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작품은 2013. 3. 21.에 쓴 글입니다. 벌써 13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 협회의 오늘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전혀 달라진 게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고 또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은 더디 오는 듯 보여도 도적같이 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미리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시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큰 축복이 내려 집니다. 이건 70년 세월을 살아낸 제 경험입니다. 제 지인이 보내 준 <찰리 체플린 이야기>도 한번 해야 겠습니다. (2026. 9.2)
=================================
여호와 이레*
군 생활시절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첫 휴가 나가서 명동 거리에서 흥청망청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전부 총으로 쏘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말은 '자신은 이 추운 골짜기에서 잠도 자지 못하고 훈련 받으며 초병을 서는데 후방에 있는 것들이 하는 짓이라곤 술 먹고 노는 일 뿐이니 분노가 치민다.'는 뜻이었습니다. 나는 그 병사와 전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깨어서 이 엄동을 지키니 그 덕분으로 후방에 사는 국민들이 편안히 잠들 수가 있다’
우리는 죄다 어리석어서 눈에 보이는 것 만 보니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자기만 고생하는 줄 압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글짓기 시간에 이런 글을 쓴게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하학하고 없는 텅 빈 교실에 칠판과 분필과 칠판딲게가 남아서 서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자기가 없으면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자랑하며 싸우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글을 쓰고 달성군 대항 글짓기 대회에 학교대표로 뽑혀 출전하게 되었고 "월남장병아저씨에게 보내는 위문편지"를 쓰라는 제목을 받아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문인으로 최초로 등단한 사건인 샘입니다.(등단경력으로 사람을 깔보는 문인들이 더러 있던데 나와 비교하면 조족지혈 입니다.^^ 영남일보 문화 산책은 1998년에 썼습니다. 겉만 보고 사람 깔보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별것 아닌 제 족보를 올립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예쁜 여자 선생님이 새로 전근 오셨는데, 하교 후에 교실의 환경미화를 한다고 분주하게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를 보고 "소사"아저씨에게 가서 액자를 걸 못 하나를 얻어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책상을 놓고 그 위에다 다시 걸상을 놓고 올라서서 초임의 옛된 여선생님이 망치질을 하는데 어린 눈에도 위태롭게 보여서 곁에서 걸상을 붙잡아 드렸습니다. 못을 박던 선생님이 그런 나를 보시더니 미소를 보내 주시더군요. 그때 그 웃음의 의미는 속 깊은 아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서너 번의 망치질에 그만 못이 튕기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걸상 위에서 저를 내려다보시더군요. 못 하나만 얻어 오라고 시켰으니 하나만 가져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이지요.
'다시 가서 못 하나 더 얻어 올래? 또 심부름 시키려니 미안하구나'하는 표정이 역력 했습니다. 그때 제가 씩 웃으면서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못을 하나 더 드렸지요. 그 예쁜 여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활짝 웃으시며 아주 감동된 표정으로 "애야 너는 참으로 준비성이 많은 아이구나!"하며 고마워 하셨지요. 신기하게도 50년이 다 되어가는 그때 그 장면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습니다,
큰 역할이든 작은 역할이든 있어야 할 사람이 제 자리에 없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비록 작은 역할일지라도 그 직분을 철저히 수행하면 수많은 누군가가 안심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안락한 것은 맡은 역할이 보잘것 없을지라도 투덜거리지 않고 철저히 준비해주는 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엄청나게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것입니다. 노는 사람, 술 먹고 나다니는 사람들 전부 총으로 쏘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은 지금 노는 것처럼 보이는 그분들이 열심히 공부할 때를, 땀 흘려 일할 때를, 쓰라린 고통을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쓸 때를 보지 못한 때문입니다. 그건 가난하고 게으른 젊은이가 부자들을 보고 "세상의 모든 부자들은 다 도둑놈이야" 라고 여기는 심보와 같은 제 이기심의 눈으로만 본 것이지요.
사람은 내 남할 거 없이 불완전하기에, 모름지기 공적인 일을 맡으면 성심을 다하여 더욱 철저히 준비하는 습관을 가져야 세상이 안전하고 평화로워진다고 생각 합니다. 준비를 게을리 한 사람일수록 실제로 일을 할 때 보면 소문난 잔치처럼 시끄럽고 요란하고 불안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남들에게 잘 보이는 것만 좋아 함으로 일의 본질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는 온 동네방네 사람들이 다 알도록 시끄럽게 중언부언하며 기도하고, 금식할 때도 내가 지금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 금식중입니다 하고 굶주린 표정을 절절히 드러내면서 금식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외면하신다며, 복음서에도 인간들의 그런 허위와 가식이 지적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젊은 시절 복음서를 읽고 예수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게 준비와 계획에는 철저하지만 실제로 일에 임해서는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때로는 나의 공을 자기 것으로 가로 채가는 분들을 보면 속으로는 가증스러워 보일 때도 있지만 상 같은 것에 개의치 않으니 문제는 없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일을 맡으면 해야 할 일들의 종류를 먼저 파악하고 각자의 자질에 맞도록 그 업무를 적당하게 나누고, 서로가 맡은 분야의 일을 조화롭게 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하도록 요구하고, 각인이 제 할 일을 어떻게 해내는가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그런 스타일이다 보니 일의 진행과정을 알고자 책임을 맡은 분들에게 일의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점검과 의논을 수시로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나니 '정임표란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이냐고?' 고 묻는 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가한 사람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잘난 체 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도 아닌 것 같고 , 글을 쓰는 스타일도 좀 이상하고-, 그런 저런 점들이 궁금했던가봅니다. 나는 회사에서나 모임에서나 직분을 맡은 분들에게는 늘 미리 철저하게 준비할 것을 요구 합니다. 그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정없이 비판(?)합니다. 모든 준비와 역할을 문서화를 시켜서 정리하여 주고 받으면 두 번 세 번 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통이 명료해집니다.
직분을 맡은 분들은 "최전방의 초병처럼 늘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깨어 있을 수가 없는 사람은 직분을 맡으면 아니 됩니다. 직분을 맡아 놓고 졸고 있는 사람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어떨 때는 가혹하리만치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직분을 맡으면 그때부터는 그 한사람의 문제가 아닌 때문입니다. 그 한 사람이 직무를 소홀히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나는 가능하면 회의 같은데 잘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근본을 모르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일이 너무너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 사훈이 "작은 일도 큰일처럼, 남의 일도 내일처럼" 입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임직원들을 닥달 할 때 자주 입에 올린 말씀이 있습니다. "네 것이라면 그렇게 하겠는가?"입니다. 모름지기 지도자란 남들보다 먼저 깨어나 있어야 하고, 그 깨우침으로 이웃을 깨우쳐서 각자의 소임으로 추진된 결과물들이 다시 한 곳으로 모이는 협력을 이뤄내어 모두가 바라는 꿈(공동체의 꿈)이 성취되도록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소임을 맡은 분들이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일의 과정에서부터 자신의 명예, 자존심, 공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협력은 깨어지고 꿈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가 제자들의 얼굴이 아닌 발을 씻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호수의 오리가 한가하게 보이는 것은 물 밑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물갈퀴 달린 발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수많은 천사와 하나님의 심성을 닮은 이들에게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 하나님은 모든 보이지 않는 중에서도 다 준비하신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