 천호후(千戶侯)에 견주고 / 種致將侯等
세 개를 간직함은 모친에게 드리려 함일세 / 懷宜遺母歸
그대는 어디서 구했던가 / 君從何處得
연말이라 얻어 보기 힘들구려 / 歲暮見方稀
[주D-001]백옥뇌(白玉腦) : 귤(橘)의 씨앗을 가리키는 말인데, 즉 백옥(白玉)처럼 희고 깨끗한
용뇌(龍腦)와 같다는 뜻이다. 용뇌는 인도(印度)에서 나는 용뇌수(龍腦樹)의 줄기에서
덩어리로 되어 나오는 투명(透明)한 결정체(結晶體)이다.
[주D-002]울금(鬱金)이 덮였네 : 귤의 껍데기가 노란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울금은 생강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그 지하경(地下莖)은 노란빛이 매우 짙기 때문에 그 분말(粉末)을 황색의 물감
으로 쓴다.
[주D-003]천 그루의……견주고 : 《사기(史記)》 卷129 화식전(貨殖傳)에 “촉(蜀)ㆍ한(漢)ㆍ강릉
(江陵) 지방의 귤나무 천 그루를 가진 사람은 천호후(千戶侯)와 맞먹는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천호후는 천호나 있는 넓은 땅을 영유한 제후를 말한다.
[주D-004]세 개를……드리려 함일세 : 삼국(三國) 시대 육적(陸績)이 나이 6세에 원술(袁術)의
집에 갔다가 그가 주는 귤 3개를 품고 작별 인사를 하다가 땅에 떨어뜨리자 원술이
“네가 손님으로서 어찌 귤을 품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가져다가 모친에게
드리려 합니다.” 한 고사이다. 《三國志 卷57 吳志 陸績傳》
○야옹(野翁)이 홍시(紅柿)를 보내다
식물 가운데 칠절을 가졌는데 / 植物憐渠兼七絶
〈본초(本草)〉에 보인다.(見本草。)
야옹이 나에게 천 개나 보냈구려 / 野翁餉我僅千枚
맛이 꿀이나 엿 또는 젖과 같아 / 味如飴蜜還如乳
우는 아이도 웃길 수 있네 / 解止兒啼作笑媒
[주D-001]칠절(七絶) : 감[柹]의 일곱 가지 좋은 점. 첫째 수명이 긴 것, 둘째 잎이 풍성하여
그늘이 짙은 것, 셋째 새의 둥우리가 없는 것, 넷째 좀이나 벌레가 없는 것, 다섯째 단풍 들었을
때의 아름다운 잎, 여섯째 먹음직스러운 고운 열매, 일곱째 낙엽(落葉)이 매우 비대(肥大)하여
글씨를 쓸 수 있는 점이다. 《本草 卷30 果部 柿》
○또 귤을 읊다
손에 쥐고 굴리니 둥글둥글 사랑스러워 / 掌中持弄愛團團
어찌 강남 눈 속에서만 구경해야 하나 / 何必江南雪裏看
한 개인들 어찌 함부로 쪼갤손가 / 一箇忍堪輕擘破
천리 먼 길에서 장안까지 왔다네 / 邈從千里致長安
○산사(山舍)를 찾다가 길을 잃다
저물녘에 산사를 찾다가 방향을 잃고 / 暮尋山舍昧西東
우거진 잡목과 잡초 속에 떨어져 / 行墮荒榛暗莽中
가까스로 좁은 길 하나 발견하고 / 失路忽逢樵徑在
나무하는 늙은이에게 재삼 묻곤 하네 / 再三珍重採薪翁
○우연히 산중에 노닐다가 석벽(石壁)에 쓰다
오랫동안 홍진에 묻힌 나그네 / 久爲紅塵客
이리저리 뛰느라 쉴새가 없어 / 浪走無時休
산에 오려고 미리 작정한 바 아니나 / 到山本無意
우연히 이번 길을 나서게 되었네 / 偶爾得玆遊
산을 좋아하는 한 친구가 / 無奈愛山人
함께 오는 반려(伴侶)가 없었던지 / 獨往嫌無儔
나를 만나 고삐를 나란히 하고 / 相逢許聯轡
교외로 나와 유유히 걸었는데 / 出郭行悠悠
구름과 연기가 점차 가리운 것을 보고 / 雲煙漸掩靄
숲 언덕에 가까워짐을 깨달았네 / 始覺向林丘
가볍게 떠 있는 소나무 위의 안개요 / 苒苒松上霧
차갑게 흐르는 바위 사이의 물일세 / 冷冷石間流
서로 부축하며 산사(山寺)에 들러 / 相將入僧舍
한 잔씩 마시며 담소(談笑)가 은근해 / 小酌語綢繆
어느 새 은거(隱居)하는 취미에 젖어 / 已愜幽居趣
그냥 이곳에 머물러 있고파지네 / 又欲便成留
중성 이하 하성을 타고난 자는 / 迺知中下性
그 처지에 따라 달라지기에 / 反覆隨所由
속세에 나가면 번화함을 즐겨하고 / 趨世悅紛華
산에 들어오면 조용함을 좋아하누나 / 入山樂淸幽
내일 아침 도성에 돌아가면 / 明朝返都城
또다시 생계에 얽매어야 하니 / 又縛營生謀
아 말해서 무엇하랴 / 嗟哉更何言
세연(世緣)의 속박 면할 길 없네 / 未免塵緣拘
다만 자녀(子女)의 혼가를 마쳐야만 / 要當婚嫁畢
새장에 갇힌 몸 벗어나게 되리 / 始脫籠中囚
[주D-001]자녀(子女)의……되리 : 후한 때 은사(隱士) 상장(尙長)이 자녀의 혼가(婚嫁)를 다 마친
뒤에 집안 일에서 일체 손을 떼고 동지 금경(禽慶)과 함께 삼산(三山)ㆍ오악(五岳)을
두루 노닐면서 일생을 마쳤던 고사이다. 《嵇康 高士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