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기'
신학생 시절 매주 토요일마다 시립 병원을 찾아가서, 자원봉사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할아버지 한 분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몹시 쇠약해진 상태에서 누운 채로 링거 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손목과 발목이 붕대로 침대에 꽁꽁 묶여 있었고, 그 때문에 묶인 부위가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간호사의 말인 즉슨
그 할아버지가 주사를 거부하면서 필에 꽂힌 주삿바늘을 계속
뽑아 버리기에 어쩔 수 없이 묶어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동료 신학생은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의 몸을 정성껏 닦았고
묶였던 손과 발도 풀어서 주물러 드리니 무척 기분 좋아하시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식사를 도와드렸고,
마침내 우리도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야 할 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대답도 없는 그분께 주삿바늘을 뽑지 마시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밖으로 나갔다가 서둘러 국수를 먹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계속 누워 계셨습니다.
주삿바늘을 뽑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옆에 앉아 할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다시 주물러 드렸는데,
놀랍게도 그분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어
그곳에 실려 온 후 일주일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는 할아버지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언제 어디서 이런 따뜻한 대접과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하며
말문을 여신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속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어려운 가정환경과 기구한 운명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이 세상이 주었던 것은
온갖 박대와 몰인정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세상을 향해 할아버지는 미움을 넘어서 침묵의 무응답,
그리고 팔에서 주사바늘을 뽑는 거부의 몸짓으로 응수했던 것이었습니다.
- <삼위일체론, 그 사랑의 신비에 관하여>중에서 -
며칠 전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사건을 접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늘 외톨이로 지냈다는 그 가해자 학생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진실한 사랑의 몸짓이 아니었을까요.
완고한 할아버지가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뜻밖의 죽음을 당한 많은 학생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
저만 바라보는 좁은 시야를 벗어나 이웃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주변이, 세상이 더 환한 빛으로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지기 수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