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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본명은
1932년생 박재철이다.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는 청빈의 도를 실천하며
1976년 4월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수 십 권의 수필집을 통해 힘겨운 삶에 허덕이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사유(思惟)의 기쁨과 마음의 안식을 제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가이자
사후에 '더 이상 자신의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할 정도로
'무소유'를 철저하게 실천한 승려(僧侶)이다.
<출처; DAUM백과>
지금
서울 성북동에 가면 "길상사(吉祥寺)라는 절이 있다.
성북동 길상사가 있는 자리는
옛 70, 80년대 서울의 3대 요정(料亭)이었던 대원각(大苑閣)이 있던 땅이었던 바,
그 주인인 기생 출신의 김영한(일명 김자야, 진향 眞香)이라는 분이
1987년부터
법정스님에게 대원각 터 7,000평(당시 시가 1,000억 원)을 통째로 기부할 테니
절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었고
10년여를 거부했던 법정스님이
1996년에서야 이를 받아들여
1997년 12월 '길상사'로 태동한 절이다.
기생 출신인 일명 진향(眞香)이라는 김영한이라는 분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詩)로 유명한 월북시인 백석(白石)의 연인이었다고 하며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난 후 자기의 전재산인
대원각 터를 절로 만들 결심을 했다고 한다.
<참고;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 서울 편>
어쨌거나
과거보다 미래가 훨씬 아름다운 이야기 인 듯만은 분명한 것 같다.
더욱 유쾌(愉快) 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나는 유쾌하다)
길상사(吉祥寺)라는 절 이름인 것인데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의 현재 호적(號籍)은
그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다.
한편,
송광사의 창건 당시의 옛 이름이 길상사였고
법정스님이
스님으로 처음 출가한 곳이 송광사(길상사)이며
현재
법정스님의 유품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
서울 성북구 길상사(吉祥寺)이다.
이것이야말로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게 수천억의 <소유>를 갖게 해 준
아이러니(irony)가 아닌가!?
현대 사회에
현실적으로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뜻과 의미에
목표를 두거나 부합하려고 하는 현대인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모르겠다,,,
혹시나
고차원적 영혼을 소유하신 분들이나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차원을 소유하신 존재들에게는.
법정스님의 말씀은
정신이든 물질이든
지금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이미 가난을 경험했거나,
정신적 풍요를 갈구(渴求) 하는 사람들에겐
진정한 삶의 사유(思惟)를 깊게 해 주며
편안한 마음과 용기를 주시는 말씀이 많이 있다.
책을 읽다가 졸리어 잠이 들면
그 책이 나에게 꼭 맞는 책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