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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잡상(酷寒 雜想)
무척 춥다. 12월 초순 날씨로 이렇게 춥기는 몇 십 년 만이란다. 많지 않게 내린 눈이 열흘이 지나도록 녹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빈 말이 아닌가 보다. 이런 날씨엔 웬만한 약속이나 일이 없으면 집안에 박혀있기 마련이다. 자연히 T.V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다.
가뜩이나 스마트 T.V에 디지털 방송 시대를 만나, 선명한 화면 앞에 앉으면 일어나기 쉽지 않은데, 종편방송까지 난무하니, 그 많은 채널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기 마련이고, 가끔은 마음에 드는 채널을 만나면 한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가면서, 앉은 자세가 불편하여 털고 일어서지 않으면, 몸 상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대선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그동안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한 종편 방송들은 시청자의 눈과 귀를 붙잡아 두려고 기를 쓰고 대선관련 기사나 대담을 종일 내 보낸다. 그나마 대선 판국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궁금한 탓에, 자연히 그동안 도외시 하던 종편 채널들을 이리 저리 돌리게 된다. 대단하지도 않은 정치 평론가나 정치 인사들을 불러 모아놓고, 했던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그중에는 은연중에 특정 정당 편들기 하는 듯 한 기사나 대담을 스스럼없이 쏟아내며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열을 내고 있다.
대형 언론사 계열의 종편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나 집 사람도 어느 듯 이런 종편 채널을 돌리다 보면, 때로는 흥미 있는 연속 드라마나 특종기사에 매료되어, 해당 방영 시간이 되면 다시 찾는 때가 많아지니, 종편 방송이 대선소식 방송에 기를 쓰며 시청자 관심을 끌어 모으는 책략은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대선특집과 뉴스에 관심을 두고 T.V를 시청하다보면 금년 대선 판국은 다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착잡한 일이 많다. 여야가 서로 통합을 부르짖으면서도, 구호는 너 죽고 나 살자는 이야기뿐이고, 그동안 우리나라가 정치와 경제가 괄목하도록 발전 되어 온 줄 알았는데, 갈수록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온 나라가 부정과 도둑들로 만연된 것을 바로 잡겠다고, 서로 열을 올리며 새로운 정치에 새로운 정책과 법을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그동안은 우리 모두가 참으로 비정상적인 잘못된 방향으로 그토록 안간힘을 다 했는가 하는 자괴심이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하기야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 관계 고위층의 부정, 부패 행위는 물론, 심지어 검사 양반들의 입에 담지 못할 망국의 작태까지 들어난 마당에, 웬만한 좀도둑 이야기는 흥미도 끌지 못하는 것은 그만 두더라도, 잡히지만 않으면 남의 돈이나 나라 돈을 훔치는 것은 별로 죄 의식을 느끼지 않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I.T기술 덕분에 수출 소득의 총아가 된 스마트 폰에는 하루에도 몇 번식이나 대출, 부동산 사기꾼들은 물론, 갖가지 보이스피싱 도둑들에 창녀나 뚜쟁이 까지 노크를 해 되니, 어수룩한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 속아 넘어가도 그 사람만 바보취급 당하고, 통신사는 매상만 올리고, 한 건한 사기군은 벼락부자가 되도록 잡을 재주도, 능력도 없는 세상이다.
한 번은 유명 금융사 간판을 빙자하고 값싼 이자로 융자 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받고, 은행 창구에 가서 진위를 확인하니 창구 직원은 한마디로
“보이스 피싱입니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금융회사 이름을 들먹거렸으니 수사의뢰를 해서 범인 색출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고 되물으니
“그게 한두 번 있는 일인가요?”
하고, 오히려 말하는 나를 한심하다며 쳐다보는 수모를 당했다.
나는 속으로 금융회사들과 통신사가 당국과 함께 발 벗고 나서면 보이스피싱 근절을 할 수 있을 텐데, 방관하고 있어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긍융회사나 통신사가 돈을 벌면서 파생하는 간접 피해가 생긴다면 피해를 줄이는데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 않을 까?
대선 주자들이 검찰 개혁이나 경제 민주화의 화두를 더 높이는 것도 바람직 하지만,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고, 법이 있으면 반드시 법망을 용케 피해가는 책략이 뒤따르게 마련이니, 법 이전에 양심과 정직함이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살아오면서 가끔 느낀 일이지만, 왜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교육, 윤리의 함양을 위한 제도개선의 대선구호는 없을까? 임기 내 단기처방으로 효과가 없다고 외면하는 것일가?
주식시장에서 아버지가 돈을 한탕만 잘 굴리면, 그 아들은 두고두고 사회적으로 대접받고, 머리 좋은 벤처시장의 젊은 사장이나, 태생적으로 복 받은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맨이 일확천금을 벌어 호의호식 하는 판에, 그나마 노후가 보장되는 철가방의 공무원 되려고 머리를 싸매지만, 여기에 한 다리 못 끼면, 평생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니 자연히 부자 증세나 복지문제가 금세기 화두가 될 수밖에 없고, 부익부의 악순환이 그동안 우위라고 생각했던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걸림돌임을 알게 된 이상, 북구의 복지국가를 모델로 하는 부자 증세와 복지증대는 더 미룰 수 없는 화두라고 느껴진다.
어느 추운 날 안 사람이 대형 마트에 식품을 구매하는 데 동참했다. 이곳에 들리기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추운 일요일이라, 나 같이 달리 나갈 데 없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마트는 무척 붐볐다. 젊은 내외가 아이들을 큼직한 카트에 태우고 가는 행렬이 끝이 없다. 곳곳에 전 보다 더 많은 상품들이 그것도 못 보던 좋은 물품들이 잘 정돈되어 잔뜩 진열 되었다. 하나같이 사고 싶은 물건들이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오늘은 식빵을 비롯해서 몇 가지 푸성귀를 살 요량으로 왔건만, 안 사람은 이것도 탐이 나고, 저것도 다른데 보다 저렴하고, 나온 김에 화장품 코너에도, 가전제품코너에도 가 봐야 한다고, 넋 나간 사람처럼 헤매다보니, 나올 때 카트는 어느새 많은 물건이 잔뜩 쌓여있다. 계산대 앞에서 금액을 확인하고서야 너무 많이 구입한 것이 후회스러워 얼굴색이 변하지만, 도루 상품을 갖다 둘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신용 카드를 내 민다. 어쩌거나 카드 전표에 사인을 하고 다시 카트에 물건을 담는다. 뒤에 늘어선 젊은이들의 카트에도 많은 상품이 실려 있고, 얼굴 표정은 안 사람과 같이 착잡함이 여실하다. 그 뒤에 늘어서고, 그 옆에 많은 다른 계산대 행렬에도 대동소이한 양상이다. 젊은 부부들이 하나같이 넉넉한 형편은 아닌듯하다. 그러나 마트가 크고 너무 호화롭다. 식빵이 유난히 싸다고 소문이 나서 들어오면, 어디 식빵만 들고 나올 수 없고, 훨씬 더 많은 상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 몰리고 말게 된다.
“견물생심”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 호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기법이라고 느껴진다. 대형마트가 난립하여 재래시장이 망하고 있다는 이유로 의무휴일 지키기, 재래시장 인근에 마트신축 불허이니 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법제화 할 방침이다.
재래시장의 문제만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한 것이 대형마트가 시민 주머니를 다 틀리도록 유혹하는 것이 더 문제다. 지금 세상에 신발이나 옷가지가 낡고 헤어져 못 쓰는 일이 없다. 새로운 것, 더 좋고 유행에 따라 갖추다보니 필요이상으로 물품을 사게 되고, 남아도는 헌 물건들이 폐기되는 정도가 점점 심해간다. 음식물이나 다른 생활 용품도 더 새롭게 가공하고, 더 편리하고 구미에 맞도록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 내니, 소비자들의 욕구충족에 기여하고 생활의 질을 높인다 하지만, 소비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게 만들게 되는 것은 명약관화다. 능력 있는 자가 마음껏 누리는 소비의 기쁨을 위하여 호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참으로 안성마춤이며 한번이라도 마음껏 골라보고, 한자리에서 여러 가지를 비교해가며 골라서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는 대형마트는 참으로 편리한 곳이다.
“돈만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는 말이 틀리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시장 때문에 과소비 풍조가 만연해 지고 웬만큼 벌어서는 빚더미를 벗을 수 없게 하는 장본인이 된다. 옛날처럼 대형 백화점 방문하기란 쉽지 않는 때와 달리, 웬만한 중소도시 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볍게 찾아 갈 수 있는 대형마트가 지척에 있다. 재래시장이나 소형 특수 품종만 취급하는 상점에서보다 과소비를 일으키는 유혹에 훨씬 더 노출되어 있는 샘이다. 사람들은 다 같이 빈한하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과 같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지닐 때는 만족하고 살 수 있으나, 탐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때는 불행하다고 느낀다. 마치 미 개척지 토인들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 드릴수록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과소비 풍조를 억제하고 근검절약하는 생활태도를 함양하기위하여 대형마트는 더이상 난립을 막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것도 외국 자본가들이나 국내 재벌의 횡포로 서민 상가를 몰락시키는 것은 좌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경제 민주화의 방향을 참으로 잘 잡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보태주어도 과소비와 낭비에는 이길 수 없고, 갈증만 심해 질 뿐이다. 대권 주자들이 금방 형편이 나아지는 살림살이를 보장한다는 거짓 구호를 외칠 때 마다, 옛 말이 생각이 난다.
“가난은 임금님도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상대적 빈곤이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반에 반도 없이 살아도 그렇게 불행하고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자 나라 일수록 거지가 많다. 고 한다. 대선구호에 ‘근검절약, 과소비 추방’ 이 없어서 입맛이 쓰다.
엄동에 자연히 바깥 산책 시간이 줄어드니, 베란다에 두고 가끔 사용하던 러닝머신을 아예 거실에 들여다 놓고 하루 한 두 번 머신에 몸을 올려놓고 가벼운 걸음을 하면서 T.V를 보기로 했다. 다행이 저녁 늦게 오래 T.V보는 시간에 가벼운 운동을 하니 소화나 숙면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앞으로는 겨울이 아니더라도 이 습관은 유지하기로 마음먹고 있다.
혹한에 전기 소모가 많다고 아우성인데, 이렇게 많은 종편방송 시청에 나처럼 러닝머신까지 타면서 전기를 쓰는 일이 부담스러워, 낮 시간에는 슬그머니 T.V를 물러나와 서실의 책상위의 컴퓨터 앞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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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越洲형 사는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 같구료.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한심해서 뉴스도 보기 싫고 PC만 장시간 들여다보니 목도 뻐근하고 나도 내일 부터는 골방에 쳐박어 둔 다리운동기구를 거실에 내어 놓고 좀 돌려봐야겠소. 부산은 그래도 玄海灘 덕에 추위가 좀 덜해서 한 대낮에만 광안리 양지쪽 갈맷길을 둥둥산이 처럼 입고 걸어봅니다. 몽당연필 모우기로 칭찬 받던 못 살던 옛날을 생각하며... 월주 내외분 내내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同病相隣, 순환기 계통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기 최고.... 겨울나기 잘 하시고 즐거운 歲暮 쇠시기를 바랍니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 잊고 마음 편히 살도록 노력하세요. 사노라면 즐겁고 좋은 날도 올테니까요.
월주형의 긴글이 감격스럽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