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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4년 7월 3일(해날).
1. 올라가는 길
아침 일찍 눈을 떴다. 131을 눌렀다. 내일 바람이 별로다. 다행이다. 7시 반에 짐을 꾸렸다. 자고 있는 반쪽이를 깨웠다. 8시도 못 돼서 차를 몰았다. 반쪼기가, "무슨 일이대, 여덜 시도 못 됐는디? 서울 간다고 헝게 설렝가?" 허고 놀린다. "아니, 8시도 못 됐어? 나는 10분인지 알았는디...."허고 시간을 봉게 7시 58분이다. 30분이 더 남아부렀다. 허는 수 없다.
지회사무실 앞에 차를 대놓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찬질이가 유인물 출력해서 작업허고 있고, 똘배가 할망빼고 앙거있다. 반쪼기 차에 있는 것 생각허고는 다시 차로 갔다. 피곤헝가 운전대에다가 머리를 대고는 눈을 감고 있다. 한참을 있응게 여러 사람들이 온다. 짐을 나르는 것을 거들고는 신세계볼링장께로 갔다. 그 앞에 '하나관광'차가 서있고 그 차 주인인 민주기사 양반이 서있다. 반갑게 악수를 허고는 차에 올라갔다. 범수 성님이 이미 차에 타고 있었다. 악수를 허고는 내려가서 차에 짐 싣는 것 거들었다. 그러고는 뒷자리에 앙거있는디 경옥이 낭자가 나타난다. 깃발 챙겼냐고 헝게 안 챙겼다고 헌다. 걍 냅두라고 했다.
바나나를 나눠주고, 주먹밥을 나눠주고, 물을 나눠준다. 옆에 있던 재용이는 잘도 묵는디 나는 안 묵고 의자에 찔러뒀다. 근디 경옥이 낭자가 차에 안 타고 배깥에서 차꼬 배배거리고 있다. 알고 봉게 못 갈 형편이란다. 바나나가 눈에 들어왔다. 큰놈한테 줄라고 했던 바나나 두 개를 조그만 창을 열고는 내밀었다. 따땃~헌 주먹밥도.... 그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건넨다. 자일리톨 끔(껌)이다.
8시 40분. 차 바꾸가 구른다. 그러자 찌푸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진다. 차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자 빗줄기가 굵어진다. 천지사방이 어두워지더니 차 천장에 비 듣는 소리가 깨 볶는 소리맹키로 들린다. 잠시 뒤, 김나리 선생이 와서는 서울은 폭우가 내리고 있어서 거리선전전은 안 허고 2시부터 종각에서 4시까지만 집회를 허고 끝낸다는 말을 박성욱지회장한테 건넨다.
10시 18분. 군산휴게소에서 내렸다. 물을 빼고 나서 봉게 용철이가 의자에 앙거있다. 그가 나를 보더니 오라고 손짓을 헌다. 가서 봉게 안마의자다. 그 젙에 앙거란다. 단추를 누릉게 모가지께서부터 두드린다.
"똑 똑 똑 또로로로...... 두르르르르르....... 우르르르르르....."
거참 시원허다. 한참을 허고 있는디 염손기호 선생이 내 오른쪽에 앙근다. 그럼서 엉뚱헌 말을 쏟아낸다.
"어? 허락도 없이 때리네? 허허허허...."
10시 30분. 박성욱 선생이 소리대를 잡는다. 오늘 아침에 떠나옴시로 자기 반쪽기한테 울컥 화를 내고 왔단다, 겁도 없이! 전교조 행사에 참여해줘서 고맙단다. 그러고는 오늘 행사 안내를 헌다. 이어 김나리 지회장이 소리대를 잡는다. 지회장이 되고나서 사업을 허다봉게 굉장허니 많은 사람을 만나서 기쁘단다. 그도 엊그제 검사한테 불려 간 것이 두 번째란다.
"27년 전, 공안검사한테 조사를 받았습니다. 위장취업했다고 그랬는데요. 이번에도 공안검사실이었습니다. 묵비권을 행사하고 왔습니다. 3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전혀 변화하지 않아 마음이 우울하고 슬펐습니다. 우리 지회에는 서른 아홉 먹은 참실부장(그의 말투로는 겁나게 어리다는 듯)이 있는데요. 그 여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안 변하다니요? 도저히 남 앞에 설 수 없었던 저 같은 사람이 집행부를 하고 있는데요. 선생님이 횃불을 당당하게 들고 앞장서시면 선생님 뒤에 따라가는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장께 눈물이 매롤라고 헌다. 7월 11일에는 촛불집회(문화제라고 함)를 장미의 거리에서 하고, 그 이전에 목포교육청 앞에서 학부모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란다. 7월 12일 아침에는 도교육청 앞에서 교사들허고 시민단체가 항꾸네 기자회견을 허고 그 뒤로 교육감허고 토론을 헐 생각이란다. 학교별 차등성과급투쟁 방안도 내놓는다. 1등급(S등급)을 받은 몇 개 학교가 반납헐 계혹을 갖고 있단다. 순천맹키로 등급별로 세금을 뺀 놈을 반납허믄 그 놈을 갖고 균등분배를 헌단다. 또 투쟁기금 5만 원썩을 걷어서 그것으로 광고를 허고 선전물을 만들고 그래도 남으믄 본부로 반납허겄단다.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이 사람이 희망이란 사실이었습니다.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이어 근천이가 나간다. 목포교육연대 사업을 야그헌다. 지난 6월 30일, 1기 목포교육발전 5개년 종합지원 사업 평가와 2기 계획에 대해 설명한다. 자료를 봤다. 안 해도 될 것들이 많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우수고 육성, 우수중 육성, 글로벌 어짜고저짜고 허는 것들이다. 유인물을 더 넘겼더니 그에 대한 평가들을 부정적으로 해놨다. 2기 계획을 봤더니 1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영어 원어민교사 지원만 빼믄.... 한 가지 놀란 것은 인조잔디 문제였다. 근천이가 말을 다 마치고 나자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를 헌다. 소개가 다 끝나자 근천이한테 물었다. "우리 학교도 인조잔디를 심는다든디, 이. 친환경 잔디로 헐 것이라고 그러대? 근디 요 유인물에 나온 것이 사실이라믄 구체적인 자료가 없으까? 일르트믄 인조잔디 성분에 뭣이 있는디 요것이 무슨 병을 일으킨다."허자, 그 젙에 앙거있던 같은 학교 선생님이 대답을 헌다. 서너 달 전에 KBS 심야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헌 적이 있단다.
"청주에 있는 모 중학교에서 실제 있었던 일인데요. 학교운영위에서 인조잔디를 깔기로 결정을 하고 추진하던 중에 학부모들이 (인조잔디의 위험성을)알고 공사를 중단시킨 일이 있었답니다."
인조잔디는 온도가 48도까지 올라가서 활동을 헐라믄 물을 뿌려야 하고, 잔디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폴리우레탄을 붙이는디 그것이 암을 일으킨단다. 그러고 인조 잔디 공사에 '친환경 자재'라는 말은 없고 '친환경 공법'이란 말은 있단다. "서울에서는 다 걷어내고 있어. 그런데 업자들이 로비를 해서 지방에서 막 하려고 그래."라고 근천이 덧붙인다. 교장선생님한테 바로 전화허까 허다가 말았다.
인조 잔디 수명은 7~8년이믄 다 되고만다. 근디 인조 잔디에서 수업을 한 시간만 허고 나믄 교사들이나 학생들이 녹초가 된단다. 그러믄 대안은 천연잔디 아니냥게 그것도 아니란다. 잔디는 일 주일 이상 볿으믄 안 된단다. 그래서 잔디구장을 빙 둘러 줄을 쳐분다. 전제고에 잔디구장 맹글어서 3년 동안 들어가도 못 허고 그림의 떡이 된 것을 보믄 그도 그렇다. 그러믄 대안은? 바람이 불어도 날리지 않는 '감람석'을 깔믄 된단다. 물론 배수 공사를 해놓은 뒤에 말이다.
11시 40분. 빗줄기가 더 굵어진다. 빗방울들이 천장에서 콩을 볶는다. 어느 휴게소인가는 모르겄는디 거그서 내려 낮밥으로 올갱이해장국을 묵고는 또 길을 서둘렀다.
2. 대회장에서
13시 35분. 종각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오줌을 눌 양으로 지하철로 내려간다. 문예국장 고진오 동지가 아래에서 서둘러 올라온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는 계단을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돌았다. 지부장이랑 중화가 맞은 편에서 걸어온다. 그들도 칫간에 갔다 오는 중이리라. 중화 손에 물기가 촉촉했다.
아들한테 전화했다. 인자 올라고 짐 싸고 있단다. 전남 식구들한테 몸자보랑 글베를 나눠준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올라가면 행복해요, 교육복지 올려요. 내려가면 건강해져요, 경쟁교육 내려요. 행복하게 엎 엎, 건강하게 다운, 다운. 교육복지 엎 엎, 경쟁교육 다운, 다운!...."
고진오 동지가 몸자보 걸친 사람들을 나오라고 헌다. 한 앞에 한 글자썩 써놨다. 열 시(세) 자다.
"모. 두. 가. 반. 대. 하. 는. M. B. 경. 쟁. 교. 육"
이리저리 귀경허고 사진 찍다가 전남지부 뒤쪽에 앙겄다. 빗줄기가 조깨썩 굵어진다. 전북 동지들이 내 젙으로 오등만 자리를 잡고 앙근다. 그러다가 나한테도 몸자보 한나를 건넨다. 봉게 '가'다. 일단 걸쳤다. '모두'란 부사에 주격 조사 '가'를 붙일 수는 없다. 나중에 빠져도 부담없응게 차라리 낫다. 젙엣사람들한테 "나도 시방부터 전북지부 해부께라?" 허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사람들이 웃는다. 하이고 빗줄기가 굵어진다. 바지에 빗줄기들이 쏟아진다. 마침 누군가 비옷을 들고 지나가길래 한나를 더 얻어각꼬 다리를 개렸다. 왼쪽에 있는 선생님허고 같이 덮으까허다가 여성이어서 냅뒀다. 그는 우산으로 다리를 개린다.
비가 장대로 바뀌자 사람들이 함성을 지른다. 그래, 우리는 이미 89년 장대비를 맞고 거시기헌 적이 있다. 시방은 비 맞는 것이 영 찝찝헌 노릇이 되었제만....
문예국장이 사람들을 일으켜세우더니 율동을 허잔다. 율동패 선생님들이 무대에 올라가고 아까 들었던 노래에 맞춰 몸짓을 해싼다. 나는 보신각 쪽으로 갔다, 사진을 찍을 양으로. 근디 장대비 속에서 사진은 엄두가 안 났다. 마침 그 짝(쪽)에서 조선생님허고 팔랑마녀님이 무엇인가를 들고 서있다. 민주노총 성폭행 백서 맹근다는 것을 안내허는 유인물이다. 조선생님이 나한테 유인물 한 장을 건넨디 장대비에 금세 찢어져분다. 비닐봉지에 넣은 선전물이 하나 있길래 나도 그것을 들었다. 폭우 속에서도 사람들은 잘도 논다. 나도 유인물을 두 손으로 든 채, 박자에 맞춰 몸땡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들한테서 전화가 온다. 4번 출구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 가서 지달링게 저 아래 계단에서 누군가한테 전화를 건다. 암매도 나한테 허고 있는 중이리라. "준석아~!"허고 소리를 쳤더니 쳐다보고 손을 흔든다.
민노당 권영길 의원이 연사로 무대에 오른다. 그는 자신을 전교조 국회 대변인이라 부른다. 선생님들의 투쟁에 함께 허겄단다. 이어 노정렬씨가 고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 목소리를 흉내내서 교육문제에 대해 야그헌다. 위원장이 뭐라고 허고 이어 결의문 낭독을 헌다. 빗방울이 작아진다. 그러더니 이내 우산을 안 써도 될 만큼 잦아든다.
안 한다던 행진을 헌단다. 대열이 움직인다. 나랑 준석이랑은 느지막히 따라갈라고 헌디, 박진보 동지가 나한테 달려온다. 방학 때 흑산도 몇 사람 가도 되겄냐고 헌다. 나도, 그분들도 추억허기가 너무 부담시론 아픔이 있제만 어쩌랴! 내 일정을 알려드리고 편하실 대로 정해라고 허고는 헤어졌다.
사진을 찍는다고 대열을 빠져 나와 앞섰다. 긴 행렬을 찍고 있는디 아까 전북지부 동지들이 나를 보더니 맞춰 서라고 헌다. 하릴없이 그들허고 걸어가는디 뒤에서 "아부지."허고 큰놈이 부른다. 내 움직임을 보고 바삐 따라왔능갑다. 대열이 오른쪽으로 꺾인다. 청계천이다. 왜 큰 길 놔두고 사람이 별로 없는 좁은 길로 오냐고 한 분이 그런다. 그도 그렇다. 큰 광화문길 놔두고 왜 샛길인가?
걸어가다가 앞에 가는 분한테 사진 한 장 찍어도라고 했다. 누구냐고 묻는다. 아들이라고 헝게 놀랜다. 이 놈은 어렸을 때부터 집회장에 따라댕겼다고 했다.
"아부지, 저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다녔지 않아요?" "그랬지. 삐약삐약헐 때도 다녔고...."
그러고 봉게 이 놈 집회장에 댕긴 것이 20년 경력이다. 앞에 걸어가던 분이 당신 자식도 오래됐는디 안 따라오더람서 부러워라고 헌다. 저 앞에서 재용이가 사진기를 들고 서있다. 그 앞에 이르자 아들놈이 인사를 헌다.
"어, 너 왔냐?" "예."
4시 30분. 시청광장에 들어섰다. 마무리집회를 헌다. 아까 보신각에서는 한 500여 명 모였겄다고 생각했는디 그 배는 돼보인다. 고동지가 선동을 허고 나서 몸짓패 선생님을 불러 무대로 올린다. 또 아까 부르고 췄던 춤을 춘다. 그 다음에는 부산지부 선생님 한 분이 올라온다. 민노당 후원 문제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 받은 야그를 헌다. 전국 1415명을 불러조사했단다. 참, 허라는 것은 안 허고 독재자 맹배기 놈 똥구녁이나 빨고 있는 것들이다. 그 분 말씀이 끝나자 고동지가 낯익은 두 사람을 소개헌다.
"전교조 노정렬을 소개하겠습니다. 광주지부 이동철, 백금렬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와아~!!!!"
좌우지간에 풍자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전교조의 보배덩어리, 명품 중의 상명품이다. 그 두 사람이 한창 재담을 허고 있는 년(때)에 김나리 동지가 내려가자고 덕수궁 돌담길 쪽으로 가란다. 그의 말대로 준석이를 데꼬 무리를 빠져나간다. 백금렬 선생의 걸죽한 입담이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이 나라 교육을 이 모냥으로 만들고 아이들을 죽이는 놈들을 뭐라고?" "시벌노마~!!"
대한문 쪽으로 걸아가다가 몸땡이를 돌린다. 나도 한 소리 보탰다.
"시벌노마~!"
3. 내려가는 길에
대한문을 건넝게 우리 식구들이 서성이고 있다. 걱서(거기서)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길을 잡는다. 광화문 쪽으로 갔더니 반가운 '하나관광'차가 지달리고 있다. 민주기사 양반이 창고 문을 열고 음석을 내준다. 나는 갑오징어 상자를 큰놈한테 들리고 다른 짐을 들고 올라간다. 뒷자리로 가서 상자를 풀었다. 김나리 지회장이 오더니 비닐장갑을 낀다. 피곤도 헐 틴디 썩썩 잘도 비빈다. 젙에 있던 재용이가, "이런 지회장 있으믄 나와보라고 해! 허허허허...."헌다. 냄새가 쥑인다. 너스레를 떨었다.
"왐마, 냄시에 걍 쎗뿌닥이 **부네?" "아, 심하다, 그건."
바지는 홈빡 젖어불고 신은 철떡였어도 어치고 내려온지 모른다. 도야지머리에 배추짐치, 갑오징어 회무침에 술잔들이 기분을 내고 우리 쎗뿌닥들은 춤을 췄다. <땡>
배암발 : 목포사립지회 박홍정 지회장의 말을 빼묵다니.... 거시기 머시기에 대한 그의 학설(?)
"거시기는 거짓없이, 시원하고, 기분좋게!"
"머시기는 머뭇거리지 않고, 시원하고, 기분 좋~게!"
첫댓글 광주는 내려오는길에 막걸리 소주가 떨어져갖고....중간서부터는 자고왔단게요....담엔 전남차를 타든가해야지 원....
어디 휴게손지는 모르겄는디 광주지부에 쐬주 멫 뱅 건네줬는디.... ㅋㅎㅎㅎㅎ ^**^
한양에 같이 있었는디도 못 뵈었습니다. 글을 보니 저도 다음부터는 무안에서 출발하더라도 전남지부차에 타고잡네요ㅎㅎ 고생많이하셨습니다.
신영이 낭자, 사진으로 봤소. 천하제일미인이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