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가 담배를 돌렸다 담배에서 녹차 맛이 났다 가볍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다 연기처럼 가벼워지고 싶었다 외투를 벗었다 양말을 벗었다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고 스카프를 휘날리며 춤을 추었다 친구들이 킥킥대며 웃어댔다 그들을 향해 탁자에 있던 귤을 던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머리에 명중하자 웃음소리가 더 높아졌다 벽이 눈물을 흘렸다 깨진 귤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창문은 창문 탁자는 탁자 술잔은 술잔 귤은 귤 그러므로 나는 나 브래지어를 벗어 던졌다 도마와 밥솥을 집어 던졌다 저울과 모래시계와 금이 간 거울 때 묻은 경전과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던졌다 담배 한 개비 다 타들어 가도록 나는 던져버릴 게 너무 많았다
*가브리엘 가르세아 마르케스의 소설
출처:강원일보(www.kwnews.co.kr)
2023년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백숙현 시인의 <귤이 웃는다>입니다. 귤이 웃을리가 있나요? 시인의 상상력이 빚어낸 것이기도 하고 귤도 웃을만큼 터무니 없는 일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자, 인도여행에서 돌아온 친구가 친구들을 불러모아서 선물로 녹차향 담배를 돌렸나 봅니다.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가 담배를 돌렸다 담배에서 녹차 맛이 났다 가볍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다 연기처럼 가벼워지고 싶었다 외투를 벗었다 양말을 벗었다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고 스카프를 휘날리며 춤을 추었다
인도는 뭐랄까? 신이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고요, 수도하는 사람들이 많죠. 모두들 가벼워지려고 하는거죠. 이 세상의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시인은 인도를 떠 올리면서 가벼워지는걸 생각했겠죠. 그래서 외투도 벗고, 양말도 벗고, 머리를 속박하던 머리띠도 풀고, 스카프를 손에 들고 휘날리며 인도 여인이 손가락을 모아 꺾듯이 춤을 추었군요. 친구들이 킥킥대며 웃어댔다 그들을 향해 탁자에 있던 귤을 던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머리에 명중하자 웃음소리가 더 높아졌다 벽이 눈물을 흘렸다 깨진 귤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쟤, 왜 저래? 친구들이 비웃습니다. 그러자 시인은 탁자에 있는 귤을 집어 던지죠. 우리는 속박의 굴레에서 모두 벗어나야 해. 가벼워 져야 해. 귤을 바라보는 벽도 눈물을 흘리고, 여기저기 깨진 여성의 삶은 바닥에 뒹굴고 있습니다.
창문은 창문 탁자는 탁자 술잔은 술잔 귤은 귤 그러므로 나는 나 브래지어를 벗어 던졌다 도마와 밥솥을 집어 던졌다
모든 것들은 존재의 의미가 있죠. 자신을 압박한 여성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 지금까지 여성은 이 세상의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의 역할만 주문받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은 영영 잃어버리고 온갖 무거운 것들(딸, 아내, 어머니, 심지어 어떤 경우는 가장, 여성에 대한 사회적 구속)을 달고 살았어요. '그러므로 나는 나'로서의 존재를 선언합니다. 이제 시인은 자유롭습니다.
저울과 모래시계와 금이 간 거울 때 묻은 경전과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던졌다 담배 한 개비 다 타들어 가도록 나는 던져버릴 게 너무 많았다
*가브리엘 가르세아 마르케스의 소설
저울은 사물을 재는 척도죠. 여성을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봐야지, 왜 여자로 보느냐는 거죠. 모래시계, 금이 간 거울, 때 묻은 경전, 백 년 동안의 고독에 갖힌 여성이 이제 구속에서 속박에서 벗어납니다. 고작 담배 한 개비 타들어가는 시간이면 해결되는 데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을까요? 이제는 벗어나자는 호소력 짙은 시 입니다. 여성들이여, 자신을 찾아라,라고 선언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