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방(Đình Bảng) 마을의 코리아타운
1. 딘방 마을 탐방
2. 원혼을 달래는 콴호(Quanho)
3. 코리아타운 구상(안)
1. 딘방 마을 탐방
먹구름 비바람이 천둥번개로, 남북의 시름도 다 씻타운어 갔으면... . 엊저녁에 문득 퀴엣(Quyet) 선생의 전화가... . 전에 이야기 했던 박닌성 딘방 마을에 가지 않겠느냐고. 아침 아홉 시쯤 되었는데 흰색 차를 몰고 퀴엣 선생이 기숙사 앞에 와서 전화를 하는 게 아닌가. 부랴부랴 집 사람과 함께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내려갔다.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더니 그 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고르바쵸프 같이 생긴 한 70 대쯤으로 보이는 농업경제 교수와 함께였다. 안 그래도 딘방 마을에 가보겠다고 했는데. 같이 온 분은 같은 학교 농업경제를 전공하고 러시아에서 한 5년 공부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정년한 지 한 십년여가 된다고. 올해 72세라고. 러시아식 발음이 섞인 영어라 설전음 소리가 유독 많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베트남 식 억양까지... . 그건 나도 마찬가지. 운전석 옆에 오십만 동을 놓으며 부족하지만 연료비나 네 사람 점심하는 데 보태라고 놓았다. 변 반응이 없었다. 옆에 함께 온 땀 선생은 말이 없다. 퀴엣과 무슨 이야기만 나누고... . 땀 교수는 퀴엣이 존경하는 선배라고 했다.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딘방에 같이 가자고 하여 모시고 왔다는 것. 어떻게 딘방 마을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나그네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지난 3월 초순에 한국의 봉화군에서는 베트남 타운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480억 국비를 들여서 연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 곳에는 13세기 고려시기에 베트남의 왕손이었던 화산군 이용상(李龍祥)의 후손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인연으로 말미암은 역사테마 파크이다. 당시에 베트남에서는 진수도(陳守度)가 이씨(李氏) 왕조를 뒤엎고 그 왕손들을 죽이는 활극이 벌어졌다. 틈새를 이용하여 겨우 피신, 밤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사투 끝에 도착한 곳이 고려 땅 황해도 옹진의 화산이었다. 마침 그 때 몽골군이 고려를 침략하여 옹진군을 쳐들어 왔을 때 군수와 힘을 합하여 몽고군의 침략을 막아낸 공로로 조정으로부터 화산군(花山君)이라는 작위를 받고 마 침내 그 후손이 경상도 봉화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화산군 이용상의 조상의 땅이 바로 딘방마을이었다. 지금도 딘방에는 여덟 왕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 여기서는 덴도(Diendo), 줄여서 도(Do) 사당이라고. 덴도는 아마도 일본식 한자어로 전당(殿堂)을 그렇게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문화의 발전은 지속과 변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베트남 마을을 만드니까 상호주의 관점에서 딘방 마을에 코리아타운을 만들면 좋겠다고 본다. 이런 생각으로 우선 딘방 마을을 답사해보고자 하였다. 땀 선생이 물었다.
“좋은 생각인데요. 코리아타운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 텐데 어디서 지원이라도 받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당분간 타이응웬 대학에 와서 있으니까 한번 구상을 하는 겁니다요. 오기 전에 봉화군에 연락을 해서 참고용으로 베트남타운에 대한 기초 자료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落葉歸根). 왕손이었던 이용상의 조상인 8명의 제왕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 아닌가.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종묘(宗廟)나 다름이 없었다.
열 시 반쯤 딘방(Dinhbang) 마을에 차를 댔다. 날은 덥고 후텁지근했지만 아랑곳 할 겨를이 없었다. 네 개의 문을 들어가니 여덟 분의 임금의 용상을 재현해 놓았다. 가운데 이씨 왕조를 세운 태조 이공온(李公蘊)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후대 임금들이 나란히 자리하였다.
이씨 왕국의 건국기념일이 음력 3월 15일이었다. 보름 전에 제례를 모셨는데도 찾아와서 분향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자욱한 향연 속에 이태종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참으로 조상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 탓인가. 돌아보고 나오다 걸려 있는 족자를 보았다. 땀 선생은 나에게 한자를 읽어 보라고 한다.
“남쪽의 산하는 남쪽의 황제가 다스린다(南國山河南帝居).”
중국의 남쪽에 자리한 베트남은 중국의 영토가 아니다. 따라서 베트남의 황제가 다스린다. 일종의 독립선언서이다. 우리에게는 독립선언서가 있다. 좋은 대조를 이룬다.
2. 원혼을 달래는 콴호(Quanho, 觀胡)
덴도에서 나와서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사당 앞에 축구운동장 크기의 연못 한 가운데 정자각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정자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애절한 이 별의 노래 혹은 애원의 노래 같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 예부터 전해오는 민요인데 2009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다. 더러는 콴호를 관세음(觀世音)과 관련짓기도
한다. 일종의 불교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의 유래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도록 한다.
베트남은 본디 어울락(au lac 甌雒)이라 하였다. 어원을 보면 어우비엣(au viet, 甌越, 현 해남도)과 락비엣(lac viet, 雒越, 현 광서지방)을 통합한 비엣족의 나라를 만든 것이다. 지역으로 보면 오늘날 하노이를 에돌아 흐르는 홍강(Song Hong, 洪江)의 기름진 델타 평야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 베트남으로 볼 수 있다. 콴호의 발상지라 할 딘방 지역은 홍강의 하류이면서 리(Ly, 李) 왕조의 본거지였다. 농업국가인 베트남의 전통 민요인 콴호는 어울락의 고대 민요 장르로서 어울락(베트남) 음악의 얼굴로서 자리하였으며 오늘날에 와서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2009). 이 노래는 서정적인 정감을 표현하며 때때로 절 안마당이나 반얀나무가 서 있는 마을이나 나루터에서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콴호의 노랫말은 가족
과 지역에서 서로간의 인사와 정겨움을 중심으로 한다. 그림에서 보인 빈랑 껍질이나 구장잎을 씹으면서 차를 이바지한다. 콴호를 부르는 남자 가수를 리엔아인(Lien Anh), 여자 가수를리엔치(Lien Chi)이라 한다. 가수 가운데서 가장 잘 부르는 남자를 아인하이(Anh Hai), 여자 가수를 치하이(Chi Hai)라고 이른다. 이들의 노래는 마치 부처님에게 이바지하듯이 부른다.
“그대들이 찾아오매 물을 끓여 차를 만드네. 소중한 차 오, 친구들이여.”
어울락 사람들의 손님을 맞이하는 전통은 “차와 구장을 위한 초대”란 콴호 노래로 달콤하게 그린다. 콴호 박닌 민요 앙상블이 부르는 노래를 잠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그대가 방문하니 물을 끓여 차를 만드네 소중한 차
오 친구들이여. 나를 위해 한 잔씩 차를 마시겠나.
강이 땅으로 변하길 바라네.
배를 기다리지 않고 건널 수 있도록 사원에서 신성한 향을 태우네.
절 가까이 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혼자라네.
달빛이 비추는 복숭아정원 거기에 앉아있는 서너 사람 그들 중 누가 집착을 벗어났을까?
결혼의 붉은 실로 우리 묶여졌을까?
구장과 빈랑이 담긴 쟁반을 들고 그대를 보네.
나의 쟁반에 씹는 구장 잎 불사조 날개모양 만들었네.
그대가 즐기길. 친구들이여.
우리 마음을 알고 있나요? 우리를 생각하나요?
우리 감정을 이해하나요? 우리를 생각하나요?”
영혼을 감아 도는 명주실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절절함이 배인 오래. 그 노래 말은 알지 못하겠으나... . 정자가 있는 작은 섬에서 울려 퍼지는 콴호는 잔잔한 물결 위로 흩어져 간다. 마치 덴도의 묵은 나무 가지에서 우는 새 소리와 함께... .
주고받는 가객들의 노래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아리랑을 아느냐고 하니 안다고 했다.
콴호와 같은 노래라고 풀이하면서 함께 간 퀴엣이 베트남말로 옮겨준다. 우리 차례가 끝나면
한번 아리랑을 불러 보라고 한다. 학춤과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정자각 위로 무슨 해오라기 같은 새들도 날아간다. 흰 구름 속으로 점점이 사라져 간다.
3. 코리아타운의 구상(안)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관계는 언제나 상대가 있는 법이다. 지금 한국의 경상도 봉화 마을에서는 나라 차원에서 지원을 받아 베트남 마을의 구상을 현실화 하고 있다. 이씨 왕조의 왕손인 이용상(李龍祥)을 머리로 하는 화산 이씨의 역사테마 파크를 만들고 있다. 화산군의 고향 마을인 딘방에서는 무슨 문화 사업에 대한 계획이 있는가를 퀴엣 선생에게 물어보았다. 딘방은 그의 고향 마을이기에 그러했다.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나그네와 퀴엣은 두서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만일 제 고향인 딘방 마을에 코리아타운을 만든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까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
“딘방의 덴도(diendo, 殿堂, 祠堂)의 내력을 바탕으로 하면서 봉화의 베트남 타운을 참고로 해야겠지요?”
“좋은 생각입니다. 역사와 문화는 인문학의 기초이니까요. 거기다가 문학적인 요소와 철학적인 가치의 요소가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하여 정보통신 기술(IT)과 융합함으로써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같은 문화기술(CT)의 구성을 한다면, 정보통신시대에 걸맞은 완성도를 갖추게 된다고 봅니다.”
간략하지만, 나그네가 준비해 간 자료를 보여 주었다. 봉화군에서 베트남타운 자료를 참고로 한 것이다.
3.1. 기획의도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른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이래 줄기찬 교류와
역사의 격랑 속에서 밀접한 국제 관계를 이어 왔다. 2018년 현재 봉화군에서 추진하는 베트남타운과 관련한 화산군 이용상(李龍祥) 왕자의 고향이 박닌성의 딘방현이다. 화산군 이용상은
고려가 몽고의 침략으로 어려웠을 때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로써 조려 조정에서는 화산군이라는 작호를 내리고 식읍을 주었다. 상호주의 관점에서 베트남타운과 함께 여건을 보아 연차적으로 딘방현 화산군 조상들의 덴도(Diendo, 殿堂) 곧 사당을 중심으로 코리아타운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역사문화교류의 소중한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하노이는 이용상의 조상인 이태조 이공온(李公蘊)이 고향인 딘방에서 당시 탕롱(昇龍), 지금의 하노이로 수도를 옮겼기에 딘방과 하노이는 역사문화적으로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도 같은 홍강(Hong river, 洪江)의 유역에 발달한 삼각주 평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홍강은 베트남의 한강(韓江)인 셈이다. 딘방에서 약20킬로 인근에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가 있기에 앞으로 그 문화수요는 더욱 크다고 하겠다.
현재 4,500개가 넘는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여 있다. 하노이 북부 약 80킬로 떨어진 타이응웬의 삼성전자(三星電子)가 한국 기업의 얼굴이다. 이와 함께 교육과 문화 교류의 수요가 한 해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월남전 참전이라는 아픈 상처의 기록과 교훈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는 지속과 변화라는 두 축으로 발전한다. 현재 베트남 소재 25개의 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되어 있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준비하는 어학당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학의 한국어 교육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장래 희망이 졸업한 뒤 한국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음악과 영화 등 이름하여 한류가 0문화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베트남타운의 건립과 함께 코리아타운이 추진된다면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잇는 무지개의 역할 기대를 충족할 것이다.
3.2 코리아타운의 구상(안)
첫댓글 https://youtu.be/BW_Jjp1rM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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