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테아 왕국의 집
요르단 남서부 내륙의 사막지대, 해발 950미터 고원 바위산에 새겨진 고대의 도시
신비로운 세상을 꾸렸던 이들의 정체는 나바테아Nabatea 왕국이다.
시리아와 아라비아 반도에서 활동하던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들은
기원전 7세기 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던 페트라에 정착하기로 했다.
사막의 대상들이 홍해와 지중해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하는 곳이었기에
대상로를 지배하며 이 일대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이었고,
BC 1C 부터 번영하여 로마제국에 합병되고
AD 363년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 되기전까지는
유향과 몰약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 였으나
AD 7C중엽 페트라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왕국은 거대한 바위 틈새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건설되었다.
그러나 풍요롭고 영광스러운 생활에도 끝은 찾아왔다.
106년 로마에게 땅을 빼앗겼고,
6세기에는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흙더미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이 왕국도 기원 106년에 로마제국에 합병돼
아라비아 지역 로마제국의 일원이 됐고, 그 중심은 이곳 페트라가 된 것이다.
그 후 4세기에 비잔틴 제국이 들어서면서
크리스토교 세력이 급속히 퍼져나가 이곳 나바티안들은 세례를 받았고,
많은 교회를 세웠으며, 페트라는 그 관할구가 됐다.
하지만 그 번영은 하루아침에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강력한 지진이 엄습해 페트라의 많은 것을 파괴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 후로 사실상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가
7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밀고 들어오면서
이곳 페트라는 보잘것없는 조그마한 부락으로 전락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1천 년의 긴 세월 동안 잊혔던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 국적의 탐험가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흙먼지를 털고서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인 페트라에는 등록된 유적만 800개가 넘는다.
그중 무덤이 500개. 게다가 우리가 지금 보는 건
원래 페트라 규모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시간이 귀한 여행자들이 핵심만 뽑아서 둘러본다면
적어도 5시간이 필요하고, 정상적으로는 하루를 투자하는 게 좋고,
후회 없이 집으로 돌아가려면 2일을 보내야 한단다.
이 장밋빛 유적의 도시 페트라의 역사는 아주 깊다. 그 첫 번째 주인은 기원전 13~6세기에 번영을 누렸던 ‘에돔(Edom)’ 왕국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여호와나 마호메트 같은 유일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해와 달을 숭배하는 범신교도들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너희들은 어찌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
이 독수리 같은 놈들아. 바위틈에서 잡신을 믿지 말지어다”라고
호통친 적이 있다고 성경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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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테아 왕국의 집
신비로운 세상을 꾸렸던 이들의 정체는 나바테아Nabatea 왕국이다.
시리아와 아라비아 반도에서 활동하던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들
은 기원전 7세기 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던 페트라에 정착하기로 했다.
사막의 대상들이 홍해와 지중해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하는 곳이었기에
대상로를 지배하며 이 일대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이었고,
왕국은 거대한 바위 틈새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건설되었다.
그러나 풍요롭고 영광스러운 생활에도 끝은 찾아왔다.
106년 로마에게 땅을 빼앗겼고,
6세기에는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흙더미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1천 년의 긴 세월 동안 잊혔던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 국적의 탐험가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인 페트라에는 등록된 유적만 800개가 넘는다.
그중 무덤이 500개.
게다가 우리가 지금 보는 건 원래 페트라 규모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시간이 귀한 여행자들이 핵심만 뽑아서 둘러본다면 적어도 5시간이 필요하고,
정상적으로는 하루를 투자하는 게 좋고,
후회 없이 집으로 돌아가려면 2일을 보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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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a Thrilling Adventure 나바티안이 세운 왕국, 페트라 탐험
요르단으로 전 세계인들을 불러 모으는 페트라.
나바테아 왕국 사람들이 건설한 붉은 사암의 고대 도시
요르단에 온 단 하나의 이유다.
페트라Petra. 붉은 사암 지대의 모험을 오래전부터 상상해왔다.
요르단 남서부 내륙의 사막지대,
해발 950미터 고원 바위산에 새겨진 고대의 도시 유적.
‘이토록 황량한 사막에 과연 누가 살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만큼
뜨겁고 메마른 땅에는 지금 못지않은 완벽한 도시의 흔적이 남아있다.
코앞에 다가서지 않는 이상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는 암석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아
더 열렬히 다가가도록 잡아당기는.
나바테아 왕국의 집
신비로운 세상을 꾸렸던 이들의 정체는 나바테아Nabatea 왕국이다.
시리아와 아라비아 반도에서 활동하던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들은
기원전 7세기 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던 페트라에 정착하기로 했다.
사막의 대상들이 홍해와 지중해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하는 곳이었기에
대상로를 지배하며
이 일대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이었고,
왕국은 거대한 바위 틈새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건설되었다.
그러나 풍요롭고 영광스러운 생활에도 끝은 찾아왔다.
106년 로마에게 땅을 빼앗겼고,
6세기에는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흙더미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미로 찾기 같은 페트라 탐험
본격적인 페트라 탐험은 좁고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1.2킬로미터 길이의 협곡 시크Siq를 통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얼핏 미국 애리조나의 캐니언을 하이킹하는 기분으로 걷다 보면
바위틈 사이로 페트라의 보물 알 카즈네Al Khazneh가 뽀얀 얼굴을 드러낸다.
페트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건물. 아름다움도 단연 1등이다.
기원전 1세기 헬레니즘 양식으로 건설한 2층짜리 신전 형태의 알 카즈네는
기둥이나 벽을 세우지 않고 오로지 바위를 정교하게 깎고 파내는 기술만으로 탄생했다.
겉모습은 마치 붉은 사암에 예술적으로 조각한 작품 같지만, 반대로 내부는 텅 비어있다.
아마도 나바테아의 왕 아테라스Aretas 3세의 무덤일 것이라 추정된다.
알 카즈네를 지나고 나면 이내 바위를 뚫어 만든 거대한 왕의 무덤들 다음으로
페트라의 탁 트인 풍광이 그림처럼 깔린다.
찌릿하게 자극되는 웅장한 풍경. 여기서부터는 양옆으로,
또 언덕 너머로 사원, 교회, 목욕탕, 왕궁, 오벨리스크, 석주 등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서
그저 이끌리는 대로 자유롭게 둘러보면 된다.
알 카즈네가 하이라이트였다면 페트라의 마지막 대미는 알데이르Al Deir가 장식한다.
800개의 계단을 올라 절벽 위에 오르면 알 카즈네와 비슷하지만
규모로는 훨씬 더 큰 사원을 마주할 수 있다.
유적지 입구에서 서쪽 끝의 알 데이르 사원까지의 거리는 총 5킬로미터다.