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라이프 600호를 축하합니다>
묵은 것의 랩소디
“묵은 솔이 관솔이다.”라는 속담은 오래 묵어 송진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관솔이 불쏘시개로는 으뜸이라는 말로 경험과 연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낡다, 닳다, 늙는다’라는 말은 일정한 때를 지나서 오래된 상태가 지속되어 쇠퇴하고 떨어지게 된 상태를 말한다. 우리말에는 이런 말들과는 차원이 다른 ‘묵은’이라는 말이 있다. ‘케케묵은, 묵은 감정, 천년 묵은 여우, 묵은 실타래, 묵은 피로’ 등과 같이 ‘묵은’이라는 말은 오래되었지만, 푹 익고 삭아 본래의 상태보다 깊게 진화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묵은 것에 대한 존중과 믿음은 서구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보다 수십 배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들은 100년이 지난 물건을 앤틱(Antique)이라 하고, 그 이후의 물건들은 빈티지(Vintage)라고 칭하며 그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경남 함안의 ‘아라 연꽃’은 실제로 700여 년 전의 연밥 씨앗을 발아시켜 피운 꽃이다. ‘천년의 씨앗’이라는 연밥은 천년이 지난 후에도 씨앗을 심으면 신기하게도 꽃대를 올려 연꽃이 피운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경주국립박물관의 에밀레종의 나이도 1,250살이다. 비록 2004년부터 보존을 위해 타종을 멈추었지만, 젊은 날 운 좋게도 가까이에서 그 소이를 몇 번 들었다. 어떤 오디오로도 흉내낼 수 없는 하늘과 땅과 인간을 관통하는 장엄하면서도 아기 울음소리 같은 미세한 마지막 울림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해운대 동백섬에도 1,100여 년을 거센 파도와 풍상을 겪으며 모래사장 쪽을 바라보고 있는 ‘海雲臺(해운대)’라고 선명하지는 않지만, 글자는 알아볼 수 있는 석각이 새겨져 있다. 신라 말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이었던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 857~?)이 자신의 호를 선사하여 돌에 새긴 이 석 자의 글씨로 인해 해운대라는 이름의 근간이 되었다.
마고할미 설화와 전국 최고의 너덜겅을 품고 있는 장산과 야경과 레저의 명소로 떠오르는 수영강과 달맞이길과 해안 절경길과 동백섬을 품고 있는 해운대, 그리고 38만 해운대 사람을 이야기하는 정론지 ‘해운대라이프’도 600호를 발행하며 어느덧 ‘묵은 것’의 반열에 올랐다. 그 진화의 랩소디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