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 사이로 때 잊은 함박눈이 앉아보지만 햇살 가득한 봄 기운에흔적을 감춘다.
오히려 바람에 실린 촉촉함이 봄 곁에 와있음을 알려온다.
사람 마음뿐이랴 들풀 새순이 돋고. 미물들도 바빠진다 이처럼 생물(生物)들이 봄에
빠져드는 것은 스스로의 생명을 확장하며 나가는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성되기
때문이다.이 모두 진정한 봄을 기다리는 춘분(春分) 현상들이다.
음력 춘삼월 꽃들이 풍광을 이루는 시기가 되면 봄 향기에 취한다 란 말이 절로 나오
는데 봄을 느끼게 하는 묘사 중에 으뜸이요 흥취에 흠뻑 젖어보려는 작위적(作爲的)
표현이다.
겨울 넘긴 것을 자축하고 앞날의 행운을 소망하는 춤판과 같아 흥이 돋고 힘이 솟는다.
좋은 때이다 보니 결혼소식이 여기저기서 날아든다.
친구K의 청첩장을 기쁜 마음으로 개봉했다.
두 사람이 새 출발의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 란 인사말과 K와 딸 이름이 적혀있다.
신부(新婦)인 K 딸과는 잊지 못할 사연이 있다.
중동근무 첫 휴가를 나와서야 선배 L형의 교통사고소식을 알게 됐다.
부모의 결혼 반대로 사고 전까지 몹시 힘들어 했다니 더욱 안타까웠다.
L형에 대한 기억들은 우리들을 몹시 취하게 했다.
친구에게 끌려 그의 집에 도착 한 시각은 통금 직전, 아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설마 단칸방인줄은 몰랐다,방을 나서기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친구는 혀 꼬인 소리로 아내를 소개하고 아기를 안아 보여준다.
새근대며 자는 아기가 그리 어여쁜지 그런 모습을 천사 같다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아기에 빠져 헤매는 것도 잠깐, 친구가 긴장 풀린 탓인지 그만 방바닥에 오물을
토해버렸다. 나 역시 울렁임을 참지 못하고 방은 뛰쳐나갔다.
너무 미안하여 악취와 소란이 어떻게 진정됐는지 묻지도 못하고 눈치보다 결국
삼십 년이 지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방명록 첫 장에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안주머니에 축의금봉투와 별도로 새색시에게 전할 카드가 들어있다.
카드에 이렇게 적었다
신부야!
태어난 지 백일도 채 안된 너하고 같이 밤을 보낸 아빠 친구 J이다.
소란스러웠던 그 날일은 혹시라도 격정(激情)에 빠진 나를 염려한 아빠가 일부러
취해 벌린 수작이었단다.
뿐 만 아니라 네 엄마의 미모와 예쁘고 사랑스러운 너를 자랑하고 싶었던 아빠의
속심도 깔려 있었지. 나는 결국 그 속심에 빠져 준비해 왔던 유학을 접었고 이후
결혼까지 하게 됐었으니 이는 순전히 너희 가족 덕분이라 할 수 있지.
오늘은 또 다른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딛는 즐거운 날이구나, 세상 사람들께 행복
확신(確信)을 공표하는 날 이기도 하고
행복이란 오묘하여 사랑이 가득 하지 않으면 이룰 수가 없단다,사랑으로 충만하거라.
새롭게 인생을 펼쳐가는 너희에게 팁 하나 보탠다.
혹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함께 앞으로 건너뛰는 순간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진단다,
이 균형이 바로 자신감이란다.
자신감이야말로 인생의 자양분이 된단다.
너희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하며 아빠친구 J가
황사가 앞을 가리더니 진눈깨비까지 떨군다.
하지만 오늘은 춘분(春分)절기상으로 제비가 돌아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난히 더딘 것 같아도 어김없는 봄이다.
2010년 3월22일
첫댓글 아빠 친구분한테서 저런 카드를 받는 신부라면 틀림없이 잘 살것입니다. 좋은글 잘봤습니다.
자주 출장을 다니다가 이제야 들어와 봅니다. 둘이 하나가 되는 참 좋은 시기입니다. 산하가 새록새록 봄 숨을 쉬고 있습니다. 애틋한 그리움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신랑신부에게 만운이 깃들길 기도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