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와서 후기를 쓰는 일이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때는 좀 귀찮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더 이상 쓰기가 어렵게 되지요. 여하간 좀 귀찮기는 해도 이렇게나마 정리를 해 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만족치는 않지만 몇 자 적습니다.
뉴욕에 있는 조카가 전부터 다녀가라고 했고 나 역시 MOMA를 비롯하여 SOHO거리를 거닐며 미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곁눈질이라도 하려고 오래 동안 생각해 왔지만 막상 출발일이 다가오니 몸도 좋지 않아 갈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뉴욕 도착 다음 날 MOMA에 가보곤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리 알아 본 것은 아니었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조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 MOMA에 온 걸로 이번 여행 본전 다 뽑았다.” 그 말은 들은 조카가 사진을 잘 모르면서도 안보면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이 들었는지 전시회 내내 내 곁에서 함께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MOMA(The Museum Of Modern Art)는 1929년 ‘릴리 블리스’ 등 3명의 여인과 4명의 이사에 의해 설립이 된 미술관입니다. 현대미술을 미국에 보급하기 위하여 단 8장의 판화와 1장의 드로잉으로 출발을 했는데 지금은 소장품이 15만점을 넘는다고 합니다.
설립이후 수차례의 증개축을 통해 확장을 해오다가 2004년 11월 일본 건축가 ‘타니구치 요시오’의 설계로 대대적인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미술관의 위치는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데 전철 5Ave-53 St 역에 내리면 도보로 3~4분 거리에 있습니다.
사실 뉴욕에 도착하여 높은 건물과 어수선한 거리풍경 그리고 자동차의 소음 등으로 첫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심 가까이에 있는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자기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수준 높은 연주를 저렴한 비용 아니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뉴욕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MOMA의 경우 금요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는 무료로 입장을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들을 배려하기 위함같더군요. 그리고 호텔에 있는 홍보책자를 보고 2월부터 5월초까지 줄리어드 스쿨에 붙어 있는 앨리스 툴리 홀에서 매주 수요일 런치타임 콘서트가 무료로 열리고 있는 것을 알고 찾아 갔었어요. 무료라고 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수준 높은 연주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하이든의 피아노 3중주를 멋지게 연주해 갈채를 받고 있는 LYSANDER TRIO
그리고 체류 중이던 4월 24일 메트로폴리탄 하우스에서 있었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선 홍혜경씨가 비올레타 역을 맡는다고 해서 꼭 가고 싶었는데 사정에 의해 그 공연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빠졌네요. 각설하고 이제 MOMA로 들어가겠습니다. 전철역에서 걸어가니 MOMA의 벽에 브레송의 전시회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이곳에 방문하기 전에 본 사진으론 관람객들의 줄이 밖에 까지 죽 늘어서 있었던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안에만 줄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MOMA 정문 전경
입구에서 표를 사고 일단 6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서 천천히 내려 오면서 작품을 감상하기로 한 거지요. 6층에는 위에서 얘기했던 브레송의 특별전과 함께 '마리아 아브라모비치'의 비디오 미술 및 행위 예술이 열리고 있습니다. 먼저 브레송의 사진작품을 보았습니다. 이전에도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 뤼미에르에서 그의 작품을 몇 점 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양의 사진을 보긴 처음입니다. 그당시에는 여건도 좋지 않았을 터인데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에게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행해졌던 대가의 노력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브레송의 전시 포스터.
오래동안 브레송의 전시실에 머물다가 행위예술가 아브라모비치의 방으로 이동했습니다. 1977년 그녀가 연인이던 울레이와 함께 했던 작품 '측정할 수 없는 것(Imponderabilia)'을 그의 제자들이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사진을 촬영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나신의 남녀들이 행위예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특히 관람을 위해선 벌거벗은 두 남녀가 마주보고 있는 틈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폭이 너무 좁아 마치 자리를 비켜주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 관람객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할아버지 관람객 한분이 지나치며 남자의 궁덩이를 만져서 소란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벌거벗은 여인이 벽에 설치한 조그만 의자에 걸터 앉아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상처럼 두 팔을 벌리고 있었는데 여러분들에게 보여 주지 못해 유감입니다.
마리아 아브라모비치의 전시 포스터.
한 층 내려가니 비디오 미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품이 전시중입니다. 그의 작품은 3년전 독일에 갔을 때 처음 보았는데 이번에 이곳에서 더 많은 작품을 보게 되는군요. 다리도 아프고 해서 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그의 비디오를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이곳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여러분들에게 그의 작품을 소개할 수 가 없어 유감입니다. 여하간 이들 작가에게 비디오 예술의 문을 열어준 백남준 화백이 자랑스럽습니다.
윌리엄 켄트리지의 전시장 입구.
이제 부터는 회화관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이곳에선 우리가 교과서에서 본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이라든가 샤갈의 나의 마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등등. 특히 마티스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 춤 등 100 여점을 소장하고 있답니다. 우선 아비뇽의 여인을 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아비뇽에 있는 길거리 여인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이 때부터 그의 그림이 해체과정을 겪게 되는 분기점이 된 그림입니다.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흔히 추상화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칸딘스키는 예술이란 삶의 특정한 순간을 담아 내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종합적인 삶의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추상이 구상보다 더 보편적이라는 얘기지요. 추상이란 영어 Abstract , 즉 추출하다란 의미인데 대상에서 비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본질적인 것을 뽑아 단순하고 함축적인 형태로 나타내는 미술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추상형식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겠습니다.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위의 그림은 몬드리안이 건물 옥상에서 바라 본 뉴욕 시가지를 그린 작품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뉴욕의 거리는 십자 무늬로 잘 구획이 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를 노란 색 택시들이 불을 밝히고 다니는 모습을 몬드리안이 화폭에 옮긴 것이지요. 아마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김환기 화백이 뉴욕 체류 중이던 1970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는 추상형식주의와 추상화를 이분하고 있는 추상표현주의의 작품을 보겠습니다. 칸딘스키의 작품입니다. 그는 원래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뜻한 바 있어 뮌헨에서 미술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군요. 어느 날 그가 그의 화실에 들어 섰을 때 눈에 번쩍 띄는 그림이 있어 깜짝 놀랐는데 자세히 보니 그가 전에 그렸던 그림이 옆으로 누워 있던 것이었답니다.
후배가 가끔 추상화를 어떻게 감상하냐고 묻곤 하는데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냥 봐, 이해하려 하지말고. 작가들도 모르는데 우리가 어찌 알겠냐? 그냥 보고 느끼면 되는 거지" 라고 답합니다. 평론가들의 글엔 될 수 있으면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슨 소릴 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들 자신도 자기의 글을 이해하고 썼는지 의문이고요.
칸딘스키의 작품 앞에서
마티스의 춤
잭슨 폴론의 작품 앞에서. 그림 앞에 서있는 저와 비교하면 얼마나 큰 작품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데 쿠닝의 여인 1
제스퍼 존스의 성조기
몬드리안의 작품 앞에서
앤디 워홀의 골드 마릴린 몬로
앤드류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
지난 봄 필라델피아 미술관 작품전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렸을 때 와이어스의 작품을 보려고 벼르다가 가질 못했는데 이곳에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그림을 보고 무척 기뻤습니다.
요즘은 쟝르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80년대에 연출한 사진을 갖고 '사진이다' '미술이다'란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류 사진가 '신디 셔먼'의 작품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사진으로 만들어졌지만 자신은 사진가가 아니라 아티스트라고 항변했습니다. 즉 이미지를 위해 카메라와 함께 할 뿐 자신은 사진을 회화와 같은 표현 매체의 일부로 인식하다는 거지요. (사진이야기 진동선 p 310)
그녀는 자신이 사진을 찍기 보다는 남에 의해 찍혀진 사진이 많아 사진계에서도 그녀의 작품을 사진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연출하면 되었지 누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신디 셔먼의 사진 작품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공을 갖고 있는 소녀
루소의 그림 일부
샤갈의 나의 마을. 고향을 그리는 그의 감성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톰 웨셀만의 작품 앞에서
일본 작가 온 카와라의 작품 1979년 12월 18일
글씨도 미술 작품이 되는 세상이군요. 그럼 이것은 어떻습니까?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요?
미술관 로비에 있는 표지판
뉴욕에 거주하는 조카가 현대미술이 재미있는 듯 바라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미술관 실내 정원. 조각 작품과 쉼터 그리고 레스토랑 등이 있습니다.
조각 작품과 미술관 위에 있는 빌딩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보입니다.
첫댓글 지식수준을 을 한단계 높혀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리에 살때 아는사람들이 올때마다 같이 가자고 해서 지겨워 몇년간 미술관을 잊고 있었네요. 뉴욕가면 꼭 가보겠습니다.^^
저도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입니다.
세반 선생님!!! 좋은 글, 반가운 소식 감사합니다... 항상 도움을 주시니 제 눈이 덩달아 호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라던데... 지금 저는 눈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캄사 무지마니요~ (^^)
좋은 글이나 그림을 보면 누구에겐가 알려 주고 싶잖아요. 제가 꼭 그랬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가끔 외국 나가면 미술관이나 공연장도 들러 줘야 하는데, 저는 때려먹고 마시는 곳만 전전하다 오게 되니 갑자기 한심한 생각이 드네요.
눈을 즐겁게 하는 거나 입을 즐겁게 하는 거나 다 마찬가지지요. 맛있는 곳을 찾아 별미를 느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입니다.
저 보기도 싫은 마릴린(세반 선생님께 죄송합니다)은 아홉 개짜리만 있는 줄 알았더니 네 개짜리도 있고 50개쯤 되는 흑백그림도 있고, 한 개짜리도 셀 수 없이 많다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여긴 골드 마릴린이 걸려 있는데 오렌지, 샷오렌지, 블루, 샷블루, 퍼플블루, 레드, 핑크, 실버... 별의 별 색깔의 마릴린이 다 많습니다. 마음으로 읽어도 눈으로 읽어도 앤디 워홀은 당췌! 감동이 안 오는데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요즘은 마케팅에 의해 영웅이 탄생하는 시대 같습니다. 앤디 워홀 역시 마찬가지지요. 그는 상업미술가 출신으로 예술도 비지니스로 생각하는 작가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니 일단 본인은 성공한 셈이지요. 예술을 대중의 눈높이로 끌어 내렸다는 게 그의 공적이라고 하는데 여하간 재미있는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