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델피 여행1 - 아테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고대 신탁의 도시 델피에 가다!
2024년 5월 2일 아테네 시내 신타그마 광장에 있는 아레투사 호텔 Arethousa Hotel
에서 뷔페식으로 주는 아침을 먹고는 배낭을 메고 내려와서 체크아웃을 합니다.
이제 고대에 지중해의 동부 세계에서 신탁의 도시로 유명했던 "델피(델포이)" 에 가려고 하는데.....
델피는 기차가 없으니 북쪽 리오시온 Liossion Bus Terminal B 에 가서 시외버스를 타야 합니다.
지하철로 가자면 우리 호텔 인근 신타그마 광장에 자리한 신타그마역에서 지하철 2호선(적색) Aghios
Antonios 방향을 타고는 5 정거장을 가서 아티카 Attiki 역에 내려 Liosion 방향 출구로 나옵니다.
여기 버스 정류소에서 024, 711, 719, A10, A11, B10, B11, B12 버스를 타고는 3정거장 Ika 와
4정거장 노랑색 건물 Service Liossion 을 지나 다음 리오시온 ΣΤΥΠΡΑ 에서 내리면 됩니다.
하지만 저게 환승을 해야 하니 복잡한데다가 우리는 시간도 없으며 또 배낭까지 멘채라 그냥
택시를 타는데 호텔에서 1분 거리인 신타그마광장에 가서 주차해 있는 택시에 오릅니다.
"리오시온" 이라고 말하며 미리 인쇄해온 Liossion Bus Terminal B 라고 적힌
종이쪽지를 보여주니 택시는 출발하는데 이 기사는 미터기를 꺽지 않습니다?
어제 펠레폰네소스 반도에서 버스를 타고 키피소스 버스 터미널 Terminal A 에 내려서 택시를 탔더니 미터기
요금은 얼마 나오지 않았는데 기사는 자기 옷으로 미터기가 보이지 않게 덮고는 15유로를 요구하더라마는?
그런데 운행 중에 택시 기사는 어디까지 가는냐고 묻기에 델피에 간다고 하니, 자기
차로 가면 40유로에 데려다 줄수가 있다니 기가 찹니다? 아무리 적게 받아도
100유로는 받아야 하는데 40유로에 낚이면 나중에 딴소리를 할게 분명해 거절합니다.
택시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오래 북쪽으로 달려서는 드디어 Liossion Bus Terminal B 터미널에
도착해 내리는데, 포틴이라기에 잔돈이 없어 20유로 지폐를 내면서 6유로 잔돈을 받을려고 했더니.....
이 녀석 잔돈 주기가 싫었던 모양인지 대뜸 한다는 말이 25유로라며 5유로를 더 달라고 합니다? 서양에서
피프틴(15) 이라고 말해 놓고 나중에 피프티(50) 라고 말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이건 또 뭐야?
해서 어제 여기서 택시를 탔는데 (실제로는 여기가 아닌 키피소스 터미널) 그때는 15유로
를 냈다며 더 못주겠다고 화를 내니...... 이 녀석 머쓱하더니 그냥 내리랍니다?
델피행 버스는 리오시온 Liossion Bus Terminal B 터미널에서 1일 6회 운행(7시 30분,
9시 (일요일 제외) 10시 30분, 오후 3시, 오후 5시 30분등) 한다고 적어 왔습니다.
현재 시간이 7시 55분인지라 9시 버스를 타기로 마음 먹고는 티켓 오피스 창구로 갔더니
시간표가 바뀐 것인지...... 8시 30분이 있어 1인당 16.5 유로에 2장을 끊습니다.
아가씨에서 몇 번에서 타느냐고 물으니 7번이라는데.... 밖으로 나와 찾아보니 7번은
왠일인지 보이지 않기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장 구석진 곳을 가리킵니다.
여기 리오시온 Liossion Bus Terminal B 는 어제 우리가 갔던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코린토스나 나프플리오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키피소스
버스 터미널 Terminal A Kifisos 보다는 규모가 적어 그 3분지 1 정도 입니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가장 구석진 7번 승강장으로 가서 버스에 오르니 우리가 가장 마지막으로 버스표
를 끊은 것인지 가장 뒷좌석인 47번과 48번이라..... 3시간 30분을 가야 하니 걱정이 됩니다?
이 뒷 좌석은 자리가 5개인데 우리 부부 말고 3명 중에 2명은 백인 남녀이니 그럼 일부러
유색인종을 차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우리가 늦게 표를 끊은 탓이라 여겨집니다?
버스는 북쪽으로 들판을 한시간 가량을 달려 어느 도시에 도착하는데 여긴 테베(θíva, 시바)
시 이니...... 그럼 옛날 그 유명한 도시 국가인 그 테베라? 아테네의 북서쪽
중앙그리스주에 속하는 도시로 과거 그리스 중부 보이오티아의 도시국가(폴리스) 였습니다.
이름 테베 Θῆβαι 는 고전 그리스어로는 '테바이', 코이네 그리스어로는 '테베' 라고
읽 는데, 현대 그리스에서는 Θήβα 라고 쓰니 시간이 지나면서 고대 그리스
당시의 발음과 크게 차이나게 되어.... 현대 그리스어 에서는 (θíva 시바) 로 읽습니다.
영어로는 [θí:bz](십즈) 로 현대어 발음을 들어보면 한국인에게는 묘한 어감의 특이한 지명 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한국어로는 '테베' 라고 주로 적고 일본어에서도 テーベ 라는 표기가
있지만 고전 그리스어와 고대 라틴어의 영향으로 테바이(テーバイ) 라고 적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영웅 카드모스가 군신 아레스의 아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쓰러뜨리고 그 이빨을 땅에
뿌려 태어난 용아병들의 생존자들과 함께 카드메아 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카드메아
의 창건자 카드모스는 아레스신의 분노를 사서 8년간 노예로서 돌산을 옮기는 종살이를 끝낸후 아레스
와 아프로디테의 딸인 하르모니아와 결혼하였고, 카드메아를 테베 라는 이름으로 새로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카드모스의 아내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예복이 왕가에 전해졌는데 이를 소유한 여인들도 전부 불행해
졌으니... 이 목걸이에는 헤파이스토스가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에 대한 저주를 걸어두었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전하며 그리스 신화에 테베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오이디푸스 설화 부터 다 비극이며 스핑크스나 테우메소스의 여우등 괴물로 몸살을 앓은 동네기도 합니다.
보이오티아 동맹의 맹주로 강력한 세력을 떨쳤던 "테베" 는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 도시국가들간에 전쟁
당시에는 페르시아 제국을 편들어 아테네를 적대하기도 하였으니 옛날에 이런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뜨악하기도 했는데... 하기사 신라가 이민족 당나라와 연합해 동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니....
고전 시대에는 대체로 아테네, 스파르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양강의 대립 구도를 견제하는 제3세력을
유지할 정도의 능력은 갖추고 있었는데,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간
후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중심이 된 그리스 연합군이 공격하면서 그들과 맞서 싸우다가 참패합니다.
이 패배로 인해 테베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의해 보이오티아와 도시 국가들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고 맹주 자리에서 끌어내려지게 되며..... 이때 스파르타는 배신자 테베를
그리스의 상호방위동맹에서 제명시키려고 했으나 아테네의 만류와 중재로 제명을 면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가 패권을 잃고 스파르타가 권력을 잡은 뒤로는 보이오티아 동맹을
위주로 조용히 국력을 신장시키는데, 아테네와 함께 기원전 386년 코린토스 전쟁에서 스파르타
를 상대로 선전했고, 기원전 371년 명장 에파미논다스가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무찌릅니다.
기원전 371년 7월 6일 레욱트라 전투는 코린토스 전쟁 이후, 테스피아이의 마을인 레우크트라에서
테바이가 이끈 보이오티아 동맹과 스파르타 연합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에파미논다스가 12겹인
스파르타의 정예 우익을 무려 50겹 보병으로 밀어붙여 사선진을 형성함으로로써 테바이가 승리합니다.
저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 국왕 클레옴브로투스 1세는 전사했고 스파르타군 12,000명
중에 4천명 이상이 죽거나 중상을 입고 후퇴했으니, 스파르타는
첫 패배로 펠로폰네소스 전쟁 승리 이후 그리스 반도 전역에 행사하던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스파르타 본국에서는 비보를 접하자 잔여군을 구출하기 위해 구원병을 파견 하였지만, 레욱트라 전투에서
살아남은 스파르타군은 휴전에 동의하고 귀국했는데 스파르타의 법률에 따른다면 국왕이 전사하게
내버려두고 도망친 장병들을 처형해야 했지만, 인구 손실이 심각한 수준이라 법을 집행하지 않기로 합니다.
에파미논다스는 테베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패권을 구축하려 했으니 테베군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진입해 고원의 도시국가 연합인 아르카디아 연합을 설립하여,
스파르타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테베의 지배력을 유지하자 스파르타는 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해 아르카디아인과 영토 갈등이 심한 펠로폰네소스 민족인 앨리스인과 연합합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지원하기 위해 해상을 통해 군대를 파견했으니.... 이 소식을 접한 에파미논
다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질서를 회복하고 테베의 패권을 다시 확립하기 위해
테베군을 이끌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진군했으며 이윽고 양 측은 만티네아에서 결전을 벌입니다.
테베 - 아카디아 - 보이오티아 동맹군은 에파미논다스왕과 5만에서 7만(고대 기록),
이라 전해지지만 현대 학자들은 3만명으로 보며, 스파르타 - 아테네 -
만티네아 연합군은 스파르타 국왕 아게실라오스 2세 이하 2만 5천 정도로 봅니다.
기원전 362년 7월 4일, 스파르타 연합군의 최우익에는 만티네아인들이 배치되었고,
아카디아, 라세다에모니아인이 우익에 배치되었으며 앨레스인과 아카이아인이
중앙에 배치되었고..... 아테네군은 최좌익에, 스파르타인은 좌익에 배치되었습니다.
이에 맞서는 테베 연합군은 테베인이 좌측면에 배치되어 50개 대열을 형성했으며 테게아인과 아르고스
인이 뒤이어 좌익을 형성했고, 에우보니아인, 로키아인, 시키오니아인, 메세니아인,
아이니아인이 중앙에 배치되었으며, 테살리아인과 나머지 동맹국 장병들이
우익에 배치되었으며 테베 기병대는 양쪽 측면에 배치되었고, 좌익에 테살리아 기병이 있었습니다.
에파미논다스는 적에게 자신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야영 준비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자 스파르타
와 동맹군은 식사를 하러 가니 테베군이 평원을 가로질러 공격했고, 스파르타
연합군은 황급히 전열을 정비하여 반격했는데 먼저 격돌한 이들은 아테네 기병과 테베 기병대였습니다.
양측 모두 용감하게 싸웠지만, 경보병의 효과적인 지원을 받은 테베 기병대가 점차 상대를
압도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아테네 기병대는 전투를 포기하고 퇴각했고 또한
반대편에서는 보이오티아와 테살리아 기병대가 만티네아 기병대와 격렬하게 맞붙었습니다.
이후 양측 보병대가 격돌하였고, 에파미논다스가 사전에 편성해둔 테베의 50개 보병 대열이 밀어
붙이기 시작했지만 레욱트라 전투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적군이 좀처럼 밀리지 않았으며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앨레스 기병대는 테베 기병대를 막아서서 후방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에 에파미논다스는 친히 신성부대를 이끌고 스파르타인을 향해 돌격하자 레욱트라 전투로 정예병을 죄다
잃어버렸던 스파르타인들은 신성부대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에파미논다스는 적이 후퇴하는 걸 보고 친히 추격하는데 너무 서두르는 나머지 최전선에 노출되었고
스파르타 전사들이 그를 향해 맹공을 가하자 에파미논다스는 적이 던진 창을 가슴에 맞고 쓰러
졌으니 이후 테베인들은 퇴각하는 적을 잠시 추격했다가 죽어가는 왕을 호송하기 위해 추격을 중단합니다.
이후 후송된 에파미논다스는 군 지휘권을 물려주기 위해 다이판토스와 이올라이다스를 잇달아
불렀지만, 그들 모두 전사했다는 말을 듣자 "이제 테베에는 지휘관이
없구나. 적과 강화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는 숨을 거두었고, 만티네아 전투는 막을 내렸습니다.
테베는 이번에도 스파르타를 물리쳤으나, 명장 에파미논다스를 잃으면서 패권을 유지할 여력을 상실
하였으며 스파르타와 아테네 역시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패권을 주장할 수 없었으니
세 도시국가는 화평을 맺고 전쟁을 잠시 종식시켰는데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으니
소모전이 이어지면서 쇠락하였고, 북방의 별 볼일 없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새로운 패자로 등장합니다.
테베는 한때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 했지만 에파미논다스의 사후에는 다시 내리막길이긴 하나
신성부대로 대표되는 강력한 군사강국으로 이름을 떨쳤으니..... 테바이에 유학한
적이 있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레욱트라 전투에서 큰 영향을 받고
전술과 무장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3세가 부친의 전술을 발전시켰습니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이룬 혁신은 상당 부분 이 전투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으니...
병력 집중, 사선진, 병종간 연합은 이들이 전투에서 사용한 전술로 필리포스 2세가 일리리아를 상대한
전투나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가 그라니코스 전투, 이소스 전투, 가우가멜라 전투,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거둔 승리는 테바이가 스파르타를 격파할때 사용한 전술적 기동을 발전시킨 것이었습니다.
북쪽 산악지대에서 필리포스 2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대두하면서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테베는 자랑하던 무적의 신성부대가 궤멸되는 참패를 맛보며 패권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 싸움에서 신성부대는 사랑하는 동료들을 전장에 버려두고
떠나지 못해 전멸할 때까지 싸웠고, 테베 시민들은 그들의 시체를 무덤에 합장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치세 초기인 기원전 335년에 테베는 다시 마케도니아에 대항하였으나 도시 전체가
파괴되어 완전히 몰락했으니 테베 공방전이며... 이후 카산드로스에 의해 재건된뒤 고대 로마에 편입
되었으나, 도시가 다시 해체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명맥을 이어나갔으며 중세시대에는 여러 국가에 정복
되었다가 오스만 제국에 점령되며 이스테페(İstefe) 로 불리기도 하는등 여러모로 비극의 역사를 걸었습니다.
현대에는 인구 2만을 조금 넘는 평범한 읍이라 도시 규모는 적은 편인데 우리 버스는 테베를 지난후
들판을 조금 더 달리다가 이윽고 서북쪽으로 산을 올라가니 여긴 산맥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은데..... 이른바 핀도스 산맥의 파르나소스 (Parnassos, 해발 2,457m) 산 입니다.
버스는 산을 넘어가니 아테네를 출발한지 2시간 반은 지난 것 같은데 여기 절벽길 위에
갑자기 큰 마을이 나타나니.... 카페며 레스토랑 에 기념품 숍이 늘어서고
관광객들로 붐비는 것으로 보아 그럼 여기가 아라호바 Arachova 인가 봅니다?
해발 850m 에 위치한 여기 아라호바 마을에는 2,300명이 주민이 살고 있으며 마을 위에는 그리스에서 제일
큰 스키장이 있는지라, 겨울철이면 많은 스키어들이 찾아 마을은 활성화되고 혼잡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에서 몇년 전 모 방송국의 최고 인기 드라마이었던 태양의 후예가 이곳 아라호바와 동쪽 이오니아해
의 해변 자킨토스(ZAKYNTHOS) 에서 촬영하여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에 버스에서 내릴수만 있다면 전망대에 올라 포토 존에서 사진을 찍고는 마을에 가게들과 시계탑
까지 구결할수 있겠지만 이건 대중교통이라 그냥 사정없이 마을을 지나 델피로 달려갑니다.
나라호바는 스키장에서 가까우니 거리에는 호텔, 리조트, 가게, 선물코너 등이 많은데 중앙에 있는 시계탑
을 계단으로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조망을 즐길 수 있으며 마을의 작은 집들의 지붕은 하나
같이 붉은색을 띄는 것은 페인트를 칠한게 아니고 값이 저렴한 황토색 기와를 올렸기 때문
이라고 하며 산양과 젖소를 방목한 채로 키우기 때문에 좋은 요구르트와 우유를 생산한답니다.
버스는 2대가 서로 비켜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마을을 지나 산허리를 돌아 내려가는데 아라호바 마을
보다 해발 100미터 아래에 위치한 옛 신탁으로 유명한 해발 750m 의 델피 마을에 도착합니다.
델피 Delphoi (Δελφοί 델포이) 마을에 들어서니 유적지 입구가 나오면서,
길가에 주차해 놓은 많은 차량과 유적지로 오르는 인파로 혼잡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앞 건물에는 여러나라 국기가 펄럭이는데... 아마도 이 호텔에 투숙중인 사람
들의 출신국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동네 안쪽에 자리한 쿠로스 호텔
Kouros Hotel (Ξενοδοχείο Κούρος) 58, Vasileos Paulou & Friderikis, Delfoi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