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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기생충의 습격’ |
구충제에도 끄떡없는 기생충 감염 계속 증가…“정력에 좋다” 날것 찾다 자칫 목숨 잃을라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
#1 어릴 적부터 낙동강변에 살며 수십 년간 민물고기를 잡아 회로 먹어온 김모(63) 씨. 지난해 초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어떤 때는 상복부에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았다. 소화제를 먹어도 안 낫고 위 내시경을 해도 통증의 이유를 알 수 없던 그는 올 초 서울의 대학병원 몇 군데를 두루 거치고서야 병명을 찾아냈다. 기생충의 일종인 간디스토마(간흡충)에 의한 담도암. 즐겨 먹던 모래무지, 붕어와 같은 민물고기 회에 들어 있던 간흡충이 담도에 자리를 잡으며 담도암을 일으킨 것이다. 다행히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았지만 좀체 크기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2 최근 한 방송채널의 건강 프로그램에 뇌에 기생충이 침투해 치매증상을 일으킨 40대 남성의 이야기가 소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평소 덜 익은 삼겹살을 즐겨 먹었다는 이 남성은 어느 날인가부터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짓을 해 병원을 찾았는데, 뜻밖에 기생충 감염에 의한 치매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의 검사 결과, 덜 익은 삼겹살에 있던 돼지촌충(유조구충, 갈고리촌충)의 한 종류인 낭미충의 알(충란)이 남성의 몸속에 들어가 부화된 후 혈액을 타고 뇌로 들어가 치매증상을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다. #3 애완견을 친자식처럼 키우는 김모(35) 씨는 최근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올 5월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잦더니, 결국 길을 빠르게 걷는 순간 앞이 노래지는가 싶다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 실려간 김씨는 자신의 이런 증세가 개회충에 감염돼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개회충이 눈과 뇌에 들어가 이 같은 증상을 일으킨 것이다. 밖을 자주 돌아다니는 애완견과 입 맞추기를 즐기고 모든 생활을 같이 한 게 화근이었다. 1990년대 말 2% 선까지 떨어졌던 기생충 감염률이 2000년대 들어 점차 올라가 4% 선을 훌쩍 넘어서고, 일반 구충제를 먹어도 죽지 않는 치명적 기생충이 기승을 부리면서 국민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소화불량, 발열, 설사 등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의외로 기생충 때문이라는 충격적 진단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민물고기를 먹고 간흡충에 감염돼 간을 버린 사람부터 개회충에 걸려 눈에서 기생충이 나오거나 고급 식자재로 취급받는 오소리 고기를 날로 먹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 온 사람까지 사례도 다양하다.
4% 선 훌쩍 넘는 감염률 지금이야 기생충이라 하면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배 속에 회충이 가득해 횟배를 앓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1970~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매년 하던 대변검사와 1년에 2회 가족 또는 반 친구들과 함께 먹던 구충제를 추억처럼 기억한다. 정부가 1960년대 후반 전 국민적으로 기생충 박멸운동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든 국민의 배 속에 회충, 구충, 요충이 서식하고 있었고 머리에는 머릿니, 피부에는 빈대와 이가 득시글했다. 이것들은 몸 안과 밖(체외 기생충)에 있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지 인간의 몸을 숙주 삼아 육체를 갉아먹는 기생충이기는 매한가지. 오죽하면 ‘회가 동한다’는 말이 ‘배가 고프다’라는 뜻으로 사용됐을까. 옛 기록을 뒤적이다 보면 깜짝 놀랄 일이 한둘이 아니다. 1950년대 말 6·25전쟁 당시 미군 군의관과 간호사들은 한국군 환자의 배에서 양동이 하나가 가득 찰 정도의 회충을 매일같이 빼냈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1949년 5월 낙동강 유역 주민을 조사한 부산수산학교와 부산부립병원 공동조사반이 조사 대상자의 약 50%가 간디스토마에 감염돼 있음을 발견했다는 보고도 있다. 1960년대 후반 우리 정부가 기생충 박멸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도 전 세계에 충격을 던져준 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1963년 겨울, 전주예수병원 의료진(선교사 구바울 등)은 복통을 호소하며 구급차에 실려 온 9세 여자 아이의 배를 열었다 아연실색했다. 1063마리의 회충이 소장을 꽉 막고 있었던 것. 의료진이 급히 기생충을 일일이 제거했지만 소장이 이미 썩어가던 아이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 놀라운 일은 토픽으로 전 세계에 보도됐고 정부는 이듬해부터 전국적인 기생충 박멸운동을 벌여나갔다. 1966년에는 기생충 질환 예방법까지 제정했다. 정부와 의학계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결과, 1971년(제1차 정부 조사) 84.3%에 달하던 기생충 감염률은 1997년(제6차 조사) 한때 2.4%까지 떨어졌다. 전 국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던 기생충이 100명당 2명 수준으로 드라마틱하게 준 이유는 기생충 감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충, 십이지장충(구충), 편충 등 토양을 매개로 감염이 이뤄지는 기생충의 숫자 자체가 인분을 사용하지 않는 등 농법이 등장함에 따라 확 줄어든 데다, 이들 기생충이 약국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일반 구충제에 잘 죽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떨어졌던 기생충 감염률이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일반 구충제로 듣지 않는 치명적 기생충의 감염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2000년대 들어 이뤄진 정부의 첫 전국 장내 기생충 감염실태조사(제7차, 2004년) 결과를 보면 1997년 2.4%까지 떨어졌던 감염률이 2004년 3.7%로 올라갔다. 각 민간병원의 조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04년 서울 백병원 의료팀의 조사에서는 감염률이 7.8%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고 서울삼성병원(성균관대 소화기내과) 의료진의 검사에서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감염률이 2.5%, 2.63%, 4.04%, 4.48%, 3.94%, 4.45%로 증가세를 보였다. 이 자료는 성균관대 의대 소화기내과팀이 2000년에서 2006년까지 7년간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에서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수진자 7만8073명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이 중 3.6%인 2786명이 기생충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기간 우리 국민 200명 중 7명은 기생충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2006년 조사를 기준으로 하면 200명당 9명. 가장 큰 증가세를 보인 것은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을 때 자주 발생하는 간흡충 감염이다. 2000년 0.45%였던 감염률이 꾸준히 증가해 2004년 이후에는 1.4% 선을 넘었다. 3배 이상 증가해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심각했던 2004년의 경우 1.43%로 총 기생충 감염의 31.8%가 간흡충에 의한 것이었다. 정부의 조사에서도 1997년 1.4%였던 간흡충 감염이 2004년 2.0%로 0.6%포인트 늘었다. 전체 감염률이 3.7%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간흡충으로 인한 것. 간흡충은 민물고기 잉엇과 어류인 참붕어, 긴몰개, 몰개, 붕어, 백조어, 모래무지 등을 날로 먹을 때 주로 발생하는데, 간 속의 담관에 기생하던 유충은 성충이 되면서 황달, 복통 등 각종 간질환 증세를 보이다 심하면 담석, 담도염, 담도암, 간경변 같은 합병증을 일으킨다. 소화불량, 허약, 상복부 불쾌감 등으로 출발하지만 방치하거나 발견이 늦어지면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기생충이다. 위의 첫 번째 낙동강변에 사는 김모 씨 사례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질병관리본부가 2009년 7월 말 영산강, 섬진강, 금강, 낙동강 유역 주민 2만6004명을 대상으로 장내 기생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상 주민의 13.1%인 3412명의 장내에서 기생충이 검출됐으며, 그중 90.9%인 3102명이 간흡충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산강 주변인 전남 광양시는 조사대상 주민의 45.8%가 간흡충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던져줬다. 더욱 큰 문제는 간흡충과 같이 일반 구충제로는 절대 죽지 않는 기생충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 어떤 재료든 가공을 적게 해서 날로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소리 고기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6년 4월 경남 거창에 사는 30대 남자 3명이 오소리 고기를 날로 먹은 뒤 며칠 만에 얼굴 부종과 고열, 심한 근육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이 환자 다리근육에 대한 조직검사를 실시한 결과 선모충이라는 기생충 애벌레를 발견했는데 근육 1g당 212마리가 나왔다. 이를 몸 전체로 따지면 수백만 마리의 기생충이 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기생충은 환자들의 심장근육에까지 퍼져 있어 빨리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사망할 수도 있었다.
야생 동식물 무분별 섭취 금물
두 번째 사례에 등장하는 갈고리촌충은 촌충의 한 종류. 촌충은 9m까지 자랄 수 있는 리본 모양의 기생충으로 쇠고기나 돼지고기, 물고기를 제대로 조리하지 않고 먹었을 때 감염된다. 동물과 사람의 장관 내에는 수많은 종류의 촌충이 살고 있는데 갈고리나 흡반을 이용해 장벽에 붙어산다. 돼지촌충 충란을 먹으면 촌충이 낭미충 형태로 뇌나 눈으로 가서 낭미충증이라는 질병을 일으킨다. 낭미충은 경련(간질발작), 두통, 시력장애, 치매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심하면 뇌척수액의 흐름을 막아 뇌압을 올리기도 한다. 위의 세 번째 사례인 40대 남성의 개·고양이회충은 침범한 인체에 유충 상태로 기생하면서 간, 폐, 뇌, 안구 등의 신체조직에 침범한다. 운이 좋으면 증상 없이 지나갈 수도 있지만 심하면 간, 폐, 신장 등에 이상이 나타나고 사지마비가 생기기도 한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개회충에 걸린 유기견의 분변이 흙에 노출된 것을 먹게 되거나 풀을 뜯다 개회충의 알을 먹은 소나 기타 동물의 간을 날것으로 먹어도 감염이 된다. 최근에는 기러기 회와 내장을 먹었다 개·고양이회충에 감염된 사람도 보고된 바 있다. 이처럼 날것을 먹다 기생충에 감염되는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 올봄 설악산 계곡으로 나들이를 갔다 봄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계곡물을 그대로 마셨던 주부 3명이 극심한 복통과 함께 간에 고름이 가득 차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계곡물과 봄나물이 원충계열인 이질아메바에 감염돼 있었던 것이다. 동성애자에게 빈발해 성병으로 오인되기도 하는 이질아메바는 혈점액성 설사와 복통, 장궤양, 장천공, 복막염, 간농양, 뇌막염, 육아종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기생충 조사에선 검사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성균관의대팀의 검사결과 아메바 기생충은 2000년 1.23%에서 2006년 2.09%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벽 운동을 하다가 목이 말라 계곡물을 몇 모금 퍼먹은 50대 남성이 갑작스러운 두통을 호소하다 쓰러진 경우도 있다. 병명은 흔히 고충이라고 부르는 스파르가눔 기생충 감염에 의한 급성 뇌경색. 이 기생충은 개구리나 뱀을 익히지 않고 먹었을 때 잘 감염되는데 이 남성이 먹은 계곡물은 약수로 공식인증이 되지 않은 물로, 추후 조사한 결과 인근에서 뱀 서식지가 발견됐다. 계곡물에 숨어 있던 스파르가눔이 남성의 몸에 들어가 여러 장기를 파괴하다 뇌까지 침범해 뇌혈관을 꽉 막아버린 것이다. 스파르가눔은 일단 몸속으로 들어오면 정상조직을 파괴하고 눈, 척수, 심장, 유방,심지어 뇌까지 파고들기 때문에 뇌경색뿐 아니라 정신분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최악의 기생충이다. 피하결절이나 간질발작, 두통, 하반신마비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분변 검사로도 확인되지 않고 치료약도 없어 수술로만 제거할 수 있다. 심지어 몸에 들어온 지 20년 후에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영상진단법으로 이를 찾아내고 있지만 일상의 영상진단에서 발견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지구온난화와 여행자 통한 전파도
서울주걱흡충이라는 국내 토종의 장내 기생흡충은 소장에 들어와 장내 점막을 뜯어먹는 듯한 기생 양상을 보여 심한 복통과 설사를 일으킨다. 이 기생충은 꽃뱀(유혈목이)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뱀에 기생하고 있으며 대개의 야생 뱀은 고충과 서울주걱흡충의 두 가지 기생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요즘 수렵이 허용되면서 인기를 끄는 야생멧돼지 고기를 날로 먹고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돼 시력 손상 또는 실명을 겪는 사례도 보고됐다. 이 기생충은 세포 내에 기생하는 작은 원생동물로 중추신경계, 림프선 및 망막 등에서 주로 발견된다. 망막에 염증을 일으킬 경우 급속한 시력 손상이나 실명을 가져오며 감염자의 면역기능을 저하시켜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원충으로 인한 뇌염은 AIDS(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의 사망 원인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처럼 기생충이 느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세계화와 개방화, 지구온난화 등 환경요인의 변화와 함께 “날것이라면 무조건 몸에 좋다”는 잘못된 인식을 꼽았다.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 의동물학교실 주종필 교수는 “국가 간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예기치 않는 기생충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해외여행 및 취업 등으로 급증한 외국 체류자와 해외 인력의 잦은 국내 유입 등이 손꼽힌다. 또한 열대·아열대 지역의 말라리아 등 외국 풍토병에 대한 인식 부족도 심각한 위협 요인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가 기생충 감염 증가와 전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라고 설명한다. 연세대 의대 환경의생물학교실 용태순 교수는 “과거 대단히 높은 감염률을 보였던 회충, 십이지장충, 편충 등 토양 매개성 기생충은 줄어들었지만 과거에 덜 주목받던 기생충들이 근래 새로이 부각되고 있다”며 “날것이 정력에 좋다는 잘못된 건강상식이 기생충의 피해를 넓히는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나 진리는 가까이 있듯, 기생충 예방법과 감염 시 대응법은 간단하다. 민물이나 야생에서 수렵한 동물이나 물은 완전히 익히거나 끓여 먹고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일반 구충제나 자가 처방에 의존하지 말고 반드시 병·의원의 문을 두드리라는 것이다. 용 교수는 “야생동물로부터 옮긴 기생충에 임신부가 감염되면 유산이 되거나 기형아를 출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임산부는 날 음식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한편 돼지 날고기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기생충의 감염은 완전히 익혀 먹으면 100% 예방할 수 있다. 도움말 | 연세대 의대 환경의생물교실 용태순 교수,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 의동물학교실 주종필 교수, 고려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조성원 교수,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와 내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