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었을 때 힘이 되어준 아내에게........,궁시렁궁시렁
*이 글은 2003년 8월에 작성된 글입니다...행여나,지금으로 오인하고 댓글 다는 불상사가 없으시길^*^
(아내의 힘)
이 이야기는 제 아내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바치는 글이기도 하고,
제 참회록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아내는 올해 서른일곱,
저는 마흔여섯 이니까 아홉살 차이지요.
제가 서른둘,아내가 스물세살에 결혼해서
이제 햇수로 15년차 입니다.
딸애인 해인이가 열넷,
아들인 혜경이가 열두살입니다.
둘다 성격이 급하고
한번 삐지면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
참 많이도 싸우고 티격거렸습니다.
물론,
언제나 시비는 제가 걸고
그 끝은 아내가 감싸 안았지요.
대부분의 경상도 남자들이 그렇듯이
저도 아내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물론 나이차이도 많이 나니 더했지요.
나이도 어린게,
학교도 고등학교 밖에 안나온게,
지가 뭘 안다고..............,
아내는,
보통때는 참 대하기 어렵습니다.
질투도 강하고,
욕심도 많고,
남 잘되면 배 아파하고,
남편한테 이죽거리고........,
도대체,
저 여자가,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
이런 상황에 자주 마주칩니다.
하지만,
보통때가 아닌,
상황이 급하거나,심각하거나,
또는
큰 일이 생기면 달라집니다.
어떻게,
저렇게 용감해질 수 있나,
저렇게 대담해지고,
의연해 질 수 있나?
결혼 초,
첫애를 낳기 전입니다.
부산에 계시는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더군요.
아버님께서 연탄가스로 쓰러지셨다.
공기좋은 김해로 이사를 갈려는데 오백만원이 부족하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당시
제 월급이 40만원 조금 넘었습니다.
결혼할 때도 빚을 얻었었는데,
저는 고민만 하다가 아내에게 이야기하고는 잊어버렸지요.
일주일인가 후에
아내가 이야기하더군요.
처가를 포함해서 아는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어머니께 보내드렸다.
아내는 언제나 돈에 쪼들려 생활하면서도
한번도 저에게 돈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몇년후에,
처갓집에 불이나 집이 전소된 적이 있습니다.
난리가 났었지요.
처가 식구들은 울고불고,
장인어른은 넋이 반쯤 나갔고..........,
다음날 아침에
가장먼저 소매걷어부치고 일한 사람은 아내였습니다.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내면서,
옆 사람들과 활기차게 이야기도 하고..........,
새로 집 지을 때,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옆집 방 한칸을 얻어 살았습니다.
이때도
아내는 반찬이나 먹거리를 준비해서
매일같이 처가에 왔다갔다 하면서
친정부모가 기죽지 않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혼한 다른 식구들은 놀러다니고 해도
아내는 집이 완성될 때까지 한번도 외식을 하거나
놀러가지를 않았습니다.
집이 완성된 후,
아내는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회사가 전부였습니다.
일요일도 몇번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급할때는 제돈으로 컴퓨터를 사다가 회사에 가져다 놓고
일하기도 하고 그랬지요.
아마도 93년도 쯤 되었을 겝니다.
지금도 가끔 아내가 그럽니다
돈을 360만원이나 들여 컴퓨터를 사줬는데
켜지지도 않는 고물을 가져오냐고.......,
IMF때,
회사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가 근무하던 사업부가 대우전자로 매각되었습니다.
다행이
같이 일하던 직원들은 전부 대우전자 연구소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고
저는 홀가분하게 회사를 떠났습니다.
아내에게는 마지막 퇴근날 저녁에 이야기 했습니다.
아무이야기 없더군요.
그리고
그다음날 부터 두달간의 백수생활이 시작되었고
아내는 매일 얼마씩의 용돈을 주었습니다.
그후에
부산에서 장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가기전날 아내에게,
장사할려면 봉고차를 사야되니 500만원을 달라고 했지요.
아내가 돈이 없다면서 300만원을 주길래
그걸가지고 부산가서 6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아내는 아무런 수입없이 애들과 생활을 했지요.
지나간 후에 처제에게 들으니 참담하더군요.
부산에서 대책없이 6개월을 보내다가
장사밑천도 없고 해서,
수원 집팔고,전세빼고 해서 애들데리고 이사를
와야겠다 싶어 수원올라왔다가
우연찮게 지금의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페인트만 취급하는 대리점이였지요.
그때,
제 수중에 있는 건 동생에게 빌린 50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부산으로 이사가지않고 안양에서 페인트 대리점 해야겠다고 했더니,
아내는 그러자고 하더군요.
또 아내가 나섰습니다.
장인어른을 협박해서
가게 전세금 가져오고,
장인어른 논 잡혀서,
대리점 담보로 설정하고......................,
99년 7월입니다.
7월 한달을 배워서 인수를 했지요.
8월 1일,
아내가 처음 가게로 출근했습니다.
저보고 그러더군요.
가게는 자기가 지킬테니까 영업나가라구요.
처음나와서
페인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할거냐,했더니
무조건 나가라더군요.
저야,
에어컨 개발하면서 무수히 많은 제조업체를 알고있으니
영업나가는 거야 어렵지 않지요.
둘이서 쇼를 참 많이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에폭시와 우레탄은 둘다 경화제가 있어야 건조가 되는데,
위의 두 종류는 혼합이 되지 않습니다.
아내는,
에폭시를 팔면서 우레탄 경화제를 주고,
우레탄을 팔면서 에폭시 경화제를 주고...........,
변상조치도 엄청 많이 하고,
욕도 무지 들었습니다.
두달쯤 지나니까,
아내는 더 이상 실수를 않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손님께 물어보면서 팔더군요.
99년이 지나고,
2000년,
장사가 그럭저럭 잘 되었습니다.
대부분이 회사다닐 때 알고 지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주변에서 놀랄만큼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안양주변에 페인트 대리점이 약 150개 정도인데,
일년만에 5위 정도를 했으니까요,
자만했습니다.
아내의 충고도 무시하고 점점 크게 사업영역을 확장했지요.
2001년 3월,
이때를 기점으로 부도가 나기 시작하는데
정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더만요.
하나 해결하면 다른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하나,
8월까지 그동안 투자한 자금 전부 날라가버렸습니다.
마음이 위축되어 영업나갈 생각도 못하고
매출은 점점줄어 1/4까지 내려가버렸습니다.
왼종일 사무실에 죽치고 있으면서
아내만 덜볶았지요.
토요일만 되면 낚시터로 도망가서
일요일 돌아오고............,
2001년 11월 말,
저는 가게를 접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침,
범양에어컨을 위시한 몇군데서
연구소장 제의가 있기도 했기에
과감히 접어버릴려고 했지요.
사실은 도피이지만............,
아내가 이야기 하더군요.
어차피 잃어버릴 것도 없으니까
다시 해보자.
없던걸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12월 4일,
본사에서 나온 달력을 싸 들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안양,
오산,
수원,
용인,
천안,
온양...............,
한달 동안 약 500군데의 공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때는 인맥이 전혀 없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만 돌아다녔습니다.
결과는,
한군데도 견적의뢰조차 없더군요.
문전박대만도 여러 수십곳이고,
그나마,
커피한잔 얻어마신 게 1/10도 안됩니다.
또,
기가 죽었지요,
참담했습니다.
페인트만 가지고는 제조업에 영업이 될 수 없다는 결과만 얻었습니다.
아내는,
그럼 다른 것도 영업하면 되지 않느냐 했지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정말로 우연찮게,
제가 전에 다니던 두원그룹에서
일반 소모품,잡화,공구류 등에 대한 입찰공고를 낸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무조건 참여했지요.
6개 업체가 참여했는데 제가 낙찰을 받았습니다.
막상 낙찰을 받고 보니
겁이 덜컥 났습니다.
품목이 650여개,
이중에 아는 것은 10%도 채 되지않았습니다.
2002년 1월,2월,3월,
죽을 고생을 했지요.
4월 쯤 이후에는
눈이 조금 틔였습니다.
그런데로 할 만 하더군요.
이제는 약 3000가지의 품목을 별 무리없이 납품합니다.
초기에는 페인트 매출이 전부였으나,
이제는 페인트는 약 20%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공구류,잡화,소모품 등입니다.
불경기라 전반적인 매출은 줄었으나
안정적인 편이지요.
2002년 12월,
뜻밖의 기회가 왔습니다.
지인을 통해,
산업용 보일러 부품 개발 의뢰가 들어왔지요.
보일러 케이싱,급수 펌프,전동밸브,급기용 송풍기,
다운트랜스,절탄기 등 꽤 많은 부품입니다.
또 욕심이 발동했습니다.
덤벼 들었습니다.
조그만 업체 둘을 찾아서
한쪽은 케이싱,
한쪽은 펌프와 송풍기,
이렇게 개발을 시작했지요.
순탄치많은 않았지만
지난 6월까지해서 마무리 되어 일부 양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완전양산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저는 일부의 이익을 나누기로 하고....,
그렇게 했는데,
또,
투자비가 무지하게 들어갔습니다.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거는 다 끌어오고,
신용카드도 전부 다 사용해버리고..........,
지난주,
정리를 해보니 대책이 없더군요.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채를 끌어 쓸려고 몇군데 알아보았더니
요즈음은 사채도 신용조회후에 대출해주더만요.
당연히 될리가 없지요.
물품대도 지불해야 되고,
8월부터는 절탄기도 개발해야 되는데.....,
아내도 뭔가를 눈치챈 모양입니다.
물어보길래 대충이야기 했지요.
이제
아내도 더 이상 남편에게 기대할 수 없는 눈치였습니다.
아내에게 이야기 했지요.
뻔한 이야기였지만........,
우리가 벌기는 많이 버는 편이다.
하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자금이 없이 시작하다가 보니
돈이 엉뚱한 대로 가는 거지,
앞으로는 돈 들어갈 대가 없다.들어오는 거지.............,
몇일을 고민하다가,
어제,
아내와 둘이 처가에 갔습니다.
처가 식구들이 다 모여있더만요,
저녁먹고
처가 식구들과 처음으로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아내가 전체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
장인어른이 결론을 냈습니다.
하서방에게
한번더 기회를 주자.
지금 짓고있는 집 잡혀서.......................,
끝내,
아내는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처남댁이
자기들은 안해주면서
고모네만 해주냐고 해서
아내는 더 마음이 상했을겝니다.
오산에서
수원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한마디도 않더군요.
저은 아내를 사랑합니다.
평소에는 제가 잘났다고 아내를 무시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남편이 사고친 뒷치다거리는 아내몫입니다.
어제는
미안하다,고맙다는 말이 목까지 찼었지만,
또,
못하고 말았습니다.
미안하다.
고맙다.
또 미안하고 고맙다.
제가 버스타본지가 무지 오래되었는데,
요즈음은 즐거은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마음이 참 편해졌습니다.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보여집니다.
또,
이 글을 통해서나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제가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살 것을 각오합니다.
첫댓글 5년전에 쓴글에는 댓글달지 말라는 법이 있능기유? ..... 이쁜여자가 살림도 잘한다더만.....좋으시겠수...ㅎ
ㅎㅎㅎ 댓글달지 마시라는 것이 아니공...현재와 구분하시라는 이야기 입니다요^*^
열심히 하려다가 깨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요, 대부분 남성들의 공통점일 터...그래도 남편을 꿋꿋이 믿어주고 힘이 되어준 아내...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럽노...내 다음에 제수씨에게 따뜻한 감사의 말씀을...그리고, 공구류도 취급한다고? 내 언제 갈테니 저렴하게 조~ㅎㅎ
하이고야....우짠다꼬 성님이 칭찬을 다 하시공...참말로 이상하네이,..필요한 것 있시모 당근 저렴하게....
당근 저렴하게.... 또는 거저로...ㅎㅎ
감동입니다... 어떤 소설보다 멋진 두분의 장한 모습을 꼭 보고싶습니다...^^
기대하실.......개봉박두
난 왜....두 분의 징한 모습...이라고 읽었을까? ㅎㅎ
응.....징한 모습이 마져요,
징한 수봉...^^
지나간 일들이 있기에 오늘도 있으니 감사한 일이겠지요... 앞으로는 행복한 일들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하겠습니다........꼭 그리하겠습니다
아공자랑도 저렇게 하니 더욱 감동입니다.^^ 부럽습니다.^^
자랑 아닌디요-_-!....조심해야징,또 혼날라,버럭.....
"미안하다. 고맙다"에 감동먹었어요~
그리고 한 마디 더 "사랑한다"고 해야죠
사랑한다고도 했습니다^*^......저는 하루에 열번도 더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