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자연인으로 살아남기
220829_송혜영
나는 아이들과 어디 가 볼까 싶으면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 사이트를 가장 먼저 방문하여 보곤 한다. 공공기관에서 하는 자연, 역사, 전시관람 등 다양한 분야의 즐길 것들을 알 수 있고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접속을 하자마자 눈에 확 뜨이는 것을 발견했다. 관악산 캠핑숲이라! 텐트와 매트가 제공되고 1박2일간 세차례의 숲체험 등 생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니 일단 예약부터 했다. 아니나다를까 역시 이 프로그램은 참여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고 나는 방금 누군가 개인사정으로 취소한 것을 줍줍한 행운아였다는 것을 나중에사 알았다.
캠핑을 가려면 짐 꾸릴 것이 많다. 아무리 짐을 최소한으로 한다 해도 중형 세단 승용차 트렁크로는 모자라 뒷좌석까지 꾹꾹 밀어넣기 마련이다. 열심히 짐을 날랐다고 끝인가, 텐트 치고 하루 이틀 놀다 다시 정리하는데 드는 에너지는 보통 열정으로는 안된다. 그래서 캠핑은 아이들도 좋아하고 자연 속 힐링과 불멍의 매력이 크지만 자주 떠나지 않게 되는 터다. 그런데 텐트와 매트가 제공된다니! 게다가 여기는 불 사용도 안되고 주차장이 따로 없기에 최소한으로 싸야 했다. 식사 두 끼도, 제공되는 전자레인지와 뜨거운 물로 조리가 가능한 간편식을 준비하고 옷가지와 침낭 등을 챙겨서 끌 것 하나에 3층탑을 쌓아 이동할 수 있게 했다. 준비를 마치고 보니 벌써부터 만족스럽다. 이렇게 간편하게 꾸릴 수 있구나. 간단하게 떠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그래, 두 끼 정도 가볍게 먹으면 어때! 자연 속에서 놀아보자~ 고고!
하교하는 아이들을 바로 태워 도심을 통과하여 관악산 공원으로 향한다. 아빠는 출근하셨고 토요일인 내일도 회사 일이 있기에 우리 셋이 씩씩하게 지내야 한다. 멀리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삼십분 가까이 걷는데도 덥다 한 마디 없는 아이들. 얼굴보다 큰 채집망을 손에 들고 종종거리는 아이들 발의 리듬과 표정이 기대감으로 충만하다. 드디어 도착하여 데크를 배정받고 방수포를 깔고 원터치텐트를 좌악 펼쳐 멋지게 집을 짓는 것까지! 9세 7세 두 아이가 훌륭하게 해 내었다. 나무 아래인데다 바람도 살랑 시원하고 쾌적한 것이 기분이 좋다. 아이들은 침낭에 꽂혀서는 바로 펼쳐두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치대며 꿀같은 휴식을 누린다.
4시가 되자 열 댓 가정의 자기 소개로 자연놀이가 시작되었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 말은 필요없다. 바구니에 담긴 쪽지를 읽고 적힌 대로 어깨동무 인사를 하거나, '우리 가족 사랑합니다!'를 외치면 소개 끝이다. 그리고 다시 미션지를 뽑고 제시된 그림대로 주위의 자연물을 이용해 작품을 만든다. 우리는 단정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소녀를 뽑아 나뭇잎으로 저고리를, 나뭇가지로 치마를 꾸몄고 강아지풀로 노리개, 개망초 꽃으로 치마 아랫자락의 무늬까지 디테일을 살렸다. 다른 식구들은 어떻게 꾸몄나 함께 둘러보는데 도토리눈의 엘사가 인상적이다. 벌써 노랑으로 물들어버린 잎을 모아 엘사머리도 잘 표현하였다. 이어서 편백의 효과를 알아보고 편백주머니를 만드는 것으로 한바탕 잘 놀고 오후 프로그램이 끝났다.
너무나도 익숙하게 참여하는 서은 가은이 이런 생태 프로그램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5월이다. 고향같은 '바다'로 응축되는 부산을 두고 발걸음을 겨우 옮겼던 우리 가족은 감사하게도 서울과 근교의 산과 강, 공원들의 매력을 알아갔다. 난지한강공원 습지를 해설사 선생님과 동행하여 다니는데 별을 닮아 별꽃, 가시가 있어 찔릴까 찔레꽃, 이팝나무와 물푸레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마치 하얀 눈처럼 폴폴 나리는 버드나무 씨의 향연에 최면이 걸려버린 것이다.
난지습지의 사계절이 다양하니 계절마다 방문해 보라는 해설사님의 애정어린 권유를 기꺼이 받아들여 우리는 매달 그 곳을 찾았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크기까지 모든 중간단계의 올챙이들과 아성체를 실물로 영접하고, 단오 즈음에 창포물에 머리도 감아보고, 땡볕인 여름날 온갖 곤충들이 바글거리는 흙바닥 위에 돗자리를 펼쳐 앉아 나무판 위에 그림도 그렸다. 개미가 올라와 악악거리면 자리 밖으로 치우기에 바빴고 흐르는 땀을 조금이라도 식혀주려 미니선풍기를 조정하느라 땀흘리는 나는 이 분야에서는 극성엄마였다. 우리의 활동모습이 한강생태공원 6개소를 안내하는 책자 중 9쪽 난지생태습지원 면에 실리기도 할 정도니.
그렇게 코로나19 속 여유있는 학사일정 덕을 충분히 누리며 1년여를 보내고 우리는 여전히 정겨운 놀이터인 난지에서 눈을 들어 다른 곳도 보게 되었다. 이번 여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북서울꿈의숲의 밤곤충을 관찰하기도 하고 강북구에서 주최한 파브르 밤곤충 관찰단에 선정되어 다녀오며 밤의 세계도 알아버렸다. 북한산 언저리를 탐사하고 솔밭공원에 다시 모였을 때, 서은이는 채집통에 가은이 손바닥만한 버들하늘소를, 가은이는 큰검정풍뎅이와 매미허물을 담아와 밤에 다니는 곤충들이 많구나 놀랐더랬다.
밤곤충 관찰이 뭐길래 이리 묘하게 설레일까. 문득 싱가포르에서 나이트 사파리를 방문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 때 나는 동물들의 사적인 공간에 잠시 들렀다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소리를 내어도 안 되었고 불을 켜도 안되고 보여주는 대로만 볼 수 있었다. 한밤에 초대해 주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허락되기 힘든 곳에 특별 대우받은 방문객이라는 설레임. 낮은 인간이 주도권을 잡고 설쳐 다니는 시간이라면 밤은 온전히 인간을 제외한 살아있는 것들의 무대이다. 쉬어야 할 시간이기에 밤손님이 아무래도 편할 리 없겠지만 인간들이 자연을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을 공부한다 치고 너그러운 품을 열어주는 것이다.
막 어둠이 내리는 시각 7시 30분. 컵라면과 햇반으로 만족스런 식사를 끝낸 우리는 관악산의 밤을 들여다보러 다시 모였다. 여긴 이미 가을이 찾아왔다. 뭔가 바삐 움직이는 것이 있어 보면 귀뚜라미이거나 산바퀴벌레이다. 얼마전까지 볼 수 있었다는 우화 중인 매미들도 다 한살이를 끝내고 허물들만 남겨두었다. 노린재허물, 사마귀허물.. 하늘소 우는 소리 들어보라며 귀 옆에 갖다대기만 해도 깜짝 놀라고 곤충을 잘 못 만지는 서은이도 매미 허물은 만만한지 성큼 잡아서 채집통에 넣는다. 여러개를 모으면 매미마다 다른 모양을 알 수 있고 빨대 같은 입도 볼 수 있단다. 가은이는 고여있는 물에서 작은 올챙이인가 했던 것이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인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그리고 삼중으로 집을 짓는 무당거미와 달리 방사형의 거미줄을 탄탄하게 자아낸 왕거미의 집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나는 나뭇잎 뒤에 붙은 노린재알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부드러운 세모모양으로 수십개의 알이 모여있는데 손전등 불빛에 투명하게 반짝이는 것이 참으로 보석같이 이쁘다. 선생님의 열정으로 사슴벌레까지 보고 내려오니 곧 캠핑장이다. 한밤의 왁자함도 잦아들고 자연도 우리도 휴식의 시간을 맞았다.
아빠가 없어 그런가 잠자리에 든 아이들은 금방 쌕쌕거리는데 엄마는 이런 저런 생각에 쉬이 잠이 안 온다. 이렇게 다니며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질문도 던져본다. 서은이가 학교에서 한 진로인성검사에서 자연친화능력이 제일 높게 나온 것이 이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친구들이 선생님 설명 들으며 멀뚱히 서 있을 때 쪼그리고 앉아 분꽃을 직접 들여다보고 있는 서은이 모습이 떠오르고(물론 경청도 중요하다). 가은이는 거미줄에 새끼거미 수십마리가 하얀 쌀알처럼 매달린 것을 보고 엄마 지난번에 북서울꿈의숲에서도 봤잖아 하고 기억해 얘기해 주었다. 들여다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출 수 있고, 허투루 넘기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이 살아있는 작은 것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같아 마음이 흡족하다.
그리고 나도 알아간다. 지렁이같은 변온동물은 손으로 만지면 화상을 입고 곤충들도 다치기에 채집통을 이용해야 하고, 10분 정도만 짧게 채집을 해서 줄어든 개체들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자연은 난지수변센터 초록선생님 말처럼 생각주머니를 키우는 곳이고 최고의 학습장이며 북서울꿈의숲 은천선생님 말처럼 자신의 할 일을 하며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것을 배우는 재미가 너무 커서, 자연과 더불어 자라가는 이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권리를 지켜주고 싶어서 나는 지금도 샛강공원이며 서울숲이며 시간만 맞으면 잘 되었다 싶어 덥석 예약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오늘 예약도 대성공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