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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목원 축제
오종락
대구수목원은 사시사철 축제의 한마당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아서 참 좋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 축제는 자연과 교감하며 스스로 즐기는 축제 한마당이다. 이런 좋은 자연환경은 많은 이들의 땀과 노고가 깃들어 있어서 가능하다. 나는 그분들 덕에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나만의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지난주 나는 혼자만의 수목원 축제를 즐기고 돌아왔다. 가을철 국화축제는 아직 며칠 남았고 국화꽃은 그다지 피지 않았다. 그렇지만 국화꽃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양한 식물들과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수목원의 분위기에 젖어 혼자만의 축제를 즐겼다. 입구에 들어서니 채 피지 않은 국화꽃 군락 사이로 아프리카 봉선화가 나를 반긴다. 이름처럼 줄기는 검붉은 색이나 꽃잎 모양은 수줍고 소담스러운 모습이 아프리카 소녀의 얼굴을 닮았다. 붉은색 아프리카 봉선화를 배경으로 휴대폰으로 셀카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발걸음을 옮겼다.
좌측으로 조금 올라가니 대나무 숲길이 나온다. 쭉쭉 뻗은 대나무 숲 속 벤치에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나무 향을 실은 바람은 일상에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힐링시켜 주었다. 청량한 바람소리를 듣고 있으니 머리도 맑아졌다. 담양의 죽녹원에 온 착각마저 들었다. 가까운 이곳에서 대나무 숲의 기운을 마음껏 느끼는 시간이었다. 먼 곳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덜어 주는 것 같아 고마운 생각마저 들었다.
잠시 후 조금 올라가 오른쪽으로 접어드니 넓은 광장이 나왔다. 국화꽃으로 여러 가지 동물 모양들을 예쁘게 장식해 놓았다. 국화꽃은 드문드문 피어 있어서 국화의 향연은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뒤편 울타리를 국화로 커튼 모양으로 장식해 놓아 푸근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오른쪽 좁은 길로 접어드니 좁은 길 양편에 늘어선 국화꽃 화분이 피라미드 모형의 사이프러스 가로수처럼 보인다. 의장대를 사열하듯이 오늘 축제의 주인공인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를 이토록 흡족하게 대접해 주는 곳이 이곳 수목원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목원은 봄과 가을에 꽃이 한창 피어날 때면 유치원 어린이들의 단골 꽃구경 나들이 장소가 된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꽃 대궐인 셈이다. 또 이곳을 즐겨 찾는 중년 여성들은 수목원 각종 예쁜 꽃의 영향 탓인지 학창 시절 소녀로 변신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으며 연신 ‘김치, 스마일’하는 소리를 외친다. 수목원 안에서는 찡그린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연 이런 곳이 축제 한마당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점들이 가까운 수목원 축제가 주는 선물이고 장점이다.
축제는 결국 자신의 즐거운 마음가짐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먼 축제 현장으로 달려간다고 한들 진정한 축제의 맛을 느끼고 돌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수목원 축제’는 세상의 여러 축제도 내면의 축제로 승화될 때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다. "긍정적인 습관" 이란 책에는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살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오늘 ‘나의 수목원 축제’를 통하여 새로운 명언을 나 자신에게 남기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축제 현장에 가려고 애쓰지 말고, 축제하는 마음을 갖자”라고 나에게 일깨워 준다. 누구든지 이런 마음가짐을 갖도록 훈련을 한다면 일상생활 속에서도 축제하는 기분을 남들보다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요즘 주위를 살펴보면 제법 축제하듯 인생을 즐겁게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 하나의 예가 즐길거리가 있는 현장이면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몰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계절이란 좋은 환경에 태어난 우리들은 사계절이 주는 행복을 만끽할 권리가 있다. 꼭 축제 현장이 아니더라도 집 주위 공원에 피어나는 작은 꽃 한 송이나 가을철 예쁘게 물든 단풍 한 잎을 통해서도 행복을 느끼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축제의 마음과 행복도 모두 습관이고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수목원 축제 시 반드시 들리는 곳이 하나 있다. 그곳은 지난해 문을 연 ‘종교 관련 식물원’이다. 성서와 불경에 등장하는 식물 중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열대지역 식물인 뱅골보리수와 올리브 등 30여 종으로 조성되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예수님이 함께 했을 그 식물들을 통하여 그분들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는다. 사찰이나 예배당보다도 오히려 그분들의 정신세계를 느껴 볼 수 있는 곳이 그 식물들이 있는 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 고귀한 식물 줄기와 꽃잎을 통하여 시공을 초월하여 그분들의 모습을 더듬어 본다. 종이가 없던 그 시절 잎에 경전 기록을 새긴 다라수(多羅樹)와 예수가 지고 간 십자가의 가로대로 사용된 이태리 편백은 성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 나는 이 공간에서 두 분의 가르침을 느껴 보며 잠시 인류의 평화와 국태민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나 홀로 수목원 축제를 즐기다 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사람들은 축제 현장을 왜 그렇게 좋아하고 전국 방방곡곡마다 축제는 왜 그렇게 많이 생겨나는지가 궁금하다. 아마 그 까닭은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식상한 각 지자체의 실적 위주 행정 이야기는 뒤로 하고, 가장 근원적인 답을 찾아보았다. 아마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축제와 같이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게 어찌 마음처럼 쉽게 되겠는가. 그래서 찾는 곳이 축제 현장이 아닐까 한다. 그곳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어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먼 곳의 축제 현장을 자주 가기는 어렵다. 기껏해야 한 계절에 한두 번 가서 즐길 뿐이다. 하지만 수목원 축제는 다르다. 대중교통이면 쉽게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오늘도 수목원은 많은 방문객들에게 축제의 하루를 선물하고 있다.
오후 늦게 축제에 나선 탓에 금세 해는 저물었다. 분수대 옆을 지나가는 늙수그레한 어르신 너댓 명이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라는 이별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한 곡조 부르며 지나간다. 짐작컨데 초등교원으로 퇴직한 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 분들 같기도 했다. 이곳으로 산책을 나오신 모양인데 가을 분위기에 흠뻑 취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노래를 들으니 머지않아 떠나갈 가을밤 기러기와도 같은 인생을 노래하는 것 같아 애잔하게 들려왔다. 깊어 가는 가을 수목원에서 나만의 축제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울려 퍼지는 수목원 폐장 음악소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16.10.30)
첫댓글 대구 수목원은 제가 매주 한 두번씩은 찾아가는 힐링 장소이기도 합니다.
'축제하는 마음으로 살자'는 말에 공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물을 대하는 사유의 눈이 놀랍습니다. 축제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모습을 연산하게 되는데
마음속에서 홀로 축제를 즐기고 있으니 유아독존의 존재인 듯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홀로 축제. 좋은 글. 걈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좋은 생각, 좋은 축제, 자연과 교감하며 나홀로 즐기는 꽃들의 축제 정말 멋있읍니다.
혼자 즐기는 축제, 좋은발상의 전환입니다.새로운 마음으로 수목원을 찿아가 보아야 겠습니다.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경산 끝자락에서 대구의 거의 끝자락인 수목원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좀 먼곳이다 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금새 입이 닥 벌어졌습니다. 매년 한두번 오지만 올때마다 축제 분위기라는 느낌을 받고 갑니다. 각가지 모형의 국화 조형물이 예술 그 자체 였답니다. 오교수님께서 홀로 느끼시는 축제가 좋은 글감이되어 감명받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