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홀아비 시아버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딴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백석 '적경·寂境').
외딴 산중 마을, 며느리가 아기를 낳자 혼자 된 시아버지가 미역국을 끓이는 정성이 애틋하다.
그 마을 다른 집도 이 집 산모를 위해 산국을 끓인다.
외지고 가난한 산속에서도 사람들은 내 일처럼 새 생명을 함께 기뻐하고 축복한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따스한 인정이 겨울 산중을 덥힌다.
▶옛말에 "광에서 인심 난다"고 했지만 꼭 살림이 넉넉해야 남 도울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다.
낮고 어두운 곳으로 눈길이 가는 세밑,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주머니를 턴다는 소식이 잇따른다.
위안부 할머니 황금자씨는 정부 지원금과 연료비, 폐지 팔아 모은 돈을 아껴 장학금 3000만원을 내놓았다.
혼자 사는 노인들도 한 달 몇 십만원밖에 안 되는 생계급여를 쪼개 이웃을 돕는다.
▶서울 3호터널 입구 우리은행 본점 외벽에 나태주 시인의 '기도 1' 한 구절이 붙어 있다.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인천 중구 신흥동에 있는 대형 찜질방 '인스파월드'도 작년부터 추운 날을 보냈다.
하루 2000명에 이르던 손님이 신종플루가 번지면서 크게 줄었다.
누군가 불을 지르는 일까지 터져 한동안 장사를 못했다.
세금 1억4000여만원도 내지 못했다.
▶인스파월드가 겨우 정상 경영을 회복해 가던 지난달 북한이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었다.
박운규 대표는 인천으로 피란 나온 연평도 주민부터 떠올렸다.
연평도 사람들은 굴과 꽃게를 팔러 인천에 나올 때면 잘 곳이 마땅치 않아 인스파월드에 자주 묵었었다.
박 대표는 단골손님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는 찜질방을 피란민 숙소로 내놓았다.
400여명을 먹이고 재우느라 한 달 넘게 영업이 중단됐다.
▶지난주 인천시가 인스파월드에 피란민 돌봐 준 비용 3억6000만원을 갚기로 했다.
그러자 인천세무서가 인스파월드에 밀린 세금을 받겠다며 이 돈에 압류신청을 냈다.
피란민 숙소는 당연히 정부나 지자체가 마련해야 했다.
정부가 허둥지둥할 때 한 찜질방이 대신 나서 피란민을 거뒀다.
속담에 "꽃밭에 불지른다"고 했다. 인정사정없는 짓을 이른다.
인천세무서의 찜질방 세금 압류가 딱 그 격이다.
첫댓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보도를 휘두를 곳은 따로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