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해군은 형이 광해군에게 죽임을 당하자 목숨에 위협을 느낀나머지 아마도 반정을 도모했을 겁니다.
거기엔 광해군의 서인집권당인 대북파의 무자비한 살육때문에 어느 정도 반감을 가진 세력이 존재했다고 보여지는데...
문제는 광해군이 물러나자 친명으로 되돌아서서 정책을 바꾼 인조대의 서인들과의 정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서인들까지도 타락한 문신들이라는 좀 안이한 발상까지 나오는거 같은데 실제로 본다면 서인들은 이황의 제자들이 속해있고 이황의 학풍을 이어받아 동인들까지도 정치적 파트너로 손잡고 정권을 주도하지 않았나요?
오히려 인조반정이 조선 내부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되려 안정을 도모했다는 점에선 광해군의 정치보단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광해군을 한 인물로 보자면 왕권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혈육이고 뭐고 위협적인 사람은 모두 죽이는 무자비한 사람같기도 합니다.
광해군과 대북파가 이전 시기의 인물들을 마구 죽이거나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사상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려 했다는 점에선 매우 커다란 오점이었고 그게 바로 인조반정의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대게 광해군이라고하면 양면외교를 펼친 선구자적 인물로 인식하는 반면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까지 당하고 선구자적 왕인 광해군을 물리친 나쁜 인상의 왕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일반인 중엔 많아 보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다닐때 광해군이야 말로 앞선 생각을 가진 조선사람이었다고 국사선생님에게 들은적이 있는데...
광해군은 명나라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래야 가질수도 없는 사람 아닐까요?
그래서 그의 사감이 작동해 명나라를 일부러 안도와줬을지도...
물론 확실한 주장은 아니지만요.
영조께서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했던 분이었는데 이 당시의 일을 생각하며 탕평을 꿈꾼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