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카베 요
무통 [無痛]
정리 김광한
책소개
일본을 대표하는 메디컬 작가로 현역 의사 작가 등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하는 제3회 일본의료소설대상 수상 작가 구사카베 요의 장편소설 『무통』. 고베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일가족 네 명이 참혹하게 살해당한다. 범인이 남긴 XL사이즈 신발 자국은 성인 남성의 것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함께 발견된 범인의 모자는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사이즈였다. 이 모순은 무엇을 의미할까? 게다가 범죄 현장은 잔혹 그 자체였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일가족 모두 두개골과 안면을 망치로 강타당해 뇌가 으깨져 있었다. 그 공격에는 인간적인 주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범인은 정신장애자일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는데….
구사카베 요
저자 : 구사카베 요
저자 구사카베 요(久坂部 羊)는 1955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오사카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한 뒤, 오사카 대학교 부속 병원 외과 및 마취과 수련의로 근무했다. 그 후, 오사카 부립 성인병 센터에서 마취과의, 고베 에키사이카이 병원에서 일반 외과의, 일본 외무성 외무 의무관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리아, 파푸아뉴기니 등지의 대사관에서 재외 공관 의무관으로 근무했으며, 노인 데이케어와 재택 의료에 종사하다가 현재는 검진센터에서 비상근 의사로 재직 중에 있으며 오사카인간과학 대학교에서 강의도 겸하고 있다. 2003년 현역 의사로 일하면서 현대 노인 의료의 문제점을 그린 첫 소설 《A 케어?用身》로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작가로 데뷔한 이후, 《파열破裂》《신의 손神の手》《무통無痛》 등 의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메디컬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역자 : 김난주
역자 김난주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쇼와여자대학교에서 일본 근대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오쓰마여자대학교와 도쿄대학교에서 일본 근대 문학을 연구했다.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별을 담은 배》 《날개》 《꽃밥》 《어깨 너머의 연인》《사랑해도 사랑해도》를 비롯해 《창가의 토토》《키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좌안》 《낙하하는 저녁》 《홀리 가든》 《불륜과 남미》 《반짝반짝 빛나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 《냉정과 열정 사이》 《오 해피데이》 《하드 보일드 하드 럭》 《겐지 이야기》 《모래의 여자》 등 다수가 있다.
책 속으로
나미코는 천천히 얼굴을 들고 머뭇거리면서 가쓰에게 물었다.
“저, 또 이상한 질문을 해서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는데요, 다메요리 선생님은 혹시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감이랄까, 사건을 예견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시나요?” …… 〈중략〉 …… “범죄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다메요리 선생님 눈에는 병이 보이는 모양이에요. 우리 선생님은 환자의 겉모습만 보고도 진단을 내리거든요. 겉모습이라는 말이 싫으면 징후라고 해도 되겠죠. 병을 앓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징후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노련한 외과 의사는 위암 환자를 보면, 살릴 수 있을지 아니면 이미 때가 늦었는지, 첫 진찰에서 대충 안대요. 이미 때가 늦은 환자에게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그런 징후를 꿰뚫어보는 능력이 보통 의사보다 훨씬 뛰어나다나 봐요.” - 50~51p
“그럼, 한 가지 물어보죠. 낫지 않을 병이라는 걸 아는데, 치료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요?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쪽은 오히려 병이 보이지 않는 의사입니다. 나을지 안 나을지 모르니까 치료에 기대를 걸 수 있고, 환자를 격려할 수도 있죠. 환자에게 좋은 의사는 그런 의사잖아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치료에 임하는 의사. 그러나 병의 끝이 보이는데 희망을 갖는다는 건, 자기기만입니다. 거짓말로 환자를 격려하고, 효과도 없는 약을 계속 처방하게 되니까요. 그러니 사실은 병이 보이지 않는 편이 좋은 겁니다.”
나미코는 다메요리의 말을 들으면서,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의사라면 누구나 정확한 진단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그런데 병이 보이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하다니.
- 93p
“오카베 씨는 첫 진찰이니,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시라가미는 모니터에 진료 차트를 띄우고 오카베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그다음 눈매가 날카로워지더니, 오카베의 전신을 스캔하듯이 2초 정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고는 다시 모니터를 향하고 말했다.
“우선 기존의 병력인데요. 지금까지 큰 병은 앓지 않으셨군요. 약이나 음식에 알레르기는 없는지요?”
“네, 딱히 없습니다.” 대답하는 동안에도 시라가미는 오카베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현재 병력은 ……, 위에 불편을 느낀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두 달 정도 되었습니다.”
“그 전후에 입맛이 변했다거나, 싫고 좋은 음식이 달라지지는 않았는지요?”
“글쎄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서 얼굴을 들었다가 오카베는 시라가미의 시선에 움찔 놀랐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눈을 찡그리고 무언가에 조준을 맞추는 것처럼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 110p
근신 중일 때, 하야세는 형법 제39조에 대해 조사했다. 이 법률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정신장애자는 2003년만 해도 604명. 그중 74명이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