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시골 논 여섯 마지기 -
권다품(영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틈만 나면 싸움으로 살던 어느 해 여름 방학 때였다.
저녁을 먹고 늘 하던 대로 친구들과 동네를 한 바퀴를 돌아봐도, 오늘따라 마실나온 사람들도 별로 없고, 재밌는 일도 없어서, 그냥 우리 집 마루에 앉아서 친구 둘이랑 장기를 두고 있었다.
갑자기 동네 맨 윗집부터 동네 가운뎃 길로 내려오면서, 동네가 쩌렁 쩌렁 울리고 떠나갈 듯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노랫소리 틈틈이 "ㅇㅇ아, ㅇㅇ년아, 누구한테는 ㅇ주고 내한테는 한 번 안 주나?" 이런 고함 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내려오면서 집집마다 대문을 들여다 보며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내려 오면서 대문을 발로 차는 소리도 들렸다.
양철 대문이 있는 집은 그 밤에 동네가 뒤집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도 했다.
소리가 점점 우리 집으로 가까이 오더니, 우리 집 대문을 우루루 들여다 보며, "ㅇㅇ아, ㅇㅇ년아~, 자나? 누구한테는 ㅇ주고, 내한테는 한 번 안 줄래?" 하며 역시 같은 욕을 했다.
그때 사랑방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어느 넘의 자석들이 이 야밤에 이래 시끄럽노?" 하고 야단을 치셨다.
"에이 씨바, 이 집은 방아쟁이 집이네. 그런데 저 방아쟁이 저 씨발 넘은 늙은 기 잠도 없나?"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욕을 들으시고는 아버지께서는 "에래이, 이 너무 손들을 마 태가리(턱주가리의 거친 사투리)를 잡아 띠뿔라 마. " 하시며 사랑 문을 왈칵 여셨다.
그랬더니, 놈들이 우루우 뛰는 소리가 들렸다.
마루에서 장기를 두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뛰었다.
나는 뒤따라 가면 못 잡을 것 같아서, 동네 뒷길 지름길로 뛰었다.
놈들은 동사껄까지 뛰어나와서는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동네 앞 못둑을 서서히 걸어 오면서 또 동네가 떠나가라고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못둑이 아닌 지름길인 큰도로로 뛰어서, 못둑이 끝나는 길에서 혼자 놈들을 기다렸다.
"어이, 아까 우리 아버지한테 욕했던 놈 누고? 그라고 씨발 넘들 너거는 쫌 맞아야 되겠다." 하는 생각도 못했던 말이 어둠 속에서 나자 놈들은 순간 깜짝 놀라며 우왕 좌왕했다.
내 목소리란 걸 알아차린 놈들은 벌써 당시 내 성질을 알고 있던 터라, 긴장을 하며 서로 뒷쪽으로 빠지려고 뒷걸음질을 쳤다.
또, 어떤 놈은 "내가 방앗간 어른이라꼬 욕하지말고 그냥 가자 안 카더나? 그라고 영철이가 가마이 안 있는다 안 카더나."하는 놈도 있었다.
그때 "내가 캤다 우짤래?" 하며 앞으로 썩 나서는 놈이 있었다.
밤이라 어둡긴 했지만, 덩치가 빵빵하고 힘이 좋게 생긴 것이, 우리 정미소 직원의 동생인데, 나보다는 한 해 선배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우리 정미소 직원의 동생이라는 새끼가 어떻게 우리 아버지 한테 그런 욕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할까를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 놈이 내 허리를 잡더니 그대로 저수지 물 속으로 밀어넣어 버렸다.
기습적으로 밀려 빠진 곳은, 동넷 사람들이 애기를 낳으면, 애기 태를 거기다 버리는 곳이라, 저수지 중에서도 제일 깊고 무서운 곳이었다.
더구나 밤 늦은 시간이다.
내 키도 훨씬 잠기는 깊이라, 머리가 물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는 것 같고, 물 밑 싸늘한 물의 느낌이 마치 물 귀신이 내 다리를 쑤욱 당기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섬찟한 기분에 더 빨려들지 않으려고, 죽으라고 허우적거리며 서툰 헤엄을 쳐서 겨우겨우 기어나왔다.
그런데, 나를 저수지 속으로 밀어넣고는, 내가 없는 틈을 타서, 여섯 놈이 한꺼번에 내 뒤를 따라 달려나온 내 두 친구를 덮쳐서, 몰매를 때리고 밟느라, 내가 헤엄쳐 나오는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나는 바로 길가 밭 언덕으로 뛰어 올라 몽둥이 하나를 뽑아 들었다.
굵기가 지름이 5,6센티 정도에, 길이가 1m50 정도 되는, 재질이 딱딱하고 멋진 모과 나무 몽둥이였다.
밭 말뚝으로 쓰려고, 중간 중간 낫으로 가지를 대충 쳐내서, 창처럼 날카로운 가지 끝들이 1~2센티 정도씩 붙어 있었다.
나는 "야 이 개새끼들아." 악을 썼다.
내 목소리를 들은 놈들은, 자기 동네로 도망갈 길을 딱 막고 선 나를 보더니, 놀래서 어디로 튈까를 하고 우왕 좌왕 했다.
오른 쪽은 높은 밭언덕이고, 왼쪽은 저수지였기 때문에 나를 돌파않고는 자기들 마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모과나무 몽둥이가 놈들을 향해 춤을 추었다.
한 순간에 다섯 놈이 바닥에 뻗어 버렸다.
이제 나를 저수지로 밀어넣은 놈만 남았다.
"씨발 넘아, 니는 오늘 죽었어."하며, 손바닥에 침을 뱉으며 몽둥이를 다시 움켜쥐려는 순간, 놈은 나를 피하더니, 내 다리에 걸려 넘어졌는데도, 목숨을 내놓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뛰다가 잡힐 것 같으니까, 얼마나 급했든지 모내기를 한 지 얼마 안 되는 무논으로 뛰어 들었다.
무논으로 뛰어드는 순간, 그 놈은 미끌어졌고, ㅁ끌어지는 순간 게임 끝이었다.
"딱, 퍽, 퍽, 퍽.... 아~악 ... 영철아 내 잘 몬했다. 내 좀 살리도."
다른 놈들은 머리에 한 대씩만 맞고 기절을 해버리는 바람에 한 대씩밖에 안 맞았지만, 이 놈은 살려고 도망을 가려고 버둥거리는 바람에 더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이 놈한테 죽겠다' 싶은 본능적인 꾸물거림이었을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성질이 모질고 독했던 나는 내 몽둥이를 맞고도 죽지를 않고 버둥거린다 싶어서, 몽둥이에다 독을 실어서 더 모질게 타작하듯이 해버렸다.
몰매를 맞았던 친구들이 그때야 일어나 나를 말렸다.
우리 세 명은 "개새끼들, 별 것도 아닌 세끼들이...." 하면서, 여느 날처럼 친구의 다락에서 놀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에 후레쉬 불빛이 우리 얼굴을 덮쳤다.
"이 새끼들 여기 숨어 있네." 하며 올라오는 경찰은 내가 가장 미워하는 윤순경이었다.
윤순경은 "이 개새끼들 수갑 뒤로 채우고 포승줄로도 묶어." 하면서 수사 반장에 나오는 경찰 흉내를 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어른들이 파출소로 와서 "아직 학생들 아입니꺼. 우째 일수가 나빠서 이런 사고를 쳐서 그렇지 착한 애들입니더. 우째끼나 이번 한 번만 좀 잘 봐 주이소."하며 사정을 했다.
윤순경은 "절마 공범 둘이는 학생인데, 눈까리 반짝반짝하는 주범 저 새끼는 학교도 때려 치아뿌고, 아주 악질 중에 악질이라요. 맞은 애가 진단이 14주가 나왔어요. 이건 살인 미숩니다. 살인 미수. 내가 부모라면 논 열 마지기 값이라도 합의 안 해 줍니다." 하며 겁을 줬다.
정미소를 운영하시던 아버지께서 그 못돼 처먹은 윤순경을 피해 양순경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정을 했지만, 우리는 결국 경찰서로 넘어가고 말았다.
피해자들은 경찰서에서도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
합의가 안 되면 우리는 소년원으로 가고, 전과자가 된다는 말이다.
나는 친구 두 명에게 미안했을 뿐 전과자가 된다고 겁나는 것도 없었다.
가족들의 모진 독설과 아는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에 의해 독만 남았을 때였다.
저녁이 되서야 겨우 합의가 이뤄졌다.
시골 옥답 여섯 마지기를 팔았다.
내 나이 18살 때니까, 당시 시골에서는 논 여섯 마지기가 없는 집이 동네 3분의 2였을 때였다.
그 옥답 여섯 마지기를 판 돈은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돈이었다.
그 논이 없었더라면, 합의가 안 됐을 것이고, 우리는 틀림없이 전과자가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과가 있고 없다는 것이 죄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고,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 아닌가?
옛날에 생방송에서 어느 범죄인들이 외치던 말이 생각난다.
"무전 유죄, 유전무죄...."
나는 그 이후부터, 엄마에게 더 엄청난 비꼬는 잔소리들을 들어야 했다.
친구가 우등생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친구들이 무사히 고교 졸업을 한 이후에도, 친구들이 취직을 했다는 소문이 들리던 날 이후부터도....
쇠는 두들길 수록 강해지고, 자식은 칭찬만큼 훌륭해지고, 야단이나 악담만큼 빗나가지 않을까?
취직한 친구들이 양복을 입고 고향을 찾는 명절에는, 나는 엄마의 입이 무서워서 자꾸 집밖을 나돌며 술을 마셨고, 명절은 우리 집에는 짜증과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고.....
잔소리를 들으면, 나는 또 그 기분을 사람을 패서 풀고, 논은 또 팔리고....
가능만 하다면, 생각이 안 났으면 좋겠다 싶은, 몸서리나는 시절의 기억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한 것이 있다.
지금도 누군가가 우리 집사람이나 내 자식들을 때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설사 내가 전과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참지는 못할 것 같다.
2023년 2월 19일 오후 4시 25분,
권다품(영철)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