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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적대적인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1-3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증가하자, 사람들은 그리스도인과 유다인을 구별했다. 하지만 로마 제국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려오던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교가 하나의 중요한 소수 종교 형태로 형성되어 갈 무렵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그리스도인들이 거행하던 예식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과 비밀이 무성해졌고,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증거가 있다. “그리스도교는 동방에서 생겨났으며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다. 그들의 관습은 아주 낯설고 이상하다. 그들은 은밀하게 분파를 이루고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이것은 로마 제국이 왜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호감을 갖지 않았는지를 알려 주는 이유가 된다. 당시의 그리스도교 작가(호교 교부)들은 그릇된 여론과 로마 제국에 대항해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옹호하기 위해서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그러나 호교 교부들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며 쫓아다니던 로마 제국의 병사들의 만행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2.1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그리스도교를 비난하는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많이 전해져 온다. 이 작품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비난하던 자들을 반박하기 위해서 인용한 것들도 있다. 그리스도교를 비난하는 작품 중에는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을 일삼는 작품들도 있었고, 지적·논리적으로 비난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2.1.1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통된 비난
그리스도인에 대한 비난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악성 소문
약200년경에 로마의 법률가 미누키우스 펠릭스(Minucius Felix)는 《옥타비우스(Octavius)》라는 대화 형식의 작품을 썼다. 이 작품에는 그리스도인 옥타비우스가 이교인과 벌인 논쟁이 담겨 있다. 이교인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무시무시한 소문을 들려주는데 다음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당시에 난무했던 소문이 어떤 것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옥타비아누스는 이교인에게 그리스도인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를 냉정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소문에 따르면, 터무니없고 얼토당토않은 것에 속아 넘어간 그리스도인들이 당나귀의 머리와 동물의 심장을 숭배한다고 한다. 예비 신자 입교식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로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데 이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먼저 어린아이를 밀가루로 덮어씌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예비 신자들이 밀가루 부대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밀가루로 뒤범벅이 된 어린아이를 신비 예식에 처음으로 참여하는 예비 신자들 앞에 내놓는다. 예비 신자들에게는 밀가루 덩어리라고 속인다. 그렇게 해야만 예비 신자들이 그것을 때리고 구타하면서도 결코 나쁜 행위가 아니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예비 신자들은 어린아이를 죽인다. …그들은 어린아이의 피를 게걸스럽게 핥아 먹는다. 그런 뒤 그들은 어린아이의 몸뚱이를 어떻게 분해할 것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어린아이를 죽임으로써, 그들은 모두 맹세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범죄에 공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서로 침묵을 지킨다. …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축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은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들이다. …축제 때가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축제를 지내기 위해 남녀노소 모든 가족을 데리고 모인다. 배불리 먹고 난 후 축제 분위기가 절정에 달하면, 술에 취한 그들은 근친상간을 저지른다. 그들은 개를 횃불 기둥에 묶어 놓고서, 개에게 고깃덩어리 하나를 던져 주며 물게 한다. 하지만 묶인 개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 고깃덩어리를 던져 놓았기 때문에 개는 고깃덩어리를 물 수가 없다. 그들을 현혹시켰던 불꽃이 점점 사그라져 가면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난장판을 이룬다. 설사 이 같은 일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런 짓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속으로 그런 짓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미누키우스 펠릭스,《옥타비우스》, 9,6.
라브리올르(Labriolle), 《이교도의 반응(La Reaction paienne)》, 91쪽에서 인용.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통적인 예식이나 황제 숭배를 반대하고 심지어 동방 종교들의 예식에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종교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대 종교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이 때문에 도시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버림받은 신들이 복수를 해서 홍수와 지진과 전염병과 야만족들의 침입 같은 엄청난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당나귀를 숭배하거나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당한 도둑을 숭배하는 등 로마 제국이 금지하는 예식에 몰래 참여한다고 의심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근친상간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단지 난잡한 섹스 파티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르면서 가증스러운 일을 자행한다고 여겼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식인종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의식 중에 살해된 어린이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당시에 이 같은 중상모략이 팽배해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엄청난 오해를 받았다. 저술가이자 통치자였던 소(小)플리니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이 몰상식하고 터무니없는 미신을 믿는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약120년경에 쓴 작품에서 그리스도교를 새롭게 등장한 위험한 미신이라고 비난했고, 역사가 타키투스도 그리스도교를 혐오스러운 미신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현자라고 일컬어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마저도 그리스도인은 완고하기 짝이 없는 고집불통이라고 비난했다.
순진하고 잘 속는 그리스도인
시리아 사모사타 출신인 루키아누스(125년경~192년경)는 뛰어난 그리스어 저술가다. 여러 지역을 두루 여행한 그는 단편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가 쓴 작품들은 주로 대화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는 당시 사회상을 아주 흥미롭게 그려내면서 체계화된 철학과 종교의 가치들을 비웃고 조롱했다. 《페레그리누스의 죽음》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허풍을 잘 떠는 사기꾼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사기꾼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등쳐먹는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루키아누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순진하고 어리석은지를 보여 준다.
가난하고 불쌍한 종자인 이들이 제일 먼저 확신하는 것은 자신들은 불사불명하며 영원히 살리라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죽음을 경멸하고, 심지어 자진해서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게다가 그들에게 최초로 계명을 준 사람은, 그들이 모두 같은 형제자매라고 하면서 그리스의 신들을 부정하고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당한 궤변론자인 자신을 숭배하고 자신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들은 모든 것을 경멸하고 모든 것을 공동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돌팔이나 사기꾼도 만일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지 이 어리석고 순진한 이들을 협박해서 재산을 등쳐먹을 수 있을 것이다.
루키아누스, 《페레그리누스의 죽음(De Morte Pergrini)》, 13.
라브리올르, 《이도교의 반응》, 103쪽에서 인용.
그런가 하면 풍자가 루키아누스(Lucianus)는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에게나 쉽게 사기당하기 쉬운 순진한 시골 촌뜨기라고 비난했다.
2.1.2 철학자와 정치인들의 비난
사실 그리스도인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지식인들이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켈수스(Celsus, 2세기)와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3세기)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리스도인은 무식하면서도 허세 부리는 가난뱅이
어느 현자의 반박
많은 교육을 받은 이교도 켈수스는 그리스도교를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170년경에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비난하는 《참말》이라는 작품을 그리스어로 집필했다. 오늘날에도 켈수스의 비난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여기 어제 갓 태어난 새로운 인종이 있다. 그들에게는 고향도 없고 전통도 없다. 그들은 정의를 추구하는 모든 종교적·시민적 제도를 거부하고 파렴치한 행위로 악명이 높은 자들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는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
그들의 행동 강령은 다음과 같다. “교육을 받은 사람, 현명한 사람, 분별력 있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우리가 악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접근하지 말고 어리석고 무식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과 어린이들에게 접근하라.”
이처럼 어리석고 무식한 자들만이 하느님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바로 그들이 어리석고 멍청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들은 바보와 무식쟁이, 노예와 여자와 어린이들만을 유혹한다. …(3권, 44)
하느님이나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주장은 얼토당토않고 허무맹랑한 말이다. 이런 주장은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느님이 내려왔는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내려왔는가?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알지 않는가? 만일 하느님이 모든 것을 다 안다면, 왜 사람들을 올바르게 교정하지 않는가?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특별히 간택한 이를 내려 보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신적 권능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4권, 7)
하느님은 선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분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존재한다. 만일 그런 상태에서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내려온다면, 하느님은 선에서 악으로, 좋은 것에서 수치스러운 것으로, 행복에서 불행으로, 가장 좋은 것에서 가장 사악한 것으로 변화되었을 것이다. 누가 이 같은 변화를 선택하겠는가? 하느님은 이런 변화를 겪을 수 없는 존재다. (4권 14)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신들을 합당하게 숭배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혼 적령기가 되어도 결혼해서는 안 되고, 자녀를 낳아서도 안 되고, 인생을 살아서도 안 된다. 만일 그들이 자식을 낳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리스도인 종족들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만일 그들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세상의 기쁨을 누리며 불행을 견뎌 내고자 한다면, 그들은 이런 것들을 위임받은 신들에게 합당한 숭배를 드려야 한다. …(8권, 54)
만일 모든 사람들이 너희들(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한다면, 황제는 혼자 쓸쓸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으며, 법도 질서도 없는 야만족이 이 땅을 통치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신을 섬기는 일도 불가능하고 진리에 대해서 단 한 마디 말도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8권 68)
그리스도인은 온 힘을 다해 로마 황제를 숭배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로마 황제와 함께 정의를 위해 헌신하고 황제를 위해 기꺼이 싸워야 한다. 위험이 닥치면, 황제와 함께 전쟁에 나가야 한다. (8권 73)
…만일 법을 지키고 신을 섬기도록 그리스도인에게 관직이 주어진다면, 그리스도인은 조국을 위해 근무해야만 한다. …(8권, 75)
‘켈수스, 《참말(Discurdud verus)》’을
오리게네스, 《켈수스 반박(Contra Celsum)》(3세기 작품)에서 인용.
그리스도교는 사회적으로 가난한 하층민을 신자로 포섭했다. 즉, 절망에 빠진 육체노동자, 베 짜는 직공, 신발 장수 그리고 무두장이 등에게 주로 접근했다. 또한 그리스도교는 잘 속는 여자, 어린이, 노예들을 집중 공략했다. 한편, 힘든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잘 사는 현명한 사람들은 로마 문명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리스도교는 로마 문명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남편과 아버지보다 부인과 어린이가 로마 문명의 가치에 대해 더 잘 의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리스도교는 주로 남편과 아버지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나쁜 시민
그리스도인은 도시 종교의 예배에도, 황제 숭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조상들의 관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행정 기관 근무뿐만 아니라 군 복무마저도 거부했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나 로마 제국의 안녕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켈수스가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는 작품을 저술할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다뉴브 강가에서 게르만족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만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했더라면, 어떻게 로마 제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십중팔구 금방 멸망해 버렸을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비합리적인 종교
켈수스 포르피리우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난 가운데 일부가 여전히 오늘날에도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모순투성이인 그리스도교
튀루스에서 태어난 포르피리우스(234~305년경)는 헬레니즘 교육을 받은 유다인으로서 철학자 플로티누스(Plotinus)의 제자였다. 고상한 도덕을 중시했던 그는 밀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쓴 《그리스도인 반박(Adversus Christianos)》이라는 작품에서 복음의 내용이 서로 불일치하고 그리스도교 교의에 모순된 내용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특히 비난한 주된 내용은 그리스도의 강생과 부활이었다.
튀루스는 페니키아 항구 도시다.
‘신들이 동상 안에 살고 있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이 멍청하고 어리석다고 가정해 보자. 설사 그리스인들 가운데 그렇게 믿는 자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그리스도인들보다는 훨씬 더 순수하고 깨끗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이 내려와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들어가 태아로 있었으며, 태어난 후에는 여러 가지 오물로 뒤덮인 구유에 누워 있었다고 믿는다. …
그(그리스도)는 대사제와 총독 앞에 붙잡혀 왔을 때, 자신이 신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때리고 얼굴에 침을 뱉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가 하느님의 명에 따라 그런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그는 그런 벌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기를 심판할 판관인 빌라도 앞에서 무례한 말을 강경하고 지혜로운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고통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에 그는 자신이 길거리에 내던져진 폭도처럼 모욕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참으로 놀랍고 엄청난 거짓말이 아닌가!(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4장 14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내용을 가리킴).
만일 네가 이 같은 새빨간 거짓말을 이성이 없는 짐승(단지 으르렁거릴 수만 있는 짐승)에게 대고 노래한다면, 그 짐승은 네 귀청에 터져 나가도록 크게 울부짖을 것이다. 육체를 지닌 인간이 새처럼 공중을 날아다니고 구름 위로 물건을 운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에 대해 …
라브리올르, 《이교도의 반응(La Reaction paienne)》, 260쪽.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에는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육화’라는 말이 있는데, 완전하고 불변하는 하느님은 결코 자신을 낮추어 어린아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 외에도 다음과 같은 다른 비난들도 많이 있다. 왜 하느님은 그토록 늦게야 육화했나?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예수는 죽을 능력조차 없던 가난뱅이였다.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 오고 가르쳐져 오던 내용을 그대로 표절한 것에 불과하다. 육신의 부활은 얼토당토않은 어불성설이다. 포르피리우스는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이 온통 신인동형설(神人同形設)과 같은 잔인한 이야기들로 꾸며진 허무맹랑한 책이라고 주장했다. 복음서에 나오는 평화의 하느님과 구약 성경에 나오는 전쟁을 좋아하는 하느님은 일치하지 않고 네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일치하지 않고 상반된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의식은 한마디로 비윤리적이었다. 물 한 방울로 모든 죄를 단번에 용서받는다는 세례야말로 악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행위이고, 아무리 우의적으로 해석한다고 할지라도 성찬례는 식인종의 의식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의 현명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서로 갈라져 싸우면서 자기들끼리 서로 단죄하는 자들이다.
2.1.3 그리스도인의 대응
반박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은 여론을 계몽하고 자신들을 변호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스도인들은 작품을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과 종교 예식을 분명하게 설명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려고 했다. 이런 작품들을 일컬어 ‘호교론’이라고 부른다. 호교란 옹호 또는 정당화라는 뜻이다.
호교 교부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들(황제, 통치자, 지식인, 여론)을 대상으로 작품을 저술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작품을 써야 했으므로 그리스-라틴 문화적인 배경에서 작품을 서술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만의 고립된 문화를 깨고 나오게 되었다.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를 헬레니즘화했고, 헬레니즘을 그리스도교화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을 만들어 냈다.
대부분 많은 교부들은 이름만 남아 있다. 그들 작품 중 극소수만이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를 통해서 후대에 전해졌다. 하지만 몇몇 주요 작품들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로마에서 그리스도교 철학 학교(140~150년)를 개설한 유스티누스(Justinus)는 이방인과 유다인들에 맞서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했다. 익명의 작가가 쓴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영혼이라고 설명하는 아주 유명한 구절이 있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의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이 편지는 약 20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였다. 편지의 저자는 수신자인 이교도 디오그네투스에게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심도 있게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변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은 출신지가 다르다거나, 이상한 언어를 사용한다거나, 다른 특별한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도시에 살지도 않고, 어떤 특별한 방언을 사용하지도 않으며, 그들의 생활에 특별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정신 착란자의 상상이나 꿈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니며,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인간적 학설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운명에 따라 그리스나 다른 도시에 흩어져서 사는데, 그들이 속해 있는 영적 세계의 특수하고 역설적인 법을 따라 살되, 의식주의 생활방식은 온전히 그 지방의 관습에 따라 삽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나라에 살면서도 마치 나그네처럼 살아갑니다. 시민으로서 모든 의무를 수행하지만, 외국인처럼 모든 것을 참습니다. 그들은 모든 낯선 나라를 자신들의 고향처럼 생각하지만, 모든 나라가 그들에게는 타향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듯 그들도 결혼하여 어린아이를 가지지만 아기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들도 음식은 서로 함께 나누지만, 잠자리는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지니고 있으되 육체를 따라 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지상에 살고 있으나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들은 기존 법을 따르지만, 그들의 생활방식은 그 법을 정복하여 완전하게 합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박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그들을 축복해 줍니다.
한마디로 영혼이 육체 안에 존재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모든 도시에 흩어져서 살듯이 영혼도 육체의 모든 부분에 존재합니다. 영혼이 육체 안에 있지만 육체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 안에서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영혼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극기할 때 진보하듯이,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당할 때 날로 계속해서 증가합니다. 하느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위는 그렇게 고상한 것이기에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Epistula ad Diognetum)》, 5~6.
‘그리스 인간학에서 영혼이 육체에 생명을 준다고 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생명과 의미를 준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하나의 거대한 문제, 곧 ‘그리스도인과 다른 사람들을 구별시켜 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한다. 그리스도교 호교론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가 저술한 《호교론(Apologeticum)》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능과 변호사로서의 열정을 쏟아서 이 작품을 197년경에 저술했다.
모든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부당한 비난과 박해 시대에 자행된 유죄 판결의 부당성을 일일이 지적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모든 비난을 단계적으로 일소해 나갔다.
우리는 비밀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예식을 당신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라고 호교 교부들은 주장했다. 유스티누스의 작품을 통해서 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거행하던 주요 예식들에 대해 알 수 있다 또한 테르툴리아누스의 작품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당시에 어떻게 살았는지도 알 수 있다. 유스티누스와 테르툴리아누스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생쥐처럼 숨어서 지낸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비난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우리는 어디든지 자유롭게 간다.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는다. 하지만 당신들과 달리, 우리는 신전과 원형 경기장에 가지 않는다.”
당신들이야말로 야비한 관습을 지녔다
로마 사회는 유아 살해와 낙태를 자행했다. 그런 악행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금지된 행위였다. 그리스도인은 말했다. “당신들이야말로 성범죄를 부추기고, 신들의 엽기적인 연애 행각을 자랑삼아 떠벌리고, 자기 아내와 남의 아내를 서로 바꾸는 파렴치한 사람들이다. ….”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아예 로마 제국의 주요 관습들을 싫어한다고 드러내 놓고 말했다.
그리스도교는 합리적인 종교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와 구약 성경의 관련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철학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모세는 그리스 철학자나 사상가들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인데, 이 모세를 그리스 사상가들이 표절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당신들은 얼마나 많은 증거를 들이대고 얼마나 많은 말을 해야 알아듣겠는가? 하지만 그리스도교를 비난하는 켈수스는 모세가 오히려 이집트 사상가들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를 옹호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이교도의 종교를 반박했다. 그들에 따르면 이교도의 신들은 도덕관념이 전혀 없는 사악한 신들이다. 유스티누스는 “당신들이 만들어 놓고 믿는 신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분명 무신론자다”라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인은 착한 시민
초세기에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부정적인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견해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요한 묵시록에 나타나는 사상을 근거로 하여 로마 제국을 바빌론이나 짐승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왜냐하면 로마 제국이 우상을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박해했기 때문이다. 붕괴 직전에 있던 거대한 석상처럼, 로마 제국은 점점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파루시아)이 임박했다고 믿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런 점 때문에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인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 면도 있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3장 1절에서 7절까지와 베드로의 첫째 서간 2장 13절을 살펴보면, 호교 교부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 제국에 충성하도록 강조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황제를 신으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황제에게 복종하고 황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금을 내는 일입니다.”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을 위한 기도문
로마의 클레멘스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61~62쪽 참조)의 끝 부분에는 그리스도인이 자신들과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문이 실려 있다.
우리 조상들이 경외심을 갖고 ‘믿음과 진리 안에서’ 당신께 부르짖었을 때 당신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응답해 주신 것처럼, 우리와 땅 위에 있는 모든 이에게 조화와 평화를 주소서. 우리도 전능하시고 지엄하신 당신의 이름에 순종하고, 땅 위에 있는 모든 통치자들과 지배자들에게 순종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은 위엄과 비할 수 없는 권능을 통해서 그들에게 당신의 주권을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서 그들에게 주신 영광과 명예를 알게 하심으로써 우리도 또한 그들에게 순종하고 당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게 하셨나이다. 주님, 그들에게 건강과 평화, 일치와 조화와 항구함을 주시어, 그들이 당신께서 주신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하소서.
로마의 클레멘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60,4~61,1.
시편 145,18(LXX 144,18); 1티모 2,7.
관직과 군에 복무하는 그리스도인
테르툴리아누스는 《호교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어디서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군대에도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한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주장: 그리스도교가 통치자들의 선익에 도움이 된다
변호사 출신인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155년경~230년경)는 자신의 능력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사용했다. 박해의 위험과 죽음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용기에 감탄한 테르툴리아누스는 마침내 그리스도교에 입문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아우구스티누스(아우구스티노, 354~430년)의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라틴어로 된 그리스도교의 문학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작품들은 대부분 논쟁적인 성격을 띤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덕행을 낱낱이 밝힘으로써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난을 가차 없이 반박했다.
우리는 단지 어제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들의 세상 곳곳에, 곧 도시, 섬, 요새, 마을, 시장, 군대, 종족, 마을 의회, 궁전, 상원, 공화당에 가득 채웠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당신네 신들의 신전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악한 비난들을 반박하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그리스도교 사회의 특징을 증명해 보이겠다. 나는 그리스도교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믿음으로 연결된 지체이고, 그리스도교 가르침으로 일치된 지체이며, 같은 희망으로 결속된 지체이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소집된 군대처럼, 우리는 기도로써 하느님을 위해 싸우기 위해 뭉친 단체이다. 또한 우리는 황제를 위해 기도하고, 황제의 신하들과 로마 제국의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한다. 게다가 우리는 세계 번영을 위해 기도하고, 평화가 증진되고 종말이 지연되도록 기도한다.
…이교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앞에 감탄하며 말한다. “보라,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가!”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을 비난하고 욕하는 자들은 서로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라,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서로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은 서로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형제’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싫어하고 미워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 우리를 그토록 미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거짓 사랑 안에서 말뿐인 인척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모성의 법에 따라, 우리는 당신들의 형제다. 당신들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형제들이지만,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자연법에 따르면, 그래도 우리는 형제다.
하지만 훨씬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은 같은 신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같은 거룩한 영 안에서 마시고 같은 무지의 태중에서 나와 고통스럽게 같은 진리의 빛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형제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지내면서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생활을 한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도의 브라만도 아니고 외딴 숲 속에서 지내며 일상적인 삶을 멀리하는 은수자도 아니다.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당신들이 가는 광장과 시장, 목욕탕과 상점, 일터와 여관, 공판장과 그 밖에 장사하는 곳에 간다.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고, 당신들처럼 군대에 복무하고, 이 땅에서 일하고, 장사를 한다. … 테르툴리아누스, 《호교론》, 37; 39; 42(약 200년경에 쓴 작품).
브라만: 인도 사성(四性) 중 제1계급인 승려 계급.
화관: 고대 로마에서 전공(戰功)을 기려 수여하던 화관을 뜻함.
그리스도인은 군인이 될 수 없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인 군인들에게 전례 중에 화관을 쓰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인은 군에 복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칼을 사용하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칼을 잡는 것을 합법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법에 호소해서는 안 되는데, 어떻게 평화의 아들이 전쟁터에 나간단 말입니까? 자신의 잘못은 벌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쇠사슬과 독약을 사용하고 고문하고 처벌한단 말입니까? …예전에 이미 끊어 버리겠다고 맹세한 신전 앞에서 어떻게 보초를 다시 선단 말입니까? 어떻게 사도들이 가지 말라고 금지시킨 장소에 가서 식사를 한단 말입니까? 어떻게 벌건 대낮에 미친 듯이 싸웠던 군인들을 보호한답시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보초를 선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찔렀던 바로 그 창에 기대어 휴식을 취한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리스도께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올랐던 군기를 들고 다닌단 말입니까?
테르툴리아누스, 《월계관(De Corona)》, 11(210년경)
그러나 이 작품보다 10년 뒤에 쓴 《월계관(De Corona)》에서는 ‘군인의 영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군대에 복무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테르툴리아누스가 나중에 몬타누스주의에 빠져든 이후로 더욱 강렬해졌다. 몬타누스파들은 세상 종말이 임박했기 때문에 세상과 완전히 단절해야만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세례 후보자에게 금지된 직업
로마의 사제였던 히폴리투스(Hippolytus)는 3세기 초에 쓴 작품 《사도전승》에서 전례 기도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세례 받을 사람들과 교회 직무를 맡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조건을 나열한다.
…우상을 숭배하는 제관들이나 우상들을 경비하는 사람은 이를 그만두게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돌려보낸다.
권력 하에 있는 군인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한다. 만일 (그런) 명령을 받으면 이를 이행하지 않게 하며, 선서를 하지도 않게 한다.
만일 그가 (이런 조건을) 거부한다면 돌려보낸다. 만일 칼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나 자줏빛 옷을 입을 정도의 지역 통치자라면 이를 그만두게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돌려보낸다. 군인이 되기를 원하는 예비 신자나 신자는 내쫓을 것이니, 이는 하느님을 경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히폴리투스, 《사도전승(Traditio Apostolica)》, 16.
테르툴리아누스가 몬타누스주의에 물들었던 시기에 저술된 작품들에는 그리스도인이 군에 복무해도 안 되고 공직에 근무해도 안 된다는 견해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심지어 그는 군인과 공무원을 세례 후보자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까지 주장했다.
《사도전승(Traditio Apostolica)》에는 이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이유가 나온다. 그 이유는 로마 제국의 관리들과 군인의 행동이 복음의 가르침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인데, 관리들은 언젠가는 이교도들의 종교 예식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고 군인은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총독은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 하게 되고, 군인은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게 되리라는 것이다. 칼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군인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로마 제국에서는 군대를 지원병으로 충원했는데, 일단 군대에 들어가겠다고 서명한 사람은 보통 20년이 지나도 군 복무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군대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에게 사람을 죽여서도 안 되고 맹세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우상 숭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 군 복무는 의무가 아니었다. 따라서 구태여 로마 제국으로부터 미움과 위험을 받으면서까지 군 복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군대 문제를 비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던 때에는 군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그리고 국경 지역에서 전쟁이 빈발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군 입대를 거부하는 것이 큰 문제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켈수스는 그리스도인들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313년의 밀라노 관용령으로 인해 교회에 평화가 찾아오자, 그리스도인들이 군대를 거부하던 모습도 점차 사라졌다. 우상 숭배의 위험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군대에 많이 들어가게 되자 새로운 문젯거리가 생겨났다. 그것은 군대에서 사람을 죽인 군인들의 죄를 어떻게 깨끗이 씻어 주고 용서해 주느냐 하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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