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8장 54~66절/성전봉헌과 솔로몬의 기도솔로몬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온 백성을 모아 성전봉헌식을 합니다. 나무나 기쁜 마음과 감사와 자랑이 그 온 회중과 솔로몬의 기도에 충만하게 담겨있습니다. 그의 기도를 요약하면 오늘 본문 열왕기상 8장 58~61절에서,58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59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60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61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놀라운 기도입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온 세상에 하나님만이 주인인 것을 알게 하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기를 원하오며,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 보사 이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성전을 봉헌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의 헌신과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수고한 결과물을 보는 그 마음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바른 길, 복 받는 길을 살기를 원한다고 선언합니다. 7년 동안이나 지은 이 세상에서 역사상 가장 호화롭고 정성과 진심의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 성전은 무너집니다. 솔로몬의 그 진심과 백성들의 화합에 있는 그 열정에는 일말의 의심이나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이 성전은 무너지고 더더욱 크게 나라가 뽑혀서 이 민족이 포로가 됩니다. 이 글들은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간 후손들이 솔로몬의 성전을 봉헌한 후 약 400년 이후에 일어난 현실 즉, 실패와 낙심, 불안, 분노 속에서 돌아보는 자기들의 선조들과 나라의 역사인 것입니다. 특별히 솔로몬의 이 성전 짓는 일은 성경에 너무나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백향목과 황금으로 짓고 그 격식과 외양과 각 부품들이 얼마나 정성 속에서 선별되었고 만들어졌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성전이 이방인의 손에 의해서 훼파되고 자기네들은 나라를 잃고 쫓겨 와 있는 현실에서 돌아본다면, 이런 자세한 내용이 나열된 것이 기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백성들과 함께 2주간이나 잔치를 벌이고, 온 백성들이 감사와 만족이 있었던 일들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성경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이렇게 본문을 돌아봅니다. 가장 쉽게는 `솔로몬은 잘 했는데 그다음 후손들이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 그러면 제일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보겠지만, 나라가 분열되고 엉망이 되는 단초를 제시한 것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으로 인하여 그 다음 대에 가서 나라가 분열되고, 북이스라엘은 유다 왕조에 등을 돌리고, 자기네끼리 새로 만든 나라의 정체성을 위하여 우상을 도입하게 되었고, 그것을 남 왕국도 배우게 되었고,, 하는 일들이 말하자면 솔로몬이 그 원인의 제공자인 것입니다. 솔로몬과 당시의 이 기쁨에 참여한 현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진심과 열정으로 이 기쁨을 누리고 있고 그것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문제가 `저들이 진심과 열정을 가진 그 곳에 큰 결함이 있었다.`라고 역사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 7장에 오면 예레미야라는 선지자는 이 망하는 시기, 북 왕조는 이미 앗수르에 망했고, 남 왕조가 바벨론에 망하는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 왕국 유다 백성들에게 절절한 호소를 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유다 백성들은 국운이 쇄하였고 국제적으로 위기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자신들이 선민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이요 다윗 왕가의 영원성이라는 중요한 약속을 하나님께로 받은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예레미야 7장 4절에 이 무서운 경고가 나오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아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여호와의 전이 무엇이 거짓말일까요? 여호와의 전이 여호와의 전이 아닌 것일까요? 하나님이 이 전에 계시는 않는 것일까요? 무엇이 거짓말일까요? 그 후에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레미야 7장 5~7절에 보시면 5.너희가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내가 너희를 이곳에서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하지만 이들이 행한 결과는 8~10절에서 보시면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였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척, 믿음이 없으면서 믿음이 있는 척,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너희의 행위 속에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내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세워지는 기쁨으로 살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전이라, 하나님의 전이라 하면서 우리가 바른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이웃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와서는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는 말들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보이도록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실로에 행한 일을 기억해 보라.` 실로에서 행한 일은 사무엘상 4장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블레셋과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이 패합니다. `왜 우리가 패했는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 편을 들게 하실 수 있는가?` `법궤를 모셔 오자.` 그래서 법궤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전투에서 더 철저히 패하게 됩니다. 법궤는 빼앗겼고 엘리와 두 아들이 죽습니다. "너희가 성전을 지은 것이 너희 신앙과 너희가 믿는 하나님에게 만족스럽고 책임이 끝난 것이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이 아니라,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대하여 갖는 저들의 감격, 저들의 어떤 자랑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까?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크게 칭찬을 받은 왕입니다. 어찌 그런 실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그들의 삶이 바로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성경은 이 부분도 똑같이 지적을 합니다. 같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레미야 9장 23절에 이렇게 꾸짖습니다.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이게 누구보고 하는 소리 같아요? 이게 다 솔로몬한테 것이잖아요. 24절에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솔로몬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그들의 진심과 그들의 열심에 하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지했거나 순진했던 것입니다. 이 무지하고 순진한 것은 그들을 택하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로 하고 그들로 자기의 백성이라 약속하신 분이 어떤 분인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주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19장 5~6절에서 “세계가 다 네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여기에 다시 순종이 등장을 합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는데 제일 어려운 주제가 자유와 순종의 문제입니다.솔로몬은 지혜를 구해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순종을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었다는,, 솔로몬과 이스라엘 온 백성이 모든 정성을 바쳐 지은 성전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내용을 대신할 수 없다는,,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다는 지적을 이렇게 역사적으로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이 본질이 아님> `하나님을 순종한다, 하나님을 알아야 된다` 하는 이야기는 도처에 나옵니다. 특별히 소선지서에 들어가면 더 많이 나오는데, 소선지서들은 대부분 다 북 왕조의 멸망기와 남 왕국 유다의 멸망기에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호세아의 선언은 이것입니다. "나는 제사를 원치 않고 인애를 원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렇게 나옵니다.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고요. 당시의 솔로몬과 이스라엘이 아니 구약 내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누구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가장 크게는 권력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네 편을 들게 하기 위하여 제사와 법들을 지키면, 하나님이 언제나 자기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신앙을 가졌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언제나 편을 드시지만,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그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것, 그들을 부른 하나님은 더 큰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매번 그들을 괴롭게 하십니다. 어려움에 처하게 하시고 다시 생각하게 하십니다.사사기가 그랬고 열왕기가 그랬고, 회복된 후에 바벨론 포로 후에 예수님 오실 때까지 그랬고, 예수님 오신 이후에 로마에 의하여 성전이 다시 파괴되고 아직까지 그렇습니다.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성경이 목적하는 하나님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솔로몬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모든 아름다운 것과 정성과 황금으로 지은 성전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심과 전력을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7장 1절에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지금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하시겠다.` 그것이 `영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성경에서 계속해서 무엇이라 하시느냐 하면 "나는 인애를 원한다, 제사를 원치 않는다. 나는 너희가 정의를 행하기를 원한다." 정의, 인애,, 이런 단어들이 우리가 다 아는 것 같지만, 우리가 무엇에 속느냐? 하면 이런 것들이 도덕과 명분상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을 합니다. 도덕과 명분에 있어서 최고의 가지라고 생각하는 데에 불과하면, 그것이 공포가 됩니다. 여러분 도덕이 공포가 되고, 종교가 공포가 되는 것은 그것을 지킬 수가 없으면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수밖에 다른 자신을 변호할 방법이 없습니다.하나님을 아는 것, 예수님은 오셨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바랬습니까? 그의 권능을 보고 그가 왕이 되라고 그랬습니다. 권력을 잡아 하나님의 뜻을 힘으로 이루라 그랬고, 예수님은 "사탄아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라고 물리치셨고, 친히 그들의 손에 의해서 죽습니다. 무엇을 하시자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용서에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회복에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기다리는 데 있다" 그입니다. 무엇을 만들려고 할까요? 우리 자신이 사랑과 용서와 회복을 가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권세를 갖거나 능력이 있기를 전혀 바라지 않습니다. 코로나..,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요? 모일 수도 없고,, 여러분이 자기 자신일 수 없는 법은 없습니다. 늘 자기는 자기 자신이고,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은 외부에서는 전혀 방해를 할 수도 도울 수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얼마만큼 성도다워지느냐? 하는 것은 다른 방법이 필요 없이 우리 스스로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 더 갈까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가 가진 권세는 폭력도 무슨 능력도 아니고, 십자가였습니다. 무엇을 하려고요? 영생을 주려고요. 이렇게 받은 생명입니다. `그가 죽어서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주신거야` 이렇게 `이 영성이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가?`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됩니다. 우리가 죽어야 되고 져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누구라고 하세요? 누구라고 아는 거예요? 예수와 십자가가 왜 폭력이 되냐고요? 왜 이게 권력이 되냐고요? 그러니까 안타깝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힘을 주세요. 그러면 제가 다 할게요.` 여기서부터 빗나간다고요. 정의는 어떻게 요구가 됩니까? 정의는 꼭 이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라." 여러분 `고아원 짓자, 요양원 짓자`는 아닙니다. `구제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력한 자를 인간적으로 대접해라.` 그러는 말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이웃은 언제나 있습니다. 가족이 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을 한 인격으로, 어떤 존재로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어 그의 백성으로 삼으려는 대상으로 보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않는 한 우리는 늘 핑계가 생깁니다.`예수 잘 믿고 싶은데 안돼요` 해보신 적이 없잖아요. 예수님이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장 28~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이게 우리입니다. 성전 짓기에 수고하고,, 종교적인 어떤 지위와 어떤 보상을 확보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상대방을 조작하려 하지 않습니다. 강제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요? 아뇨, 우리들의 성품과 마음을 다스리셔야합니다. 경쟁과 우월감과 경멸과 비난과 저주와 보복과 분노에서 스스로 격리해 내셔야합니다. 달라지셔야죠? 이게 성경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외적 조건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었고 너는 안 믿었다, 당신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당신은 못 한다.` 이런 말은 우리에게 사용되지 않습니다. 교육적으로만 사용합니다.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이렇게 물으십니다. 아직 아브라함이 아무런 실력이 없을 때 시작이 이 약속입니다. 창세기 12장 2~3절에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게 우리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해서 그에게 어떤 권력과 지위가 주어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복 받는 자, 하나님께 복을 나누는 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 말입니다. 차별화해서 확인을 하고 누구를 비난을 해서 확인하곤 하는 데서 벗어나, 여러분은 누구든지 만나면 `그 사람이 존귀한 존재라고 내가 대접을 받는 것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계속 훈련하십시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건 명분이 아닙니다. 우리 존재론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가신 길이고, 오늘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길입니다. 매일 해야 됩니다. 왜요? 매일 누군가를 만나니까? 매일 시험과 유혹 앞에 있으니까? 여기서 여러분이 신자가 되어야 됩니다.그러지 않으면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 경고를 제대로 받아들이셔야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같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겠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니라."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신앙과 여러분의 현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