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얽힌 기억
칼은 본디 물건을 자르는 도구다. 쓰임새에 맞게 사용되면 삶을 한층 편리하게 해주는 연장이지만,
본뜻을 잃으면 흉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칼에는 늘 두 얼굴이 함께 깃들어 있는 듯하다.
연필심을 다듬는 가느다란 커터칼에서부터, 과일과 채소를 가르는 부엌칼, 생선살을 곱게 저미는
회칼, 전장에 울려 퍼지던 청룡도와 닛뽄도, 그리고 선원들이 밧줄을 끊던 세일러 나이프에 이르기
까지. 사람의 삶만큼이나 칼의 모양도, 그 쓰임도 다양하다.
요즘은 웬만한 집마다 반짝이는 칼 세트가 한 켠을 차지하고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부엌
칼 단 한 자루뿐이었다. 그 칼은 밥상을 차리기 위해 늘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었고, 봄이 되면 들로 산
으로 따라나서 소쿠리에 나물을 담을 때에도 빠지지 않았다. 장난감을 만들거나 집안에서 무언가를 자를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는 늘 그 부엌칼부터 찾으셨다. 한 자루의 칼이 부엌에서, 마당에서, 산과 들에서,
삶의 구석구석을 누비던 시절이었다.
쓰임이 잦으니 칼날은 금세 무뎌졌다. 무뎌진 날로 재료를 자르다 보면, 어머니의 팔에는 저도 모르게 힘줄
이 불거지고,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부엌 한쪽에 기대어 있던 옹기
항아리 둘레에 칼을 문질러 날을 세우셨다. 칼끝이 항아리 둘레를 스칠 때마다 나는 묘한 울림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칼을 넘겨받아 숫돌 위에 대고 정성스레 갈았다. 손끝으로 칼날을 살짝
스쳐보며 날이 제대로 섰는지 확인하는 그 순간― 매끄러움에서 까끌거림으로 바뀌는 감촉은 마치 삶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는 듯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타게 되었을 때, 일본에서 제일 먼저 어머니께 선물로 사다 드린
것도 다름 아닌 부엌칼과 가위였다. 국산보다 쇠가 더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칼
도 세월 앞에서는 무디어지기 마련이라, 칼을 가는 기구까지 함께 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생활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부엌칼을 쥘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고, 병마가 어머니를 서서히 앗아가
버렸다. 이제는 부엌칼을 볼 때마다 시골의 부엌에서 팔 힘껏 칼을 놀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옹기 둘레에 칼을 기대어 문지르던 소리, 땀에 젖은 이마, 그리고 한 자루의 칼로 삶을 일구어내던 그 굳은 손길.
그 모든 것이 아직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날카롭게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