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od Place’
1. ‘The Good Place’의 줄거리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점수로 체계화 하여 지구에서의 삶이 끝났을 때 받은 점수를 기준으로 제 2의 삶을 ‘굿 플레이스’ 혹은 ‘베드 플레이스’(마치 성경 속에서 나오는 천국과 지옥과 비슷하다) 둘 중하나로 결정 되는 죽음 이후에 내세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이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핵심 등장인물은 6명으로 지구인(인간)4명, 악마1명, 사람의 형상을 띄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1명이다.
악마인 마이클은 새로운 자신만의 베드 플레이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육체적인 고문방식이 아닌, 참신한 고문방식을 생각해 낸다. 그것은 ‘베드 플레이스’에 가야하는 나쁜 지구인 4명을 ‘베드 플레이스’를 ‘굿 플레이스’로 가장하여 속이고 그들 스스로 서로 괴롭히고 상처 주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간관계 속에서의 정신적 고문을 계획하는 악마의 사기극이 시작된다.
극 중 지구인인 엘레노어는 자신이 전산 상 오류 때문에 베드 플레이스가 아닌 굿 플레이스로 온 것을 알고 마이클이 미리 계획해 놓은 ‘굿 플레이스’속의 재난(엘레노어가 나쁜행동을 하면 지진이 나거나 괴물이 등장한다)을 보며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껴한다. 그리고 이런 엘레노어가 베드 플레이스 사람인걸 알게 된 윤리학 교사였던 치디는 엘레노어가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다른 지구인 두 명 지안유와 타하니도 그들만의 관계 속에서 위기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인 4명은 마이클의 계획과는 다르게 그들의 관계는 ‘선’을 향해 나아갔고 매번 자신들이 있는 곳이 ‘베드 플레이스’이고 마이클의 사기라는 것을 알아챈다. 마이클은 800번의 리셋과 동시에 800번의 실패를 맛보고 자신이 틀림을 인정한다. 자신의 실패가 악마계의 상사에게 들통이 나면 자신은 우주에 무의 존재로 버려진다는 것을 알기에 마이클은 지구인에게 협상을 한다. 이로써 악마와 지구인의 아이러니한 제2의 사기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엘레노어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 치디의 윤리학 수업을 듣는 것을 악마인 마이클에게 제안한다. 이 제안을 통해 마이클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연민과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그들만의 표현방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을 향해 나아가는 지구인 4명의 모습을 보고 아이러니한 감정에 빠진다. “지구에서는 불가능했던 이들의 개과천선이 이 곳(베드 플레이스를 가장한 굿 플레이스)에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결하기 위해 굿 플레이스와 베드 플레이스 전체를 통솔하는 판사에게 찾아가 자신의 의문점을 제기하고 지구로 직접 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인들의 삶은 과거에 비해 너무나 복잡해졌기 때문에 자신이 충분히 인식하고 고민해서 선택 한 ‘선’의 행동 또한 자신이 알 수 없는 또 다른 ‘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은 유기농 토마토를 마트에서 구매하는 ‘선’의 행동을 선택했지만 그 유기농 토마토는 아동노동착취를 통해 길러진 토마토였다는 자신이 알 수 없는 ‘무지의 악’또한 동시에 선택하는 것처럼) 그리고 엘레노어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불우한 가정환경과 악의 접근하기 쉬운 환경을 가지고 태어난 지구인들은 상대적으로 ‘선’을 선택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알게 된 마이클은 이제 악마가 아닌 내세를 관리하는 한 명의 일원으로서 ‘굿 플레이스’와 ‘베드 플레이스’의 문제점을 고쳐나가기 위해, 자신에게는 그저 고문의 대상이었던 지구인 4명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2. ‘The Good Place’에서 찾을 수 있는 철학적 흐름과 느낀점
‘The Good Place’는 한 회차 당 20여분 씩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 드라마로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결코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등장하는 지구인 4명의 모습이 극단적이고 이질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닮은 완벽하지 못한 그들의 모습에게서 동질감과 비롯한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나쁜 짓을 당연하게 여기었던 엘레노어의 모습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지만 그녀가 해왔던 악행(약속을 깨거나, 친구의 뒷담화를 하거나)은 우리가 그동안 (자신이 하면)‘실수’혹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불러왔던 것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악녀 엘레노어가 치디의 윤리학 수업을 들으며 개인뿐만이 아닌 자신이 속한 관계를 위해 좋은 선택을 하고, 선택을 할 때마다 나쁜 선택을 했을 때 들리는 ‘양심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음을 기뻐하는 엘레노어의 개과천선한 모습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어떠한 가능성과 희망,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지구에서 어떤 것이 더 올바른가에 대해 평생에 걸쳐 고민한 치디는 ‘선’을 향한 자신의 신중한 선택을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 우유부단함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되어서 ‘베드 플레이스’로 오게 된다. 윤리학 교수로서 평생의 걸쳐 ‘올바른 것’과 ‘선’을 연구한 치디가 결국 ‘베드 플레이스’에 오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안타까움과 한 편으로는 씁슬함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한계성을 느끼게 한다. 선한 의지가 선한 결과를 가지고 온 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마사 누스바움의 「인간성 수업」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의무를 협소하게 정의하는 도덕성은 행동의 결과가 중요한, 그것도 아주 중요한 세계에서는 우리를 안내하기에 불충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도덕적 의무 자체도 늘 단순하지 않으며, 정직하게 행동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선한 사람에게도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점을 잘 생각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규칙과 원칙에 기초한 도덕성이라는 질문 전체에 관해 열심히 생각해볼 것을 요구받는다. 그런 도덕성으로 삶의 복잡하고 우연한 가능성들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기존의 규칙으로 완전히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은 까다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도 도움이 될 신중하고 분별력 있는 도덕적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일까?” 마사 누스바움이 말하고자 하는 지적은 ‘The Good Place’에 마이클이 지구인 4명을 위해 싸우는 이유이자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우리들의 숙제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The Good Place’는 ‘선과 악’이라는 것을 누가 어떻게 판단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복잡해진 현대인의 삶 속에서 개인의 선택에 구조적인 사회적문제가 투여되어 있을 때 개인에게 책임을 무는 것이 맞는가?, ‘개인과 관계’속의 윤리적 딜레마 등 매 화마다 날카로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The Good Place’는 단순히 ‘선과 악’을 잘 구분지어 ‘선’의 행동을 늘려서 다 같이 천국(굿 플레이스)행 열차를 타자! 와 같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극 중 마이클은 ‘선과 악’의 선택을 두고 혼란스러워하는 엘레노어를 위해 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라는 말을 한다. 이미 복잡해진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자신의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누군가에게 측정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서로,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위해 ‘선’한 도덕적인 선택을 한다면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순서대로 지안유, 치디, 타하니, 마이클, 엘레노어, 제닛(로봇)
줄거리가 많이 길지만 드라마 내용 자체가 의미있다 보니까 분량 조절을 못했습니다!
그래도 직접 열심히 썼습니다!:D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드라마 한 번 봐야겠네요
0.이 드라마는 인간이 선을 향해 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이 힘들기 때문에 악마가 인간들을 돕는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는 듯이 보이네요. 천국과 지옥으로 사후세계가 나뉘고,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인 악마가 있으며,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따른 처벌을 받는다는 기존 세계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이것들을 살짝 비틀면서 윤리학적인 질문들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매력적인 드라마인 것 같습니다. 마사 누스바움의 말을 인용한 것은 인상적인데,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논의를 전개하면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